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동할 것이고, 우리는 들을 것입니다.

phantom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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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동할 것이고, 우리는 들을 것입니다.

이번 주 파라샤 미쉬파팀(מִּשְׁפָּטִי) 끝부분에 나오는 두 단어, "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 , Naaseh ve-nishma)", 즉 "우리가 행하고 우리가 듣겠습니다"는 유대교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이 말은 유대 조상들이 시나이 산에서 언약을 받아들일 때 했던 말입니다. 이 말은 토라에 기록된 광야 시절의 불평, 죄악, 배교, 반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탈무드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토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 산을 그들의 머리 위에 매달아 놓으셨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언약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자 모쉐가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읽어 주었다. 백성은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하고 듣겠습니다(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라고 대답했다.“ ( 출애굽기 24:7 )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을 함으로써 천사의 경지에 올랐다는 반대되는 전승이 생겨났습니다.

랍비 심라이(Simlai)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가 듣겠습니다(We will hear)”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행하겠습니다(We will do)”라고 서둘러 말했을 때, 6만 명의 천사들이 내려와 이스라엘 각 사람에게 두 개의 왕관을 씌워 주었는데, 하나는 “우리가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듣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랍비 엘리에제르(Eliezer)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가 듣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행하겠습니다”라고 서둘러 말했을 때, 신성한 음성이 나와 말했다고 전합니다. “누가 내 자녀들에게 이 비밀을 계시했느냐? 오직 천사들만이 사용하는 이 비밀을 말이냐?” (Shabbat 88a).

그렇다면 이 단어들은 실제로 무슨 뜻일까요? 나아쎄(נַעֲשֶׂה, Na'aseh)는 직설적입니다. "우리가 행하겠다"라는 뜻입니다. 행동, 행위, 실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니쉬마(נִשְׁמָע, nishma) 라는 단어의 뜻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겠다"라는 뜻일 수도 있고, "우리가 순종하겠다"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우리가 이해하겠다"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를 해석하는 방법이 한 가지 이상임을 시사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이는 "우리가 먼저 행하고 나서 듣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탈무드(샤밧 88a)와 라시(Rashi)의 견해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언약의 조건을 듣기도 전에 언약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해석이지만, 출애굽기 24장을 순서대로 읽지 않을 때만 성립합니다. 사건들이 발생한 순서대로 직설적으로 읽으면,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에 동의했고(출 19:8),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계시하셨으며(출 20), 모쉐가 율법의 세부 사항들을 설명했습니다(출 21-23). 그제서야 이스라엘 백성이 "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라고 말했는데, 이때 그들은 이미 율법의 상당 부분을 들은 후였습니다.

[2] "우리는 [지금까지 명령받은 것을] 행하고 [앞으로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은 라쉬밤(Rashbam)의 견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말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내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여정뿐 아니라 영적인 여정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율법의 모든 세부 사항을 한꺼번에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쉐마(שְׁמַע)는 "듣다"가 아니라 "경청하고, 순종하고, 행동으로 충실히 응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3] "우리는 순종하여 행하겠습니다"(스포르노(Sforno)). 이 관점에서 '나아쎄'(נַעֲשֶׂה, Na'aseh) 와 '니쉬마(נשמע, nishma)는 하나의 의미를 두 단어로 표현한 '헨디아디스(hendiadys)'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어떤 이익을 구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고 광야를 인도하시며 먹이셨기에, 그들은 구원자이자 율법 제정자이신 그분께 온전히 충성하고자 했습니다.

[4] "우리는 행하고 이해할 것입니다"(이쯔학 아라마(Isaac Arama), 『이쯔학의 아케이다트』 중에서). 쉐마(שְׁמַע)라는 단어는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혼란스럽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7 )와 같이 " 이해하다"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보다 '행함'을 앞세운 것은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것들은 행해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끌어야만 리더십을 이해할 수 있고, 글을 써야만 저술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음악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관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유대교의 계명에 따라 살아갈 때에만 진정으로 유대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신앙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행함이 이해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과 24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세 번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의 언약 수락이 이루어진 구절은 상당히 다릅니다.

백성들이 모두 함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하겠나이다(나아쎄'(נַעֲשֶׂה, Na'aseh))." (출 19:8)

2. 모쉐가 가서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전하니 그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겠나이다(나아쎄'(נַעֲשֶׂה, Na'aseh)) 하였더라. (출 24:3)

3. [모쉐]가 언약의 책을 가져다가 백성에게 읽어 주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행하고 들으리이다(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 (출 24:7)

이 세 가지 중 세 번째만이 '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라는 구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 번째만이 백성의 만장일치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백성이 하나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백성이 "함께 응답했다"와 "한목소리로 응답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을까요?

유대인의 행위인 나아쎄(נַעֲשֶׂה)의 차원에서 유대인은 하나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대 민족을 하나로 묶어준 것입니다. 유대교는 법률 체계이며, 행동 규범이며, 실천의 공동체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합의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행동에 있어서, 즉 '나아쎄'에 있어서 "함께" 그리고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힐렐과 샴마이, 아바예와 라바, 람밤과 로쉬, 랍비 요셉 카로와 랍비 모쉐 이세를레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들은 유대적 실천의 틀 안에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니쉬마(נִשְׁמָע), 즉 이해의 차원에서는 유대인은 하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교에는 합리주의자와 신비주의자, 철학자와 시인, 마음이 땅에 단단히 고정된 학자들과 영혼이 천국으로 승천한 성인들이 있었습니다. 랍비들은 시나이 산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았으니"(출 20:15): 소리의 소리와 불꽃의 불꽃. 소리는 몇 개였고 불꽃은 몇 개였는가? 그 뜻은 각자가 자신의 능력(경험한 것을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 들었으며, 이것이 (시 29:4) "여호와의 음성은 권능이요 여호와의 음성은 위엄이니라"라고 말한 바를 의미합니다. (Mechilta 20:15b).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것, 혹은 그래야 하는 것은 성찰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우리는 같은 행위를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나아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하지만 ‘니쉬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미쉬나 주석에서 "현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고 그것이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의견(סברה, 세바라)의 확립에 관한 것일 경우, 어느 한쪽 편을 드는 할라카적 판결을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 쓴 의미입니다. (Maimonides, Commentary to the Mishnah, Sanhedrin, 10:3).

R. 시몬 벤 제마흐 두란(R. Shimon ben Zemach Duran)과 요셉 알보(Joseph Albo), 그리고 20세기에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에 따르면 가장 간단한 공식은 창조, 계시, 구원에 대한 세 가지 기본 믿음으로 구성됩니다. (Menachem Kellner, Dogma in Medieval Jewish Thought (1986)).

마이모니데스의 13가지 원칙은 이 기본 구조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믿음은 유대교 기도의 패턴을 형성합니다. ("Understanding Jewish Prayer", Authorised Daily Prayer Book, Collins, 2006, pp20-21).

창조는 우주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는 토라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속은 역사를 하나님의 행하심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큰 틀 안에서 우리는 각자 과거의 현자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현재의 스승들에게 배우며, 신성한 임재에 이르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자신만의 이해를 구축해야 합니다.

유대교는 신조뿐 아니라 행위도 포함하는 종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조상들의 신앙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상당한 자유를 허용해야 합니다. 이단 색출은 우리가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활동은 아닙니다. 유대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 중 하나는 마이모니데스 자신이 신조를 할라카(유대 율법)상 규범적인 교리로 격상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 교리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이단으로 고발당했고, 사후에는 그의 저서들이 불태워졌습니다. 이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행하고 이해할 것입니다.(나아쎄 베니쉬마(נַעֲשֶׂה וְנִשְׁמָע)"라는 말은,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행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겠다는 뜻입니다. 행동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면서도, 각자 신앙에 이르는 길을 찾을 여지는 남겨진다고 믿습니다.

By Rabbi Lord Jonathan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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