[코믹] 해골가족 - 01. 연예계 진출 사건!

카엔200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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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골가족 연예계 진출하다.


서 있는 것은 어리석고,

기는 것은 괴롭고,

깡충깡충 뛰는 것은 바보 같고,

걷는 것은 더 나쁘다.

펄쩍펄쩍 뛰는 것은 암담한 일이고,

뛰어오르는 것은 귀찮고,

앉아 있는 것은 의미 없고,

배우는 것은 따분한 일이다.

달리는 것은 우습고,

뛰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이층에 올라가

나는 또다시 누워있으련다.


            - 쉘 실버스타인의 ‘다락방의 불빛’中








머리는 얌전히 땋아 댕기를 드리고, 무명 저고리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누워있었다.  한복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지만 문제는 복장이 아니었다. 누워 있는 장소가 불만이었다.

왜 하필 물이 가장 많이 고인 진흙탕이란 말인가.

역시 눈치 빠른 동생을 짚을 머리에 깔고 누웠다. 그리고 결정적인 실수는 비를 피하기 위해 엎드려 누웠다는 것이었다.

행여 콧구멍에 비가 들어갈까 머리를 땅을 향해 누웠건만 이건 당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로 묵직한 진흙덩이가 들어오는 듯해서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다.


‘벌써 이게 몇 시간째야.’


빌어먹은 빗줄기는 어찌나 두꺼운지 머리에 내려쳐질 때마다 뒤통수가 얼얼해지고 있었다. 그때 저벅저벅 나를 향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내 옆까지 왔군. 조만간 끝나겠군.’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옆을 지날 때였다. 그냥 지나쳐야 할 그 발은 나의 손등을 무참히 밟고 말았다.


“아얏!”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컷!”


감독의 컷 사인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거기 시체 학생. 시체가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시체가 소리를 질러. 그냥 누워있는 것도 제대로 못해? 그게 뭐가 어려워? 비도 오고, 빨리 끝내야 되는데 별게 다 난리네.”


감독은 얼굴에 걸 맞는 성질을 부렸다.


‘저 감독 아까도 나한테만 뭐라 하더니만. 소리 지를 것까지는 없잖아, 이 대머리 감독아! 니가 한 번 밟혀봐라. 소리가 안나오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발을 밟았어요. 제 잘못이에요. 다시 갈께요. 죄송합니다.”


감독에게 사과를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탤런트 이재무?’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꽤나 주목을 받고 있는 탤런트였다.


‘역시 매너 좋기로 유명하더니 정말 싸가지가 있네.’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손은 괜찮으세요?”


이재무는 친히 나에게로 와 내 손을 살피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 건데 프로의식이 부족했나봐요.”


‘웬 프로 의식?’


꽃미남 탤런트에게 손을 잡혀서 일까, 헛소리가 나왔다. 손이 얼얼할 정도였지만 꽃미남과의 접촉이라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발자국이 찍힌 손등에서 꽃내음이 나는 착각이 들었다.


‘앗싸!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보람이 있지.’


“늦었으니까 빨리 가자구.”


이재무의 말에 감독은 무척이나 온화한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서럽다. 서러워.’


잠시 후 촬영이 다시 재개되었다.



이렇게 연예계에 진출하게 된 이유는 무척 말랐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 슬픈 사연은 우리 가족의 소개부터 시작해야한다.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나, 동생 이렇게 네 식구다. 사람들은 우리를 해골 가족이라고 불렀다. 마르고 말랐기에.

사실 말랐다라는 것으로는 우리 가족을 표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피죽도 못 얻어먹었냐느니, 복이 없어 보이냐느니, 이디오피아 난민이라는 얘기 정도는 듣고도 콧방귀도 안 뀐다.

진짜 우리 가족은 내가 봐도 해골 같다. 해골가족이란 이름으로 동네에서도 꽤 유명했다. 이 유명세가 꽤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식료품을 사러 갈 때는 불쌍해 보인다는 상점 아줌마들의 후한 덤으로 2만원이면 일주일 먹거리가 생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소집된 가족모임.


“다음주 일요일 방송국 촬영이 있다. 모두 시간 비워두도록.”


대장 해골인 아버지의 말에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때까지는 분위기 좋았다.


“아빠, 뭔 촬영이야? 우리 다 가는 거야?”


아직 12살인 까만 해골은 신이 나 물었다. 남동생이 무척 까만 피부를 가졌고 나는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탓에 동네 사람들은 동생을 까만 해골 나를 백해골이라 불렀다.


“사극이야. 요즘 하는 월화 드라마.”


이때부터 아빠의 설명 부족이 마음에 걸려 분위기 안 좋았다. 엄마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요즘 하는 고집불통 박영감인가 그거? 무슨 역할인데?”

“그냥. 그냥 엑스트라야.”


이때 알았어야 했다. 내가 눈치가 빨랐다면 우리 식구 단체로 시체놀이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텐데.


“엑스트라도 뭔가 역할이 있을 거 아니야?”

“그냥 얘기해줘요. 여보. 어차피 다 알게 될 거.”

“시체 역할이야. 우린 그냥 한복 입고 누워있으면 되는 거야.”


말을 들어보니 그랬다. 고집불통 박영감의 동네에서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서 말라 죽고 있다. 우리는 말라 죽은 시체 역할인 것이다.


“나 싫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엄마. 내 나이 열일곱이야. 내 나이 때면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난리인데. 시체 역할이 뭐야? 시체 역할이. 그것도 처음으로 하는 텔레비전 출연인데.”

“난 재미있겠는데 뭘.”


까만 해골은 신이 나 죽는다.


“나 못해. 셋이 가서 해.”


이때만 해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이 자식아! 너 쓰는 컴퓨터 할부금 내려고 엄마 아빠 다 나가는데 너 혼자 집에 있겠다고. 그래. 다 나가지 말자. 여보, 얘 컴퓨터 당장 내다 팔아버려.”


자존심이 다치신 것 같은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지도 싫겠지요. 누군들 좋겠어요.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너무 무능력해서 너희 고생만 시키고. 넌 나가지마. 엄마 아빠만 다녀올게.”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누나 뭐야? 혼자 잘났어? 왜 우리 엄마 눈물나게 해.”


동생도 소리를 지르며 울먹거렸고, 뒤돌아 앉은 아빠의 어깨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네 엄마가 아니라 내 엄마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결국 아빠의 연출 하에 조작된 쇼인지 짐작조차 못했던 난 가족의 눈물 앞에 항복하고 말았다.


촬영 시작과 함께 식구들의 시체놀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까와는 달리 하늘을 보고 누웠더니 더욱 숨쉬기가 곤란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어야 했는데. 또 실수를 했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빨리 와라. 너만 지나가면 오늘 촬영 끝이다.’


코끝이 간지러운 것이 감기 기운이 있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 씻을 따뜻한 목욕물부터 받아드리고,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마실 생각을 하며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저벅저벅.

물 고인 웅덩이를 밟는 소리를 이렇게 가까이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듣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다시없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너무 가깝게 오는 거 아니야? 이러다 또 밟히겠는걸. 설마.’


설마가 아니었다. 그 재무라는 자식이 고의적으로 내 손등을 밟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까의 상황을 생각해서 소리는 지를 수 없고. 손등을 지긋이 그리고 있는 대로 무게를 실어 밝는 듯한 느낌. 너무나 고통스러워 뼈가 으스러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자식 일부러.’


눈을 뜨고 이재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의 입술은 희미하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 우하하. 해골가족 2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