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23년 택시에서 나와 아내는 장롱면허여서 차가 없다. 그래서 명절이나 짐이 있을 때면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를 탈 때면 아내와 세 아이들은 뒷자리에 앉고,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실은 뒤 조수석에 탔다. 엄마와 아이들이 옆에있어야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짜증을 부릴 때면 아내는 그걸 해결하지 못했다. 아내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긴장감이 차 안 가득 퍼지곤 했다. 나도 조수석에서 때때로 중재에 나섰다. 조용한 택시 안에서 우리 가족의 작고 복잡한 드라마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였을 것이다. 아내가 갑자기 먼저 조수석에 앉기 시작했다. "엄마가 뚱뚱하니까 너희들 편하려고 앞에 앉는 거야."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짐을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이 뒷좌석에 제대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뒷자리에 앉았다. 그날도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목적지에 다달았을때, 기사님이 아내에게 어디쯤에서 내려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아 있으니 당연히 대답하겠거니 했던 나는, 뒤에서 답답함을 느낀 끝에 대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앞자리에 앉았으면, 이런 역할은 스스로 하는게 당연한게 않을까? 하지만 아내는 내게 말했다. "왜 미리 안 알려줬냐"고. 모든 것을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말에 화가 났지만 아이들 때문이라도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순간에, 여러 해 동안 쌓인 소통의 균열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2023-01-03(화) 아로마 디뷰저, 오빠는 점쟁이가 아니야 아이들이 잠든 밤10시, 자려 누웠는데 치약 냄새가 나서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약속을 어기고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말다툼이 시작됐다. 내가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도테라 같은 다단계 업체들은 당신과 당신 지인들까지 계속 뽑아먹다가 더 이상 먹을 게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그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아내는 도테라를 통해 지인 소개도 하고 수수료도 챙기며,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마사지사까지 소개받아 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점쟁이가 아니야.” 내가 점쟁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예방하자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아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방을 하자는 내말 뜻을 모르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몰래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한건 그걸 사용 못하게한 나 때문이라며 내 탓으로 돌렸다. 그날 밤, 아내가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무너져가는 신뢰가 깊이 새겨졌다.
2023-01-04 그동안 차 먼저 사자고 조르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날 오후 1시 36분, 나는 아내에게 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 시간동안 “내집 마련보다 차를 먼저 사자”는 아내의 요청에 말은 안하지만 늘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원하는대로 말로하지말고 글로 정리해서 이야기 해달라고해 말이 아닌 글로 정리해서 우리의 방향을 다시 한번 맞추고 싶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 기본적인 의식주를 넘어서, 결혼자금, 주택자금, 자녀 교육비, 노후자금이라는 네 가지 큰 목적 자금이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고 가능하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예비금과 사후를 준비하는 자금까지 필요하다고 해. 앞으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많아봐야 20년 남짓. 50대 이후로는 근로소득은 줄고, 자녀들이 자라며 지출은 더 늘어나게 될 거야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살이라도 젊을때 최대한 근로소득을 늘려 저축하고 투자해 금융소득을 함께 키워야 해 그렇게 모인 자금이 바로 우리의 ‘목적 자금’이 되며, 그것이 곧 ‘재테크’이고, 그것이 진정한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이걸 알았기에 당신과 결혼하기전 20대후반에 집을 마련했고 월세를 받고있었지. 결혼 후, 2014년부터 가계통합을 제안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였어 결국 2020년에야 가계를 합쳤지만, 그 전 6년 동안 우리는 시간과 기회라는 값진 자산을 흘려보낸 셈이 되었지 이제 다음 과제는 우리 5인가족이 살 내집 마련이야. 당신이 나에게 “집이 좁다”, “화장실이 하나라 불편하다”, “소파에 기대어 생활하고 싶다”, “아이들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을 말하면서 집이 중요성을 잘 알고 있잖아. 현재 우리의 재정 구조는 내가 벌어 생계와 목적 자금을 충당하고, 당신의 수입은 전적으로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과거엔 자기 돈이라면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은 공개하지 않고 있었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주택 마련은 점점 더 늦춰지고 결국 대출 없이 집을 사기 어려워져 그렇게 되면 대출 원금과 이자로 인해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나중에 아이들 학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당신이 원하던 차 한 대조차 사기 힘든 ‘하우스푸어’가 되겠지. 심지어 자녀 학자금이나 노후 준비조차 물 건너가게 돼 그래서 우리는 대출 없이, 혹은 최소한의 대출로 집을 마련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가계의 수입과 지출이 투명하게 공유되고, 특히 큰 지출과 지속적 지출부터 먼저 정리되어야 해. 몇 주 전, 당신이 나에게 “집을 사면 행복해?” 라고 했었지. 그래서 내가 왜 집을 사야하는지 이유를 적은 거야. 부모가 되기 전엔 당신의 행복이 최우선일 수 있어 하지만 부모가 된 지금, 나의 삶은 가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해. 당신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우리 가정을 위한 미래를 먼저 생각해주길 바래. 그 후에 당신의 행복을 천천히, 더 단단히 만들어가면 좋겠어. 삶은 준비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되고 특히 경제적인 준비는 더욱 그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대출을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자산은 줄고 여유는 사라져 그래서 나는 앱테크로 푼돈이라도 벌고, 필요한 물건은 가능한 한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애쓰잖아 소비를 줄이고, 수입을 불리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야. 이번 사이클에서 집을 장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 1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당신이 말한 “집을 사면 행복해?”라는 질문에 나는 “집을 사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야. 집이 필요하니까, 우리 가족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사는 거야.”
이후 아내는 내 긴 메시지에 이렇게 답했다. “네, 우리 가정을 위해 살아갈게요. 편지로 써주면 더 좋겠다. 손편지 받고 싶어요 ㅋ”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정리한 생각을 진심으로 담아 메시지로 전했는데, 아내의 반응은 “손 편지로 써달라”는 말 한마디였다. 표면적으로는 다정하고 가볍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은 나에게 진심으로 공감받지 못한 듯한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아내에게 전하려던 절박한 현실과 가정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손편지라는 낭만적 요청으로 묵살당한 기분. 그로인해 허탈함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결국 나는 전하고 싶은 진심이 아내에게 닿지 않는 거리감 속의 쓸쓸한 감정만 남았다. 역시나 그날 이후, 아내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2023-01-06(금) 이때쯤 아이들이 잠을 늦게 잤다.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집 안은 여전히 환했고, 아이들은 잠들 기색조차 없었다. 그 시간대면 평소 같으면 조명을 어둡게 하고, 조용히 잠자리로 유도했어야 했는데, 아내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핸드폰을 드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이러다 애들 늦게 자면, 결국 당신이 더 고생하게 될 거야.” 그 말엔 앞으로의 걱정과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피로도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수록 원래 늦게 자.” 그 말은 단호했고, 더 이상의 대화를 닫아버리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안 잔다며,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던 사람이 아내였다. “애들 안 자서 죽겠어”, “나 좀 살려줘”라고 하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절박함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은 감정의 생물이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는 해도, 아이들의 수면시간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과 ‘책임’의 문제다. 지금 놓치면, 그 여파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아내의 가슴엔 아직 닿지 않은 듯했다.
2023-01-10(화) 셋째가 의자를밟고 요리를 할때 퇴근 후 집에 도착한 건 저녁 7시 30분쯤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조용한 주방 쪽에서 평소와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셋째가 의자 위에 올라가 혼자서 계란 간장밥을 만들고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프라이팬을 잡고, 조심스럽게 뭔가를 휘젓고 있었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순간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거 위험하다고 생각 안 들어? 아이한테 너무 많은 걸 허용해주면, 나중에 당신이 훨씬 더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아내는 셋째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말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듯,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않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우려와 걱정을 '비난'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또 지적이야?’, ‘왜 나만 뭐라고 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한 달 후,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그날도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방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셋째가 또 의자 위에 올라가 있다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바람에, 싱크대 근처의 접시가 떨어져다. 그 순간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아이를 다그치며 말했다. “앞으로 요리하지 마! 하지 마!” 그 목소리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아내의 말투엔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도 나를 향한 원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당신 말해서 현실이 됐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금지하면서도, 아내는 마음속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그때 들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만이 공기처럼 흘렀다.
2023-01-14(토) 다단계 도테라, 마사지, 성가대 그리고 다단계에대한 뉘우침 오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예전에 아내가 도테라 제품이 좋다며 처가에 선물을 보냈던 일이 있었는데, 그 결제가 아직 되지 않아 판매자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판매자는 다단계 특유의 방식대로 ‘선구매 후결제’의 형태였고, 아내는 정작 자신이 구매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로 기억 안 나?”라고 묻자, 아내는 단호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하지만 난 이미 전에 처가에 갔을 때 그 제품이 집에 있는 걸 보았고, 확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 순간조차 지워버린 걸까. 도무지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아 나는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아내도 따라 내려왔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아내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 할머니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내는 그분에게 아무렇지 않게 “성가대 하고 싶어요. 일요일에 갈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황급히 말을 붙였다. “지금 당신이 성가대 할 때야?” 지인 할머니는 상황을 파악하신 듯, “그럼 남편분이랑 상의하고 오세요” 하시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 수 백만 원에 가까운 소비의 실체가 드러난 그 직후에 바로 성가대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를 보며 ‘이게 과연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일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치킨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느닷없이 말했다. “다 때려치고 신학대학 다닐까? 목사님 되면 영혼이라도 깨끗해지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도피처로서의 말장난이었을까. 자기 생각에 갇혀, 내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운 후 다른 방에서 아내와 도테라 결제와 마사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잠시 멈춘 듯, 조용히 말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제야 비로소 아내의 얼굴에서 뉘우침이 읽혔다.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그 모습에 나는 ‘그래, 이제부터는 달라지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요청했다. 카드 사용 내역과 계좌 이체 내역을 함께 확인하자고. 그리고 내가 확인한 그 금액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내가 공개한 도테라(다단계): 5,715,480원, 마사지 10회권: 2,500,000원, 네이버페이 (내역 불분명): 226,071원, 단월드: 91,200원, 총합: 8,532,751원 그날 처음 알게 된 가격들이였다. 이 소비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치유’ 혹은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것들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나는 아내에게 그간 무슨 일들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아내는 자신의 활동들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부천 아로마테라피 스터디, 보육반장, 육아종합지원센터 블로그 기자단, 서울남부교육청 회의 (월 1회), ‘내꿈소생’ 취미활동, 환경순찰 모니터 요원, 감사일기와 바인더, OO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도테라 활동, 부모 모니터링단, 한국보육진흥원 서포터즈 그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는 걸 느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놓고 저 많은 걸들을 하고 다녔구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많은 활동들 중 몇 개나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이 계산된 숫자보다도 더 깊은 회의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진짜 뉘우침이었을까, 아니면 상황 모면을 위한 말이었을까. 그 답은 아직도, 나에게는 물음표로 남아 있었다.
2023-01-16(월) 다단계 도테라 마지막 결제 오후 2시 2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말한 도테라 선구매 건… 결제해야 하는데, 뭘로 할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결국 “내 카드로 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신용카드가 없었고, 나는 알았다. 이 결제가 끝나면 이 도테라라는 긴 그림자와의 인연도 이제야 끝나는구나… 하는 쓸쓸한 실감. 2022년 9월부터 약 5개월 동안 우리 사이에 지워지지 않을 균열을 남긴 이 사건은 그렇게 카드 한 장 긁는 소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진짜 끝이었을까? 아니면 겨우 봉합이었을까? 아내가 나에게말한 도테라 여정은 이랬다. 새벽 수영을 다니며 한 언니를 만났고, 그 언니는 커피숍에서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언을 해줬다. 아이들 옷을 물려주는 등 사소한 호의를 이어가며, 아내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암웨이와 유사한 방식의 다단계, 투자 이야기, 돈 버는 구조. 언니는 ‘기회’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아내를 도테라 세계로 끌어들였다. 2022년 9월경, 그 언니는 아로마하우스를 개업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 사업체였다. 아로마테라피, 아로마 자격증 과정, ADHD 및 자폐 치료, 여드름·아토피 등 온갖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말들… 그 언니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도테라를 포장했고, 아내는 그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아내는 서울에서 부천까지 오가며 아로마테라피를 배우기 시작했고, ‘도테라 패밀리 디퓨저 가습기’, ‘도테라 세탁세제’, ‘각종 영양제’들을 구매했다. 마이크로플렉스MVP, 세레니티 레스트풀 소프트젤, 슬림&새시 다이어트, 알파CRS플러스, 에센셜 오메가, 젠제스트 타블렛… 도무지 외울 수도 없는 이름들이 카드 명세서에 줄줄이 찍혀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아내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지인 모집에 나섰고, 그 언니는 실적을 쌓기 위해 아내에게 '선구매 후결제'를 유도했다. 이제 와서 보면, 아내는 그 언니에게 철저히 ‘소비자이자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도테라에서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자 그 언니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마사지사를 소개했고, 아내는 부천 중동까지 찾아가며 10회에 250만 원짜리 마사지를 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신념’은, 이미 다단계의 깊은 함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선구매 금액이 결제되지 않아 아내는 집에 내가 있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고, 나는 내 카드로 마지막 대금을 결제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아내는 더 이상 잔금을 치룰 돈이 부족해 나에게 결제하게 만들기 위해 타이밍(내가 집에 있는 01/14(토)에 미결제 전화)을 맞췄다는 것.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도테라를 아내에게 소개시켜준 지인 또는 아내의 의도된 마무리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과거부터 인터넷을 통해 다단계의 구조와 폐해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던 나는, 아내가 다단계에 접했다는 걸 알았을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보냈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그 길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그 과정을 알면서도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말렸던 내 말보다도 정작 행동으로 제지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가장 한심하고, 미련하게 느껴졌고 객관적으로 내 자책은 아니지만 그것은 강하게 나의 자책감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지금 이 순간, 아내가 발을 디딘 이 세상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해했을까? 아니면 단지 '돈이 없어서' 결제를 남편에게 넘긴 것일까? 아내가 도테라라는 다단계에 빠진 5개월의 감정과 갈등의 총합이 카드 한 장 긁는 그 짧은 순간으로 끝났다. 하지만 내 마음속 씁쓸함과 자책은, 아직 결제가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023-01-19(목) 아내의 자해 퇴근해 집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7시 30분쯤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아내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지쳐있다 못해, 무너져내릴 듯한 눈빛이었다. 아내는 말문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가 동생들을 때리고, 둘째는 계속 울고, 셋째는 말을 안 들어서… 내가 애들 앞에서 합기도 띠로 내 목을 졸랐어. 그리고… 셋째 뺨을 때렸어.” 그 말이 의미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첫째는 억눌린 감정이 폭력으로 터졌을 것이다. 그 속에는 동생들에 대한 미움보단, 엄마의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 울음 속 의미를 읽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엄마에게 뺨을 맞고,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마음속에 무엇이 남았을까. 두려움? 혼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감정들?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날 아이들이 느꼈을 상처와 혼란 역시 결코 작지 않았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날의 저녁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조용히 깊은 균열을 남겼다.
2023년 다단계 도테라를 정리하며
2022~2023년 택시에서
나와 아내는 장롱면허여서 차가 없다. 그래서 명절이나 짐이 있을 때면 주로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를 탈 때면 아내와 세 아이들은 뒷자리에 앉고, 나는 트렁크에 짐을 실은 뒤 조수석에 탔다. 엄마와 아이들이 옆에있어야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뒷자리에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짜증을 부릴 때면 아내는 그걸 해결하지 못했다. 아내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긴장감이 차 안 가득 퍼지곤 했다. 나도 조수석에서 때때로 중재에 나섰다. 조용한 택시 안에서 우리 가족의 작고 복잡한 드라마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2022년에서 2023년 사이였을 것이다. 아내가 갑자기 먼저 조수석에 앉기 시작했다. "엄마가 뚱뚱하니까 너희들 편하려고 앞에 앉는 거야."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짐을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이 뒷좌석에 제대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뒷자리에 앉았다.
그날도 택시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목적지에 다달았을때, 기사님이 아내에게 어디쯤에서 내려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아 있으니 당연히 대답하겠거니 했던 나는, 뒤에서 답답함을 느낀 끝에 대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앞자리에 앉았으면, 이런 역할은 스스로 하는게 당연한게 않을까? 하지만 아내는 내게 말했다. "왜 미리 안 알려줬냐"고. 모든 것을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말에 화가 났지만 아이들 때문이라도 꾹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순간에, 여러 해 동안 쌓인 소통의 균열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2023-01-03(화) 아로마 디뷰저, 오빠는 점쟁이가 아니야
아이들이 잠든 밤10시, 자려 누웠는데 치약 냄새가 나서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약속을 어기고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말다툼이 시작됐다. 내가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도테라 같은 다단계 업체들은 당신과 당신 지인들까지 계속 뽑아먹다가 더 이상 먹을 게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그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아내는 도테라를 통해 지인 소개도 하고 수수료도 챙기며,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마사지사까지 소개받아 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점쟁이가 아니야.” 내가 점쟁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예방하자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아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방을 하자는 내말 뜻을 모르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몰래 아로마 디퓨저를 사용한건 그걸 사용 못하게한 나 때문이라며 내 탓으로 돌렸다. 그날 밤, 아내가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무너져가는 신뢰가 깊이 새겨졌다.
2023-01-04 그동안 차 먼저 사자고 조르는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날 오후 1시 36분, 나는 아내에게 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오랜 시간동안 “내집 마련보다 차를 먼저 사자”는 아내의 요청에 말은 안하지만 늘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원하는대로 말로하지말고 글로 정리해서 이야기 해달라고해 말이 아닌 글로 정리해서 우리의 방향을 다시 한번 맞추고 싶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 기본적인 의식주를 넘어서, 결혼자금, 주택자금, 자녀 교육비, 노후자금이라는 네 가지 큰 목적 자금이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고 가능하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예비금과 사후를 준비하는 자금까지 필요하다고 해.
앞으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은 많아봐야 20년 남짓. 50대 이후로는 근로소득은 줄고, 자녀들이 자라며 지출은 더 늘어나게 될 거야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살이라도 젊을때 최대한 근로소득을 늘려 저축하고 투자해 금융소득을 함께 키워야 해 그렇게 모인 자금이 바로 우리의 ‘목적 자금’이 되며, 그것이 곧 ‘재테크’이고, 그것이 진정한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 이걸 알았기에 당신과 결혼하기전 20대후반에 집을 마련했고 월세를 받고있었지.
결혼 후, 2014년부터 가계통합을 제안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였어 결국 2020년에야 가계를 합쳤지만, 그 전 6년 동안 우리는 시간과 기회라는 값진 자산을 흘려보낸 셈이 되었지
이제 다음 과제는 우리 5인가족이 살 내집 마련이야. 당신이 나에게 “집이 좁다”, “화장실이 하나라 불편하다”, “소파에 기대어 생활하고 싶다”, “아이들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을 말하면서 집이 중요성을 잘 알고 있잖아.
현재 우리의 재정 구조는 내가 벌어 생계와 목적 자금을 충당하고, 당신의 수입은 전적으로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고 과거엔 자기 돈이라면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은 공개하지 않고 있었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주택 마련은 점점 더 늦춰지고 결국 대출 없이 집을 사기 어려워져 그렇게 되면 대출 원금과 이자로 인해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나중에 아이들 학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당신이 원하던 차 한 대조차 사기 힘든 ‘하우스푸어’가 되겠지.
심지어 자녀 학자금이나 노후 준비조차 물 건너가게 돼 그래서 우리는 대출 없이, 혹은 최소한의 대출로 집을 마련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가계의 수입과 지출이 투명하게 공유되고, 특히 큰 지출과 지속적 지출부터 먼저 정리되어야 해. 몇 주 전, 당신이 나에게 “집을 사면 행복해?” 라고 했었지. 그래서 내가 왜 집을 사야하는지 이유를 적은 거야.
부모가 되기 전엔 당신의 행복이 최우선일 수 있어 하지만 부모가 된 지금, 나의 삶은 가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해. 당신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우리 가정을 위한 미래를 먼저 생각해주길 바래. 그 후에 당신의 행복을 천천히, 더 단단히 만들어가면 좋겠어.
삶은 준비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되고 특히 경제적인 준비는 더욱 그래.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대출을 감당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자산은 줄고 여유는 사라져 그래서 나는 앱테크로 푼돈이라도 벌고, 필요한 물건은 가능한 한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애쓰잖아 소비를 줄이고, 수입을 불리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야.
이번 사이클에서 집을 장만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 1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당신이 말한 “집을 사면 행복해?”라는 질문에 나는 “집을 사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야. 집이 필요하니까, 우리 가족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사는 거야.”
이후 아내는 내 긴 메시지에 이렇게 답했다. “네, 우리 가정을 위해 살아갈게요. 편지로 써주면 더 좋겠다. 손편지 받고 싶어요 ㅋ”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정리한 생각을 진심으로 담아 메시지로 전했는데, 아내의 반응은 “손 편지로 써달라”는 말 한마디였다. 표면적으로는 다정하고 가볍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은 나에게 진심으로 공감받지 못한 듯한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아내에게 전하려던 절박한 현실과 가정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손편지라는 낭만적 요청으로 묵살당한 기분. 그로인해 허탈함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결국 나는 전하고 싶은 진심이 아내에게 닿지 않는 거리감 속의 쓸쓸한 감정만 남았다. 역시나 그날 이후, 아내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2023-01-06(금) 이때쯤 아이들이 잠을 늦게 잤다.
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집 안은 여전히 환했고, 아이들은 잠들 기색조차 없었다. 그 시간대면 평소 같으면 조명을 어둡게 하고, 조용히 잠자리로 유도했어야 했는데, 아내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여전히 핸드폰을 드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이러다 애들 늦게 자면, 결국 당신이 더 고생하게 될 거야.” 그 말엔 앞으로의 걱정과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피로도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수록 원래 늦게 자.” 그 말은 단호했고, 더 이상의 대화를 닫아버리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안 잔다며, 힘들다며, 눈물을 보이던 사람이 아내였다. “애들 안 자서 죽겠어”, “나 좀 살려줘”라고 하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절박함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은 감정의 생물이고,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는 해도, 아이들의 수면시간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과 ‘책임’의 문제다. 지금 놓치면, 그 여파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아내의 가슴엔 아직 닿지 않은 듯했다.
2023-01-10(화) 셋째가 의자를밟고 요리를 할때
퇴근 후 집에 도착한 건 저녁 7시 30분쯤이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조용한 주방 쪽에서 평소와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셋째가 의자 위에 올라가 혼자서 계란 간장밥을 만들고 있었다. 그 작은 손으로 프라이팬을 잡고, 조심스럽게 뭔가를 휘젓고 있었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순간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거 위험하다고 생각 안 들어? 아이한테 너무 많은 걸 허용해주면, 나중에 당신이 훨씬 더 힘들어질 거야.” 하지만 아내는 셋째를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말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듯,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않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우려와 걱정을 '비난'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또 지적이야?’, ‘왜 나만 뭐라고 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답답했지만,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허공에 흩어졌다.
그리고 한 달 후,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그날도 퇴근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방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셋째가 또 의자 위에 올라가 있다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바람에, 싱크대 근처의 접시가 떨어져다. 그 순간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아이를 다그치며 말했다. “앞으로 요리하지 마! 하지 마!” 그 목소리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아내의 말투엔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도 나를 향한 원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당신 말해서 현실이 됐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금지하면서도, 아내는 마음속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그때 들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만이 공기처럼 흘렀다.
2023-01-14(토) 다단계 도테라, 마사지, 성가대 그리고 다단계에대한 뉘우침
오후,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예전에 아내가 도테라 제품이 좋다며 처가에 선물을 보냈던 일이 있었는데, 그 결제가 아직 되지 않아 판매자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판매자는 다단계 특유의 방식대로 ‘선구매 후결제’의 형태였고, 아내는 정작 자신이 구매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로 기억 안 나?”라고 묻자, 아내는 단호하게 “모른다”고 답했다. 하지만 난 이미 전에 처가에 갔을 때 그 제품이 집에 있는 걸 보았고, 확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 순간조차 지워버린 걸까. 도무지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아 나는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아내도 따라 내려왔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아내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 할머니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내는 그분에게 아무렇지 않게 “성가대 하고 싶어요. 일요일에 갈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황급히 말을 붙였다. “지금 당신이 성가대 할 때야?” 지인 할머니는 상황을 파악하신 듯, “그럼 남편분이랑 상의하고 오세요” 하시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복잡했다. 수 백만 원에 가까운 소비의 실체가 드러난 그 직후에 바로 성가대 이야기를 꺼내는 아내를 보며 ‘이게 과연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일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치킨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느닷없이 말했다. “다 때려치고 신학대학 다닐까? 목사님 되면 영혼이라도 깨끗해지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도피처로서의 말장난이었을까. 자기 생각에 갇혀, 내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내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운 후 다른 방에서 아내와 도테라 결제와 마사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잠시 멈춘 듯, 조용히 말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제야 비로소 아내의 얼굴에서 뉘우침이 읽혔다.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그 모습에 나는 ‘그래, 이제부터는 달라지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요청했다. 카드 사용 내역과 계좌 이체 내역을 함께 확인하자고. 그리고 내가 확인한 그 금액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내가 공개한 도테라(다단계): 5,715,480원, 마사지 10회권: 2,500,000원, 네이버페이 (내역 불분명): 226,071원, 단월드: 91,200원, 총합: 8,532,751원 그날 처음 알게 된 가격들이였다. 이 소비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치유’ 혹은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것들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나는 아내에게 그간 무슨 일들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다. 아내는 자신의 활동들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부천 아로마테라피 스터디, 보육반장, 육아종합지원센터 블로그 기자단, 서울남부교육청 회의 (월 1회), ‘내꿈소생’ 취미활동, 환경순찰 모니터 요원, 감사일기와 바인더, OO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도테라 활동, 부모 모니터링단, 한국보육진흥원 서포터즈 그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되는 걸 느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시설에 보내놓고 저 많은 걸들을 하고 다녔구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많은 활동들 중 몇 개나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이 계산된 숫자보다도 더 깊은 회의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진짜 뉘우침이었을까, 아니면 상황 모면을 위한 말이었을까. 그 답은 아직도, 나에게는 물음표로 남아 있었다.
2023-01-16(월) 다단계 도테라 마지막 결제
오후 2시 2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에 말한 도테라 선구매 건… 결제해야 하는데, 뭘로 할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결국 “내 카드로 해”라고 말했다. 아내는 신용카드가 없었고, 나는 알았다. 이 결제가 끝나면 이 도테라라는 긴 그림자와의 인연도 이제야 끝나는구나… 하는 쓸쓸한 실감.
2022년 9월부터 약 5개월 동안 우리 사이에 지워지지 않을 균열을 남긴 이 사건은 그렇게 카드 한 장 긁는 소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진짜 끝이었을까? 아니면 겨우 봉합이었을까? 아내가 나에게말한 도테라 여정은 이랬다.
새벽 수영을 다니며 한 언니를 만났고, 그 언니는 커피숍에서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언을 해줬다. 아이들 옷을 물려주는 등 사소한 호의를 이어가며, 아내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암웨이와 유사한 방식의 다단계, 투자 이야기, 돈 버는 구조. 언니는 ‘기회’라는 단어를 내세우며 아내를 도테라 세계로 끌어들였다.
2022년 9월경, 그 언니는 아로마하우스를 개업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 사업체였다. 아로마테라피, 아로마 자격증 과정, ADHD 및 자폐 치료, 여드름·아토피 등 온갖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말들… 그 언니는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도테라를 포장했고, 아내는 그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아내는 서울에서 부천까지 오가며 아로마테라피를 배우기 시작했고, ‘도테라 패밀리 디퓨저 가습기’, ‘도테라 세탁세제’, ‘각종 영양제’들을 구매했다. 마이크로플렉스MVP, 세레니티 레스트풀 소프트젤, 슬림&새시 다이어트, 알파CRS플러스, 에센셜 오메가, 젠제스트 타블렛… 도무지 외울 수도 없는 이름들이 카드 명세서에 줄줄이 찍혀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아내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지인 모집에 나섰고, 그 언니는 실적을 쌓기 위해 아내에게 '선구매 후결제'를 유도했다. 이제 와서 보면, 아내는 그 언니에게 철저히 ‘소비자이자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도테라에서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자 그 언니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마사지사를 소개했고, 아내는 부천 중동까지 찾아가며 10회에 250만 원짜리 마사지를 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신념’은, 이미 다단계의 깊은 함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선구매 금액이 결제되지 않아 아내는 집에 내가 있는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고, 나는 내 카드로 마지막 대금을 결제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아내는 더 이상 잔금을 치룰 돈이 부족해 나에게 결제하게 만들기 위해 타이밍(내가 집에 있는 01/14(토)에 미결제 전화)을 맞췄다는 것.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도테라를 아내에게 소개시켜준 지인 또는 아내의 의도된 마무리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과거부터 인터넷을 통해 다단계의 구조와 폐해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던 나는, 아내가 다단계에 접했다는 걸 알았을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보냈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며 그 길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그 과정을 알면서도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말렸던 내 말보다도 정작 행동으로 제지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가장 한심하고, 미련하게 느껴졌고 객관적으로 내 자책은 아니지만 그것은 강하게 나의 자책감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지금 이 순간, 아내가 발을 디딘 이 세상이 얼마나 허상인지 이해했을까? 아니면 단지 '돈이 없어서' 결제를 남편에게 넘긴 것일까? 아내가 도테라라는 다단계에 빠진 5개월의 감정과 갈등의 총합이 카드 한 장 긁는 그 짧은 순간으로 끝났다. 하지만 내 마음속 씁쓸함과 자책은, 아직 결제가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023-01-19(목) 아내의 자해
퇴근해 집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7시 30분쯤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아내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지쳐있다 못해, 무너져내릴 듯한 눈빛이었다.
아내는 말문을 열며 이렇게 말했다. “첫째가 동생들을 때리고, 둘째는 계속 울고, 셋째는 말을 안 들어서… 내가 애들 앞에서 합기도 띠로 내 목을 졸랐어. 그리고… 셋째 뺨을 때렸어.”
그 말이 의미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첫째는 억눌린 감정이 폭력으로 터졌을 것이다. 그 속에는 동생들에 대한 미움보단, 엄마의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 울음 속 의미를 읽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엄마에게 뺨을 맞고, 목을 조르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마음속에 무엇이 남았을까. 두려움? 혼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 같은 감정들?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날 아이들이 느꼈을 상처와 혼란 역시 결코 작지 않았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날의 저녁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조용히 깊은 균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