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탱고

해내리2026.01.12
조회65

 ‘내 나이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입니다 

  이름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서울이라 낯선곳에 이렇게 

  혼자 조용히 살면 그만일뿐~~~’ 

 

 안 어울리게 무슨 

 80년대 신파조 노래나 부르고 

 앉아있냐구요 ? 

 뭐 그런식으로 핀잔주신다면 

 딱히 무슨 다른 할말은 없지만 

 정히 그렇다면 제 지나간 시간 이야기나 

 한번 해보고 싶으니 

 조용히 술한잔 하면서 

 들어주시겠어요 ? 

 

 저...이래봬도 

 한참 잘나가던 집의 장녀였답니다 

 뭐 요즘 보면 인터넷에 

 무슨 잘나가는 미국 변호사라느니 

 숨겨놓은 재벌3세라느니  

 이런식으로 사기치는 여자들 

 꽤 있나본데 

 

 저 뭐 솔직히 제가 잘나가는 집안 딸인지 아닌지는 

 어릴때는 잘 몰랐습니다 

 어릴땐 아버지 직업이 막연히 

 군인인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시간이 흐른뒤 

 대충 제 나이 20대때 90년대에 

 하이텔 채팅실에서 만난이들은 

 ‘아버지 직업이 군인’이라고 밝히면 

 보통 젊은 여성이나 30-40대 중년 아줌마들인 

 ‘멋있다’느니 어쩌느니 다소 부럽다는듯한 

 반응을 보였고 

 젊은남자...특히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은 

 ‘아버지가 군인이셨으면 군사정권때 

 크게 한자리 하거나 그러셨을수도 있겠네요’ 

 그런식으로 나오더군요 

 조롱인지 비아냥인지 모르곘지만 

 그런식의 반응을 전 그 시절에 

 다소 착잡하게 받아들이고 하며 

 20대를 보냈답니다 

 

 아...참 그리고 저 집에서 

 외동은 아니구요 

 밑으로 남동생이 두명 더 있기는 해요 

 사실 우리 부모님 세대만해도 

 아직은 남존여비 사상이 크던 그런 시절의 분들인데 

 하지만 아버진 그래도 딸이고 집에서 맏이라 그런지 

 아니면 나름 어떤 큰 기대라도 했는지 

 어릴때부터 절 많이 예뻐해주셨습니다 

 어릴떄는 그런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좋은분 

 그렇게 믿고 따랐다고나 할까요 

 

 그런 저희집안에 풍파가 일어난 것은 

 대충 제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입니다 

 그러고보면 제 밑의 두 동생은 

 아직 국민 학교 저학년 또는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인데 

 - 그러고보면 아버지가 결혼도 그리고 아이도 

 꽤 늦게 보신편인데다가 

 저도 제 두 남동생하고는 

 터울이 좀 지는군요 

 대충 계산해봐도 5-6살 정도 이상은 

 차이가 나는 동생들이니까요 

 

 뭐 그래도 중학교 들어갈때쯤 되면 

 세상돌아가는거라든가 뉴스에서 떠드는 이야기들  

 어느정도는 이해할수 있을만한 나이 

 아버지가 뭔가 큰일을 겪고 크게 흔들리고 계시다는 것 정도는 

 대충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충 가을쯤 되었을 무렵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심각하게 뭔가를 

 고민하고 상의하시는 그런것도 느껴졌으니까요  

 대충 보니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런데 나가지마시라’, ‘나가봤자 잔뜩 망신당하거나 

 모욕만 당하고 나올게 뻔한데...’ 

 그런식으로 우려하시는듯하고 

 아버지와 평소 교류하는 지인이랄까 동료 

 혹은 선,후배 이런분들과도  

 종종 통화하며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런 문제를 

 상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자리에 나가 

 하루종일 증언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크게 엇갈리는 느낌이더군요 

 보통 젊은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시종일관 모릅니다...기억이 안 납니다 

 이런식으로 일관하던데... 

 너무 뻔뻔스러운거 아니냐 ?’ 

 노골적으로 이렇게 비난하고 

 그나마 그래도 좀 나이많은 어르신들은 

 ‘그래도 군출신답게 하루종일 꼿꼿한 자세로 있고 

 또 나름 의리도 있어보이더라’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상대적으로 나이많은 아주머니들중엔 

 ‘그 사람 그래도 막상 그렇게 

 하루종일 야당의원들 공세에 몰리는 모습 

 불쌍해보이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전 

 좋은쪽으로 말하는 사람이든 나쁜쪽으로 말하는 사람이든 

 한번쯤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식으로 말하는 당신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가족들 심정은 어떨지 

 한번쯤 생각은 해봤냐 ?’구요 

 

 어린시절 제겐 아버지는 

 영웅이며 우상...뭐 대충 그런 존재였습니다 

 도대체 우리집이 얼마나 잘사는 집인지 

 얼마나 잘 나가는 집인지는 모르곘지만 

 항상 저를 이뻐해주고 아껴주시고 또 

 항상 지원하고 밀어주시는 아버지는 

 제겐 그냥 영웅이요 우상...그 자체였을뿐인데 

 하루아침에 그것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많은 이들에게 매도당하고 

 마차 전정권의 문제나 비리,부패가 

 모두 저희 아버지 책임인앵 

 매도하고 비난하는 모습 

 딸의 입장에서 

 참 견디기 힘들정도로 괴롭고 아팠습니다 

 

 고등학교때 가출을 한번 했었어요 

 사실 그땐 어린 마음에 너무 철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아무런 목표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왔던것이라 

 고등학교때 가출소동은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어린 여고생의 

 한여름밤 짧은 소동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저희집안 풍파는 이미 그에 앞서부터 

 들이닥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희집 

 그 시절...강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인근에 있는 그런대로 잘사는 아파트단지 

 40평 가까운 규모에서 아뻐,엄마 

 그리고 저와 두 남동생 

 다섯식구 오순도순 살았었는데 

 아마 여러 가지로 힘들고 버티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이사를 가자고 하셔서 

 대략 한 1-2년쯤 뒤에 

 경기도에 새로 생긴 신도시 지역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그때가 저 중2 무렵... 

 그리고 대략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그 동네에서 산 것 같았는데 

 사실 저도 집에서 장녀고 무엇보다 

 어린 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철들고 세상물정 알아갈 나이라서인지 

 어린 두 동생의 앞날이 

 걱정이 되더군요 

 

 저 아이들도 어느덧 중학생...고등학생 

 그렇게 자라다보면 

 우리집안이 어떤 집안이고 정치권의 격랑에 따라 

 어떤 평지풍파를 겪은것인지 대충 알게될터이고 

 그러다보면 

 행여 저처럼 힘들고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을 

 보내지는 않을지 

 그 문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서는 

 그래도 이제 세상 물정을 

 어느정도 알만큼 알아서인지 

 조금씩 눈치를 보며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서 적는 가족들 신상명세서는 

 부모님 성함은 있는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대로 직업을 밝히기가 그래서 

 아버지 직업을 ‘교사’라고만 적었습니다 

 사실 그땐 이미 아버지도 전정권 실세도 아니고 

 그 사이 이미 감옥도 두 번이나 들락날락 하신뒤라 

 지금은 그냥 일정한 직업이 없는 그런 상황으로 봐야하는데 

 여하튼 아버지 신원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가 그래서 

 혹시 누가 제 신상명세서를 보더라도  

 그냥 ‘동명이인’인가보다 하도록 

 그런식으로 살짝 눈속임을 했던거죠 

 

 그런데 

 참...사람들 빠른게 입소문이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티내지 않으려고 

 일부러라도 잘나가는집...잘사는집 딸이 아닌척 

 그러면서 조용히 자숙하며 살았는데도 

 사람들 소문이란게 참... 

 요즘처럼 인터넷 신상털이 그런게 없던 시절임에도 

 이미 소문이 돌아서 눈치를 채거나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더군요 

 ‘OO학과 ( )( )학번 아무개‘가 

 실은 전정권 실세 누구의 딸이라는 식의 소문 

 이미 나고 있더이다 

 저로선 그런 소문에 어찌 대응해야할지 난감해서 

 그냥 누가 물어보면 

 그야말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가 

 아니면 그냥 ’아니다...사실 아버지는 고등학교(또는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신다... 

 이런식으로 둘러대곤 했습니다 

 

 연좌제란게 우리사회에서 언제부터 폐지된건지 

 솔직히 전 그런거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문제 때문만 아니라 정치문제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관련한 문제들이든 

 일부러라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헌데... 

 가령 무슨 6.25때 좌익이나 월북혐의 

 이런걸로 핍박받아온 가족들이 

 어찌 살아왔는지 그런 속사정까진 전 

 잘 알지 못해도 

 저처럼...전정권 실세였지만 지금은 

 그 시절 부패와 비리 혹은 인권탄압 

 그런 원흉인 사람의 자녀라는점 

 이런식의 ’보이지 않는 연좌제‘도 

 참 고약하더라는걸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좌제... 

 ’아무개가 전정권 실세 누구의 딸이라더라‘ 

 이런 소문속에서... 

 죄인아닌 죄인으로 살아가야했던 시간 

 그게 어떤 심정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겁니다 

 심지어 이런일도 있었어요 

 

 그래도 저도 한참 젊을때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그런대로 생길나이니 

 미팅이란걸 한두번 나가봤어요 

 사실 제 처지 때문에 그런 자리도 

 더더욱 내키지 않아 한때는 삼가기도 했는데 

 그래도 호기심이 안 갈수는 없는 나이인지라 

 한두번 그런 자리에 나가본거죠 

 한번은 상대남자가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냥 그대로 끝나버렸고 

 두 번째 상대는 그런대로 제가 호감이 갔는지 

 적극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저도 뭐 그 남자가 그리 싫지는 않아서 

 한 두어달정도 만남과 교제가 

 이어지긴 했습니다 

 

 제 입장에서 

 일부러 그 남자를 속이거나 할 의도는 없었는데 

 다만 제 집안이나 부모님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밝히기는 여전히 남감해 

 ’아버지는 교편을 잡으시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시다‘  

 그런식의 얼버무림을 

 그 남자 앞에서도 반복했습니다 

 사실 제 나이도 어느덧 20대 초반이니 

 학교 교사라도 그 정도 나이의 딸이 있는 부모라면  

 (* 아버지가 결혼을 늦게 하셔서 늦은 나이에 

  저희 3남매를 낳은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요) 

 ’그 정도 연셰면 교사에서 정년퇴임하실 나이 아니냐 ?‘ 

 일단 그런 의심까지는 하지 않는 

 세상에 흔한...그저그런 단순한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얼마지나지 않아 결국 모든걸 알게되었더라구요 

 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란것을요 

 

 그...남자... 

 하루는 제게 만나자는 전화 한통 사전에 미리 한번 안하고 

 제가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와서는 

 절 어느 구석진곳까지 끌고가서는 

 흠씬 두들겨 패더이다 

 그러면서 

 군사정권의 후예...부정부패의 원흉 

 그 외에도 무슨...파쇼독재...인권탄압... 

 무슨무슨 재단비리... 

 와...그러고보니... 

 아무리 그래도 전정권 실세는 저희 아버지일뿐 

 제가 그 당사자인것도 아닌데 

 마치 제가 그 당사자이기라도 한양 

 사실 아버지에게 향해야할 욕과 원망 분노를 

 제게 있는대로 다 쏟아붓더군요 

 그리고는 

 당신같은 여자한테 지금까지 속고 기만당한게 

 진짜 분하고 화가난다 

 그만...만나자... 

 이렇게 말하고는 떠나더이다 

 

 그...사람 참... 

 그...나중에야 알게된거지만 사귀는 커플이 헤어질 때 

 ’헤어지자‘ 정확히 통보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대충 드라마나 영화같은데 사례를 봐도 

 체감적으로는 

 아마 그렇게 딱잘라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나중에 말이나 상황이 바뀌는일이 발생하면 

 무안하고 민망해질까봐 그러는지는 몰라도 

 말없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다던가 

 그런 경우가 더 많더군요 

 

 근데 솔직히 그 남자는 

 무슨...진짜 우리가 깊은 관계로까지 간것도 아니고 

 미팅으로 알게되어 두어번 만나 

 식사 좀 하고 영화 한두편보고 

 그게 전부인건데 

 게다가 제 입장에선 여하튼 

 저의 가족사항을 있는그대로 말하기는 민망해 

 ’아버지는 교편을 잡으시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이시다‘ 

 그런식으로 얼버무린것뿐인데 

 마치 제가 무슨 그 남자한테 

 대단한 사기라도 치고 기만이라도 한양 

 그렇게 있는대로 험한 욕설을 

 제게 퍼붓더이다 

 그리고...마치 제가 그런 군사정권의 실세고 

 부패와 인권탄압의 원흉이기라도 한양 

 제게 온갖 욕설과 분노의 고함을 쳐대던 그 사람 

 

 그래서...전 슬몃 그 의심까지 들더군요 

 그 사람 혹시 골수 운동권이나 그러기라도 한건가 

 나중에 시간나서 별도로 그 남자에 대해 

 다시 좀 더 알아보기도 했고 

 아니 그보다도 그 전에 대충 만나서 이야기 나눌 때 느낌도 

 그렇게까지 골수 운동권이나 사회운동 같은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기보단 

 그냥 막연히 이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부정적 인식이 많고 

 그 외에는 그저...여자 좀 밝히고 나중에 졸업해서 

 좋은직장 취직하기를 원하는 

 그저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 평범한 대학생이건 운동권이건간에 

 솔직히 그 시절 대학생들은 대개 그랬어요 

 직접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 대략 70-80년대엔 학생신분이거나 그보다 어린 

  나이였을테니 

 그래도 막연히 자라면서 주위에서 선배나 어른 

 또는 선생님등을을 통해 듣는 이야기라던가 

 혹은 그렇게 자라면서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이야기 등등 

 이른바 군사정권에 대한 적개심이나 부정적 인식등은 

 대개 크면 컸지 적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그런 시절이고 그런 세대였습니다 

 

 글쎄요...뭐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충 보니까 어떤 합리적이거나 이성적 사고를 지녔다기보단 

 솔직히...돈이나 출세 이런거에 더 집착하는 것 같으니 

 혹시 그런 한때 잘나가던 집안의 딸이라면 

 군사정권 실세의 딸이건 뭐건 그런거 안따지고 

 무작정 만나고 사귀어주고 할지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살짝살짝 언급했지만 

 솔직히 저희 아버지 이전 정권과 관련된 문제로 

 국회 청문회도 나가고 감옥도 세 번이나 다녀온 

 그런 분위긴 하지만  

 솔직히...그렇게까지 경제적으로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솔직히 저 중학교 들어갈 무렵까진 

 강남도 아니고 강남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 있는  

 40평이 채 안되는...그런대로 다섯식구 사는데 큰 불편함 없는 

 그 정도 규모의 아파트에 살았고 

 이후 여러 가지로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사정 때문에 

 가족들이 경기도 신도시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새로 이사간 아파트 단지의 평수는 

 이전에 살던 집보다 좁은것만은 분명했어요 

 게다가 저나 제 동생들도 어느덧 중학생,고등학생으로 자라는 나이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다섯식구 사는데 

 다소 불편한 그런 규모의 집이었던것만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이전 정권의 실세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후에는 대체로 가세가 기우는 형편...더이상 

 ’현정권의 실세‘도 아니고 

 어느덧 감옥도 세 번이나 다녀오시고 

 그래서 집에서 생계를 책임질 사람도 없어서 

 어머니가 한 10년동안은 사실상 

 집안 생계를 책임지며 살기까지 했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동생들도 어느덧 자라고 있어 학비문제도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그런 시간들이었음에도 

 게다가 전업주부로 한 20년 살아서 사회생활,직장생활 경험도 

 그리 많지 않은 어머니가 

 다행히 그래도 이전까지 주변에서 그리 많은 인심을 

 잃지는 않았던지 

 그저 친구,동료들 도움으로 이런저런 일터에서 

 간단한 사무보조나 허드렛일이라도 도우면서 

 그런걸로 아버지까지 포함 저희 다섯식구 

 생계를 책임지며 산게 

 정권이 바뀐디 이후 10년동안 저희 다섯식구 

 살아가는 모습이었거든요 

 집안 형편 점점 어려워지는걸 저도 모르지 않기에 

 저도 학업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나서볼까 

 그 고민도 여러번 할 정도였으니까요 

 대학은커녕 아예 고등학교 공부를 더 하는것도 

 포기하고 중퇴할 고민까지 한때 했었으니까요 

 그때마다 저희 어머니가  

 ’그럴생각 마라. 너 대학들어가는것까진 

 책임져줄 생각 있으니 공연히 학업을 포기하진 마라‘ 

 한때 그런 설득도 여러번 하셨단 

 ...뭐 여하튼 

 그런 시간을 보낸게 저의 

 지난 10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런일이 있고나서 한동안 

 실의에 빠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연... - 이라곤 할수 없죠 뭐. 

 여하튼 미팅에서 만나고 이후 그런대로 

 남자가 절 마음에 들어했는지 

 만나서 식사 몇 번 하고 차 몇 번 마시고 

 영화 한두편 본 그게 전부니 

 그러다 그 남자가 우연히 저희집안 내력에 대해 알게되고나서 

 절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폭행한뒤 

 헤어진(?)게 전부니까요... 

 오히려 그러니...남자와 사귀다 헤어졌다는 생각보다는 

 그런식으로 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랄가...존재감이랄까 

 그런것에 대한 많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게 있어 아버지는 

 어릴 때 절 무척이나 아껴주시고 예뻐해주시고 

 그런...제게는 이 세상의 전부요 우상이었던 

 그런 사람입니다 

 글쎄요...이런 감정 누가 이해할수 있을까요 ?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며 따르는 존재가 

 알고봤더니 세상에선 온갖 비난,손가락질,조롱에 시달리는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 때  

 ..... 

 솔직히 직접 겪어본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일것입니다 

 여하튼 전 그래서 그 무렵에 

 아버지를 위로해드리거나 옹호해드리거나 

 그래야곘다는 생각보다는 

 저 자신의 출신성분(?) 또는 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혼란스러움을 겪으며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겪었던것입니다 

 - 그래서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참 고약한 보이지않는 연좌제‘라고 

 그...무슨 6.25때 좌익이나 월북경력 

 이런것 때문에 그 자손이 법이나 제도에 의해 

 불이익이나 핍박을 받는 문제보다 

 저같은 이들이 

 무슨 군사정권의 후예라느니...부정부패의 원흉이라느니 

 인권탄압이나 파쇼독재에 앞장선 

 그런자의 자손이라느니 

 이런식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욕먹는거 

 당사자에겐 참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들이었던것을요 

 

 한동안 학교도 제대로 가지않고 

 술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는 그런 제게 ’무슨일이 있느냐 ?‘고 물었지만 

 그 물음엔 시인도 부인도 않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채 

 아침엔 학교가는척 적당히 가방들고 나가서는  

 엉뚱한데서 시간을 보내다...그러다 술에 취해서는 

 저녁떄 들어오곤 하는 일상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도 어느덧 대학 2학년이니 

 그때까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폭음을...해보는 경험은 그때가 사실상 처음이었네요 

 두가지를 깨달았습니다 

 (1) 생각보다 제 주량이 세다는것과 (여자애들중엔 심지어 

   맥주한캔만 마시고도 취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 정말인지 

   내숭인건지는 제가 직접 확인해볼 방법이 없는거지만) 

 (2) 폭음이라는것도 한번두번 해보니...나름 재미(?)가 들리더라는 

 그 두가지였습니다 

 - 주량이 점차 세진것도...폭음을 너무 즐긴게 

 원인이었을련지도 모르곘네요. 여하튼 소주 한두병 정도로는 

 웬만해선 제가 잘 안 취한다는 것을 

 그 무렵에 깨달았으니까요 

 

 그렇게 마치 학교를 가는척 아침일찍 집을 나가서는 

 학교도 가지않고 엉뚱한데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다 

 저녁때 되면 술에취해 들어오는 

 그런 일상이 반복된거죠 

 - 아마 그때쯤 이미... 

 대학을 마저 계속 다니는게 더 이상 의미없다는 

 그 생각을 하던중이었습니다 

 엄마한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이런식으로 이유없이 결석이 잦아지다보면 

 ’학사경고장‘이 날아온다는것정도는 

 여러분도 잘 아시죠 ? 

 

 좀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유흥업소를 드나들기 시작한게 

 그 무렵부터의 일이었습니다 

 그때가 어느덧 제 대학 2학년도 끝나고 

 3학년 들어갈 무렵 

 나이 스물둘이지만 

 나이 스물둘이 유흥업소에서 일을 시작하기에 

 다소 늦은 나이일지 아니일지 

 그건 잘 모르곘지만 

 그땐 이미 학교고 뭐고 더 다닐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니 그보다 제 정체성 자체에 

 많은 혼란스러움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감을 온몸 가득히 

 안고 살던 시절인지라 

 에라 모르곘다...그래 차라리 

 이런데서나 돈이라도 벌며 사는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 뭐 

 그리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당연히 몰랐구요 

 이쯤되면 이미 – 학교 안나간지 오래되었으니  

 학사 경고장 날아들때가 되긴 했지만 

 그까짓 학사 경고장...뭐 들킬테면 들켜라 이런 심사로 

 거의 반은 포기한듯한 심리상태로 

 대학보다는 이미 유흥업소가 

 제 출근길이고 일터가 되어갔습니다 

 

 다행이 그곳에서 

 절 아껴주시는 좋은분을 만나기도 했어요 

 뭐 그냥...단골손님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할일이긴 하지만 

 머리 희끗희끗한 대충 봐도 

 아버지뻘은 되는 50넘은 어르신이 

 제가 마음에 드셨는지 귀여웠는지 

 예뻐해주시더라구요 

 그러고보면 

 절 무지막지하게 폭행했던 대학애서의 

 미팅으로 만난 그 남자와 

 절 이쁘다고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쓰다듬어주시고 어루만져주시는 

 어르신의 손길 

 순간 그 두 사람의 손길이 대조되어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정체를 알고난 미팅에서 만난 대학생의 주먹질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저를 그저 마냥 이쁘고 귀엽다며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주시는 어른의 손길 

 전 이대로 이 어르신 품에 안겨 

 영원히 함께 살았다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어르신은 저의 사연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는지 

 한 두어번 물어와주시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의 신분을 정확히 밝히기는 

 여전히 난감한 처지인 저는 

 이런곳에서 일하는 여자들 흔한 레퍼터리로 

 적당한 소설같은 이야기 덧붙여서 

 그렇게 지어냈습니다 

 뭐 어릴 때 부모잃고 여기저기 떠돌다 

 식모로 팔려가 구박도 많이 받았구 

 뭐 대충 이런식의 레퍼터리 

 어르신이 제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주시는지는 몰랐지만 

 막상 그렇게 제 사연(?)을 알고나서는  

 한층 더 가엽게 느껴지셨는지 

 더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안아주셨습니다 

 

 전 어르신께 애원했어요 

 첩실도 좋고 뭐도 좋으니 차라리 절 거두어달라구요 

 솔직히... 

 그 순간만은 진심이었습니다 

 유흥업소 일을 하기엔 상대적으로 좀 

 늦은편의 나이기도 했지만  

 제 나이 어느덧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언제까지 이런데서 일을 계속할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이런데서 일하게된 여자들 흔한 사고방식처럼 

 그야말로 돈많은 어르신에게라도 엮여져 

 첩실이라도 되어 살자 

 그런 생각을 했던거죠  

 

 전 그렇게 애원했습니다 

 첩실로 삼아도 좋고 단칸방을 하나 내줘도 좋으니 

 그런곳에서 살게만 해주시면  

 혹여 아이를 낳게되면 호적에만 올려주시고 

 그러면 큰 말썽 안 부리고 조용히 살겠다고 

 어르신의 나이어린 첩실로만 만족하며 살겠다고 

 몇 번을 울며불며 애원했더니 

 어르신은 마침내 그런 제가 가여우셨는지 

 절 유흥업소에서 빼내주신뒤  

 서울 외곽 경기도...신도시 지역이라호 하기도 

 좀 애매한 지역의 

 후미진곳에 있는 평수작은 빌라 

 그곳을 제 새 거처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르신의 집에서 제가 사는곳까지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자주는 못 오고 한달에 한 두세번 

 그 정도 찾아주시는 어르신 

 하지만 절 진심으로 아껴주시는 어르신에 만족하며 

 진심으로 받들고 모셨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생각보다 그리 오래는 못가더군요 

 마침내 그분 본부인에게 

 꼬리가 밟혔나봐요 

 전 어르신께...만약 아이가 생기면 

 그냥 호적에만 올려주면 말썽 안부리고 혼자 

 조용히 애키우며 살겠노라 

 그렇게 말씀까지 드렸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게된 어르신의 본부인은 

 아마 그분의 대충 친구나 동료쯤으로 추정되는분 

 대략 서너분정도와 저희집지 찾아와  

 절 무지막지하게 폭행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모멸감...좌절감... 

 그리고 그 이후로 

 어르신이 더 이상 절 찾아오지 못하시더군요 

 

 그런일을 겪고나니 

 정말 세상 모든게 다 싫고 

 살고싶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 잡초처럼 치이는 인생 

 모든 것을 다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제 더 이상 유흥업소 일도 나이많은 아저씨 첩실노릇도 

 못하게 된 처지 

 뭘 할까 고민하다 생각한게 

 차라리 머리를 깎고 중이나 되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 자체가 싫어 한 선택이지요 

 헌데... 

 드라마나 영화같은데 보면 

 특히 사극같은데서는 

 뭐 예를들어 성*행 피해여성이라던가 또는 

 무슨...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 가문의 여식이 

 더 이상 살기 힘들어...차라리 중이라도 될까 

 그런 결정을 하는 설정이 이따금 있던데 

 (* 뭐 전자는 그렇다치더라도 후자의 사례는 생각해보니 

   제 경우와도 얼추 비슷하네요 뭐...) 

 

 다만 전 그때까지만 해도 드라마나 영화같은데 보는것처럼 

 불가에서 스님은...그냥 되고싶다고 찾아가면 

 그대로 다 받아주는 그런 구조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때가 어느덧 90년대 후반 

 불교에도 무슨 승가대학이니 뭐니하는 절차를 거쳐 

 스님이 되고 수계를 받는 그런 구조가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네요 

 확실히 무작정 대충 귀동냥으로 들어본적 있는  

 대충 아무절이나 찾아가서 청했습니다 

 비구니가 되고 싶노라고 

 사실 거기서도 제 사연은 있는 그대로 말하기 힘들어서 

 그냥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여러 가지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차라리 비구니나 되어보려 한다고 

 그렇게 사정을 밝혔지요 

 그러고보니 그때가 이미 IMF 직후라 

 실직자 넘쳐나고 부도난 기업 줄을잇고 하던때라 

 대충 그런 사정 이해하곘다는 듯 딱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군요 

 다만 어쨌든 지금은 절에서도 

 중이나 비구니가 되고싶다고 해서 무작정 다 받아주는게 아니라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 해야하는거라고 

 ‘그래도 하겠느냐 ?’고 제게 물으시길래 

 어차피 전 삶의 끝자락...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체념한 처지인지라 

 ‘그리하겠노라’ 답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산사의 생활 

 솔직히... 

 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설정을 

 많이 본것인지까진 잘 모르곘지만 

 제가 그때까지 스님으로서의 생활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봅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깊은 산속에서 암자에서의 생활 

 그게...도시에서 나고자란 저같은 젊은 여자에게 

 견디기 결코 쉽지 않은것이란걸 

 깨달은게 그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습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 그래도...아버지가 비록 한때의 정권실세라도 

 아주 그렇게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기까진 않았어도 

 그래도 대충 도시에서 중산층 이상의 경제규모인 

 그런 집안에서 그래도 중,고등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경제생활 누리며 살아온 저 

 간단하게 도시에서 나고자란 제게 산사에서의 생활이 

 견디기 쉽지 않아 결국 그마저도 

 때려치우고 나왔습니다  

 그게 막상 비구니가 되겠노라며 찾아간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 

 정식으로 수계를 받은것도 아니고 

 그러니 무슨 땡중이나 가짜중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처지로 

 다시 망연자실하고 어정쩡한 처지의 시간을  

 한동안 보냈습니다 

 

 사실... 

 막상 그렇게 절간에서의 비구니 생활조차 실패하고 

 나왔으면서 

 그래도 정신(?)을 못차렸는지 

 사실 중간에 어떤 이단종교에서도 잠시 

 생활한적이 있어요 

 정통불교는 확실히 아니고...아마 유교에다 무속까지 

 대충 증산도,대순진리회 그런 비슷한 성격의 

 아류종교였나본데 

 - 그리고 솔직히 전 태어나서 살아온 과정이나 

 집안환경 자체가 그랬기 때문에 

 학창시절은 물론 대학생때까지도 

 종교문제 그리 큰 관심이나 이해도 없던 사람입니다 

 다만 너무 여기저기 치이고 힘든 생활을 살다보니 

 일시적으로 차라리 머리깎고 중이나 되어볼까 

 그 생각까지 해봤던거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해본 비구니생활 

 반년을 못버티고 실패하고 그곳에서도 뛰쳐나왔으면서 

 뭐 사이비종교 생활은 적응이 가능할거라 생각했는지 

 거기서도 뭐 대충...무슨 성직지 비슷한 수계(?)를 받고 

 그곳에서도 한 몇 달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절간 비구니 생활도 애초에 적응못하고 뛰쳐나온 제가 

 그런곳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딜려고 

 그런 배짱까지 부렸던건지 

 애초에 서울에서 그런대로 잘먹고 잘사는 집에서 

 나고자란 저 

 그런데서 적응 못할 성격이란거 아직도 깨닫지 못한건지 

 결국 그런곳에서의 생활도 

 6개월을 못버티고 

 뛰쳐나온거죠 

 

 ‘내 이름 묻지 마세요... 

 내 나이도 묻지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이리저리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입니다~~~ ’ 

 

 그렇게 

 어떤 특수한 가정사로 인하여 

 이리저리 잡초같은 20대 생활을 보낸 저 

 어느덧 나이 서른에 이른 즈음엔  

 서울의 한 이름없는 술집에서 

 적당히 새끼마담 역할이라도 하며 

 그렇게 생계수단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여자랍니다 

 이제 뭐...한때나마 열망했던 

 절 귀여워하고 예뻐해주시는 

 돈많고 나이많은 아저씨 후실로라도 들어가는것도 

 포기해야할 나이... 

 이렇게... 

 남다른 성장기와 가정사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저 

 서울하늘아래 어느 이름없는 작은 술집에서 

 위스키 한잔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어느 유행가 가사마냥 

 이름도 묻지 말아주세요~~~ 

 나이도 그 무엇도 묻지마시고 

 그저 술이나 한잔 하면서 

 당신도 갖고 있을법한 그 흔하디 흔한 

 아니면 또는 어떤 조금 특별한 사연이나 사정이든 

 술한잔에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잠시 취하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