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목) 아내와 수영강사 늘 했던 밀린 집안일을 하기위해 이날은 월차를 냈다. 아침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첫째가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해서 자전거를 주문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실 청소를 마친 뒤, 겨울이 다가오니 화장실에 난방기를 설치했다. 아내는 오전부터 외출 중이라 혼자 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에어컨 필터와 선풍기를 분해해 깨끗이 청소했다. 여름내 사용했던 용품들을 정리하며 계절이 바뀌는 실감을 했다. 오후엔 방 청소와 창고정리로 하루 집안일을 마무리했고, 5시 반쯤엔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고 아이들과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아이들과 놀고있었다. 저녁 7시 30분쯤,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아내는 오후에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통화를 마친 뒤, 아내는 그 남자가 자신이 다니는 수영장 강사라고 말했다.
2021-11-01(월) 아내의 새벽 수영 며칠 전, 아내가 새벽 수영을 다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다니라고 답했다. 그 말엔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으로서의 걱정과 현실적인 상황 판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내는 새벽 5시 30분에 조용히 집을 나섰고, 수영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을 자랑하듯 촬영해 나에게 보냈다. 아내는 7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사이 첫째(만6)는 엄마가 없어도 불안한 모습은 없었지만, 둘째(만5)와 셋째(만3)는 새벽녘 엄마가 없는 낯선 분위기에 불안함을 느끼며 방안을 서성였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작은 발소리와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불상한 마음에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언제나처럼 꼭 올 거야.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나는 조용히 아이들을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작은 두 눈엔 여전히 불안이 가득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마음을 안아주려 애썼다.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니까, 예전처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뒤에 수영을 다녔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마음보다 자신의 생활이 우선이었고, 새벽 수영은 이후 1~2년간 꾸준히 반복되었다. 과거부터 아내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불안을 안겼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매일같이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현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막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원망이 밀려왔다. 점점, 나는 아내의 선택에 대해 말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건 어느새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무력감으로 굳어져 갔다.
2021-11-13(토) 아내의 잦은 외출 예전의 아내는 아이들과 집에 머무는 것을 짜증내면서도 다행히 자리를 지키곤 했다. 하지만 새벽 수영을 다닌 후, 아내의 일상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내가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렸다는듯 곧장 한의원으로 외출했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집 안팎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는 2시간쯤 지나서야 집에 왔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아내는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는게 짜증이 났는지 말 한마디 없이 무심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알게 된 언니와 술집에서 1시간 반가량 머물다 밤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새벽 수영을 다닌 후 주말의 일상은 거의 이렇게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 반복이 주는 감정은 점점 무겁고 낯설어졌다. 아내의 자리는 자꾸만 집 바깥으로 향했고, 주말에 그 빈자리를 아이들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감당하고 있었다.
2021-11-18(목) 아내의 망언 아내는 아이들을 재울 때면 늘 휴대폰으로 카페에 글과 댓글을 보며서 아이를 토닥이는 모습이였다. 그러던 오늘, 밤 11시 무렵 셋째는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아내는 카페 글과 댓글을 보다말고 갑자기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듯 입을 열었다. “죽여버릴 거야, 밟아버릴 거야.” 그 말은 너무도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아이의 엄마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내는 셋째를 한 대 때렸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마치 자신의 행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아내는 울먹이며 셋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순간의 분노가 지나간 자리엔 당황과 눈물이 남았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아내가 즐겨보던 카페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충고한 글을 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평소 충고를 비판으로 받아드리는 성격이였다. ‘혹시 아내에게 조울증 같은 증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은 걱정으로, 걱정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잠들어 있는 셋째의 작고 여린 몸을 바라보며, 그 작은 가슴 속에 생겨났을 두려움과 혼란이 오래 남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2021-11-26(금) 구청장상 수상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구청장 만나 상 받으러 간다니까!” 아내의 표정엔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최근 들어 아내는 양성평등 관련 활동에 참여하며, 자주 나에게 말했다. “나는 현모양처야. 신사임당 같은 사람이지.” 그 말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듯했고, 나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 자부심 뒤에 어떤 노력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아내가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려 ‘참가상’을 받은 것이다. 물론, 어떤 형태든 참여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구청장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의 무게와, 실제 참가상의 내용 사이엔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그날의 아내는 누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했고, 스스로를 ‘이 시대의 현모양처’라 칭하며 내게 인정을 요구했다. 나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누군가에게 ‘잘 살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현실은 점점 과장된 말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2021-11-27(토) 창작동요제 기록을 되짚어보면, 2020년 1월 24일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동요나 가요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지곤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보단 아내의 노래가 더 크게 들렸고, 점점 그 열기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날, 아내는 단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무대 위에서 부르듯이 열창했다. 마치 무대의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듯한 몰입감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했다. “내가 작사·작곡해서 아이들이랑 창작동요제에 나가고 싶어.”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지만, 아내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어지는 말은 더 인상 깊었다. “나 어릴 때 창작동요제 한 번도 못 나가봤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대신 나가줬으면 좋겠어.” 아내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꿈을 다시 써 내려가고 싶어 했다. 단순한 육아의 연장선이 아닌,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무대로 삼고자 하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아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바람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그때의 나는 조심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21-12-01(수) 아이들 식사시간 조절 요청(만6세,만5세,만3세)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달라고 했다. 배고픔을 느끼기도 전에 습관처럼 간식을 찾았고, 아내는 그 요구를 들어주느라 지쳐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식사 리듬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제안했다. “이제 하루에 주식 3번, 간식 3번으로 시간을 정해서 주면 어떨까?” 체계적인 식사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고, 아내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단호했다. “아이들은 지금 크는 시기야. 앞으로도 달라고 하면 줄 거야.” 그 말 앞에서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아내에게 있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제한한다’는 행위는 곧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들은 식사 시간에 밥을 거부하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잦아졌다. 조금씩,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던 시간도 흐릿해졌다. 누군가는 배가 고프지 않았고, 누군가는 간식으로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작은 변화 하나를 제안했을 뿐이었지만, 그 제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더 큰 균열을 실감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아내한테 필요한거였는데 아내가 내 의견과 달리 생각하니 그건 또 다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이라는 무력감으로 굳어져 갔다.
2021-12-02 정신과 진료 기록을 돌이켜보면, 첫째는 2020년 4월 16일부터 2022년 9월 19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처음에는 단지 일시적인 감정 조절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치료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2021년 12월부터 아내도 같은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큰 얘기 없이 조용히 다니는 듯 보였지만, 2023년 3월부터는 본인의 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했는지 모르지만 내 카드로 결제되었던 내역이 끊기며, 그 이후부터는 진료 여부조차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진료일은 2023년 2월 17일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후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도 다니고 있는 건지, 상태는 어떤지, 도움이 되고는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뭘 도와 주었으면 하는지. 하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정신과에 다니잖아. 그러니까 너도 다녀라" 그 말이 날아올 것 같았다. 아니, 거의 확신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과거부터 아내가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내뱉었던 말이었고, 내겐 하나의 낙인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한 채 조용히 바라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2021-12-30(목) 수영강사와의 통화 밤 10시 무렵, 집 안은 고요했고 아이들과 함께 누워서 자려고 할때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익숙했지만, 그 시간대의 통화는 낯설었다. 아내는 아이들 곁에 누워 30분 가까이 통화를 이어갔고, 상대는 수영강사였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들 자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통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돌아온 아내의 말은 단호했다. “전화가 오는 걸 내가 어떻게 해? 그 사람이 삶이 너무 힘들어서 술 마시고 전화한 거야. 그럴 땐 받아줘야지.” 그 말엔 일종의 책임감처럼 들리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날은 아이들을 제워야 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않았다. 이후 아내는 수영강사의 아내가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그 상황을 내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려고 통화하는거라고 아내가 설명했다. 약 2년이 흐른 뒤, 아내를 통해 들은 소식은 수영강사와 그의 아내는 결국 이혼했다고 했다.
2021-12-31(금) 한 해의 끝자락 저녁 시간에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엄마 무시하니까 너희도 무시하냐?” 그 말은 단순한 푸념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나를 향한 불만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내 존재를 깎아내리는 방식이었다. 더 무서운 건, 그 말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단지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와 가치관에도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
2021년 새벽수영
점심을 먹고 나서는 에어컨 필터와 선풍기를 분해해 깨끗이 청소했다. 여름내 사용했던 용품들을 정리하며 계절이 바뀌는 실감을 했다. 오후엔 방 청소와 창고정리로 하루 집안일을 마무리했고, 5시 반쯤엔 어린이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오고 아이들과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아이들과 놀고있었다.
저녁 7시 30분쯤,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순간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아내는 오후에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통화를 마친 뒤, 아내는 그 남자가 자신이 다니는 수영장 강사라고 말했다.
2021-11-01(월) 아내의 새벽 수영
며칠 전, 아내가 새벽 수영을 다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다니라고 답했다. 그 말엔 아이들을 돌보는 입장으로서의 걱정과 현실적인 상황 판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내는 새벽 5시 30분에 조용히 집을 나섰고, 수영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을 자랑하듯 촬영해 나에게 보냈다. 아내는 7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사이 첫째(만6)는 엄마가 없어도 불안한 모습은 없었지만, 둘째(만5)와 셋째(만3)는 새벽녘 엄마가 없는 낯선 분위기에 불안함을 느끼며 방안을 서성였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작은 발소리와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불상한 마음에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언제나처럼 꼭 올 거야.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나는 조용히 아이들을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작은 두 눈엔 여전히 불안이 가득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마음을 안아주려 애썼다.
그날 이후로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니까, 예전처럼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뒤에 수영을 다녔으면 좋겠어.”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의 마음보다 자신의 생활이 우선이었고, 새벽 수영은 이후 1~2년간 꾸준히 반복되었다.
과거부터 아내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불안을 안겼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매일같이 아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현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막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 원망이 밀려왔다. 점점, 나는 아내의 선택에 대해 말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건 어느새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무력감으로 굳어져 갔다.
2021-11-13(토) 아내의 잦은 외출
예전의 아내는 아이들과 집에 머무는 것을 짜증내면서도 다행히 자리를 지키곤 했다. 하지만 새벽 수영을 다닌 후, 아내의 일상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내가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렸다는듯 곧장 한의원으로 외출했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면, 나는 집 안팎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는 2시간쯤 지나서야 집에 왔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아내는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는게 짜증이 났는지 말 한마디 없이 무심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가곤 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알게 된 언니와 술집에서 1시간 반가량 머물다 밤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새벽 수영을 다닌 후 주말의 일상은 거의 이렇게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 반복이 주는 감정은 점점 무겁고 낯설어졌다. 아내의 자리는 자꾸만 집 바깥으로 향했고, 주말에 그 빈자리를 아이들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감당하고 있었다.
2021-11-18(목) 아내의 망언
아내는 아이들을 재울 때면 늘 휴대폰으로 카페에 글과 댓글을 보며서 아이를 토닥이는 모습이였다. 그러던 오늘, 밤 11시 무렵 셋째는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아내는 카페 글과 댓글을 보다말고 갑자기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듯 입을 열었다.
“죽여버릴 거야, 밟아버릴 거야.” 그 말은 너무도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아이의 엄마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내는 셋째를 한 대 때렸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마치 자신의 행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아내는 울먹이며 셋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순간의 분노가 지나간 자리엔 당황과 눈물이 남았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아내가 즐겨보던 카페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충고한 글을 본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평소 충고를 비판으로 받아드리는 성격이였다. ‘혹시 아내에게 조울증 같은 증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은 걱정으로, 걱정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잠들어 있는 셋째의 작고 여린 몸을 바라보며, 그 작은 가슴 속에 생겨났을 두려움과 혼란이 오래 남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2021-11-26(금) 구청장상 수상
이른 아침부터 아내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구청장 만나 상 받으러 간다니까!” 아내의 표정엔 스스로를 향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최근 들어 아내는 양성평등 관련 활동에 참여하며, 자주 나에게 말했다. “나는 현모양처야. 신사임당 같은 사람이지.” 그 말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듯했고, 나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이길 바라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 자부심 뒤에 어떤 노력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아내가 양성평등을 주제로 한 동영상을 온라인에 올려 ‘참가상’을 받은 것이다. 물론, 어떤 형태든 참여하고 결과를 만들어낸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구청장 앞에서 상을 받는다는 말의 무게와, 실제 참가상의 내용 사이엔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그날의 아내는 누구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했고, 스스로를 ‘이 시대의 현모양처’라 칭하며 내게 인정을 요구했다. 나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누군가에게 ‘잘 살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현실은 점점 과장된 말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2021-11-27(토) 창작동요제
기록을 되짚어보면, 2020년 1월 24일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동요나 가요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지곤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보단 아내의 노래가 더 크게 들렸고, 점점 그 열기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날, 아내는 단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무대 위에서 부르듯이 열창했다. 마치 무대의 조명이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듯한 몰입감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했다. “내가 작사·작곡해서 아이들이랑 창작동요제에 나가고 싶어.” 처음엔 장난처럼 들렸지만, 아내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어지는 말은 더 인상 깊었다. “나 어릴 때 창작동요제 한 번도 못 나가봤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대신 나가줬으면 좋겠어.” 아내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꿈을 다시 써 내려가고 싶어 했다. 단순한 육아의 연장선이 아닌, 자신의 바람을 실현할 무대로 삼고자 하는 듯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아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바람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그때의 나는 조심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21-12-01(수) 아이들 식사시간 조절 요청(만6세,만5세,만3세)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달라고 했다. 배고픔을 느끼기도 전에 습관처럼 간식을 찾았고, 아내는 그 요구를 들어주느라 지쳐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식사 리듬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제안했다. “이제 하루에 주식 3번, 간식 3번으로 시간을 정해서 주면 어떨까?” 체계적인 식사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고, 아내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단호했다. “아이들은 지금 크는 시기야. 앞으로도 달라고 하면 줄 거야.” 그 말 앞에서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아내에게 있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제한한다’는 행위는 곧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아이들은 식사 시간에 밥을 거부하고,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이 잦아졌다. 조금씩,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던 시간도 흐릿해졌다. 누군가는 배가 고프지 않았고, 누군가는 간식으로 이미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작은 변화 하나를 제안했을 뿐이었지만, 그 제안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더 큰 균열을 실감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은 아내한테 필요한거였는데 아내가 내 의견과 달리 생각하니 그건 또 다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이라는 무력감으로 굳어져 갔다.
2021-12-02 정신과 진료
기록을 돌이켜보면, 첫째는 2020년 4월 16일부터 2022년 9월 19일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처음에는 단지 일시적인 감정 조절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치료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2021년 12월부터 아내도 같은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큰 얘기 없이 조용히 다니는 듯 보였지만, 2023년 3월부터는 본인의 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했는지 모르지만 내 카드로 결제되었던 내역이 끊기며, 그 이후부터는 진료 여부조차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진료일은 2023년 2월 17일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후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도 다니고 있는 건지, 상태는 어떤지, 도움이 되고는 있는 건지 그리고 내가 뭘 도와 주었으면 하는지. 하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정신과에 다니잖아. 그러니까 너도 다녀라" 그 말이 날아올 것 같았다. 아니, 거의 확신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과거부터 아내가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내뱉었던 말이었고, 내겐 하나의 낙인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을 찔렀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한 채 조용히 바라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2021-12-30(목) 수영강사와의 통화
밤 10시 무렵, 집 안은 고요했고 아이들과 함께 누워서 자려고 할때 아내의 핸드폰이 울렸다. 벨소리는 익숙했지만, 그 시간대의 통화는 낯설었다. 아내는 아이들 곁에 누워 30분 가까이 통화를 이어갔고, 상대는 수영강사였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들 자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 통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돌아온 아내의 말은 단호했다. “전화가 오는 걸 내가 어떻게 해? 그 사람이 삶이 너무 힘들어서 술 마시고 전화한 거야. 그럴 땐 받아줘야지.” 그 말엔 일종의 책임감처럼 들리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날은 아이들을 제워야 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않았다.
이후 아내는 수영강사의 아내가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그 상황을 내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려고 통화하는거라고 아내가 설명했다. 약 2년이 흐른 뒤, 아내를 통해 들은 소식은 수영강사와 그의 아내는 결국 이혼했다고 했다.
2021-12-31(금) 한 해의 끝자락
저녁 시간에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엄마 무시하니까 너희도 무시하냐?” 그 말은 단순한 푸념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나를 향한 불만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내 존재를 깎아내리는 방식이었다. 더 무서운 건, 그 말이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건 단지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와 가치관에도 상처를 남기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