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결혼생활

남편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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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금) 404호로 이사

신혼 초, 우리는 실평수 6평 남짓한 작은 원룸에서 시작했다. 작고 답답했지만, 둘만의 공간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살림이 점점 늘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이사 전, 내가 먼저 여러 집을 살펴본 뒤 아내와 함께 최종으로 집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지금의 404호를 선택했다. 이전보다 넓어진 공간은 우리에게 작은 희망과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2016-07-03(일) 다른 잠자리
 저녁, 슈퍼 싱글 침대에 아내와 내가 누워 있었고, 바로 옆에 아기침대에는 첫째가 잠들어 있었다. 아내는 첫째와 함께 자고 싶다며 옆에있는 아기침대에서 아이를 침대 가운데로 이동해 눕혔다. 나는 침대가 좁으니 아기침대로 다시 옮기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아내는 “뭐가 좁냐, 나는 이게 좋아”라며 잠자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혼자 바닥에서 자기 시작했다. 아기침대가 부부 침대 바로 옆에 있는데도 굳이 좁은 침대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자려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 좋자고 하는 행동에 내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 같아 아내가 미웠다. 반면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아기와 함께 자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애와 잘 잤다.


2016-08-15(월) 적외선 조사기
 장모님께서 일하시다가 다리를 다치셔서 적외선 조사기를 선물로 드렸다. 마침 생신을 맞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기에 나름 준비한 선물이었는데 이후 아내가 장모님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져와 몇 번 사용한 뒤에는 집에 방치해두었다.

 

얼마 후 나는 “그럴 거면 왜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며 다시 처가로 가지고 가버렸다. 아프신 장모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기에, 애초에 가져올 이유도 없었고, 가져왔다면 꾸준히 사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마음이 좀 씁쓸했다. 누군가를 위해 한 선의가 결국 아무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하며 감정 싸움으로 끝나버리는 게 허탈했다. 

2016-10-20(목) 대장 내시경
 2015년 11월 12일 새벽, 갑작스런 설사와 하혈로 인해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아내와 생전 처음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고, 뇌 CT와 X-ray, 항문경 검사까지 받았지만, 뚜렷한 이상은 없었다.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권했지만, 큰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퇴원을 요청해 집에 돌아와 씻고, 평소처럼 오후엔 출근 했다. 아내는 친정이나 시댁에 이야기해도 되냐고 물었다. 나로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일이었고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친정은 말리지 않아도 말할 거고, 시댁은 절대 말하지 마”라고 선을 그었다.

 

1년 가까이 지난 2016년 9월 5일, 아버지 칠순을 맞아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났다. 밤이 되자 아내와 첫째는 방에서 자고 있었고, 나머지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음속 깊이 눌러두었던 감정이 북받쳐 울컥 눈물이 나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내는 방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다음 날 아내는 그 일 하혈, 응급실, 대장내시경 미수행 등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여행 후, 아버지, 어머니, 매형까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대장내시경을 꼭 받으라고 했다. 아내는 내가 가족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을 ‘자기 험담’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검사 날, 아내가 병원에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건 결국 나에게 맡기게 될 게 뻔했기에 “오지 말고 집에서 아이나 봐달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병원 대기실에서 부모님과 마주쳤고, 나는 “뭘 이런 걸로 여기까지 오셨어요”라며 민망하게 웃었다. 이후 대장내시경과 위내시경을 동시에 받았다.

검사가 끝난 뒤, 마취에서 덜 깬 흐릿한 의식 속에 복도를 걸어 대기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아내가 첫째를 안고 와 있었다. 어질어질한 나에게 아이를 안겨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내밀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받아 안았다. 평소였으면 별일 아닐 수 있었겠지만, 시부모님 앞에서 그 모습(검사 직후 비틀비틀 걸어오는 내게 아이를 맡기고 뒤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게 되니 괜히 내가 다 미안해졌다. 그날, 몸도 마음도 모두 피곤했다.


2016-11-10(목)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그날도 평소처럼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도착했다. 변함없이 피곤한 하루였고, 밥상 앞에 앉아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첫째 아이를 돌보는 것도 점점 벅차 보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내의 표정이 더 지쳐 있었고, 무언가 쌓여 있던 감정이 폭발한 듯 입을 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그 한마디가 밥보다 더 쓰게 삼켜졌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짐작은 갔다. 임신으로 몸은 무겁고, 육아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내가 충분히 도와주지 못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어떻게든 말이 되어 내게 날아왔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가 보기에 나는 쓸모없는 존재로 보였나보다

2016-12-21(수) 씨부랄 인간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지만, 예전부터 알던 카페 정기 모임에 참석하겠다며 목동으로 향했다. 나는 퇴근 후 아내와 시장에 들렀다. 첫째의 돌잔치를 앞두고 음식 준비를 함께 하려는 마음이었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무렵, 아내는 꽤 지쳐 보였다.

카페에서 다른 부부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몸이 힘들어서였는지, 대화 중 갑자기 내게 내뱉은 말은 차가웠다. “씨부랄 인간…” 그 말은 피곤하다는 신호도, 불만의 토로도 아닌 그냥 독한 말이었다. 이유를 캐묻기도 애매한 순간. 말의 날카로움보다, 그 말이 내게 너무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함께 움직인 하루였지만, 내 몫의 수고는 말 한마디로 덮였다. 그날도 묵묵히 감정을 삼켰다. 말로 붙잡아도 해결되지 않을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