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점점 지쳐가는 부부

남편202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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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화) 둘째에게
 대략 열 시쯤이었을 것이다. 둘째가 장난 삼아 물을 흘렸다. 아이답게 별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었지만, 아내는 그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화가 났는지, 둘째의 머리를 두 차례 때렸고, “죽어버려, 던져버리기 전에 저리 가”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그저 장난이었을 뿐인데, 그 반응은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받은 충격도 컸겠지만, 지켜보는 나 역시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기분이었다.
 아내도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육아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에 새겨질 상처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을 수 있으니까.

2019-02-03(일) 둘째에게
 오후 세 시쯤, 집 안은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갑작스러운 소란이 들려왔다. 둘째가 장난을 치다 실수로 아내의 눈 근처를 찔렀고, 그 직후 아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소리가 방 너머까지 들렸다. 나는 옆 방에 있었는데, 문 너머로 ‘퍽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둘째는 울음을 꾹 참고 내 쪽으로 도망쳐 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갔지만...

 저녁 무렵 아내와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둘째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여자아이란 이유로 차별하지 말아달라고. 그리고 내 마음에 진심으로 자리 잡은 말을 건넸다. “나중에 자식들 중에서 당신 걱정해주고 곁에 있어줄 사람, 난 둘째라고 생각해.” 그 말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둘째가 가진 따뜻함과 정서적 감수성을 느껴온 지난 시간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19-02-12(화) 둘째에게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 눈이 아파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방에 누워 있었다. 그때 아내가 둘째를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나는 차마 눈을 뜰수가 없었다. 계속 누워 있으니, 아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와줄 수 없으면 방해라도 하지 마.”
 그 말이 참 서운하게 들렸다. 내가 뭘 방해했을까. 단지 눈 아프고 지쳐 잠시 쉬고 싶었던 것뿐인데, 누워 있는 내 모습이 불편했던 걸까. 그 짜증이 온전히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말없이 누워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잠시 후, 아내가 둘째를 도와주다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또 다시 아이를 때렸다. 그 소리는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했다. 모두가 힘든 하루였다.

2019-02-21(목) 웨건 구매
 아내가 웨건을 사달라고 했다. 이전에는 쌍둥이 유모차로 이동했지만 이제는 아이 셋을 동시에 데리고 다니기 너무 어렵다며, 세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큰 웨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필요한 물건이라 생각했고, 다음 날부터 웨건을 검색해 공부했고 주문을 넣었다. 2월 25일, 웨건이 도착했고 그날부터 꽤 유용하게 잘 썼다. 등 하원 시간, 동네 마실, 가까운 거리의 장보기… 웨건은 분명 많은 수고를 덜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쯤이었을까. 아내가 어느 날 말했다. 웨건 때문에 손목이 아프다고.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사달라고 했냐고? 당신이 사줘서 내 손목 아픈 거잖아.” 순간 마음이 얼어붙었다. 몇 해 전, 분명히 필요하다고 해서, 아이들과 이동할때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고 싶어 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선택이 원망의 이유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다른 부모들이 차로 이동하는 걸 봤다며, 왜 우리 집은 차가 없느냐고도 했다. 장롱면허인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책임의 화살은 어김없이 나를 향했다. 셋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셋 다 하원시키는 게 힘들다며 사달라고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결국 2021년 10월 25일, 웨건은 중고로 팔았다. 손목도, 감정도, 기억도… 덜 무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2019-03-12(화) 아내의 수입
 결혼 전부터 아내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2014년 우리가 결혼했고 2015년 첫째가 태어날 무렵부터 아내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 후 2016년 둘째 출산, 그리고 복직과 짧은 근무를 거쳐 2018년 셋째 출산까지… 아내의 커리어는 출산과 육아휴직의 반복 속에서 이어졌다.

 

 육아휴직 중에도 아내는 다양한 외부 활동을 했다. 구청에서 프리랜서처럼 보육반장 일을 했고, 육아종합지원센터 블로그 기자단, 서울 남부교육청 회의, ‘내 꿈 소생’ 취미 활동, 환경순찰 모니터 요원 등 소소한 수입이 발생하는 일들을 틈틈이 했었다. 그런 수입과 육아휴직급여가 합쳐지면 적지 않은 금액이 되었고, 아내는 그 돈을 자신의 용돈처럼 사용했다.

 

 생활비와 가계의 대부분은 내 카드로 지출되었다. 아내는 언제나 자기가 번 돈은 자신의 것이고, 내가 번 돈은 ‘우리의 돈’이라 여겼다. 그 인식 차이가 내겐 종종 섭섭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날 내카드로 한의원을 다니며 무릎 치료를 받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수영 다니면 한의원 안 가도 돼. 수영 결제해줘.”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 카드로 수영장 비용을 결제하면 무릎이 안 아프다는 뜻인가? 왜 나의 지출은 언제나 당연하고, 아내의 지출은 철저히 ‘자기 몫’으로 분리되는 걸까. 그 작은 말 속에서도, 나는 우리의 경제관념의 간극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수영도 내 카드로 결제했지만 여전히 한의원도 다녔다.

2019-07-22(월) 일찍일어 나는 아이들 그리고 밤의 욕설
 아이들은 다행히 아내를 닮아 일찍 일어난다. 그러던 오늘 아내는 오히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일어나서 짜증을 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당신이 일찍 일어나서 애들 좀 봐.”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돌보고, 그 상태로 출근까지 하라는 말이었다. 말은 간단했지만, 하루를 시작하기에 무거운 말이었다. 아침부터 그런 소리를 들으니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고, 결국 짜증으로 이어졌다.
 그날 밤, 22시 30분쯤. 막내가 잠들지 않아 보채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막내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씨부랄 새끼.” 그 순간의 공기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지금도 잊기 어렵다. 말이란 건, 아이들에게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의 흔적을 남기는 도장 같은 것인데.

2019-07-28(일) 아내의 분노
 오후 4시 반 무렵, 아내가 첫째 때문에 몹시 화가 난 듯했다.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결국 거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모니터 받침대가 부서졌고, 모니터마저 파손되었다. 이어서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씨발새끼, 좃같은 새끼.” 나는 멍하니 그 말을 들으며 서 있었다. 아이에게 느낀 화를, 왜 나에게 이렇게 쏟아붓는 걸까.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 감정이 목에 걸렸다. 이 날의 기억은 단지 욕설 때문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쏟아지는 분노의 방향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019-08-03 토요일도 등원
 내가 다니는 회사는 특이한 제도가 있다. 매달 토요일 9시부터 13시까지 두번을 근무하면 평일 하루를 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다. 그리고 쉬는 평일에 집안 청소나 수리를하고 아내와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하원했다.
 아내는 내가 출근하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 했다. 평일도 모자라 주말까지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아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아내의 말이 귓가에 남았다. “토요일 출근일은 미리 알려줘. 어린이집에 말해야 하니까. 당신이 출근할 때 보내고, 퇴근하면서 데려와. 3시까지 하는 걸로 아는데, 1시일 수도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고 평소 여러번 말했던 사람이, 주말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려는 모습이 너무 무책임해 보였다. 나는 감정을 눌러 담지 못하고 말했다. “자기가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주말에도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당신은 어른 맞아? 자기가 결정한 일에 책임질 생각은 없는 거야? 벌려만 놓고 책임은 회피하는 걸로밖에 안 보여. 그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야.”
 지금 돌아봐도, 그 말은 나의 화와 실망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밑바닥에 있던 감정은, ‘이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마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힘든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내가 좋아서 낳은 아이들인데 그 책임을 계속 피하려는 모습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2019-08-26(월) 떨어진 셋째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사귀는 사람이 생겼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오랜만의 소식이라 반가웠고, 그 친구는 그녀를 나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나는 셋째를 안고 서서 전화를 받았고,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은 오랜만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 아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통화 중이여서 셋째를 조심스레 아내 쪽으로 밀며 안아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무시하듯 그냥 지나쳤고, 순간 중심을 잃은 셋째가 내 품에서 떨어졌다. 아이는 그대로 뒤통수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너무 놀랐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떨어뜨린 게 내 탓이라며 분노를 쏟았다. 나는 얼떨결에 전화를 받고 있던 친구에게 “미안, 지금은 통화할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친구는 이후 미안하다며 나를 배려해줬지만, 그날 이후로 예전처럼 편하게 전화하지는 못하게 됐다. 지금은 카톡으로 간간이 안부만 나누는 정도.
 셋째가 크게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날, 바닥에 떨어진 건 단지 셋째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신뢰’도 함께였다는 생각이 든다.

2019-08-27(화) 밥상머리에서의 온도차이
 2017년 5월부터 나는 퇴근 후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도보로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2년 넘게 이어온 루틴에 변화가 생긴 건, 2019년 여름 즈음이었다. 아내가 어느 날 문득 말했다.“애들이랑 같이 저녁 먹으면 좋겠어. 아빠랑 같이 밥 먹는 경험이 사회성에도 도움이 된대.”

 말은 맞는 말이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아이들의 정서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런데, 나는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다른 의도를 느꼈다. 아이 셋이 밥을 먹는 걸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셋째가 분유를 끊고 밥을 먹기 시작한 시점과 딱 겹쳐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식탁에서 작은 가르침도 전하려 했다. 음식의 맛, 먹는 태도, 함께하는 마음. 하지만 아내는 내 방식에 자주 토를 달았다. 꼭 모든 음식을 무언가에 찍어 먹을 필요는 없다고. 나는 그냥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만 1살, 3살, 4살 아이들에게 어른들과 조금 다르게 먹는 방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남들도 다 찍어 먹는데, 왜 우리 애들은 못 해?”

 결국, 아이들 앞에서 나의 말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분위기가 흐려질까봐, 차라리 말하지 않고 식사를 하는 날이 늘어갔다. 어느 날엔, 아내가 꺼내준 케첩을 서로 더 많이 찍어 먹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식탁은 점점 말이 사라지는 공간이 되어갔다. 곧 나는 다시 원래대로, 퇴근 후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선택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좋은 시작이었지만 끝내 우리 사이의 온도 차를 이겨내지 못했다.

2019-09-02(월) 육아기 단축근무와 육아휴직
 아내가 본격적으로 셋째 육아기 단축근무나 육아휴직을 하라고했다. 셋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 고단함을 직접 겪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과거 나는 첫째와 둘째 때 이미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셋째까지 낳고 나니, 아내는 더 힘들겠지...

 

 우리의 평일 일과는 이렇다. 나는 출근하면서 첫째와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아내는 그 시간에 집안일을 했다. 아침 10시쯤, 아내는 셋째를 시간제 보육시설에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 후 장을 보고, 오후 4~5시에 셋째를 데려와 집안일을 계속했다.
 나는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첫째와 둘째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집에 7시 30분쯤 집에왔고 저녁 식사 후 양치를 시켜주고 얼굴을 닦아준 후 9시까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주말과 휴일은 주로 동네 놀이터나 행사에 아이들과 함께 나가 놀거나, 금요일 저녁 처가에서 첫째를 데려가 일요일 저녁에 데려오는 일정이다.
 두 아이도 키우기 벅찬 아내에게 셋째까지 더해진 무게가 당연히 클 거라는 건 알지만, 나는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셋째를 낳는 결정은 이미 했던 일 아닌가? 그에 따른 책임도 함께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셋 아이 모두를 시설에 맡기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아내가 때로는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마음의 무게와 고단함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현실 앞에 나는 갈등했다.
 
2019-10-01(화) 첫째(만 4살)가 새벽에 이불에 소변
 새벽 4시, 첫째가 이불에 소변을 봤다. 아이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그 순간 아내는 잠에서 깨어 “좃같네”라는 쌍욕을 내뱉었다. 나는 아이의 실수에 화내는 아내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런 말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통제할 수 없는 작은 사고를 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너무 가혹한 언어가 오가는 게 안타까웠다.

2019-10-15(화) 방안에 흩어진 동전과 작은 갈등
 퇴근 후 집에 돌아왔더니 방 안 이불 속에 동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게 위험할 수 있다고 아내에게 말했지만, 아내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돈 인가보지" "아이들 동전 만지는 게 뭐가 어때서?”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고, 내 걱정에 되레 화를 냈다.
 나는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이었지만, 나와 아내와의 소통 방식으로 작은 갈등으로 번졌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우려와,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섭섭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2019-11-11(월) 진공청소기 사용이 미숙한 아내
 퇴근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고, 전깃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 청소기 흡입구가 벽에 ‘딱딱’ 부딪히며 돌아다녔다. 나는 과거에도 몇 차례 아내게게 청소기에서 노란색 줄이 나오기 전까지만 전깃줄은 풀고 사용해라고, 특히 벽에 세게 부딪히지 말라고 말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말이 날카로워졌고, 아내는 화난 얼굴로 날 응시했다. 다음날,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내 : 청소기 돌릴 때 그렇게 경멸하는 눈빛으로 무시하는 말로 말하고 나한테 상처 주면 당신 기분은 괜찮니?
 남편 : 어제 그 나이 되도록 진공청소기 사용을 못 해서 답답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결멸의 눈빛 무시하는 말투라고 받아드리니 앞으로 위험하게 사용하든 말든 말 안 하겠음. 집안에 동전이 떨어져서 막내가 먹든 말든 청소기 사용하다가 합선 생겨 불이 나는 하지 말든
 아내 : 자기가 하지 그랬어? 그래 이 나이 되도록 진공청소기 사용해 본 적 별로 없어. 내방 청소할 때도 빗자루랑 쓰레받기로 했고 집에서도 정전기포로만 하다가 얼마 전부터 청소기 돌리기 시작했어 그러니 사용하는 게 미숙하겠지. 그렇게 답답하면 하나하나 가르쳐주던지 동전 문제는 주의하자고 얘기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동전 떨어져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지"

 

 처음 청소기를 산 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4년이었다. 그때부터 함께 써오긴 했지만, 아내는 오랜 시간 익숙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보다는 마음이 먼저였어야 했다. 가르쳐주기보다 지적했고, 지적보다 앞선 건 내 짜증이었다. 아내는 서툴 수 있었고, 나는 그걸 기다리지 못했다. 청소기의 문제라기보다, 서로에게 기대한 방식이 달랐던 것이다.

2019-11-16(토) 아내의 눈
 22:00경 애들을 재우고 아내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것들은 조금 미루더라도, 아이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줬으면 해.”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짧고 날카롭게 받아쳤다. “당신도 당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그 말이 너무 쉽게 들려서, 그만 나도 감정이 올라왔다.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고, 왜 아이들을 낳았어? 나는 아침마다 애들 등원시키고, 저녁마다 하원하고, 주말마다 애들이랑 놀잖아.” 이후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내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 눈물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조금은 달라지겠지.’ 서로의 입장이 다르고, 마음이 다쳐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대화를 통해서 뭔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실은 그대로였다. 가끔 처가 차를 타고 하원을 대신해주는 정도, 그리고 여전히 아이 셋은 보육시설에 대부분 맡겨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남았다. ‘좋아서 낳은 아이들이라면, 그 책임도 사랑도 기꺼이 감당하려 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19-12-08(일)  싱크대 상판 파손
 일요일 저녁, 아내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부엌 쪽에서 아내의 짜증 섞인 말이 들려왔다. “냉동 고등어를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려는데 칼이 안 들어! 에어프라이어를 작은걸 사서 결국 이렇게 자르고 있잖아.” 그 말에는 묘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고등어를 자르다 싱크대 상판에 칼을 세게 쳤고, 그 충격에 상판에 금이 갔다.

 아내는 또 다시 짜증을 냈다. 시어머니가 사준 싸구려 칼이 문제라고 했고, 에어프라이어도 작아서 어쩔 수 냉동 고등어를 짜린다고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3.6리터짜리 에어프라이어는 결코 작은 제품이 아니었다. 그리고 냉동 고등어를 칼로 짜른다고 쉽게 짜리는게 아니라는걸 알고 있었다.

나는 싸움을 피하고 싶었기에, 아무 말 없이 다시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 집중했다. 아내의 말에 얹혀 말 한 마디 보탰다간 저녁시간이 싸움으로 얼룩질까 두려웠다. 그저 조용히 감정을 삼킨 채 하루를 넘겼다.

2019-12-25(수) 아이에게 가해진 분노
 둘째(만3세)가 방 안에서 대소변을 보았다.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둘째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마구 때렸다.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들, 아이의 울음과 아내의 거친 숨소리, 나는 그 앞에서 얼어붙었다. 말려야 했지만, 말린다면 타겟은 나로 바뀔게 뻔하니까.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이의 잘못보다 그 아이가 당한 폭력이 내 가슴을 더 짓눌렀다. 그날의 크리스마스는, 나와 둘째에게 상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