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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딸기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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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명의 추가 가해자 당초 밝혀진 41명의 가해자 외에도 70여 명의 추가 가해자가 밝혀졌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가해자 가족에게서 협박을 받는가 하면 수사를 맡은 경찰관은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고 소녀들에게 논란의 발언을 했다. 또한 일부 가해자들 역시 반성은 대신 경찰서에서 피해자들에게 폭언, 협박을 했고 피해자 A양을 윤간하는 등 11월 말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총 11회에 걸쳐 여관과 학교 놀이터, 공원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윤간과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폭행을 당한 A양은 “죽고 싶다”며 수면제 20알을 먹고 쓰러져 이틀만에 깨어나기도 했으며 수차례에 걸친 집단 성폭행 후유증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

성폭행이 1년여 지속되면서 가해학생들 수는 점점 늘고, 쇠파이프로 구타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공갈 협박을 했다. 이후 최 양에게 언니를 불러내지 않으면 성폭행 사실을 인터넷과 학교 등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 일부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들까지 나타나 성폭행 장면을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촬영장면에는 얼굴과 신체가 선명하게 나타났고 여기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말하는 등 신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들 및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피해자 자매에게 부모에게 말하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여 피해자 자매는 아무 말도 못했다.

가해학생들은 쇠파이프로 00양을 구타를 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또한 성기구를 구해서 여중생들을 성폭행했다. 성 기구를 동원한 집단 성폭행을 하고, 그들은 최 모양 자매에게“불러서 오지 않으면 인터넷에 사실을 공개하고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며 협박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준비된 캠코더와 카메라, 핸드폰 등에 그대로 담겼다.

한편 가해자의 여자친구인 여성들은 관련 동영상을 보면서 웃어대며 각종 욕설과 비웃음을 해댔고 경찰조사와 인터넷에 피해자들이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증언하였다. 이들은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폭행 장면을 촬영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여자친구들 중 일부가 이 성폭행 동영상을 인터넷에 띄우기도 했다. 일부 동영상에는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이름을 실명으로 언급했고, 일부 동영상은 선명하게 촬영되어 피해자들과 가해자들, 가해자의 여자친구 등의 얼굴 등이 나와 있었고, 동영상과 사진들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이로 인해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확산되었다. 가해자들의 블로그와 싸이월드를 비롯한 인적사항은 2004년 10월 경에 네티즌들에 의해 인터넷에 공개되어 대부분 폐쇄했다.

일부 가해자들 중에는 경찰서에서도 반성의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질심문 때 피해자들에게 폭언을 했다. 12월 7일 오후 남부서 뒷문 마당에서 가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채 그중 2명으로부터"이렇게 하고 제대로 사나 보자. 몸조심 해라"는 등의 협박했던 것이다. 일부 가해자들은 경찰서에서조차 피해자들에게 폭언을 했다.




이들은 최 모 양을 폭행하고 성폭행한 뒤 이를 캠코더로 찍어 그녀에게 인터넷에 영상을 퍼트리겠다고 위협했다. 첫 번째 범행 이후 2004년 11월까지 밀양 내 여인숙, 마을버스 안, 축사, 비닐하우스 등지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 금품 갈취, 폭행, 불법 촬영 등의 끔찍한 범죄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집단 강간에 가담하는 인원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이들은 피해자인 최 모 양에게 "인터넷에 영상을 공개하겠다,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최 모 양이 이들의 나오라는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최 모 양이 재학 중인 학교에 전화해 불이익을 주겠다'라는 말을 하며 그녀를 정신적으로 협박했다. 이러한 용의자들의 철저한 입막음과 협박으로 최 모 양은 11개월에 달하는 범행 기간 동안 자신의 피해를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해자 부모들은 "왜 피해자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노?", "내랑 경상도 밀양 지역이 지금 피해 입은 건 생각 안 하고 씨부리쌌노?", "지들이 딸자식을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게끔 만들어야 맞제.", "마, 여자애들이 와서 꼬리 치는데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애가 어디 있노?" 등의 망언들을 일삼았다. 이후 이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의 전학간 학교에까지 추적하여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집단으로 찾아가 온갖 행패를 부렸고, 끝내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지독한 악행을 행하였다.

또한 피해자는 수사가 시작된 2004년 12월 7일 가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어디 제대로 사나 보자", "니 몸조심 해라"라는 등의 협박을 당했다. 경찰의 피해자 보호가 너무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의 보호자는 고소하기에 앞서 경찰에게 몇 번이나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시키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냈으나 수사가 진행된 뒤 언론에 관련 보도 자료가 공개되었다. 당시 밀양 경찰 중 1명이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니년은 밀양 년도 아닌 게 뭣하러 여기 와가 밀양 물을 흐려놓노",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가", "(가해자들은)미래에 밀양을 이끌어 갈 사람" 라는 믿기지 않는 폭언을 했으며, 심지어 노래방 도우미에게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피해자가 니랑 똑같이 생겨서 밥맛 떨어진다"는 인신공격성 뒷담화를 했다. 해당 노래방 도우미는 이 사실을 신고했으며, 결국 법원에서 해당 경찰과 경찰서에 피해 배상금으로 각각 1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시키는 등 별 다른 보호 조치도 하지 않았고, 밀양에서의 지속적인 성폭행 피해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수사 과정에서 밀양 지역경찰에게 폭언을 듣고 가해자 부모 측으로부터 협박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기에 밀양에서 '성폭행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끊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으로 피해자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자살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밖에서도 지하철에 뛰어들겠다고 시도까지 했다. 심각한 우울장애 증세와 정서 불안이 이어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염려해 가족은 피해자를 폐쇄병동에 입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 피해자는 가까스로 겨우 전학하여 새로이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시작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처벌을 받은 가해자 부모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가석방 '탄원서'를 요구하며 피해자의 학교까지 찾아가 온갖 행패를 부렸다. 피해자는 교실 앞에서 기다리던 가해자 부모가 무서워 화장실에 숨어서 나오지 않기도 했고, 결국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끝내 그만두면서 학업을 완전히 중단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폭력에 시달리다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우울장애와 폭식증이었고, 결국 학업마저 제대로 마치지 못한 탓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이나 생계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가해자가 썼던 반성문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밀양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이 2005년 소년보호시설 퇴소 후 쓴 글을 보면 반성은커녕 자신이 피해자와 직접적인 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고 줄곧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지어 피해자를 향해 "그 피해자도 문제 있는 아이"라는 등 2차 가해 요소가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역으로 사건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어 희생시키는 것으로 귀결시킨 데다가 그 뒤편에서는 지역이라는 요소가 결합되어 더욱 심각한 현상을 만들었다. 위의 경찰의 발언에서 보이듯이 지역적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몰아붙이며 이들이 밀양 출신자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피해자보다도 밀양 지역의 안정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났다. 이제 범죄 관계는 피해와 학대의 의미가 아니라 지역의 도덕성에 대한 인식을 흐리는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 전환되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피해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2차적으로 해를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