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쓸데없는 오지랖

남편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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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목) 4년제 대학
 새해가 막 시작된 목요일, 아내는 뜻밖의 말로 조용한 아침을 깨웠다. “나 4년제 대학 다니고 싶어.”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준비된 흐름도 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아이들은 누가 돌봐?” 하지만 내 질문은 아내의 귀에 닿지 않은 듯했다. 아내는 마치 미리 정해둔 대본처럼, 오직 자신의 생각만 말했다.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녀서 학위를 따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처럼... 아이 셋을 키우는 지금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무너져내렸다. 아내는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좇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이 셋을 돌보는 일로도 벅찬 시기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몸 하나로는 부족한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내는, 여전히 본인만의 세계를 찾고 싶어했다.


그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육아라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막막함.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다시 세우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날,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거야.”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나는 말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2020-01-05(일) 드라마 한 편 사이의 거리
 아내는 말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드라마 보고 싶어." 그 말에 덧붙여 둘째에게 "너도 여자니까 드라마 봐라"고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내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 혹여 TV 앞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표정이 굳었다. 그 순간이, 말없이 견디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2020-01-06(월)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둘째에게
 둘째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깼다. 그러자 아내는 "왜 일찍 일어나서 지랄이야, 씨발년아"라고 소리쳤다. 아이 입장에서는 아직 시계도 볼 줄 모르는데… 그냥 눈이 떠졌을 뿐이었는데. 나는 말없이 아이를 안아 주었다. 아이는 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2020-01-23(목) 셋째가 서랍장을 열어났다.
 셋째가 3단 서랍을 하나씩 열며 놀고 있었다. 무게 중심이 흔들리며 서랍장이 앞으로 쓰러질 뻔했다. 나는 위험하다고 말했고, 한 번 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곧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화를 냈다. 그러자 아내는 "애한테 왜 화를 내느냐"며 셋째를 두둔했다.

 

나는 말했다. "이런 건 어릴 때 알려줘야 나중에 고생 안 해." 하지만 내 말은 닿지 않았다. 그 후로는, 나도 마음을 접었다. 위험한 상황이 와도 훈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가끔은 무기력이 가장 편한 선택이 된다.

2020-01-24(금) 집 안 가득한 소리
 어느 순간부터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집 안에는 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핸드폰으로 동요, 만화 노래, 오래된 대중가요 등을 틀어놓았다. 그러다 물으익으면 아내는 노래방에서 부르는것처럼 열창을 했다. 처음엔 그냥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이 그 소리에 익숙해지며 TV 볼륨은 커졌고, 우리 가족의 대화 역시 점점 소리를 높여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목소리가 커진다고 소통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소리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어갔다.

2020-02-01(토) 두루마리 화장지
 잠에서 일어나보니 셋째가 거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고 있었다. "뜯으면 안 돼," 하고 조용히 말했더니, 아이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다. "다른 집에선 뽑으라고 물티슈도 준다더라."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당신은 또 당신 방식대로 키우는구나.’ 아이를 훈계한 나 자신이 괜히 오지랖을 부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날 이후,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결심했다. 훈계하지 말자. 


2020-02-12(수) 둘째가 엄마를 때려서 엄마가 둘째를 마구 때림
 둘째와 엄마가 놀고 있다가 갑자기 둘째가 엄마를 때렸다. 그 순간 아내는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었다. 소리가 날 정도로, 마구 때렸다. 어쩌면, 둘째는 그동안 엄마에게 맞아온 기억 속에서 ‘맞은 만큼 돌려줘도 된다’는 식의 반응을 배운 건 아닐까.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결국 그 아이가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대하게 되는지를 결정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20-02-18(화) 곰팡이 핀 나무 칼꽂이
 주방에서 쓰는 나무 칼꽂이의 바닥에 곰팡이가 폈다. 그걸 보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기 곰팡이 핀 것 좀 봐." 아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산 거잖아. 곰팡이 제거 방법도 당신이 알려줘야지." 그 순간,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자동차를 사줬다면 운전법도 내가 알려줘야 하는건가?’ 아내는 문제 상황이 생기면 대개 남 탓을 먼저 한다. 매일 핸드폰으로 온갖 정보를 찾아보는 사람이 정작 이런 간단한 문제는 검색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날, 조용히 스테인리스 칼꽂이를 새로 주문했고, 곰팡이 핀 나무 칼꽂이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그 일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2020-02-21(금) 둘째가 귀찮게해서 마구 때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둘째가 아내에게 무언가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아내는 날 보더니 둘째가 귀찮게 한다며 마구 때렸다. 평소 아이들이 아내에게 무언가를 요구했을때 아내가 안들어 줄 경우 아이들이 짜증을 내고, 울며 떼를 쓰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요구를 들어주곤 했다. 결국 아이들은 ‘짜증을 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되었고, 그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오래전부터 이런 점을 아내에게 말해왔지만, 내 말은 늘 비난으로만 받아들여졌다. 감정보다 구조를 바꾸자는 내 의도는 전달되지 않았다.이날, 아내는 둘째의 짜증에 화가 났고, 또 내가 집에 들어온 순간에 그걸 목격한 것이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과하게 아이를 때렸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날도 과거에 내가 괜한 말을 꺼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건 아닌지, 오지랖이 낳은 또 하나의 후회로 남았다.
 
2020-02-22(토) 둘째 때림
 저녁식사 중, 둘째가 생수통에 입을 대고 마셨다. 그 순간 아내는 화를 내며 둘째를 밀었고, 결국 쓰러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둘째을 달래주었다. 그날따라 마음이 무거웠다.

2020-02-23(일) 첫째 때림
 이른 아침 7시쯤,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첫째가 아내의 뺨을 때렸다. 곧바로 아내도 똑같이 첫째의 뺨을 때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로 감정이 상한 채 시작한 하루는, 가족 모두에게 씁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2020-03-21(토) 둘째의 수변 실수
 새벽 3시 30분경, 둘째가 자다가 이불에 소변을 실수했다. 아내는 화가 나서 둘째를 주먹으로 두 대 때리고 베개로도 때렸다. 한밤중, 작은 실수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먹먹했다.

2020-04-21(화) 둘째의 건미역 장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둘째가 건미역을 가지고 장난을 쳐 거실과 화장실 배관이 막혀 있었다. 나는 거실을 청소하고 화장실 배관을 뚫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 상황이 되기까지 아내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날 밤, 둘째가 자다가 이불에 소변을 실수했다. 아내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씨발년"이라고 욕했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2020-06-08(월) 수전 파손
 어느 날 주방에 가보니, 아내가 내가 집에 없을때 무언가에 화가 나서였는지 주방 수전이 파손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슨 마음이었을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집안의 이런 변화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2020-06-14(일) 아내의 쌍욕
 내가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셋째(만 2세)가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내가 나를 향해 “씨발 인간”이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쉬는 날인데 아이들도 돌보지 안고 낮잠을 자서 그런지 나에게 화풀이를 한 것 같았다. 그 욕설이 귓가에 남아 오랫동안 무거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2020-06-30(화) 둘째(만4살) 잠투정
 저녁 9시 아이들이 잠들 시간, 둘째가 짜증과 화를 내를 내며 잠투정을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둘째에게 “둘째가 없으면 행복해”라는 말을 했다. 아이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슬퍼하며 잠이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