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첫째의 핸드폰 게임과 의처증

남편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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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일) 아내의 잦은 외출

 일요일, 아이들과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한참을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짧은 겨울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저녁을 먹은 뒤 거실에서 다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아내는 말 한마디 없이 외출했다.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조용히 현관문이 닫혔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애들 있는 시간에는 애들이랑 같이 있어줘.” 아내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보면 되잖아.” 그 한마디에 마음이 툭 꺼졌다.

 출근하는 평일에도 아내는 아이들을 시설에 맡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주말까지도 아이들보다 자신의 시간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움과 허탈함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과거부터 아내는 아이를 네 명 낳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반대했지만 하나, 둘 생기면서 아빠라고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만큼은 늘 아이들과 함께해 왔다. 아내 역시 같은 부모로서 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현실 앞에서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아내가 외출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아내는 '엄마'라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고 있었다.

 

 

2022-02-28(월) 아내의 새로운 취미

 이 무렵부터 아내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화상통화를 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촬영해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소소한 취미처럼 보였다. 육아에 지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듯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도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집안일을 하던 중에도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아내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현실 속의 삶보다는 SNS 속 ‘보여지는 나’를 더 신경 쓰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들이 아내에게는 작은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육아에 매인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고 다시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 그 마음 자체는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각자 따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2022-02-28(월) 첫째(만7)의 핸드폰 게임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쥐여주고 싶었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게임과 영상에 일찍 노출되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아내에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여러 번 말했었다.

 첫째가 아내에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졸랐고, 아내는 떼쓰는 아이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아빠가 안 된대. 너가 직접 이야기해 봐.”라며 나에게 회피하듯 넘겼다.
 첫째는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아빠, 스마트폰 갖고 싶어.” 나는 “지금은 아니야. 최소한 6학년은 돼야지.”라고 답했다. 아이는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결국 아이와 긴 대화를 거쳐, 원래는 6학년이었지만 5학년 때 사주기로 조율했다.

 그 이후에도 아내에게 스마트폰의 심각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지금부터 스마트폰을 주면,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지게 돼. 한 번 빠지면 되돌리기 어려워.” 하지만 내 말은 무색하게도, 결국 아내는 오늘 첫째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이는 점점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그동안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놀던 시간, 명심보감과 중용을 함께 외우던 시간, 같이 주판으로 가감산을 배우던 시간, 동화책을 읽어 주던 시간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스마트폰에 몰두한 아이의 뒷모습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아내는 친정에 “남편이 돈이 아까워서 스마트폰을 안 사준다”고 말했고, 결국 처남을 통해 유심을 저렴하게 구입한 뒤 아내가 전에 쓰던 공기계에 연결해 첫째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첫째에게 스마트폰을 사줘야 하는데 남편이 돈을 안 줘서, 돈이 없어서 못 사준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마치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 주길 바라는 듯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당시에는 단순히 내 욕을 하고 다니는 줄로만 알았고, 그것으로 아내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피해자 코스프레를 통해 누군가를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내는 나와 직접 마주하기보다는 늘 다른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려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마음 깊숙한 곳이 서늘해졌다. ‘신뢰’라는 이름의 끈이 아주 조용히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첫째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뒤로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스마트폰부터 들었다. 말수는 줄었고, 가족 간의 대화는 점점 끊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매일같이 마음속으로 아내를 원망했다. ‘분명히 말했었잖아. 이 시기의 스마트폰은 아이를 갉아먹는다고…’ 어느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첫째는 밥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 방에 가보니, 스마트폰 앞에 웅크린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불러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조용히 쌓여 오던 감정이 터졌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스마트폰 주니까 좋냐?” 그러자 아내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좋다. 너~~무 좋다.” 그 대답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첫째가 현실과 단절되고 있음에도 그 상황이 '좋다'고 말하는 아내의 표정을 바라보며… 마음이 서늘해졌다. 나는 미래에 닥칠 일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나중에 당신이랑 첫째가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그 말은 아내에게 비난처럼 들렸는지, 표정이 곧장 굳어졌고 내게 화를 냈다. 나는 걱정으로, 미래에 닥칠 일을 막자는 이야기였지만, 아내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말이 상처가 되는 집에서는, 침묵이 방어가 되었다.

 

 며칠 후, 현실을 직시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스마트폰 시간을 조절해 보자는 생각에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패밀리링크’라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을 제어하기로 결심했다. 내 스마트폰 계정과 첫째의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여러 설정을 마친 뒤, 아내의 계정도 연동해 첫째의 스마트폰을 함께 제어하도록 했다.

 

 이후 한동안은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 시간은 아내의 기분에 따라, 또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 달라졌다. “첫째와 약속했어.”라며 게임 시간이 매번 늘어났고,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는 잠자는 시간과 학교나 학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스마트폰 게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 첫째는 ‘현질(유료 아이템 구매)’을 하고 싶다고 했고, 아내는 “일요일에 교회 갔다 오면 해줄게.”라고 지키지도 않을 약속했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아내가 아이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무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첫째는 등교안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10시간 넘도록 게임을 하게되었다.


2022-03-01(화) 아내의 잦은 외출
 삼일절, 공식적으로는 휴일이지만 우리 집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흘렀다. 점심을 함께 먹고 난 뒤, 아내는 말 한마디 없이 외출했다. 특별히 다툰 일도 없었지만,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과 벗어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였다.
 나는 평소처럼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주열차 놀이도 하고, 책으로 블록을 쌓고, 인형극 등을 하며 함께 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가끔씩 물었다. “엄마 언제 와?”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기다리면 꼭 올 거야.” 사실, 나도 몰랐다. 언제, 어떤 표정으로 돌아올지.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는 믿는 척, 아무 일도 없는 척해야만 했다. 내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아이들의 마음이 흔들릴까봐 늘 조심스러웠다.
 저녁 7시 반쯤, 현관문이 열렸다. 아내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곧장 거실로 들어와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아내가 무언가 미안한 일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30분쯤 후,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영강사와 술 마시고 왔어. 수영강사 장인어른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나와서… 그 상황에서 그냥 나올 수가 없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할지, 어떤 감정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분노, 실망, 의심, 연민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감정이 격해져 서로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다. 속에서는 뭔가가 계속 맴돌았지만, 나는 그저 아이들 곁에 머물며 조용히 그날을 넘기기로 했다. 아내는 말없이 거실 바닥을 정리했고, 나는 내 마음을 정리하려 애썼다.

2022-03-02(수) 다음날
 새벽 4시.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깼다. 몸은 피곤했지만 더는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어제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늘 해오던 출근길에 아이들 등원은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을 등원하지 않고 새벽에 걸어서 출근을 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앞으로 내가 첫째 초등학교 등교시키고, 둘째랑 셋째는 어린이집 등원 시킬게.” 어제의 일을 미안하게 여긴 건지, 아니면 무언의 위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역할이 잠시 바뀌었다. 등원은 아내가 맡고, 나는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역시나 그 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 4월 18일부터 다시, 나는 평소처럼 출근길에 둘째와 셋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기 시작했다.


2022-03-04(금) 의처증
며칠 전,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섰고, 수영강사와 여섯 시간 동안 술을 마신 뒤 늦은 밤에야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도 마음속 불편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아내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 사람과 밤늦도록 통화하는 일이 잦았다. 그 장면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속상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내가 출근하고 난 뒤, 내가 없는 시간엔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연락이 오갔을까.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나는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 좋으면, 그냥 그 사람과 같이 살면 되지. 왜 나랑 사냐…” 내 말에는 슬픔도, 분노도, 포기하려는 마음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어떤 것과도 달랐다. 아내는 오히려 나를 향해 날카롭게 되물었다. “너 의처증 있냐?” 그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상황을 설명하려 들었지만, 그럴수록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갈게 뻔하기에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은커녕, 내 감정을 ‘의심병’으로 치부하는 태도에 나는 깊이 좌절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누가 무엇을 돌이켜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내 마음 한켠에는 황당함과 허탈함만이 가득했다. 그날 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2022-03-26(토) 직장동료 결혼식
몇 달 전부터 아내는 돌잔치나 결혼식 뷔페 음식이 먹고 싶다며, 그런 자리에 갈 일이 있으면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이야기해왔다. 마침 오늘,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어 아내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장인·장모님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아내의 요청으로 아침 10시경,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이 우리 집에 들렀다. 처남은 우리가 결혼식에 다녀오는 동안 아이 셋을 돌보기로 했다. 이윽고, 아내와 나는 장인어른의 차를 타고 결혼식장 근처에 내렸고, 장인·장모님은 여행을 떠나셨다.

 결혼식장에서 아내와 함께 거래처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내가 불쑥, “차가 없어서 많이 불편하다”며 거래처 분들에게 남편이 차를 사도록 대신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두들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그런 문제는 두 분이 상의하셔야 할 일 같다”고 선을 그었다.

집 돌아오는 길, 나는 아내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꺼냈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담담하게, “당신이 차를 안 사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을 한 거야”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게 남았다. 차가 없다는 현실보다,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를 타인 앞에 내던져버리는 그녀의 방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 작은 일이, 단순히 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이의 소통과 이해의 간극을 드러낸 듯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