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판녀의 일상처음엔 그냥 심심해서였다. 강의도 재미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딱히 없던 어느 날.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곳. 네이트판. 그날 내가 처음 본 건 결시친 인기글이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남친이랑 헤어졌는데 제가 잘못한 건가요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내용은 뻔했다. 남자가 쓰레기고, 글쓴이는 상처받은 피해자. 그런데 이상하게 댓글이 더 재밌었다. "언니 잘못 아니에요""그 남자 미친 거임""다음엔 더 좋은 사람 만나요" 나는 한참을 내려보며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언니 진짜 잘 참으신 거예요 저였으면 바로 욕 박았음" 댓글 하나 썼을 뿐인데, 알림이 떴다. 좋아요 3. 별거 아닌 숫자인데 기분이 묘하게 올라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판. 지하철에서도 판. 수업 중에도 몰래 판. 특히 결시친은 빠지질 않았다. 이상하게 거기만 들어가면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내 얘기를 안 들어주는데, 여기서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다. 점점 더 깊이 빠졌다. 어느 날은 연예인 글을 봤다. 요즘 뜨는 그 아이돌 인성 논란 근거는 애매했지만 댓글은 이미 확정이었다. "실망이다 진짜""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됨""쟤 원래 별로였음"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나도 예전부터 쟤 좀 쎄했음" 사실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근데 좋아요가 쌓였다.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점점 나는 글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가벼운 거였다. '친구가 나 왕따 시키는데 어떡하죠' 댓글이 달렸다. "그 친구 손절하세요""언니가 더 아까움""요즘 애들 진짜 왜 저럼"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현실에서는 친구도 없는데, 여기서는 내가 피해자가 되고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 그게 너무 쉬웠다. 그래서 점점 더 세게 썼다. 남친이 바람폈는데 친구가 편 들어요 없는 남친이었다. 그래도 댓글은 똑같이 달렸다. 쓰레기들 왜 그러냐"언니 힘내요""진짜 너무 화난다" 그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이건 게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 종일 판만 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기글 확인. 댓글 확인. 알림 확인. 밥 먹을 시간도 까먹었다. 그러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밥 먹어라" 엄마였다. 나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지금 중요한 거 보고 있는데 왜 방해해 문도 안 열고 소리쳤다. "빨리 나와" "좀 있다 간다니까" 이미 짜증이 올라온 상태였다. 댓글 달다가 흐름 끊긴 게 더 열받았다. 결국 엄마가 문을 열려고 하자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좀 내버려 둬" 밖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새로 올라온 글이 있었다. 우리 집이 좀 이상한데요 나는 바로 들어갔다. 읽지도 않고 댓글부터 달았다. 집 분위기 이상한 거 스트레스 장난 아닐 듯 언니 힘내요 좋아요가 또 올라갔다. 그 숫자를 보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데, 여기서는 계속 무언가가 올라왔다. 알림. 댓글. 좋아요. 그게 전부였다. 나는 계속 스크롤을 내렸다. 끝도 없이.[ 에피소드 2로 연재됩니다. ]
[소설] EP.1 판녀의 일상
EP.1 판녀의 일상
처음엔 그냥 심심해서였다.
강의도 재미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딱히 없던 어느 날.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곳. 네이트판.
그날 내가 처음 본 건 결시친 인기글이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남친이랑 헤어졌는데 제가 잘못한 건가요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내용은 뻔했다. 남자가 쓰레기고, 글쓴이는 상처받은 피해자. 그런데 이상하게 댓글이 더 재밌었다.
"언니 잘못 아니에요"
"그 남자 미친 거임"
"다음엔 더 좋은 사람 만나요"
나는 한참을 내려보며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언니 진짜 잘 참으신 거예요 저였으면 바로 욕 박았음"
댓글 하나 썼을 뿐인데, 알림이 떴다.
좋아요 3.
별거 아닌 숫자인데 기분이 묘하게 올라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판.
지하철에서도 판.
수업 중에도 몰래 판.
특히 결시친은 빠지질 않았다.
이상하게 거기만 들어가면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내 얘기를 안 들어주는데, 여기서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다.
점점 더 깊이 빠졌다.
어느 날은 연예인 글을 봤다.
요즘 뜨는 그 아이돌 인성 논란
근거는 애매했지만 댓글은 이미 확정이었다.
"실망이다 진짜"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됨"
"쟤 원래 별로였음"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나도 예전부터 쟤 좀 쎄했음"
사실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근데 좋아요가 쌓였다.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점점 나는 글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가벼운 거였다.
'친구가 나 왕따 시키는데 어떡하죠'
댓글이 달렸다.
"그 친구 손절하세요"
"언니가 더 아까움"
"요즘 애들 진짜 왜 저럼"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현실에서는 친구도 없는데, 여기서는 내가 피해자가 되고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
그게 너무 쉬웠다.
그래서 점점 더 세게 썼다.
남친이 바람폈는데 친구가 편 들어요
없는 남친이었다.
그래도 댓글은 똑같이 달렸다.
쓰레기들 왜 그러냐
"언니 힘내요"
"진짜 너무 화난다"
그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이건 게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 종일 판만 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기글 확인.
댓글 확인.
알림 확인.
밥 먹을 시간도 까먹었다.
그러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밥 먹어라"
엄마였다.
나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지금 중요한 거 보고 있는데 왜 방해해
문도 안 열고 소리쳤다.
"빨리 나와"
"좀 있다 간다니까"
이미 짜증이 올라온 상태였다.
댓글 달다가 흐름 끊긴 게 더 열받았다.
결국 엄마가 문을 열려고 하자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좀 내버려 둬"
밖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새로 올라온 글이 있었다.
우리 집이 좀 이상한데요
나는 바로 들어갔다.
읽지도 않고 댓글부터 달았다.
집 분위기 이상한 거 스트레스 장난 아닐 듯 언니 힘내요
좋아요가 또 올라갔다.
그 숫자를 보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데, 여기서는 계속 무언가가 올라왔다.
알림.
댓글.
좋아요.
그게 전부였다.
나는 계속 스크롤을 내렸다.
끝도 없이.
[ 에피소드 2로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