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좋은가정에서 잘 자랐니?

쓰니2026.04.30
조회21

나의 아빠는 경제적 무능력에 책임감 없어서 13살에 의절하고 엄마랑 따로나와서 살았다.

엄마랑는 전부 사채빚+ 가족에게 빌린 빚으로 가게 하나 차렸는데 나는 그 어린나이에 엄마를 지켜야된다 라는 알량한 사명감으로 

매일 13살부터 학교끝나고 매일 새벽1시까지 일을 도왔다. 다행히 일을 잘해서 2인분 이상은 해서 사람 쓸걸 내가 모두 대신했다.


나는 13살부터 15년동안 한번도 주말에 쉰적이 없고 월화수목금금금 7시기상 등하교 -> 새벽까지 가게를 매일 도왔다.

당연히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논 기억도 거의 없다. 물론 친구들은 많고 내가 성격이 개그적 캐릭터라 학교에서 친우관계는 괜찮았고 인기도 있는편이었다.

애들이 노예처럼 일하는 나를  놀리듯이 불쌍히 여겼지만 나는 이게 효도라 생각했고 어릴때부터 효자소리를 들었다. 대학교때도 군대 휴가나왔을때도 주말마다 가게에 나와 매일 일을 도왔다.

근데 일은 27살쯤 터졌다. 내가 13살에 엄마따라 내려올때 형은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다며 아빠쪽에 남아서 22~3살까지 보내다가 아빠쪽은 답이 없었는지 그쯤 내려왔다.

물론 내려와서도 금방 기숙사쪽으로 바로 직업군인으로 빠졌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하고 1년정도 더 가게를 돕고 있었는데 가게 장사가 그렇게 잘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다른 일을 알아봐야하나 싶던 찰나였다. 그때 형이 잠깐 가게에 왔었는데 나보고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냐고 따지면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내가 뭔 개소리냐면서 말대답을하자 니가 여기서 하는게 뭐냐면서 내가 지금까지 엄마를 도왔던 행동에 대해 모두 쓸모없는짓, 한심한짓으로 치부했다 .

하지만 확실히 13살부터 전부 빚으로 시작한 가게를 내인건비를 갈아서 빚도갚고 굶어 죽지않게 유지한게 나고 엄마포함 모든 사람이 알고있는사실이다. 실제로 그때 내가 옆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이미 길바닥에 나앉아서 굶어죽거나 자살했을거다.

그 싸움의현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없는 엄마가 아무말이없자 나는 황당하고 억울해서 엄마한테 형이 지금와서 나한테 저 지랄 하는게 맞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나의 모든것을 무너뜨렸다. " 도와는 줬는데"  내학창시절 모든 추억과 그나이에 견뎌야 했던 노동의 가치가 모두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씨발 그럼 엄마도 형이 한말에 동의하냐? 내가 13살부터 인생 다 갈아서 망한집안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다 참고 하루4~5시간자면서 학교가고 공부하고 매일 새벽까지 

도와준거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냐 다 지켜 본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거 아니냐 무조건 내편 들어야되는게 아니냐 따졌고 상황은 그냥 나만 한심한놈 병신이되있는 상황이었다.

그순간 13살부터 내가 했던 모든 행동과 엄마를 향했던 마음 모두가 무너졌고 그냥 내가 집나가겠다고 큰소리쳤다. 딱히 계획도 있는것도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오해다, 미안하다 이런게아닌 어디로갈건데? 였다. 말문이 턱 막혀서 그냥 내가 알아서 한다 하고 바로 가게 뛰쳐나오고 바로 다음날부터 나갈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을 알아보고 다녔다.

몇일 알아보는데 엄마가 삼촌한테 이런상황을 푸념했는지 삼촌이 전화가 와서 갈데 없으면 삼촌집에 오라고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럼 몇 달만 신세 지겠다하고 

이제 고아가 됐으니 세상은 혼자다라는 심정, 다시는 엄마나 형을 안 볼 생각으로  삼촌집으로 들어갔다.  이때 엄마는 그냥 몇일이나 한달정도 있으면 머리숙이고 들어올 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독했고 바로 사람인을 켜서 삼촌집 주변 회사에 바로 이력서를 넣고 그중 합격한곳 중에서 가장 월급이 쎈곳으로 입사를 했다. 

적성도 하고싶었던 일도 아니었지만 오로지 돈만보고 들어가서 ㅈ같은 팀장 비위맞추며 열심히 다녔다. 돈도 없고 힘들어서 자살할까도 생각했지만 다행히 일머리가 있어 인정받았다.

3개월이 지나자마자 바로 급여명세서 받아서 전세대출로 집을 찾아 독립했고 그쯤 엄마가 밥 먹자면서 형을 데리고 한번 찾아왔다. 나는 계속 거절했었는데 

답도 없을것 같아서 한번 밥먹고 말자라는 식으로 만나서 밥을 먹었고 그때부터 예전에 엄마와 말했던 장난기,친근했던 대화와 말투는 내맘에서 모두 사라졌다.

밥한번 먹었는데 엄마는 내가 화가 풀린거라 생각한건지 가끔 연락을 계속했고 나는그냥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겼다. 

나는 가게에서 엄마가 그렇게 말한뒤로 15년 동안 일로 써먹히다가 박수홍처럼 버려졌다 생각이 굳어졌고 그 비슷한시기 박수홍,장윤정사건도 터졌어서 규모는 다르지만 나랑 비슷한 상황이 또 있구나

알게되었다.  그때부터 먹을거 하고싶은거 사고싶은거 악착같이 아끼고 주식투자해서 그회사를 3년동안 다닐동안 1억2천~3천정도를 모았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이젠 가족에 대한 애정 이런게 사라지고 세상은 나혼자여도 될 것같다는 느낌도 들면서 동시에 혼자여야만 한다는 느낌도 같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은 아예 신경안쓰고 살았는데 전화올떄마다 이제 전화가 반가움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지급 집을 나온지 4년이 조금 넘은거 같은데 그냥 명절마다 왕래 하는정도로 가고있고

전화는 내가 먼저 거는일은 없다. 이 곪은 상처가 나아지고 용서를 해야되는데 이제 용서라는 단어가 필요한가 싶을정도로 무뎌지다가도 엄마가 전화와서 뭐 해달라 어디 데려다주면 안되냐

이런거 할때마다 이젠 내가 왜? 라는 생각도 들었고  형한테 말해라 짜증나게 하지마라 라는식으로 전화를 끊으려하자 실망이다 아쉽다 자식이 그러면 안된다는식으로 말하려는 뉘앙스로 말하길래

또 내 안에잇는 상처가 터지면서 씨발 버릴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뭐해달라 저해달라 실망이다 이딴소리 양심이란게 있으면 나한테 하지마라 내가 지옥 속에서 있었을 때 뭐 해줬냐? 라고 막말을 내뱉어 버렸다. 

엄마에게 상처가 될 말인거 알면서도 내 상처가 너무 컸고 그기억이 다시 솓아나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오해다 그런식으로 말하는데 나는 조목조목 다 짚어주었고 

그걸 오해라고 생각햇으면 그게 더 잘 못이다. 미안하다 사과를해도 모자를판에 지금 핑계를 대고있는게 말이된다고 생각하냐고 더 쏘아 붙였다. 

엄마는 이제서야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늦었다 매몰차게 말했고 전화하지 말라고 하고 끊었다. 엄마는 분명 엄마 형제들에게 이상황을 또 말하며 나를 씹겠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생각한다면 , 양심이란게 있다면 혼자 그냥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평생 살았으면 한다.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했고 모든걸 바친 사람은 나였는데, 다른사람이 아무리 뭐라고해도 엄마 하나만 내 마음과 행동을 인정해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버티며 옆을 지켰는데

그런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니 이제 용서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그감정이 무뎌지다가도 엄마가 실망하고 아쉬운 소리할때마다 그냥 화가 다시 끓어오른다. 

차라리 엄마가 경제적 여유라도 있었으면 홀가분하게 있었을텐데 그게 안되고 나한테 기대려는 뉘앙스가 풍겨져서 더욱 방어적으로 나오는건가? 

내 인생마저도 같이 나락으로 끌고가려고 하는 느낌을 받아서 내가 반사적으로 나온건가 싶기도하고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꼭 이래야만 나까지 나락으로 안갈 것 같고 

이젠 뭐가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내 씀씀이로는 혼자 살면 어찌저찌 굶지않고는 살거같은데 

진짜 의절하고 살아야 하나 싶기도하고 머리가 아프다. 

이런 가난은 되물림 해주고 싶지않아서 결혼 연애는 아예 인생에서 배제했다.

너희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