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적당히’ vs 후배의 ‘적당히’

랜서5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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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해~”회사 후배에게 가볍게 건넨 말이었다. 내 생각엔 아직 손볼 부분이 조금 남아 있었다. 디테일을 조금만 더 다듬고, 빠진 부분을 채우면 완벽할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부담을 주기 싫어 “일정을 고려해서 적당히 수정해 봐요~”라고 말했고,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한 시간쯤 뒤, “다 했습니다!”라며 결과물을 들고 왔는데, "음..." 내가 보기엔 거의 그대로였다. 후배에게 ‘적당히’는 정말 부담 없는 수준의 수정이었던 모양이다. 미안하다, 내가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오늘 신나게 놀아 보자고!”여름 여행을 잡으며 친구들이 한 말이다. 나는 해변에서 잠시 몸을 담그고, 펜션에 돌아와 고기 구워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런데 친구가 말하는 ‘신나게’는 전혀 달랐다. 해변에서 다른 일행과 합석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근처 나이트클럽에 가서 밤새 놀자는 이야기였다. 아… 너의 ‘신나게’는 그런 의미였구나.나는 조용히 체력을 아끼기 시작했다.

“술 잘 마신다며?”이 말도 참 애매하다. 어떤 사람은 ‘많이 마셔도 멀쩡한 것’을 잘 마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것’을 잘 마신다고 한다. 나는 전자의 의미로 물었는데, 상대는 후자로 받아들였다. 결국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취해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미안하다, 내가 잘못 물었다.

“그 일은 제가 잘할 수 있습니다!”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은 일을 나누던 중, 평소 의욕적인 후배가 자신 있게 말했다. 와, 얼마나 기특한가.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태도 자체가 예뻤다. 살짝 기대도 했다. 그런데 막상 올라온 계획서를 보니 군데군데 손봐야 할 부분이 많았다. 후배는 칭찬을 기대하며 계획서를 내밀었고, 나는 그대로 진행하긴 어렵다 싶어 “아주 살짝만 수정하자”며 조심스레 말했다.그래도 괜찮다. 난 여전히 너 같은 사람이 더 좋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때가 생각보다 많다. 나는 내 생각대로 말했고, 너는 네 기준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달랐던 거다.
‘술을 잘 마신다’의 기준도, ‘신나게 논다’의 기준도, ‘일을 잘한다’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그래도… 진짜 이렇게까지 다를 줄이야.

이 글은 제가 쓴 에세이 『하루가 툭, 말을 걸었다』에 실린 「이렇게 다를 줄이야」라는 에피소드입니다.
게시판에 진지한 이야기들이 많아 보여서, 잠깐 쉬어가실 수 있는 글 하나 올려봅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