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심판하지 말라?

까니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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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는 이미 형제가 아닙니다.
이를 매우 명확하게 하십시요.



그들은 악의 세력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그들 주변에는
그들로 피해본 사람들로 너무나 가득 합니다.




그들이 지은 죄는 옛날의 시대에서 보면, 그 죄는 배교죄요,
배교죄도 심각하게 생각하면, 그 배교자들의 처지가

너무나 잘 이해가 되기 때문에, 배교죄가 분명한데도
"그들의 죄는 무죄다"라고 심판을 내린

잘못된 판결을 내려버린 상황과도 똑같게 됩니다.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가 갈 것이기에,
그들의 배교죄가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배교죄를 지은 사람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다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결국에는

배교죄가 성립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배교죄는 심각한 죄가
아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심각한 죄가 맞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다면 냉정하게 옳고 그름만
정확히 판단해야 할 따름입니다.




이해를 하려는 순간, 그들이 다
이해가 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해가 가니까 그들은
배교죄가 아니다?

얼마나 멍청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건 심판을 하는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아닌것입니다.





이렇듯 이해하려고 한 결과가, 오히려

"그들은 배교죄가 아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라."라는
멍청한 판단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맞는 말입니까.
누가봐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해하려고 하면, 이렇게 된다니까요.





그러면, 묻습니다.

이게 곧, 배교죄가 아니라는게, 올바르게 문제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측은지심이 판결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판결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닙니까?

배교죄가 분명한데도, 사랑 때문에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배교죄의 용서가 올바르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배교죄도 심각하게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용서가 된다.
그래서 용서해야 한다."

그와 똑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심각하게 묵상에 잠겨 봅시다.


배교죄를 지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해하려고 한다면,
하나같이 다 이해가 가는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로써,

그들은 결국 배교의 길을 걸었는데도,
심판해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냉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배교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과연 그들의 논리가 맞다고 보는게
정말 올바른 사실입니까.




오히려 이해하려고 하니까,
일을 다 그르치고만 것이 아닙니까.

이해가 들어가는 순간
판결을 다 망치지 않았습니까.





지금 심판자인 당신은 심판자가 가져야 할 냉정함을 버리고,
그들의 논리가 맞다고 인정하고 있는, 굉장한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는데도 말입니다.




배교죄도 용서하고 있는 추태를 보이는
당신인데도 말입니다.





이와 똑같은 처지를 이해하려한 나머지, 그 결과는
"배교죄는 사랑이다"라는 판결을 내리고있는 굉장한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당신을 객관적으로 보십시요.




배교죄는 사랑이다?
덮어두어야만 한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당신은
틀렸습니다.

심판자의 자질인 냉정함이
매우 결여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하나의 성경구절로 완벽히
덮어버리려고 한다는게,

그리고서는 배교죄가 분명한데도
배교죄가 아니라는 판단이, 과연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서야 비로서 보이는,
그 심판받고 있는 중인 5달란트가 저지른 누가봐도

그 5달란트가 틀리고 또 잘못된 행동을 하였음에도
그 심판해야만 자들까지도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로

다 덮으려고 하는 굉장히 어리석은 판단이,
냉정함이 결여된 하나의 이유로

이 모든 잘못된 판단의 결과를 낳게 되고,
하느님께서는 양들은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결과로,

심판자로써의 신임마저도 잃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사랑으로 그 5달란트들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데도, 강경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나와야 하는 상황인데도

심판자의 갖추어야 할 태도를 할못 이해하여,
냉정하지 않음으로써 올바른 판단과 심판을 완벽하게

그르치고 말겠다는 말씀입니까.



이 문제의 핵심은,
잘못이 분명한데도 이해하려고 행동하였기에,

즉, 심판자로써의 자질인, 완벽한 냉정함을 잃어버렸기에
잘못된 판결이고, 중대사를 그르치고만 것입니다.


잘못이 분명한데도 이해하려고 행동하였기에,
이로인해, 곧 심판자가 가져야 할 냉정함이 상실되어갔으며

이는 또 엄청난 실수로 이어져 나왔다는
말씀이란 말입니다.





잘못은 잘못, 사랑은 사랑, 이렇게 완벽하게 구분하고
또 정의와 공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 누구보다 더 강경하게 나와야 하는데,
되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누가봐도 심각하게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야 말았습니다.





배교죄가 용서된다?
이게 맞습니까!


잘못은 강경하게 잘못으로 나와야만 하는데,
이해하려고 하기에, 자신이 지금 생각하는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이는 주관적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관적인 생각은 꼴찌가 가지고만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댓가가, 그들은 심판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성직자이기에,

배교죄를 옹호한 댓가로
성직자가 저질러서는 안되는 매우 그릇된 판단을

사랑을 확대하여 너무 광범위하게 잡아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잘못된 판단으로
종교계라는 신성해야만 하는 사회를 같이

어지럽게 만든 댓가로,
이해하려고 한 5달란트와 같이 더불어 그들과

죄를 같이 나누고 또 심각하다면 같이
지옥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해야하는 생각으로

절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와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이십니다 를 무시하고서도

사랑의 극대화한 해석으로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경우에 받게 된다는
100배의 보상은, 일을 똑바로 하지 않았기에,

과연 정의와 공정의 하느님께서는 그 100배의 보상을 다
주실지는 의문인 상태로 변합니다.






지금이라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가
곧, 100배의 보상을 받게 될지 의문인 자가

심판자 자기 자신이 되기에, 
이는 자기 직무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오는 당연한 결과로써,

100배의 보상은 꿈도 꾸지 않는게 맞습니다.




피해를 수장 자신이 직접 안보았기에,
그들로 인한 피해도 아무것도 아니요,

그들로 인한 피해자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고위성직자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며,
그들이 다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피해자를 수장 자신과 같이 여겨야만 한다는 것은,
수장에게는 막대한 임무를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되려 5달란트가 저지른 잘못을 덮어두어야만 한다는 소리는,
하느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않아 더러운 종교계도

이 역시 더럽지만 하느님의 뜻이자
하느님께서 이를 바라신다는 소리로써,

"절대 남을 심판하지 말라"로 확대되는
곧,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개신교식 주장은

천주교가 가져야 하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개신교식 주관적인 해석은, 모두 다 헛소리 주장이였음을,
그들의 주장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게 더러운 종교계여야 한다는

헛소리이자 이러한 엉터리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잠시만 생각하신다면, 아시게 됩니다.


이 개신교식 해석인, "아예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게
너무나 틀렸다는 사실을 곧바로 잠시 잠깐만의 시간을

투자해 보십시요.



잠시지만 그 짧게 생각한 자신의 생각으로도
곧바로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맞지 않는 해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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