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현자 다섯 명—랍비 엘리에제르(Eliezer), 랍비 예호슈아(Yehoshua), 랍비 엘라자르 벤 아자리아(Elazar ben Azaryah), 랍비 아키바(Akiva), 랍비 타르폰(Tarfon)—이 한때 브네니 브라크(Bnei Brak)에 모여 유월절 세데르를 지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탈출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밤새도록 시간을 보냈는데, 새벽이 되어 제자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스승님들, 아침 쉐마 기도를 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 세데르에서 이 구절을 읽습니다. 대다수는 이를 학문에 너무 몰두해 기도할 것을 잊어버린 위대한 학자들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사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기이한지 간과하기 일쑤입니다.
제자들은 스승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밖, 거리 위에 서 있었고,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랍비들은 닫힌 문 뒤에 모여 있었습니다. 왜 제자들은 스승들과 함께 세데르에 앉아 있지 않고 밖에서 서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현인들 자신은 새벽이 밝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서기 2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땅은 수 세대에 걸쳐 로마의 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으며, 유대 민족을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대 사회를 분열시켰습니다.
그 시대의 거장인 랍비 아키바는 서기 132년 로마에 대항해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킨 군사 지도자 바르 코흐바(Bar Kokhba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 랍비 아키바는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스라엘의 구세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이들은 훨씬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평소 함께 식사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제자들이 밖에서 경계를 서는 동안, 이 다섯 사람은 한 집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랍비 예후다 레온 아슈케나지(Yehuda Leon Ashkenazi)는 브네이 브라크가 유대인 지하 조직의 본부였으며, 이 모임은 불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밖에서 대기하던 제자들은 로마 순찰대를 감시하는 초병들이었습니다. 랍비들이 안에서 하고 있던 일은 단순한 공부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 회의였으며, 로마의 지배에서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모임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밤새도록 나눈 출애굽에 대한 논의는 먼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세대에 여전히 행하고 계시는 일에 대한 전략 회의였습니다. 출애굽은 결코 진정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운 장으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구원을 기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구원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출애굽 사건이 언제나 우리 의식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너는 평생 동안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 날을 기억해야 한다”(신명기 16:3).
출애굽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현재의 현실로 이어가는 것이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며, 위협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가 이집트에서 시작된 바로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가다(Haggadah)는 이를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모든 세대에 있어, 각 사람은 마치 자신이 직접 이집트를 떠난 것처럼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 브네이 브라크(Bnei Brak)의 랍비들은 이 명령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달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기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속박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이 이끌어내신 주님께서, 우리를 속히 구원하시고 땅의 네 모퉁이에 흩어진 자들을 모아 이스라엘 온 백성을 하나로 연합시켜 주시기를.”
최초의 구원과 마지막 구원은 한 호흡 안에 함께 나타납니다. 이는 두 개의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장들은 여전히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올해의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유월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족들은 하늘에서 미사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세데르 식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군인들은 이란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란 정권은 파라오, 하만,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살인적인 결단력으로 유대 민족의 말살을 꾀하고 있습니다. 올해 그 세데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출애굽을 직접 겪고 있는 것입니다.
브네이 브라크의 랍비들은 자신들의 세데르 이야기를 하가다에 추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숨겨진 저항을 펼쳤던 그 밤에 대해 읽으며, 그것이 출애굽 그 자체만큼이나 유월절 이야기의 중요한 일부임을 인정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이야기가 하가다에 실린 것입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이스라엘 땅, 바로 그 현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바로 그 땅에서 치러지는 올해 우리의 세데르는 언젠가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유월절을 앞두고>당신의 하가다(הַגָּדָה) 속에 숨겨진 비밀 군사 작전
당신의 하가다(הַגָּדָה) 속에 숨겨진 비밀 군사 작전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현자 다섯 명—랍비 엘리에제르(Eliezer), 랍비 예호슈아(Yehoshua), 랍비 엘라자르 벤 아자리아(Elazar ben Azaryah), 랍비 아키바(Akiva), 랍비 타르폰(Tarfon)—이 한때 브네니 브라크(Bnei Brak)에 모여 유월절 세데르를 지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탈출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밤새도록 시간을 보냈는데, 새벽이 되어 제자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스승님들, 아침 쉐마 기도를 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 세데르에서 이 구절을 읽습니다. 대다수는 이를 학문에 너무 몰두해 기도할 것을 잊어버린 위대한 학자들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사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기이한지 간과하기 일쑤입니다.
제자들은 스승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밖, 거리 위에 서 있었고,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랍비들은 닫힌 문 뒤에 모여 있었습니다. 왜 제자들은 스승들과 함께 세데르에 앉아 있지 않고 밖에서 서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현인들 자신은 새벽이 밝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이 이야기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서기 2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땅은 수 세대에 걸쳐 로마의 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으며, 유대 민족을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피지배 민족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대 사회를 분열시켰습니다.
그 시대의 거장인 랍비 아키바는 서기 132년 로마에 대항해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킨 군사 지도자 바르 코흐바(Bar Kokhba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 랍비 아키바는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스라엘의 구세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이들은 훨씬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평소 함께 식사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밤중에 제자들이 밖에서 경계를 서는 동안, 이 다섯 사람은 한 집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랍비 예후다 레온 아슈케나지(Yehuda Leon Ashkenazi)는 브네이 브라크가 유대인 지하 조직의 본부였으며, 이 모임은 불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밖에서 대기하던 제자들은 로마 순찰대를 감시하는 초병들이었습니다. 랍비들이 안에서 하고 있던 일은 단순한 공부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 회의였으며, 로마의 지배에서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모임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밤새도록 나눈 출애굽에 대한 논의는 먼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세대에 여전히 행하고 계시는 일에 대한 전략 회의였습니다. 출애굽은 결코 진정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새로운 장으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미 완성된 구원을 기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구원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출애굽 사건이 언제나 우리 의식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너는 평생 동안 이집트 땅에서 나온 그 날을 기억해야 한다”(신명기 16:3).
출애굽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현재의 현실로 이어가는 것이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며, 위협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가 이집트에서 시작된 바로 그 이야기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가다(Haggadah)는 이를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모든 세대에 있어, 각 사람은 마치 자신이 직접 이집트를 떠난 것처럼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 브네이 브라크(Bnei Brak)의 랍비들은 이 명령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달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기적을 행하시고 그들을 속박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이 이끌어내신 주님께서, 우리를 속히 구원하시고 땅의 네 모퉁이에 흩어진 자들을 모아 이스라엘 온 백성을 하나로 연합시켜 주시기를.”
최초의 구원과 마지막 구원은 한 호흡 안에 함께 나타납니다. 이는 두 개의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야기이며, 그 장들은 여전히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올해의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유월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가족들은 하늘에서 미사일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세데르 식탁을 차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군인들은 이란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란 정권은 파라오, 하만,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살인적인 결단력으로 유대 민족의 말살을 꾀하고 있습니다. 올해 그 세데르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출애굽을 직접 겪고 있는 것입니다.
브네이 브라크의 랍비들은 자신들의 세데르 이야기를 하가다에 추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숨겨진 저항을 펼쳤던 그 밤에 대해 읽으며, 그것이 출애굽 그 자체만큼이나 유월절 이야기의 중요한 일부임을 인정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이야기가 하가다에 실린 것입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이스라엘 땅, 바로 그 현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바로 그 땅에서 치러지는 올해 우리의 세데르는 언젠가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에 대하여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By Rabbi Elie Mischel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ewishlearning/224166688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