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일본강점기 누린 영화 대단하다

1007202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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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에 대하여.

이완용: 이재명이란 사람이 열차에서 저격하지만 실패, 이재명은 사형당함.

말년까지 천수를 누리며 평안한 일생을 보냄.

박제순: 정4위 종1품 훈1등 자작, 조선총독부 고문, 경학원 대제학.

박제순이 사망했을 당시 공식적으로 지칭되던 직함임. 이 사람도 잘살다가 죽음.

권중현: 나인영에게 서울 사동 어귀에서 한낮에 저격을 받았지만 요행히 화를 피함.

1910년 '병합' 때는 58세의 나이로 자작을 수여받고 중추원 고문이 되었으며, 일제시대에는 조선사편수회의 고문을 지내는 등 유유자적한 말년을 보냈다.

이지용: 1907년 3월 오기호(吳基鎬), 나인영(羅寅永) 등 을사오적 암살단이 이지용을 죽이러 갔을 때 이지용은 용산 강정에 있었다. 이지용 암살을 맡은 사람이 가서 엿보니 사동(寺洞)에서의 권중현 암살 미수사건이 이미 전화로 보고 되어서 병정 60여 명이 급히 달려와 호위하고 있었으므로 역시 죽이지 못하였다.

1907년 5월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고 박람회 시찰을 위해 세 번째 도일하여, 다음해 2월에 대훈(大勳)에 특서되어 이화대수장(李花大綬章)을 받았다. 1910년 한일'합방' 때는 일본 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고 연 수당 3000원을 받아 도박에 탕진하다가 1928년 사망했다.

이근택: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과 미국 공채 5만 원을 받았으며, '병합' 후에는 그 해 10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다가, 종4위 훈1등으로 1919년 12월 17일 사망하였다.

이근택의 작위는 아들 이창훈(李昌薰)이 습작함으로써 대를 이어 일본의 '충량한 신민'이 되었다. 이와 함께 이근택의 형인 이근호(李根澔), 아우인 이근상 등도 한일'합방'과 동시에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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