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진창을 뚫고 우리는 늪으로 갔다 범벅이 된 진흙이 구두 뒷굽을 잡아당기고 어깨 한가득 안개가 매달렸다 미리 도착한 낯익은 얼굴들 서로 끼끼덕거리며 악수를 하거나 담배에 불을 당겼다 저기 신부가 나온다 우린 일제히 기립하여 맑고 투명한 흰 빛의 거대한 형체를 뒤돌아보았다 비로소 식장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후래시가 터지고 박수를 치고 피아노가 울어댔다 조포가 발사되고 국기가 내리고 하늘에 금이 갔다 들어가라, 떨어져라 - 주례가 드디어 추락을 선언했다 신랑이 먼저 들어갔다 늪으로 귀여운 신부가 이어 들어갔다 늪으로 순종의 엄숙한 예식이 끝날 때까지 늪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빠질 예정인 사람이나 모두 늪의 깊이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늪은 그저 칙칙하고 더럽고 추악한 아가리를 벌린 채 신랑 신부를 삼켰다 국수 한그릇 말끔히 비우고 우리가 그곳을 뜰 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늪으로 갔다
우리는 늪으로 갔다
정한용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진창을 뚫고 우리는 늪으로 갔다
범벅이 된 진흙이 구두 뒷굽을 잡아당기고
어깨 한가득 안개가 매달렸다
미리 도착한 낯익은 얼굴들
서로 끼끼덕거리며 악수를 하거나 담배에 불을 당겼다
저기 신부가 나온다
우린 일제히 기립하여 맑고 투명한
흰 빛의 거대한 형체를 뒤돌아보았다
비로소 식장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후래시가 터지고 박수를 치고 피아노가 울어댔다
조포가 발사되고 국기가 내리고 하늘에 금이 갔다
들어가라, 떨어져라 -
주례가 드디어 추락을 선언했다
신랑이 먼저 들어갔다 늪으로
귀여운 신부가 이어 들어갔다 늪으로
순종의 엄숙한 예식이 끝날 때까지
늪에 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빠질 예정인 사람이나
모두 늪의 깊이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늪은 그저 칙칙하고
더럽고 추악한 아가리를 벌린 채
신랑 신부를 삼켰다
국수 한그릇 말끔히 비우고 우리가 그곳을 뜰 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