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1 판녀의 일상

ㅇㅇ2026.04.25
조회110

EP.1 판녀의 일상


처음엔 그냥 심심해서였다.

강의도 재미없고, 같이 밥 먹을 사람도 딱히 없던 어느 날.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곳. 네이트판.

그날 내가 처음 본 건 결시친 인기글이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남친이랑 헤어졌는데 제가 잘못한 건가요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눌렀다.

내용은 뻔했다. 남자가 쓰레기고, 글쓴이는 상처받은 피해자. 그런데 이상하게 댓글이 더 재밌었다.

"언니 잘못 아니에요"
"그 남자 미친 거임"
"다음엔 더 좋은 사람 만나요"

나는 한참을 내려보며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언니 진짜 잘 참으신 거예요 저였으면 바로 욕 박았음"

댓글 하나 썼을 뿐인데, 알림이 떴다.
좋아요 3.

별거 아닌 숫자인데 기분이 묘하게 올라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뜨면 판.
지하철에서도 판.
수업 중에도 몰래 판.

특히 결시친은 빠지질 않았다.
이상하게 거기만 들어가면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내 얘기를 안 들어주는데, 여기서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다.

점점 더 깊이 빠졌다.

어느 날은 연예인 글을 봤다.

요즘 뜨는 그 아이돌 인성 논란

근거는 애매했지만 댓글은 이미 확정이었다.

"실망이다 진짜"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됨"
"쟤 원래 별로였음"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나도 예전부터 쟤 좀 쎄했음"

사실 아무 근거도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근데 좋아요가 쌓였다.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점점 나는 글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가벼운 거였다.

'친구가 나 왕따 시키는데 어떡하죠'

댓글이 달렸다.

"그 친구 손절하세요"
"언니가 더 아까움"
"요즘 애들 진짜 왜 저럼"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현실에서는 친구도 없는데, 여기서는 내가 피해자가 되고 사람들이 내 편을 들어준다.

그게 너무 쉬웠다.

그래서 점점 더 세게 썼다.

남친이 바람폈는데 친구가 편 들어요

없는 남친이었다.
그래도 댓글은 똑같이 달렸다.

쓰레기들 왜 그러냐
"언니 힘내요"
"진짜 너무 화난다"

그날 나는 한참을 웃었다.

이건 게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 종일 판만 보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기글 확인.
댓글 확인.
알림 확인.

밥 먹을 시간도 까먹었다.

그러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밥 먹어라"

엄마였다.

나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지금 중요한 거 보고 있는데 왜 방해해

문도 안 열고 소리쳤다.

"빨리 나와"

"좀 있다 간다니까"

이미 짜증이 올라온 상태였다.
댓글 달다가 흐름 끊긴 게 더 열받았다.

결국 엄마가 문을 열려고 하자 나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좀 내버려 둬"

밖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새로 올라온 글이 있었다.

우리 집이 좀 이상한데요

나는 바로 들어갔다.

읽지도 않고 댓글부터 달았다.

집 분위기 이상한 거 스트레스 장난 아닐 듯 언니 힘내요

좋아요가 또 올라갔다.

그 숫자를 보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데, 여기서는 계속 무언가가 올라왔다.

알림.
댓글.
좋아요.

그게 전부였다.

나는 계속 스크롤을 내렸다.

끝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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