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전쟁 중 ‘대의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은 지금 그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phantom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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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대의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은 지금 그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관, 정치인, 언론, 여론 간의 갈등은 전장의 상황만큼이나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대의(the greater good)를 위한 희생”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이념이 됩니다. 이는 공동의 목적과 방향성을 의미하며, 개인과 기관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희생하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지면 대의(the greater good)를 위한 희생이라는 개념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이는 더 이상 철학 강의실이나 정치 이론 서적에서 논의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대신 즉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외부 적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누가 ‘대의(the greater good)를’ 정의할 권한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 정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부적 갈등은 궁극적으로 전장의 결과 못지않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의 복잡성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대의(the greater good: 더 큰 선)가 통치자에 의해 정의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선거, 공론, 제도, 법을 통해 사회 자체가 '대의(the greater good)를 정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입니다. 권력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고, 그 권력은 여러 기관에 의해 견제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바로 그 구조가 분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기관들이 ‘대의(the greater good)’를 서로 다르게 정의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를 정치적 생존과 선거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법원은 이를 법적 규범과 제도적 권위의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군부는 이를 작전상 필요성과 전장의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언론은 이를 공익과 정보 전달의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운동가들은 이를 도덕적 틀과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각각의 관점은 타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관점이 동시에 경쟁할 때, 그 결과는 명확함이 아니라 혼란입니다. 전쟁 중인 민주주의 국가는 '대의(the greater good)'에 대한 통일된 국가적 정의 대신, 대의(the greater good)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논쟁 자체가 전략적 취약점으로 작용합니다.

미디어의 증폭 역할

자유 언론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입니다. 조사하고, 질문하며,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언론인이 없다면 어떤 진지한 민주주의도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 미디어는 시청률, 클릭 수, 관심에 의해 주도되는 점점 더 경쟁적인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파괴, 장례식, 슬픔에 잠긴 유가족, 불타는 건물 등 극적인 장면들을 낳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현실이며 반드시 보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들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끝없이 반복될 때, 언론의 역할은 미묘하게 변합니다.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서 대중이 살아가는 정서적 환경을 형성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자부심이 국가적 정서의 주류를 이룹니다. 파괴나 회복력이 국가적 이미지의 주류를 이룹니다. 패배나 승리가 국가적 서사의 주류를 이룹니다.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는 현대 미디어(소셜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 모두)는 끊임없는 감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냅니다. 분쟁 상황에서는 뉴스 소비가 생존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사람들은 정보가 곧 안전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최신 소식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는 도파민과 불안의 악순환, 즉 스트레스와 안도감,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스트레스의 반복을 초래합니다.

그 결과, 사회는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항상 긴장 상태에 있으며, 감정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전황이 안정되거나 개선되고 있을 때조차도, 국민 정서는 황폐함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의도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시스템적인 문제입니다. 극적인 이미지는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시청자는 시청률을 높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미디어의 반복 보도는 의도치 않게 정보를 전달하려는 바로 그 사회를 상대로 한 일종의 심리전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현대 전쟁에서 사기는 전장의 승리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화면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지배하는 이미지와 서사에 의해서도 형성됩니다.

정치적 악용

전쟁이 정치를 멈추게 하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은 계속해서 정부에 반대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일부이며, 책임 추궁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강력한 정치적 유혹을 낳습니다. 모든 군사적 실수, 정보 실패, 병참 문제,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은 정책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에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야당 지도자들이 특히 전쟁 한복판에서 모든 실패를 부각시킬 때, 그들은 자신이 민주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 추궁과 기회주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환경은 선거가 항상 코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국가 전략뿐만 아니라 여론과 정치적 입지 확보도 고려합니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내놓은 발언은 국제적 전략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을 잔혹 행위로 비난하거나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그러한 발언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담론 안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발언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국제 법정, 외국 언론, 그리고 이스라엘의 적들이 벌이는 선전 캠페인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어려운 민주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전쟁 시, 표현의 자유와 전략적 책임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시민이 이란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스라엘 내 표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는 명백한 간첩 행위이자 반역입니다. 법 체계는 이를 국가 안보 범죄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공인이 이스라엘을 전쟁 범죄나 집단 학살로 비난하는 데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발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로 간주될 수 있지만,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적으로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항상 이러한 딜레마에 직면해 왔습니다. 즉, 전쟁 시에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국가 안보와 국민적 결속을 어떻게 동시에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도적 권력 다툼

이스라엘의 상황은 현재 진행 중인 법적·헌법적 위기로 인해 더욱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법원, 검찰총장, 선출직 공무원, 그리고 군 사법 체계 간의 갈등은 전쟁 중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많은 국가에서 전시 의사결정 권한은 더욱 명확해지고 중앙집권화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정치 지도부, 군 지도부, 사법 당국, 그리고 법원 사이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둘러싼 다툼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는 단순한 법적 논쟁이 아닙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누가 국익과 공익을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선출된 정부인가요? 법원인가요? 법률 자문가들인가요? 군부인가요? 아니면 국민 그 자체인가요?

전시 상황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국가 전략은 더뎌지고, 논란의 여지가 커지며, 실행하기 더 어려워집니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뿐만 아니라, 무엇을 할지 결정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벌이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전략적 위기입니다.

국민의 역할

그러나 이러한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을 때마다 이 나라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일반 시민들이 행동에 나섭니다. 사람들은 자원봉사에 참여합니다. 기부금이 쏟아집니다. 농부들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군인들은 민간인들로부터 장비를 지원받습니다. 가족들은 집을 잃은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열어줍니다.

실제 행동에 있어 이스라엘 사회는 종종 이스라엘의 정치, 언론, 또는 제도보다 훨씬 더 단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대중이 행동으로 단결을 보여준다면, 왜 국가적 논의는 말로만 나뉘어 있는가?

아마도 그 해답은 대중이 다른 이들에게 국가적 분위기를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론은 우리가 보는 것을 정의하고, 정치인들은 우리가 논쟁하는 대상을 정의하며, 사법 기관은 허용되는 것을 정의하고,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을 정의합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외부의 세력들이 우리의 국가적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대의(the greater good)'를 정의하는 주체는 국민이지, 언론도, 법원도, 정치인도, 논평가도 아닙니다.

국민은 다음과 같이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위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딜레마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것입니다.

행동을 촉구하며

이스라엘의 가장 큰 힘은 결코 무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사회, 즉 회복력, 공동의 운명에 대한 인식,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단결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단순한 군사적 전쟁뿐만 아니라, 국가의 방향, 국민적 사기와 공동의 이익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전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만약 그 정의가 오로지 언론의 흐름, 정치적 다툼, 법적 분쟁, 소셜 미디어의 분노에 맡겨진다면, 이 나라는 대외적으로 싸우는 동안 내부적으로 논쟁만 벌이는, 전략적으로 마비된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국민은 자신의 역할을 되찾아야 합니다. 시민들은 감정적 조장이 아닌 정보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정치적 기회주의가 아닌 책임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들은 끝없는 권력 다툼이 아닌, 기관들로부터 명확한 해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선거 기간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민주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랍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고, 댓글을 달고, 언론인들에게 피드백을 보내고, 평화롭게 시위하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도자들과 언론, 기관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를 알고 있다. 우리는 위험을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대가를 이해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맡겠다.

대의(the greater good)에 대한 유대교의 관점

유대교는 오랫동안 대의 즉 ‘더 큰 선’(the greater good)이라는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토라와 탈무드는 공동체의 책임, 즉 사회가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가 아니라 도덕적인 공동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사상에 막대한 비중을 둡니다.

‘티쿤 올람(תִּיקוּן עוֹלָם, tikkun olam)’—세상을 고치는 것—이라는 개념은 사회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반영합니다. ‘피쿠아흐 네페쉬(פִּקּוּחַ נֶפֶשׁ, pikuach nefesh)’—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는 원칙은 인간의 생명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유대교 법은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책임, 정의와 자비,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습니다.

유대교 사상은 ‘대의(더 큰 선)’를 단순히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대의(the greater good)’를 정의할 때, 그것은 생명을 보호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공동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공정하고 도덕적이며 회복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의(the greater good)’는 단순한 정치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덕적 개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입니다.

‘대의(the greater good)’는 정치인, 법원, 언론, 또는 군 지도자들만이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유대교 전통에서, ‘대의(the greater good)’는 궁극적으로 책임감 있고 도덕적으로, 그리고 공동의 운명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국민 스스로가 정의해야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가진 가장 큰 전략적 자산은 무기나 기술, 심지어 동맹 관계조차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시나이 산에서 모든 민족을 위한 더 큰 선을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로 합의했던 바로 그 민족의 후손인 이스라엘 국민입니다.

By EFFREY KAHN / MARCH 25, 2026 12:35 /THE JERUSALEM POST

이 글은 현재 이스라엘 국민을 향한 글입니다. 하지만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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