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도테라의 아로마 디퓨저

남편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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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5(토) 같은 공간, 다른 하루
 오전,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내가 연락해왔다. “아이들과 행사하는 데 있으니까 퇴근하고 와.”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아내의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없었고, 오히려 무심하고 당연하다는 듯했다. 나는 그 말에서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지, 평소 주말처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행사도 보고, 가족끼리 주말을 보내자는 취지겠거니 했다.

 

 오후 1시 퇴근하자마자 아내가 말한 행사장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아내는 행사 부스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근처에서 따로 놀고 있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자신은 행사장에서 홍보를 하면서 물건을 팔기 위해 나를 부른 것이었다. 마음 속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 이런 걸 하면 안 되는 걸까? 아내는 늘 자기하고 싶은건 우선으로 두고 있다는 생각에 못내 씁쓸했고, 그 이기적인 모습이 미웠다. 아내는 부스를 지키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행사장 이곳 저곳을 구경하거나 근처 놀이터에서도 놀았다. 아내가 미웠지만, 아이들을 위해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를 함께했다.

 

 그날 저녁은 근처 치킨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시간이 흘러 밤 9시 반쯤, 아내는 말없이 준비를 하고 덤덤하게 말했다. “친정 갈게.” 그리고 혼자 나갔다. 하루 종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땀 흘렸지만, 아내와 나눈 대화에는 따뜻함 하나 없이 건조한 현실만 남았다. 마치 서로 다른 하루를 살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다음날
 

2022-10-16(일) 가을의 어느날
 아침 7시 30분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전날 밤, 아내는 친정에 간다고 했지만 실제로 어디에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친정이었을 수도, 지인 집이었을 수도, 아니면 지난번 함께 술을 마신 수영 강사와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이든, 나는 묻지 않았고 아내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하루가 시작됐다.

 

 아내는 10시 반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나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집에 남아 평소처럼 방청소를 하고, 이불을 털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집안일은 익숙한 루틴이 되어버렸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아내는 이런 일들을 못하니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움직였다. 청소를 마무리할 무렵 12시쯤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쓰레기통을 정리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짜증나. 쓰레기통이 넘쳐나는데, 맨날 나만 치우잖아.”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매번 같은 방식이었다. 불만은 투명하게 던져지고, 책임은 언제나 내 쪽으로 흘러왔다. 그 후 아내는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가 발이 시리다며, 거실에 여름 내내 접어 두었던 매트를 꺼내 깔았다. 그동안은 불만만 이야기하고 직접 해결하지 않던 아내였지만, 이번에는 참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내가 둘째 딸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결혼할 때, 너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 아이에게 한 말 같았지만, 화살은 분명 내게 향해 있었다. 아이를 빌미 삼은 그 말은, 내가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일방적인 선언처럼 느껴졌다. 그날, 말은 있었지만 대화는 없었다. 하루가 흘렀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 거리의 끝이 어디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2022-10-17(월) 아내의 화상채팅
 그날 아침, 핸드폰을 집에 두고 둘째와 집을 나섰다. 둘째를 등원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 아내는 나를 붙잡았다. “첫째가 핸드폰 게임하느라 학교를 안 가려고 해. 좀 설득해서 학교 보내줘.” 나는 아이에게 조곤히 말했다. “지금은 등교할 시간이고, 핸드폰은 학교 다녀와서 하자.” 첫째는 마지못해 등교 준비했고,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아이가 학교에 가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까 나한테 대신 설득하라고 한 거겠지.’ 그리고, ‘내가 첫째 등교시키고 출근하면 회사엔 지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건가?’ 아내의 시선에서 나는 언제나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당연히 해주는 사람’이었다. 또한 과거 아내에게 아이들 핸드폰은 초등학교 6학년쯤 사주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내는 1학년때 첫째에게 핸드폰을 사주고 그에 따른 결과는 나에게 미루웠다.

 

 퇴근 후 밤 9시. 아내는 둘째와 셋째에게 언성을 높였다. “나 졸린데, 너네들 때문에 못 자겠어!” 아이들은 조용히 눈을 감았고, 그날도 그렇게 잠들었다. 그로부터 30분쯤 후, 아내는 노트북을 켜고 화상채팅을 시작했다. 졸립다던 사람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던 그 입으로, 누군가와 화면 너머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아까 애들한테 그렇게 화내놓고 아이들에게 미안하진 않아?” 아내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뭐가 미안한 건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식는 느낌을 받았다. 졸립다며 애들에게 짜증을 쏟아낸 사람이,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에는 다른 사람과 여유 있게 웃으며 화상 채팅을 하고 있는 그 장면.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태도 아내의 말그대로 미안한걸 모르고 있었다.

 

2022-10-20(목) 바람처럼 스치는 아내의 결심(차사는건 나중으로)
 그날 오후 4시경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때, 아내에게서 갑작스런 카톡이 왔다. “차는 집 사고 사는 걸로 계획할게요. 애들 등하원하는 거 너무 춥고 감기 달고 살아서 차 사고 싶었는데, 집부터 사야 한다는 당신의 신념 존중해요. 그리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걸로 해요~”

 

 메시지를 읽는 순간, 잠깐이지만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아, 아내가 뭔가 달라지려는 건가… 아마 아내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순간의 감정에 흔들려 이런 말들로 돌아왔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 감정의 일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잠깐 바뀌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는 다시 차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에 하나가 더 얹어졌다. “큰집으로 언제 이사가?” “진짜 답답해. 여기선 더 못 살겠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치 종소리처럼 울리는 말. 아이들 앞에서도 같은 말들을 반복했고, 아이들조차 어느 순간 “우리 언제 이사 가?”라고 되묻기 시작했다.

 

 나는 현실을 바라보며 걸음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지만, 아내는 현실과 멀리 떨어져있는걸로 보였다. 내집마련은 하고 싶으면 바로 할수 없는 현실을 아내는 모르는지... 나의 신념을 존중한다고 말했던 그날의 카톡은, 결국 ‘일시적인 결심’일 뿐이었다. 바람처럼 스치고, 흩어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익숙한 바람이었다.

 

2022-10-22(토) 일상이된 화상채팅
 밤 9시 30분경, 아내는 또다시 화상채팅을 했다. 그 모습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아내는 종종 화면 너머의 누군가와 소통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듯 보였다.

 

2022-10-31(월) 어머니에게서 전화
 저녁 7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며느리가 전화했더라. 시아버지가 애들 봐주거나 남편이 출산휴가 내고 애들 봐달라고 그리고 이혼하고 싶대.”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아내는 평소 시부모님께 전화도 거의 안했는데 이번엔 전화를 걸어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나를 배제한 채 아이 양육 문제까지 의논하려 했다는 것. 결혼전부터 아이들을 4명이나 낳겠다는 아내는 3명을 낳고 이제와서 팔순을 바라보는 시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맡기려는 행동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요즘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말없이 전화기를 쥐고 있었다. 그 걱정은 나에게 부끄러움으로 다가왔고 그 감정으로 나는 마음 아팠다.

 

2022-11-02(수) 어머니에게서 전화
 오후7시경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어딘지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며칠 전, 아내가 어머니에게 녹음을 보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서 기침하고 잠투정(짜증)을 하는 소리를... 아내의 의도는 아로마 디퓨저를 못 써서 아이들이 잠을 못 자요. 아로마 디퓨저를 못쓰게하는 당신 아들 때문이에요. 아내는 그 문제를 나와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어머니에게 아이들의 상태를 들려주고, ‘당신이 길러낸 아들을 설득해달라’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압박을 넣었다. 말하지 않고 들려주고,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며, 과거부터 아내의 방식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가족을 끌어들이고, ‘당신이 낳은 아들이니 책임지라’는 식의 논리를 꺼내는 것. 그건 말보다 더 큰 무게로, 조용히 사람의 가슴을 누른다.

 

 그리고 그날 밤 9시경, 아내는 또 화상채팅을 했다. 이젠 일상이 된 장면. 어두운 방, 노트북 불빛 아래 웃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 그 모습은 아이들의 기침 소리와 짜증, 그리고 어머니의 걱정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 아내는 나와 직접 부딪히는 걸 피했고, 대신 타인을 통해 나를 움직이려 했다. 그 방식은 조용했지만, 분명히 나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2022-11-04(금) 결벽증
 2014년 결혼 후 지금까지, 방 청소와 화장실 청소는 내가 도맡아 해왔다. 아내는 주로 요리, 밥 차리기, 설거지를 담당했다. 그날 퇴근해 집에 들어서자 바닥에 모래가 밟혔다. 아이들이 모래놀이를 하고 집에와서 씻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씻은 뒤 청소를 시작했다. 최근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었다.

 

 그날, 아내는 내게 말했다. “결벽증 있어? 다른 집 가봐, 더 지저분해.” 나에게 결벽증이 있냐며 내 청소 습관을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이후,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방 청소와 화장실 청소는 더 이상 하기 싫어졌다.

2022-11-05(토) 아로마 디퓨저
 저녁 8시 25분, 아내가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과과부터 냄새 때문에 사용하지 말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무시했다. 결국 나는 집을 나갔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받지않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아로마 디퓨저 처분해야 집에 들어간다.” 9시 15분경, 아내가 가습기와 에센셜 오일을 처분하겠다고 연락했다. 나는 집에 다시 들어왔다.

 저녁 9시 30분경, 아내는 아로마 디퓨저를 판매한 지인에게 디퓨저를 주고 그 지인 집에서 잔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 2시 20분경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아내는 내게 말했다. “언니네 집에서 자는 게 우리 집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편해.”
 이후 아내가 디퓨저를 처분했다는 이야기를 믿고있던 나는 얼마 후(11월 18일), 빨래를 널던 중 세탁실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박스를 발견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아로마 디퓨저가 들어 있었다.

 

 그날부터, 디퓨저는 우리 사이에 놓인 작은 갈등의 상징이 되었다. 처분한다며 집을 나갔던 아내가 여전히 디퓨저를 몰래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내와의 신뢰를 깨지게 만들었다.

 

2022-11-07(월) 아로마 디퓨저
 새벽 1시경, 아내가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하지 않아 셋째 아이가 코가 막혀 짜증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는 이 상황을 아빠도 꼭 알아야 한다며, 가기 싫다는 셋째를 데리고 나와 첫째가 자는 방으로 와서 괴롭혔다.

 

 아로마 디퓨저가 우리 가정에 끼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아내는 디퓨저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었고, 아이 또한 불편을 겪고 있었다.

 

2022-11-08(화) 아로마 디퓨저
 아로마 디퓨저를 처분한 뒤, 아이들이 기침을 할때면 아내는 “더 심해졌네, 더 심해졌어.”라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분명 내 탓이라는 무언의 책임 추궁이 담겨 있었다.
 디퓨저를 없앤 후에도 아이들의 건강 문제는 계속되었고, 아내는 그 상황을 내탓으로 돌렸다.

 

2022-11-09(수) 아내의 망언
 밤 9시,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였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병원에 일주일만 입원하고 와도 되겠니? 이런 집구석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 잘 돌아가는 집구석이 아니라, 가르쳐줘도 때리고 소리지르는 집구석이다. 도저히 못 살겠다.”
 그 말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만들었고 아내는 최근 자주 이런 식으로 ‘사라지겠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불안해 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저미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