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로셋(חֲרֹסֶת): 달콤함으로 우리의 억압을 기억하며

phantom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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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셋(חֲרֹסֶת): 달콤함으로 우리의 억압을 기억하며

 

유월절 세데르에서 먹는 하로셋(haroset) 페이스트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축에 사용했던 회반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달까요?

 

유월절의 신비로운 요리에서, 세데르 접시에 담긴 각 음식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하로셋(חֲרֹסֶת)은 고된 노동과 억압을 상징합니다. 탈무드 페사힘 116a에 따르면, 이 단어 자체는 “점토”를 뜻하는 ‘헤레스(חֶרֶס, cheres)’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마이모니데스에 따르면, 하로셋은 노예들이 벽돌을 만들 때 사용했던 모르타르(mortar)를 상징합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조리법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대추야자, 말린 무화과, 건포도 등을 으깨어 식초를 넣고, 마치 흙에 짚을 섞듯이 향신료를 섞습니다.” (힐코트 하메쯔 우마짜 7:11).

 

그러나 하로셋(חֲרֹסֶת)의 의식적 의미는 세데르 도중 결코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모호합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세데르에서는 유월절 제물(뼈로 상징됨), 마짜(무교병), 마로르(쓴 채소)와 같은 특정 음식들을 언급하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로셋은 그 중 하나가 아닙니다.

 

하로셋(חֲרֹסֶת)이 유월절의 의무 사항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탈무드에 이견이 기록되어 있지만, 하로셋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의식의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즉, 하로셋의 의미는 세데르에 의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왜 그토록 가혹한 억압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을까요?

 

미드라쉬에 나오는 두 가지 전설은 출애굽 이야기에서 과일이 차지하는 역할을 다루고 있으며, 하로셋이 슬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달콤함의 상징이기도 함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출애굽기 라바 11장 12절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이 히브리인들의 남자 아기들을 죽이려 했을 때, 히브리 여인들은 사과나무가 있는 과수원으로 나가 아기를 낳음으로써 아이들을 구했습니다. 아기들은 그 후 과수원에 남겨져 천사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미드라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천사를 보내어 아이들을 씻기고 아름답게 꾸며 주셨으니, 마치 아이를 예쁘게 꾸며 주는 산파와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두 개의 젖꼭지를 주셨는데, 하나는 기름으로, 다른 하나는 꿀로 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이집트의 과수원에 거대한 탁아소를 세우시고, 천사들이 아기들을 돌보게 하십니다. 땅 자체가 젖꼭지가 되어 아기들을 기릅니다. 이집트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과수원을 쟁기로 갈아엎으려 했지만, 아이들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자라나 마치 봄의 어린 양들처럼 ‘무리’를 지어 집으로 향합니다.

 

이 미드라쉬에 등장하는 아기들은 인간의 잔혹함에 위협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양식을 얻습니다. 그들은 마치 생명나무의 열매처럼 과수원에서 자라납니다. 이 아름다운 미드라쉬는 달콤한 하로셋(חֲרֹסֶת)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로셋을 단순히 노예 생활을 상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구원과 꽃피는 봄을 상기하기 위해 먹습니다.

 

하로셋(חֲרֹסֶת)과 구원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라바 21장 10절에 따르면, 백성들이 갈대 바다를 건너갈 때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합니다. 바로 아이들이 배고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밤중에 갈라진 바다를 건너는 동안 아이들이 짜증을 내며 간식을 원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미드라쉬는 이렇게 전합니다: “이스라엘의 딸들은 아이들을 두 손으로 안고 바다를 건넜는데, 아이들이 울면 손을 뻗어 바다에서 사과나 석류를 따주곤 했다.”

 

이 전설에서 갈대 바다는 필요한 이들에게 과일을 맺어주는 일종의 에덴이 됩니다. 다시 한번, 구원의 기적은 과일 나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무가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유월절은 우리에게 거의 동일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만약 우리가 유월절 세데르(Seder)의 일부로 바다 속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로셋(חֲרֹסֶת)의 단맛이 어떻게 해방의 경이로운 선물과 봄의 축복을 상기시켜 주는지 서로에게 묻는다면 어떨까요? 만약 하로셋이 슬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기쁨의 화신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달콤한 하로셋을 먹는 기쁜 경험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과수원에 대한 이 모든 논의의 이면에는 과수원의 카발라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신의 현현이자 신성한 영, 그리고 신의 신부인 ‘쉐키나(שְׁכִינָה)’의 이름 중 하나는 ‘거룩한 사과 과수원(Holy Apple Orchard)’입니다. 유월절에 하로셋을 먹을 때, 어떤 과일을 넣든 간에, 우리는 지상에 머무르는 신성과 직접적인 연결을 맺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리스에서 스칸디나비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른 문화권에서 과수원은 인간이 불멸의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초월적인 장소로 여겨집니다.

 

물론 하로셋(חֲרֹסֶת)을 ‘모르타르’로 보는 관점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이야기의 일부로 새로운 옛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풍부하고 달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로셋의 맛을 통해 영감을 얻어, 우리 세상에 해방의 달콤함을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By Rabbi Dr. Jill Ha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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