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속에 꽃피운 사랑

해내리2026.05.11
조회22

 좀 쑥스럽긴 하지만 

 제 지나온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실은 소싯적에...(긁적긁적) 

 정치활동을 좀 했었습니다 

 사람팔자가 참...원래 다 그리 

 가지각색인건지 

 보통은 젊은시절엔 정치라면 다 

 짜증나고 염증나고 그러는데 

 전 어떻게 젊은시절부터 

 정치에 좀 관심을 갖게되었어요 

 

 사실 처음엔 정확히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단 

 북한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게 

 더 정확할겁니다 

 그러니까 제 나이 20대때는 

 한참 북한 식량난...탈북자 이런문제 

 매스컴에서 많이 떠들떄고 

 심지어 북한이 곧 붕괴될거다 어쩐다 

 그런 뉴스를 매스컴에서 많이 다루고 

 전문가들도 대개 그런식으로 

 예측과 분석을 하던 시절이죠 

 

 그래서 그 시절...북한 식량난이나 탈북자 

 또는 정말 만약 이대로 가다 

 북한이 붕괴되면 이후 우리나라는 어찌되는건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된거죠 

 그래서 관련단체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도 하고 세미나나 집회에 참석도 해보고 

 그러던게 제 20대 중,후반 

 시절의 모습이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따지고보면 북한문제가 결국 

 우리나라 정치문제,정치갈등의 가장 핵심이라는 

 그것을 깨달았던것뿐이고요 

 - 그러고보면 처음 탈북자 관련 단체 찾아갔을때는 

 참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시작이었던 것 같네요 

 북한문제가 결국 정치문제로 빠지게 되는 블랙홀이란걸 

 그땐 전혀 인지도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여하튼 그때부터 한 10년 가까이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그렇게 북한인권 단체나 탈북자 관련단체 

 쫏아다니며...봉사횔동도 하고 

 세미나나 집회에 참석도 하고 글도쓰고 

 그렇게 20-30대 시절을 한참 

 정치활동을 하며 정신없이 복잡하게 

 보냈던 것 같네요 

 그러다가 

 나중에 ‘종편’이란게 생겨서 거기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중요한건 사실 그게 아니라... 

 좀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사실 전 결혼이나 연애 문제 같은거 

 관심이 없었다기보단 

 사실 20대 초,중반 시절엔 

 섣불리 이성에게 다가갔다 철없는 마음에 

 상처받은일도 몇 번 있었고 

 게다가 그 이후 이미 말한것처럼 

 이후엔 북한문제,정치문제 관심 가지면서  

 쭉 활동을 하다보니 

 뭐...나같은 이런 사람 굳이 좋아할 여자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저 역시 막상 그런 정치활동을 계속하다보니 

 온전히 한 가정을 꾸릴만한 주제나 형편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되어서 

 뭐 나이 서른 넘어서는 결혼이고 연애문제고 

 한동안 포기하고...사실상 제 관심권 밖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뭐 그냥...이렇게 정치활동하고...인터넷에서 글쓰고 

 또 방송활동 하고...그러다 

 차츰 나이들어 저도 늙어가겠구나 

 그 생각을 대략 30대 중반부터 

 했던거죠 뭐... 

 

 편의상 그녀의 이름을 

 지영(가명)이라 해둬야 할 것 같네요 

 일단 처음 그녀와의 인연은 

 방송출연 섭외차 

 몇 번 전화가 걸려오면서였습니다 

 사실 이런 섭외전화는 보통 

 구성작가나 PD가 하지 

 해당프로 아나운서가 직접 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아마 좀 급히 결원이 생겨서 충원이 필요하거나 

 혹은 갑작스러운 속보같은 

 돌발상황이 생겨 나와줄 필요가 있을 때 

 그때 가끔 그녀가 직접 전화를 해오면서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듯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종편 정치평론가’로 지내면서 

 자연스레 그 분야 종사자들과 

 식사자리도 갖고...술자리도 갖고 

 대충 적당히 이런저런 농반진반 같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와 취미나 기호가 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제 나이 30대 후반 

 말씀드렸다시피 전 20대 초,중반 시절 

 섣불리 다가선 감정으로 이성으로 인한 

 상처도 몇 번 받았고 

 또 저 자신 그렇게 쭉 살아오면서 지내면서 

 결혼이란건 나하고 이제 

 인연이 없나보다 이미 그렇게 

 적어도 그 문제는 차츰 그런식으로 

 마음을 정리해가던 단계였습니다 

 

 사실 그런 식사자리나 술자리에서 

 사람들끼리 이야기 나누다보면 

 그냥 사람들끼리 농반 진반으로 

 ‘거 두 사람 적딩히 비슷하고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한번 사귀어보지그래...’ 

 사실 그런식의 분위기나 대화는 

 20대나 솔직히 30대 초,중반까지도 

 가령 뭐 대학 동아리던가 하이텔 동호회 

 그런류의 친목모임에서도 많이 겪어본일이고 

 따라서 그런식의 이야기는 그냥 

 적당히 다소 친분이 생긴 사람들끼리 

 농담으로 한두번...혹은 덕담수준으로 

 한두번 해보는 소리지 적어도 

 그런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텐데... 

 

 따라서 저도 

 아무리 그래도 저도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세상경험도 할만큼 해봤으니... 

 적어도 그런식의 이야기는 

 그런 적당히 친분 좀 생긴 사람들끼리 

 밥한번 먹고 술한잔 하면서 

 그냥 농담이나 덕담수준으로 하는 이야기란거 

 많이 겪어봤고...또 그게 그냥 한번 해보는 

 ‘소위 말이 그렇다는소리지...’ 

 (* 사실 진짜 기왕 말 나온김에 덧붙이는 이야기입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이 또 어디있는가...그런걸 깨달은지도 

  꽤 되긴 했지만...일단 그 문제는 여기선 

  논외로 치겠습니다 ^^;;) 

 

 여하튼 그런 자리에서 

 누구랑 누구 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사귀어보지 그래...결혼이라도 해보지 그래 

 그런식의 이야기는 

 그냥 농반진반이나 덕담수준으로 해보는 이야기란거 

 이제 충분히...그만한 세상이치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막상 그런 소리 들으면 공연히 

 가슴설레거나 괜시리 긴장되는 것 만큼은 

 어쩔수가 없더군요 

 - 아니면 그때까지도 제 자아가 그만큼 

 미성숙한걸로 봐야하는지 

 

 일단... 

 그녀는...그러고보니 슬프거나 차분한 그런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대화도중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는 세익스피어 희곡같은 고전물들 

 그런걸 좋아한다는... 

 적어도 영화나 연극쪽으로는 적당히 

 취미나 기호가 비슷하다는 것 정도는 

 알게되었다는거죠 

 

 둘이 같이 

 영화를 볼 기회가 두어번 있었습니다 

 사실 원래 남녀간에 연극이나 영화를 

 단둘이 보는건...사귀는 사이가 아닌 다음엔 

 잘 일어나지 않는빕인데 

 - 아니면 우연히 직장이나 동아리 같은데서 

 같은 일을 장기간 함께 하게된 사이쯤 된다던가 

 그런 경우가 아니면 잘 안 일어나는데 

 어떻게 저희는 인연이 되려다 그랬는지 

 사귀기도 전에 먼저 

 그런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실은... 

 그때 전 한참...정치권에 영입제안을 받던떄이기도 헀어요 

 보수우파 운동가이자 인터넷 논객에서 시작 

 정치평론가로까지 활동한 전력이면 

 충분히 정치권에서 영입제안 들어올만한 

 그만한 전력이고 경력인거죠 뭐... 

 다만 전...솔직히 제 성격과 

 정치하고는 잘 안 맞아서 

 그냥 정치평론가나 정치논객 정도라면 모를까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망설이던 때였습니다 

 세상...누구보다 자기보다 자기자신을 

 잘 아는 사람인 없으니까요 

 굳이 비유하면...야구 해설자 데려다 

 실제로 야구 코치,감독 시켜봐야 

 성공한 사례 그리 많지 않듯이 

 또...솔직히 제 게으른 성격상 

 새벽부터 시장바닥 돌아다니며 바닥민심 알아보고 

 이러는거 영 안 맞을 것 같아서 

 정치권 영입제안은 솔직히 

 그저그런...이런식으로 알게된 정치권 주변 인사들의 

 덕담수준으로만 받아들이고 

 실제 현실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런 제게 

 뜻밖에 정치권에 한번 들어가보시는거 어떠냐 

 먼저 제안을 한게 제 아내였습니다 

 여하튼...그렇게 어찌어찌하다보니 

 같이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또 식사도 몇 번 함께하게된 그녀 

 종편의 프로그램 진행자이기도 한 아나운서 출신 

 이렇게 묻더군요 

 ‘정치 실제 하실생각 없냐 ?’고 

 전 근데 실제로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기에 

 진지한 표정으로...그냥 이렇게 정치평론가나 정치논객으로 

 지내는거라면 모를까 

 현실정치는 너무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솔직한 진심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없다’고 잘라말하던 저를 

 뭔가 아쉽다는 듯 바라보던 

 그녀의...눈빛을요... 

 

 결과적으로 전 

 두가지 거짓말을 한 셈이네요 그 무렵에 

 첫 번째로는 결혼할 생각없다...이미 나이도 너무 늦어버렸고 

 또 20대 초,중반때 입은 두어번의 상처 때문에라도 

 이성과의 진지한 만남은 

 더 이상 자신이 없다 

 두 번째 거짓말이 정치 안한다 

 제 성격상...그냥 이렇게 정치평론가로 정치논객으로 

 정치권 돌아다니는 전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나 하는 

 아웃사이더 같은 역할이라면 모를까 

 현실정치 뛰어들거나 선거판은 

 나하고 너무 안 맞는다 

 

 솔직히...저희 엄마 같으면 

 대번에 이렇게 잘라 말했을 것 같네요 

 ‘말도 못하는 아가...뭔 정치를 한다고 ??? 

 쓸데없는짓 하지말고...니 안사람한테나 잘 하그라... 

 (* 그러고보면 엄마가 호남출신인것도 

   제게...정계입문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 자신 역시 탈북자 돕는 단체에서부터 시작 

   이런저런 보수우파 운동 단체에서 쭉 활동하다보니 

   그런 밑바닥의...특히 인터넷의 보수우파 네티즌들의 

   호남이나 특정도시에 대한 혐오감이 

   얼마나 강하고 짙은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솔직히 엄마가 호남출신이란건...그냥 보수우파 운동을 하면서도 

   숨겨야할 집안내력인판에... 

   그것도...호남출신 외가를 둔 사람이... 

   보수정당에 출마를 해서 선거판에 뛰어든다 ??? 

   - 나중에 무슨 일베니 펨코니...그런데서 제 신상캐서 

     저희엄마나 외가에 대해 무슨 별의별 험담을 다 늘어놓을지 

     그것만 생각해도 소룸이 쫙 끼치는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제가 보수우파 운동을 하면서도 엄마의 출신을 

     끝까지 숨겨야만헀던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막상 아내와 정식으로 진지하게 사귀는 단계가 되고 

   양가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는 단계까지 왔을때도 

   아내에겐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우리엄마 호남출신인거 당분간은 비밀로 해라 

   정치판은 그렇다치고...인터넷의 보수우파 활동가들이나 

   보수성향 커뮤니티 네티즌들이 아는날엔 

   진짜 더 곤란하고 복잡한일 터지는수가 있다고... 

 

   솔직히 미친척(?)하고 

   (’미친척‘이란 표현이 적절할련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 심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결국 그와같다는 뜻이다) 

   차라리...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겠다 

   그 ’마지막‘이란 의미도...결혼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뜻이라기보단 

   원없이 이성한테 고백한번 해볼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게다가 이미...이성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20대 초,중반떄 이미 충분히 경험한보니 

   그쯤이면 내 감정,심리 상태도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있을것이란...나름의 자신감에 

   혹 거절을 당하더라도...그 시절(20대 초,중반 시절) 

   느꼈던...어떤 상실감이라던가 허무감...혹은 어떤 아쉬움이나 미련 

   그런 감정은 없겠지 하는 나름의 자신감에 

   진짜한번 미친척하고...한번만 더 

   도전해보기로 한거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그땐 뭐...방송이고 정치평론가고 전부 때려치우고 

   보따리 싸갖고...뭐 내 주제에 

   어디 깊은 산골이나 절간 혹은 시골마을에 가서 

   산다는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차라리 그냥 지방의 어느 작은 중소도시에라도 내려가 

   거기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라도 하면서 

   여생을 보내자 

   그렇게...결심하고...진짜 미친척...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번...(* 마치 금주나 금연 결심하는 사람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한번 술이나 담배 

   입에대는 그런 심리로 

   고백을 해봤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평행우주(?)에선...이것도 내가 뜻하는 바대로 

   움직여주지 않더라 

   난...사실 지영이가 

   이렇게 나올줄 알았다... 

   20대때...누군가에게서 많이 들었던 표현 

   ’전 이미 사귀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있다‘ 

   혹은 ’우리의 감정상태가 뭔가 서로 엇갈린 것 같다‘ 

   또는 ’제 호의를 뭔가 오해하신 것 같다‘ 

   대충 이런식의 반응이 나올거라 

   생각하고...보따리싸갖고 지방으로 잠적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정치참여도 참...그게...그렇게 

   앞서도 말했듯이...현실정치 참여는 

   나 자신과도 안 맞고 부담스러워서 

   그렇게 정치권 아웃사이더로 이런저런 잔소리만 해대는 

   혹은 정치권 싸잡아서 비난하는 

   그런 재미로 사는 정치논객이나 정치평론가 

   딱 그 정도 수준으로만 만족하려고 했는데 

   그 무렵 당시 보수정당은 

   꽤 유명한 탈북자를...우리나라 한떄 ’신 정치 1번지‘라고도 불렸고 

   지금은 그냥 보수정당 강세지역이 되어있는 

   그런 지역에 공천시키려 했다 

   순간 진짜 묘한 반발심이 들더라 

   사실...이제 탈북자나 연변교포 출신중에도 

   국회의원 한두명 나올 때 되지 않았나 

   그런식의 말이 나온지는 꽤 되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애초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된 뿌리가 

   북한 식량난...탈북자 문제 그런게 한참 매스컴에 

   보도되곤 해서...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되며 

   시작한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필...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종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한 10년 가까이 살았고 

   한때 오렌지족이니 뭐니 그런식으로 말도 많았던 

   그런 지역에 탈북자 출신을 공천준다는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그 지역...언제부터인가 

   ’신 정치 1번지‘란 상징성은 사라지고 

   그냥 보수정당 강세지역이 되어버린 느낌인데 

   하지만 난...그 지역에 그래서 

   무슨 여성이나 청년 혹은 탈북자 출신을  

   배려해주듯...무슨 전략적으로 주는 공천 이런 방식보다는 

   그 지역의 정서와 딜레마...고민을 

   잘 아는 사람이 공천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했었다. 

 

   그 지역을 탈북자 출신한테 배려하는 식으로 공천주느니 

   차라리 그 지역 주민들 (특히 10대 어린이,청소년들의)의 

   고민이나 고뇌 그리고 딜레마를 

   잘 이해할만한 그런 사람에게 공천주는거 어떠냐는 

   나의 설득에 당이 감동했는지 

   그렇게 나의 ’서울 강남 갑‘ 출마는 이루어졌다 

   엄마 말마따나...말도 제대로 못허는 내가 

   국회의원 출마 자체가 좀 가당찮은 도전이기도 했는데 

   하지만 비록 보수정당 강세지역이 된곳이라도 

   적어도 90년대 이전 특히 나 살던 어린시절엔 

   심지어 민정당 후보가 낙선(85년. 12대)한 적이 있을정도로 

   오히려 ’신 정치 1번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야당 강세지역이었던걸 생생하게 기억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더 열정적으로 열심히 

   현장을 누볐습니다 

 

   허나 그 해 총선... 

   실은 바로 그 직전까지 야당의 분열로 

   여당의 압승...심지어 소위 그 ’국회선진화법‘인지를 

   무력화 시킬수 있는 180석과 여당(보수정당)의 수도권 압승이 

   점쳐지기까지 하던 선거였는데 

   그 총선에서...막상 선거를 치러보니 

   보수여당은...과반수 실패는 물론 수도권에서 

   이례적인 대 참패를 당하며 120여석으로 내려앉았고 

   따라서...저 혼자만 서울 강남에서 쉽게 달랑 당선된 저 

 

   만약...탈북자 출신이 당선된 상황이었다면 

   이런 정치상황 분위기파악 못하고... 

   지들끼리 애국가 부르며 태극기 흔들며 눈물흘리며 난리쳤겠지만 

   저는...이 참패가 무엇을 의마하는지 너무 잘 알기에 

   그렇게 저혼자 좋다고 날뛸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혼자만의 승리에 기뻐할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수도권 험지에서 분전하셨지만 애석하게도 모두 

   낙선의 고배를 드렸습니다 

   저 역시 함께 정권심판의 여론을 

   겸허히 받아들여야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고생하신 많은 선거원동원들게 수고 많으셨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함께 맞붙은 민주당 OOO 후보께도 진심으로 깊은 존경과 경의 

   그리고 위로의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수도권에서 고생하시고 낙선의 고배를 드신 

   많은 동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인사를 전하며 

   OOO당이 다시한번 거듭나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 시간이 되도록 

   다시금 겸손히 깊이 고개숙이겠습니다.‘ 

   

   사실...흔히 선거에서 정치활동 하는 사람에겐 

   아내의 내조가 그 역할을 반은 차지한다는데 

   제 경우엔...특히 말주변 없고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제 성격을 

   여섯 살 어린 그리고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인 제 아내가 

   현장에서 진짜 고생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정말...이 당선의 공 절반 이상이...제 아내에게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그녀의 발밑에 엎드려 

   진심으로 감사의 큰절을 올렸습니다 .  

   편안한 안식을 취했습니다 

   선거에서 당선된 그 다음날 밤의 일입니다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그러고보면 나이 정말 어느덧 

   40이 다 되어 한 결혼 

   무엇보다 20대때 이성으로 인해 받은 상처 

   게다가 어느덧 나이들고 이미 결혼적령기는 지난지 오래고  

   무엇보다 제 주변 환경과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내게 이 생에서...결혼은...여성은 정말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체념하고 살려던 그 시간 

   아내는 제게 있어서 정말 고마움이고 구세주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결혼생활은 

   대체로 별 탈없이 무난히 흘러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둘 낳았고 

   아내와 결혼할 때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던 만큼 

   저와 여섯 살 차이인 아내도 결코 

   젊은 나이라 하긴 힘든 나이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나이에 찾아온 인연이라 더 쉽게 섣불리 

   그렇게 쉽게 깨지거나 헤어져선 안된다는 

   어떤 절박함이나 공감대라도 있었던것인지 

   여하튼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대체로 

   무난하게 흘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결혼생활보단 

   정치활동을 하면서 갈등이 더 많았다고 봐야할테니 

   이야기의 중심이 천상 예기치않게 

   그쪽으로 흘러가야곘네요 

   - 애초 의도가 이게 아니었는데도 말이죠ㅗ ^^;; 

    

   30대 후반에 시작된 뒤늦은 결혼생활 

   그리고 이어서 서울 강남에서 첫 국회의원 당선 

   하지만 결혼생활과 달리 이 나라 정치판은 

   그리 순탄치 않게 흘러갔습니다 

   다만 저의 국회의원 생활은...초선...재선... 

   그래도 보수진영에 쉬운 지역이어서인지 

   재선까진 무난히 되었습니다 

   다만 이후...대통령 탄핵...정권교체등 

   이 나라의 정치가 그리 순탄치 않게 

   흘러갔던 관계로 

   제 정치 인생도 결코 

   쉬운 순탄한길이 될수만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거...쉬운 지역에서 국회의원 두 번 당선되었으면 

   당신도 이제 좀 희생해야할때가 된 것 아니냐 ?‘ 

   그런식의 압력이 

   제게도 들어왔습니다 

 

   오기심이 생겨서...’차라리 엄마 고향인 외가 

   전남 OO에서 출마하겠다 !!!‘ 

   선언하고 공식 발표까지 했습니다 

   긴급 기자회견까지 자처하면서 말이죠 

   - 사실 따지고보면 말이 외가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30년 넘게 

   한번도 내려가본적 없는 외가이기도 한데... -.-;;;; 

    

   일단 제가 그렇게 대놓고...오기심에 진심도 어느정도는 

   담아...전격 호남출마 말표를 하자 

   당에서 대놓고 만류하더라고요...거기가 어디라고 겁도없이 

   보수정당 후보로 출마할 생각을 하냐구요 

   - 언제는 당을 위해 한번쯤 희생하라 해놓고 

   막상 호남에 출마한다 하니 말리면 

   뭐...저더러 어쩌라구요... -.-;; 

   사실 엄마한테도 직접 전화해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대번에 ’아서라...‘ 잘라서 말씀하시더군요 

   하긴 애초에 국회의원 출마부터 만류하던 엄마인걸 생각해보면 

   재선까지 한 애가...이쯤에서 그만 멈췄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설상가상...지 엄마 고향이고 외가랍시고 

   호기롭게 호남출마 공개선언 하는 모습부터가 

   그리 마땅치 않게 여겨졌을것이란건...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상황이긴 합니다... -.-;; 

 

   결과적으로 

   호기롭게 선언한...호남출마 선언은 무위로 돌아갔고 

   강남에서 그대로 어느덧 3선까지 한 저... 

   당의 ’비대위원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계엄선포와 또 한번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또 한번의 정권교체 

   만신창이가 된 당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아서 

   저라도 나설 수밖에 없더라구요 ^^;; 

 

   이야기 순서가 좀 뒤바뀐 것 같은데... 

   사실 애초에...강남 출마를 포기하고 호남을 택하려할 때 

   계속 주위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그럼 외가 연고 말고...처가 연고를 택해볼까 

   처음 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그러고보니... 

   정치활동 처음 시작하고나서...아내가 처음으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일단 아내도...제가 무녀독남 외동인것처럼 

   아내도 다른 형제는 없는 외동딸...뭐 여기까진 그렇다치고 

   설상가상...할아버지대부터 3대가 서울에서 산 

   이른바 ’서울 토박이‘ 집안이더군요 

   뭐 그런식으로라면야 저희집도 사실상 할아버지는 물론 

   아무래도 그 윗대 증조,고조 할아버지대까지 

   (* 엄밀하게 말하면 그땐 서울은 아니고 아마 경기 북부지역이었다 

     나중에 서울에 편입된 지역으로 알고있는데... - 뭐 지금 여기서 

     저희집안 내력,호구조사 할 일있는건 아니니 그 이야긴 여기까지만 하죠) 

   여하튼 중요한건...저나 아내나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라는 점이 

   솔직히 이게 이전에는 은근히...자랑거리고 자부심이었는데 

   막상 정치활동하고나서...이게 하나 도움 안되는거로구나 

   그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 얼핏 장모님...그러니까 아내의 친정어머니가 

   고향이 강원도 어디라고는 들어본 것 같은데 

   하지만...그냥 처가도 아니고 심지어 장모님 고향을 연고랍시고 

   강원도까지 끌어들여 출마하는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러느니...차라리 그냥 엄마 고향인 전남 OO에서 출마하는게 낫지 ^^;; 

   (* 고등학교 졸업후 한번도 가본적 없는 외가라는게 문제일뿐...) 

 

   정계에 입문한지 어느덧 20년 

   나는 어느덧 대한민국 

   5선 국회의원이 되어있다 

   그러고보니 결혼한지로부터도 어느덧 

   그 정도 시간이 흐른셈인데 

   지나간 시간이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글쎄...뭐라고 답은 못하곘다 

   일단 결혼생활은 지난 20년 

   아무런 문제없이 그럭저럭 지내왔고 

   아내와의 사이에 어느덧 아들 둘 

   그 아들 둘이 어느덧 고등학생,중학생인걸 생각하면 

   뭐 이런 결혼생활을 

   실패했느니 불행했느니 말한다는건 

   근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고 누가 들어도 이해해주지 

   않을 소리인거고 

 

   다만 정계에 입문해 지난 20년 

   더 막장이 되어간 우리나라 정치를 

   현실 정치인으로 지켜보는게 

   더 힘들고 괴로웠다는 말만 하고싶다 

   차라리 그냥 보통사랍이었으면 

   정치하는 X들이야 지들끼리 밥을 끓이든 죽을 끓이든 

   평범하게 그냥 내 생업에만 종사하고 살았었을텐데 

   그럴수가 없었던게 내 지난 20년 시간인걸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꿴것인지 

   거기서부터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북한 식량난,탈북자문제 

   이런거 관심갖기 시작한 거기서부터가 잘못된것인지 

   (* 애초에 그게 이 엄청난 정치갈등,이념갈등의 블랙홀속으로 

     밀어넣는 일이란걸 진작에 알았다면 

     나도 애초에 이짓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 저승사자를 만난다면 차라리 날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차리리 결혼도 안하고 자녀도 없었으면 

   어디가서 진짜 조용히 나혼자 이 생을 

   마감이라도 했을텐데 

   이제 아내도 있고 무엇보다 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 아, 글쎄 애초에 결혼을 한것부터가 잘못이래두 그러네 !!! 

     그냥 차라리 결혼도 안하고 연에도 안하고 혼자 속편히 살았으면 

     그럼 이런 고민 안해도 되는거잖아. 결혼 안하고 혼자 사는걸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판인걸...그걸 깨닫지 못했네 그려 ^^;;;;) 

 

   비대위원장도 잠시 맡았었다 

   그게 OO년 OO선거 한 6개월 앞둔 그 시점이지만 

   그때부터 OO선거 무렵까지 딱 6개월여 시간 

   그 짧은 시간동안만이라도 

   내 평생 정치 지론이었던 ’소통과 화합‘의 정치라도 

   나름 열정적으로 설파하고 싶어...정말 밤낮없이 뛰었다 

   뭐 결과적으로 그 선거도 우리당이 참패한만큼 

   나의 정치지론이라도 한바탕 원없이 설파하고팠던 

   그 생각마저도 여지없이 실패로 끝난셈이다 

   - 국민들은 내 소통과 화합의 정치 지론을 받아주지 않았다 

   OO선거 참패의 결과를 이렇게 결론내리는건 

   너무 지나친...판단일까 

   (* 예언(?)한것과 반대로 가면 그럼 이렇게 쓰면 

     금년 지방선거 OOOO이 이기겠네 ??? ^^;;;;) 

 

   그렇게 어느덧 20년 내 나이도 60이 넘었고 

   아무리 저출산 고령화 사회 어쩌구 해도 

   솔직히 나이 60 넘었으면...인생의 황혼길이다 

   이 나이에 다른 무슨일을 새로 벌일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다만 그저 허무하게 저 밤하늘만 바라볼뿐이다 

   도대체 내 인생 첫단추가 어디서부터 잘못 꿰인것인지 

   게다가...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내도 아이도 없어서 홀가분하게 이 세상 떠날 수 있을텐데 

   이제 처자식떄문에...그런 선택도 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놓여있다 

   정말이지...선녀와 나무꾼 주인공마냥 

   떠나고 싶어도 아이들 때문에 못 떠나는 

   그런 신세가 된거라고나 할까 

   종편속에 꽃피운 사랑의 결과는 그렇게 

   슬픈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