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연히 모든 관심와지원은 아들에게로갔고 오빠라는 놈의 폭행은 제가7살 그놈이10살때 뺨때리기로시작해서 두눈에 멍이 들때까지 때리기시작했어요
학교에 입학해선 강도가더쎄져 야구방망이 파리채 허리때 그때나이는 오빠가 6학년 제가 3학년이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수학경시대회나 학교에서주는 우등상을 늘받았고 오빠는 그렇지못햇어요
그래서 폭행이더 심해진것같기도했구요
그당시 동네에선 딸이 주워온아이다 그래서 아들은 메이커옷에 딸은 겨울에도 잠바하나안혀보냈다는 소문이 돌정도로 부모님은 제게 관심이없었어요 학교숙제나 과제에도 관심이없어서 항상 친구집에서 7~8까지 숙제하고 밥까지얻어먹고 겨우집에서 잠만잣어요
그래도 인생이란게 그렇게도 살아지더라구요
그렇게 중고등학교도 지옥같이 살았지만 그땐 왜그랬을까요
모른척하고 방관하는 부모여서그랬는지 내자신만을탓하면 그렇게 견디고살았던것같아요
집에서새는바가지 밖에서도샌다고 오빠는군대에가서도 후임을 폭행 괴롭힘으로 영창신세까지졌써요 참 그때 가관이었죠피해자가 정신이상자라며 우리아들이 얼마나 순한앤데하며 울부짖는 부모님모습에 치가 떨리더군요
아들하나 인서울보내겟다고 재수도모잘라삼수까지했으나 천안캠사립으로 갔고 사주에 교육감까지할 좋은사주라며 임용준비를 5년넘게햇지만 결국엔 미끄러졌죠
어찌저찌 지금 사립에서 선생질합니다
오빠의 결혼얘기가 나왔을때 상견래자리엔 저는없었고 결혼할사람을 식장에서 전 처음 봤지요 식장참석도 주변친척분들이 저를챙겨서 마지못해연락한듯했죠
그전에 3년동안 부모님은 저한테 연락도없었으며 왕래도 없었으니까요식장에서 3년만에 처음본저한테 엄마가 그러더군요 니 얼굴이 생각이안나드라그러곤다시시작된왕래에 제 트라우마가 울화병처럼 생겨버렸어요그럴때마다 다른집처럼 다생각안난다 내가언제그랬느냐말좀만들어내지마라등등 저만 늘 이상한사람이되어있었고그중에서 저는 그집안에서 문제아 사고뭉치가되어있엇죠
아빠의 칠순엔 당연히 저는 초대도 받지못했고 친척분들모시는글엔 저를뺀3사람의 가족사진을만들어 돌렸다고합니다 주위 친척분들이 그걸보시고 제게 연락을하셨어요사람새끼아니라고 그냥 연을끊으라구요네 여기까지도 아둔하고 미련한저는 그래도 가족이 그리웠나봅니다참고또참고 그러고 세월이 또 흐르더군요
아빠가 대장암이걸렸을때 단하루 간병도 안하던 오빠와며느리 저는 치료비와 엄마의간병을도와 하루에도 몇번을병원을들락날락했죠 다행이 완치는됐고 사람맘이 화장실갈랑나올때마음틀리다더니 제대로된 고맙단말 한마디 들어보지도못했네요저는 사실 아이와 남편은있지만 결혼식을 올리지못했어요 이제 나이오십을바라보고있습니다아이를낳은지 7년이 다됐죠 친정부모님은 결혼식얘기 절대안꺼냅니다처음 신혼집에 올때 10년넘게 안쓰고 모셔두었던 냄비와 쓰던조리기구들을 주면서 살림살이라주더군요 이세월동안 제가 왜이렇게살았는지 아직도 아들며느리만자식이라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리 미련이있었는지
오늘또 다툼이있었습니다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듯 지난얘기왜또꺼내냐 기억안난다 벼락맞을년이다 하면 소리까지치더라구요 저는 사실 용서가안됩니다내자신도 그사람들도 그래도 또 살아나가야겠기에 오늘 연락처 일단차단부터했습니다다음폰바꿀때 번호도 바꿀예정입니다어찌저찌연락이되도 이제는 나를위해서 더이상 연락하지말라고하려구요저는 10년동안노력해봤지만 용서가안되고 그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하니 이젠 제가 앞으로나아가기위해 연을끊으려고합니다긴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 한평생이 일만하고 살았고 누구와이런얘길터놓고 한적도 없었습니다재산이넘쳐나는집안도아니고 오히려 제가 안먹고 안쓴돈 뜯었간집이라 나눌재산도없습니다본래생겨먹은게 제가 몬난사람인가봅니다그래도 인생살면서 저를알아주고 인정해준사람들덕분에 밥굶지않고 제 밥벌이하며 그래도 사람답게 살았습니다어제다툼에서 제가 친정에 준 돈을달라고했습니다
이리저리 몇천은 되는것같아요 사실그말에 제게 벼락맞을년이라고더군요금전문제는 버린돈치고있지만 다시연락이오거나 할시 우선 변제를요구할생각입니다댓글하나하나 감사합니다 이런글 처음인데 저에게 꼭필요한 말씀들 앞으로 새기고 잘살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