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쏟아졌다 나무들과 함께 나는 후줄근히 젖었다 작살에 살점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오래 전에 떨어진 태양은 먹다 버린 사과처럼 더럽게 뒹굴고 있었다 내 생은 왜 항상 굴욕인가, 내 영혼은 자꾸 작살 같은 질문을 내 몸에서 퍼붓고 있었다 돌들이 일제히 딱딱한 옷을 벗고 맨몸으로 돌아다녔다 세상은 왜 항상 물음표 속에 갇혀 있는가, 내 주변에 선 나무들이 물음표로 구부러져 있었다 오래지 않아 둑이 무너져 먼 바다에 살고 있다는 흰 고래가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나는 그 놈의 등에 올라 타고 지상을 떠나고 싶다 늘 어디로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함이 목마름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 사이 죽순은 쑥쑥 자랄 것이다 죽순, 그 연약한 짐승의 살갗을 만지고 싶어 한때 대숲에 머문 적도 있었다 대나무들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물음표로 구부러지지 않았다 대나무들은 늘 느낌표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대나무, 그 앞에 서면 일종의 경건함을 느꼈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그렇게 꼿꼿하게 서 있기가 얼마나 불가해한 일인가 그러나 내 몸은 한번도 느낌표처럼 꼿꼿하게 서지 못했다 나는 왜 항상 물음표로 서서 세상을 굽어보는가, 이런 나를 사선으로만 퍼붓는 장대비는 비웃고 있었다 비 오는 날마다 비를 맞고 서서 흰 고래를 기다리며 한 시절 느릿하게 보내도 좋을 것 같으다 석 달 열흘동안 쉼없이 비가 퍼부어서 뭍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다면 흰 고래 성큼 내 앞에 헤엄쳐와 등을 낮추리라 아아, 부질없는 짓 다 집어치우고 죽순처럼 단순하게 쑥쑥 자라기라도 했으면
장대비가 쏟아졌다
장대비가 쏟아졌다
김충규
장대비가 쏟아졌다 나무들과 함께 나는 후줄근히 젖었다 작살에 살점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오래 전에 떨어진 태양은 먹다 버린 사과처럼 더럽게 뒹굴고 있었다 내 생은 왜 항상 굴욕인가, 내 영혼은 자꾸 작살 같은 질문을 내 몸에서 퍼붓고 있었다 돌들이 일제히 딱딱한 옷을 벗고 맨몸으로 돌아다녔다 세상은 왜 항상 물음표 속에 갇혀 있는가, 내 주변에 선 나무들이 물음표로 구부러져 있었다 오래지 않아 둑이 무너져 먼 바다에 살고 있다는 흰 고래가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나는 그 놈의 등에 올라 타고 지상을 떠나고 싶다 늘 어디로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함이 목마름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 사이 죽순은 쑥쑥 자랄 것이다 죽순, 그 연약한 짐승의 살갗을 만지고 싶어 한때 대숲에 머문 적도 있었다 대나무들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물음표로 구부러지지 않았다 대나무들은 늘 느낌표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대나무, 그 앞에 서면 일종의 경건함을 느꼈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그렇게 꼿꼿하게 서 있기가 얼마나 불가해한 일인가 그러나 내 몸은 한번도 느낌표처럼 꼿꼿하게 서지 못했다 나는 왜 항상 물음표로 서서 세상을 굽어보는가, 이런 나를 사선으로만 퍼붓는 장대비는 비웃고 있었다 비 오는 날마다 비를 맞고 서서 흰 고래를 기다리며 한 시절 느릿하게 보내도 좋을 것 같으다 석 달 열흘동안 쉼없이 비가 퍼부어서 뭍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다면 흰 고래 성큼 내 앞에 헤엄쳐와 등을 낮추리라 아아, 부질없는 짓 다 집어치우고 죽순처럼 단순하게 쑥쑥 자라기라도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