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의 신발은 현관에 늘 같은 방향으로 놓였고, 여린은 그걸 보면서도 더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질문이 길어졌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가 아니라 “엄마, 왜 늘 나만 그래?” 같은 말이 나왔다. 밥상에서 말다툼이 생기고, 방문이 쾅 닫히고, 집 안에 한동안 아무 말도 없는 시간이 생겼다.
따뜻함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늘 ‘구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어느 날 여린은 아주 사소한 걸로 폭발했다.
싱크대에 남은 컵 하나. 젖은 수건이 걸려 있는 방식.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과자 부스러기. 말로는 “이거 좀 치워줘요”였는데, 마음속에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왜 나만.’
‘왜 늘 내가.’
‘내가 이렇게 살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피해의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피로가 쌓여서.
여린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원인을 인호에게 연결했다.
아이들이 예민한 날도, 돈이 빠듯한 달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서 낯설게 보이는 날도. 여린은 결론을 빨리 내렸다. 결론이 있어야 버틸 수 있으니까.
“당신이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여린은 이미 마음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다.
인호는 그 말을 들으면 멈췄다.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하면 싸움이 되고, 싸움은 아이들 귀에 남는다. 인호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늘 한 발 물러났다. 그런데 물러나는 사람은 점점 존재가 ‘없어지는’ 쪽으로 밀린다.
그렇게 어느 밤, 아이들이 다 잠든 뒤에 여린이 말했다.
“나 사실… 당신이 미워요.”
말을 하고 나서 여린은 후회했다.
미움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사실만은 아니었다. 미움 아래에는 더 복잡한 게 있었다. 서운함, 피로, 두려움. 그리고 아주 작게 남아 있는 기대.
인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뭘 했는데.”
여린은 바로 답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여린은 말끝을 흐렸다.
“가끔은 나를 더 외롭게 해요.”
그 말이 여린의 진짜였다.
혼자였던 시절에는, 외로움도 ‘내 몫’이라서 견딜 만했다.
그런데 인호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여린은 자꾸 비교하게 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당신은 왜 저만큼이지?’ 가족이 되면 비교는 자동으로 생긴다. 비교는 사랑을 깎아먹고, 사랑이 깎이면 책임만 남는다.
여린은 책임만 남은 날들을 견디며 말했다.
“나는 밥하고 빨래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는 내 인생이 없어.”
인호는 그 말을 듣고, 아주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느낄 수 있어.”
그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는 게 여린을 더 화나게 했다.
여린은 그게 ‘동의’처럼 들렸다.
“봐요.” 여린이 말했다. “당신도 알잖아.”
인호는 조용히 말했다.
“아는 것과… 네가 혼자 감당한 건 다른 문제야.”
여린은 그 문장에 잠깐 멈췄다.
멈추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공격했다. 공격하면 울지 않아도 되니까.
“결국 다 내 탓이라는 말이네요.”
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너를 탓할 생각이 없어.”
그 말이 이상하게도 여린을 더 힘들게 했다. 탓이 없으면, 여린이 붙잡고 있던 ‘명확한 원인’이 사라지니까. 원인이 사라지면 여린은 다시 그 불안 속에 혼자 서야 했다.
그날 밤, 인호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여린은 방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가 되자 예전처럼 눈이 떠졌다. 여린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인호는 내게 뭘까.’
남편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으로 시작했던 사람.
아이들에게는 안정이었고, 여린에게는… 때로는 숨구멍이었고, 때로는 거울이었다.
거울은 좋은 것만 비추지 않는다.
거울은 내가 보기 싫은 얼굴도 비춘다.
여린에게 인호는 그런 존재였다.
여린이 무너질 때마다, “그럼에도 내일”을 붙잡게 하는 사람.
하지만 동시에, 여린이 잃어버린 것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사람.
혼자였을 때는 포기해도 됐던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
가족이란 그래서 따뜻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여린은 갑자기, 아주 오래전 인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누가 제 얼굴을 한 번만 제대로 봐줬으면 해서요.”
그 얼굴을 본 게 여린이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나자 여린은 이제, 자기 얼굴을 누가 봐주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 여린은 부엌으로 나가 물을 마셨다.
싱크대 위에 놓인 컵 하나가 보였다. 그 컵은 여전히 거슬렸지만, 여린은 이번엔 컵을 탓하지 않았다. 컵 뒤에 있는 ‘시간’을 봤다. 하루가 하루를 먹고, 그 하루들이 7년이 된 시간.
그때 거실에서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인호도 깬 모양이었다.
여린은 문득 생각했다.
인호는 내게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여린이 혼자 살아남는 법만 알던 삶에, ‘같이 살아남는 법’을 들여놓은 사람.
그리고 가장 잔인한 부분은,
같이 살아남는 법을 배우면
혼자 살아남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번째 이야기
7년이 지나면, 가족은 이름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인호의 신발은 현관에 늘 같은 방향으로 놓였고, 여린은 그걸 보면서도 더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질문이 길어졌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가 아니라 “엄마, 왜 늘 나만 그래?” 같은 말이 나왔다. 밥상에서 말다툼이 생기고, 방문이 쾅 닫히고, 집 안에 한동안 아무 말도 없는 시간이 생겼다.
따뜻함은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늘 ‘구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어느 날 여린은 아주 사소한 걸로 폭발했다.
싱크대에 남은 컵 하나. 젖은 수건이 걸려 있는 방식.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과자 부스러기. 말로는 “이거 좀 치워줘요”였는데, 마음속에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왜 나만.’
‘왜 늘 내가.’
‘내가 이렇게 살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피해의식은 그렇게 시작됐다.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피로가 쌓여서.
여린은 어느 순간부터 모든 원인을 인호에게 연결했다.
아이들이 예민한 날도, 돈이 빠듯한 달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서 낯설게 보이는 날도. 여린은 결론을 빨리 내렸다. 결론이 있어야 버틸 수 있으니까.
“당신이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여린은 이미 마음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다.
인호는 그 말을 들으면 멈췄다.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하면 싸움이 되고, 싸움은 아이들 귀에 남는다. 인호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늘 한 발 물러났다. 그런데 물러나는 사람은 점점 존재가 ‘없어지는’ 쪽으로 밀린다.
그렇게 어느 밤, 아이들이 다 잠든 뒤에 여린이 말했다.
“나 사실… 당신이 미워요.”
말을 하고 나서 여린은 후회했다.
미움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사실만은 아니었다. 미움 아래에는 더 복잡한 게 있었다. 서운함, 피로, 두려움. 그리고 아주 작게 남아 있는 기대.
인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뭘 했는데.”
여린은 바로 답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여린은 말끝을 흐렸다.
“가끔은 나를 더 외롭게 해요.”
그 말이 여린의 진짜였다.
혼자였던 시절에는, 외로움도 ‘내 몫’이라서 견딜 만했다.
그런데 인호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여린은 자꾸 비교하게 됐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당신은 왜 저만큼이지?’ 가족이 되면 비교는 자동으로 생긴다. 비교는 사랑을 깎아먹고, 사랑이 깎이면 책임만 남는다.
여린은 책임만 남은 날들을 견디며 말했다.
“나는 밥하고 빨래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나는 내 인생이 없어.”
인호는 그 말을 듣고, 아주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게 느낄 수 있어.”
그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는 게 여린을 더 화나게 했다.
여린은 그게 ‘동의’처럼 들렸다.
“봐요.” 여린이 말했다. “당신도 알잖아.”
인호는 조용히 말했다.
“아는 것과… 네가 혼자 감당한 건 다른 문제야.”
여린은 그 문장에 잠깐 멈췄다.
멈추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공격했다. 공격하면 울지 않아도 되니까.
“결국 다 내 탓이라는 말이네요.”
인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너를 탓할 생각이 없어.”
그 말이 이상하게도 여린을 더 힘들게 했다. 탓이 없으면, 여린이 붙잡고 있던 ‘명확한 원인’이 사라지니까. 원인이 사라지면 여린은 다시 그 불안 속에 혼자 서야 했다.
그날 밤, 인호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여린은 방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4시가 되자 예전처럼 눈이 떠졌다. 여린은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인호는 내게 뭘까.’
남편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으로 시작했던 사람.
아이들에게는 안정이었고, 여린에게는… 때로는 숨구멍이었고, 때로는 거울이었다.
거울은 좋은 것만 비추지 않는다.
거울은 내가 보기 싫은 얼굴도 비춘다.
여린에게 인호는 그런 존재였다.
여린이 무너질 때마다, “그럼에도 내일”을 붙잡게 하는 사람.
하지만 동시에, 여린이 잃어버린 것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사람.
혼자였을 때는 포기해도 됐던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
가족이란 그래서 따뜻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여린은 갑자기, 아주 오래전 인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누가 제 얼굴을 한 번만 제대로 봐줬으면 해서요.”
그 얼굴을 본 게 여린이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나자 여린은 이제, 자기 얼굴을 누가 봐주는지 모르겠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새벽에 여린은 부엌으로 나가 물을 마셨다.
싱크대 위에 놓인 컵 하나가 보였다. 그 컵은 여전히 거슬렸지만, 여린은 이번엔 컵을 탓하지 않았다. 컵 뒤에 있는 ‘시간’을 봤다. 하루가 하루를 먹고, 그 하루들이 7년이 된 시간.
그때 거실에서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인호도 깬 모양이었다.
여린은 문득 생각했다.
인호는 내게 어떤 존재일까.
아마도…
여린이 혼자 살아남는 법만 알던 삶에, ‘같이 살아남는 법’을 들여놓은 사람.
그리고 가장 잔인한 부분은,
같이 살아남는 법을 배우면
혼자 살아남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여린을 화나게 했고,
또… 아주 깊은 곳에서는
여린을 살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