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깊은 어느 이름모를 남서해안의 항구 항구옆 어느 작은 선술집에서 17세의 엔카가수(저)는 남몰래 술잔을 기울입니다 살짝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밤깊은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면 저 바다건너 있는 어느 나라의 풍요로움과 풍악소리가 귓전에 환청처럼 들리는 듯 합니다 어떤이는 그런말을 하더군요 문화는...예술은... 대개는 결국 어느정도 배부르고 풍요로울 때 즐길수 있는 것이라구요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사람이...좀 등따습고 배부르고 사는데 여유가 생길 때 먹고사는 문제 외의 다른것들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게 인지상정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남다른 슬프고 한많고 억울한 역사 파란만장하고 격동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 그 시절의 한과 설움 사연들 또는 격동의 세월아 한 개개인의 삶을 어떤식으로 꿰뚫고 지나갔는지를 노래할수 있고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줄수 있는것이라고요 전생의 무슨 업보가 그리 있기에... 이 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그보다 더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끈이들이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에 비해 바다건너 어떤 반도국가는 그러고보면...우리가 한때 식민지 삼으며 짖밟고 즐기던 그런 나라라는데 지금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채 잘먹고 잘살고 있다 하더군요 상전벽해(桑田碧海)란게 바로 이런걸 두고 말하는것인지 한때 우리의 발밑에 있던 어떤 나라는 지금은 독립하여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고 그들을 짖밟고 조롱하던이들은 그 인과와 업연이라도 받는지 거듭되는 정치혼란과 가난속에서 슬픈 엔카나 듣고 즐기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연세 좀 드신 어르신들은 최소한 이십여전전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시간들에 그 나라를 짖밟고 조롱하던 그 시간들을 어제의 희열이자 추억이고 향수마냥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를 꼰대스럽고 장황하게 한바탕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만 전후(戰後)에 태어난 저희같은 어린 아이들은 겪어보지도 않았고 태어니가도 전에 있던일 그저 꿈같고 전설같은 이야기 나이많은 아저씨,할아버지들의 술취한 넋두리 정도로나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기 일본 남서해안 바다의 한 작은 술집에서 숨어살며 노래부르는 17세 슬픈 엔카가수는 이 섬나라 지난시절 슬프고 억울한 한과 사연을 노래로 지어부르며 그 시절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의 돈과 박수를 받으며 그 댓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제게도 가슴아픈 사연 한조각은 있습니다 그...격동의 정치적 격랑 한구석에서 이제 겨우 소학교 상급학년 나이가 되었던 어린소녀가 겪었던 그 격동의 시간 한구석에서 있었던 일을 가슴아픈 추억삼아 노래로 들려드릴까 합니다 내 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원죄와 업보로 그보다 더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라들에 의해 그 미래가 결정되었습니다 우선 전쟁의 죄과로...30년 식민지를 삼았던 나라를 토해내어(독립시켜주고) 지들끼리 살게 해주고 그리고 일본의 본토는 강대국들이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두 번다시 전쟁같은거 치르지 말라고 한 강대국들의 경고라고나 할까요 그로인해 이 나라의 반이 그 당시 소위 공산주의를 주도하는 나라에 의해 ‘북일본’이 되어 공산진영이 된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나라의 역사는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북일본은 일본천황의 먼 후예라는 - 실제로는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다는 자가 소련을 등에업고 집권하여 사실상 왕이나 황제 또는 그보다 더한 신격화로 1인 지배체제가 된 그런 나라가 되었고 북일본의 그렇게 꼬인 역사는 남일본의 역사도 함께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그래도 1940년... 반도를 독립시켜주고 우리는 반으로 갈라놓은 그 시점부터 일단 초창기 한 10년은 그런대로 형식적으로나마... - 아마 소위 자유진영 국가들의 관리하가 된 덕분인지 몰라도 초창기 10년은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져 그럭저럭 흘러갔습니다 하지만...내부적으론 계속되는 정치혼란과 특히 전쟁 주범들을 사회 기득권(정계,재계,군부등)에서 완전히 배세시켜야 한다는 학생데모와 재야의 움직임 그렇가 거듭되는 정치혼란,사회혼란이 거듭되다가 마침내는 이런식으로 가다 ‘공산주의’ 세상이 될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반공을 기치로 내건 군사쿠데타가 한 서너번정도 일어났다고 하네요 어른들 말씀으로는 50년데에 그런식의...쿠데타와 역쿠데타...또는 쿠데자 주도세력내의 알력과 파벌다툼으로 그렇개 50년대 10년이 정신없이 흘러가버렸고 60년데에 들어서 ‘마지막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집권세력은 무엇보다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갈수록 대중과 사회에 영향력이 커져가는 언론과 방송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언론과 방송의 역할을 국민계몽, 사회계몽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 방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명분하에 대대적인 언론과 방송 정리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언론은 그렇다치고...방송의 경우엔 그때까지 일본에 공영방송 NHK외에 TV와 라디오를 하는 민간 상업방송이 서너개정도 있었던걸로 아는데 그걸 모두 NHK 공영방송으로 일절 통폐합시킨다는게 새로 집권한 군부 쿠데타 세력의 집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대적인 언론통폐합 작업은 60년대 초반 이제 겨우 소학년 4-5학년을 거쳐 6학년 졸업반으로 들어가는 제게도 크나큰 충격의 독화살이 되어 삼장과 가슴 한군데를 뚫고 지나가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선 전 어린시절부터...노래 좀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게다가 외모도 좀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추천과 권유가 있어 민간상업방송의 어린이 합창단원이 되었습니다 처음 어린이 합창단원이 되었을 때 그러고보면 초창기 그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이 총 인원은 50명 정도...그중 여자아이가 35명...남자아이는 열댓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채 순진하고 철없는 마음으로 시작된 민간방송의 어린이 합창단 생활 사실 다 똑같은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성격,취향은 다 제각각이라 그 많은 합창단 전원과 친하게 지낼수는 없는 법이고요 그렇게 합창단 생활을 시작해 한 몇 달 지내고보니 적당히 마음과 취향이 맞는 친구 두어명이 생겨 기오코...게이코...그리고 사유리 그리고 저까지 네명 한때 이 방송사 합창단원 사총사...사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넷이 정말 절친으로...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굳이 꼭 합창단 연습이나 공연일정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연습을 핑계로 사흘이 멀다하고 만나 우리끼리 밥도 사먹고...여기저기 놀러도 다녀보고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그렇게 마음껏 어울려 다녔죠. 그때 아직 나이 11-12세 정도 된 어린 소녀들이 사뭇 당도하게 이 다음이 나이 60-70넘은 할머니 될 때까지 이 우정 변치않게 해달라 서로 손꼭잡고 맹세도 하고 아무튼...그렇게 대략 소학교 4학년때 시작한 합창단 생활 6학년 끝날 무렵까지 대략 2년남짓 세상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어울리며 그랗게 살았던 것 샅았습니다. 게이코...기오코...그리고 사유리 그리고 저까지 네명 어린이 합창단이야 당연히 소학교 졸업하면 그만두게 되겠지만 그 이후에라도 음악활동을 계속하든 공부를 하든 또는 다른일을 하든 우리 우정많은 나중에 나이들어 할머니 될 때까지 변치말자던 나이 고작 11-12세때 같이 손잡고 했던 제법 진지하기까지 했던 그 맹세는 맹수의 발톱과도 같았던 정치적 격랑속에 허망하게 찢겨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애초 정권잡은 이들이 내린 지침은 그때까지 존재했던 3-4개 정도의 민간상업방송(* TV,라디오 모두 포함해서)을 공영방송 NHK로 통합시킨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아무리 방송을 국민계몽,사회교양 역할을 지향하게 하고 특히 방송을 통해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지 못하게 하는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대략 10-20년 넘게 별다른 문제없이 민간상업방송에서 일하던 종사자들에겐 청천벽력깥은 소식이었습니다 애초 권력자들의 방침은 무조건 흡수통합이었지만 NHK측은 그 많은 인원을 지금 한꺼번에 다 수용하는건 무리라며 인원을 다소 감축 내지는 구조조정하는 선에서 내부 지침을 또 따로 세웠다네요 일단 어린이 합창단의 경우엔 저희가 원래 소속되어있던 민간방송사는 50명 조금 넘는 규모 다른 방송사는 30-40명 정도 규모였더고 들었는데 다 받아주진 못하고 대략 열명 안팎선에서 간단한 테스트나 선별수리 작업을 통해 받아준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그건 어린이 합창단뿐만 아니라 성인 악단이나 무용단 합창단 그회 극회나 성우극회, 아나운서나 기자 그 외 방송스텝,직원들 거의 비슷한 기준이라 전부 다 NHK로 들어가진 못하고 대략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 인원만 받아준다는 방침이었죠 방침과 소식이 전해진날 이미 어린이 합창단원들은 모두 울고불고 난리였습니다 구체적인 방침이 내려오기전에 이미 합창단원들의 마음은 천갈래,만갈래 찢겨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합창단 더 이상 못하겠다...그냥 공부나 하겠다 혹은 엄마,아빠한테 말했더니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외국으로 나가자고 했다는 아이 실성이라도 한 듯 넋놓은채 아무말도 못하는 아이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 심지어 ‘차라라 죽고싶다’며 이제 겨우 소학교 4-5학년 어린아이 말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제각기 천갈래 만갈래로 찢겨지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우리 네 사람...사총사... 마치 그날 통폐합 방침이 전해진날 합창단원 분위기가 이미 그 운명을 예언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고나 할까요 통합방침이 전해지고 민간방송사들은 제각기 눈물의 고별방송을 보내고 그 다음날 공영방송 NHK는 눈치도 없이 그렇게 받아준 식구들과 함께 한참 즐거운 축하 팡파레를 울리고 있을 때 그리고 사흘쯤 지났을 때... 게이코가 먼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저한테 전화를 한 게이코 부모님의 말씀은 아침에 일어나라고 밥먹으라고 해도 반응이 없어 의아해서 들어가보니 이미 목을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 있다 하더군요 어린이 합창단을 더 이상 할수 없게된 소학교 6학년 어린이의 충격받은 자아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기오코와의 이별이었습니다 다만 자살한 게이코와는 달리 기오코 부모님은 한참 심각하게 앞으로의 일들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답니다 당시 기오코 아버지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사업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아마 학창시절 마당발이셨는지 역시 일본에 살거나 시집간 친구가 몇몇 있었는데 ‘거기서 고생하지 말고 미국으로 오라’는 친구나 선배들의 제안이 여러차례 있었나봅니다 따라서 고민꿑에...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이렇게 된 판에 더 이상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과 삶을 시작해보자 그렇게 설득했다고 하네요 기오코도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부모님뜻을 따르기로 했답니다 당시엔 아직 일본에서 미국까지 직행 비행기는 없던 시절이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한달정도 미국행 뱃길 항구에서 배웅하며 슬픈 이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가더라도 가끔 연락도 주고 편지도 하고 그래...’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국제전화도 쉽지 않았고 편지도 뭐...어차피 미국에서 온전히 정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을테니 기오코와의 이별도...어차피 이것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슬피 울었습니다 게이코에 이어 기오코까지... 이미 4총사의 맹세는 두 사람이 떠나버리고 나서 저와 사유리 둘밖에 남지 않은상황 저는 바로 사유리의 일이 걱정되어 찾아갔습니다 ‘행여 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돼 그까짓 합창단 더 못하게 되었으면 어때...다른 일을 하더라도 우리 우정은 변치 않기로 했잖아’ 그렇게 행여 사유리까지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그렇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건만 평상시 성격답지 않게 별로 말도 없고 대꾸도 없던 사유리 한달쯤 지났을 때 사유리의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건 것은 사유리와 세 살터울 언니 ‘혹시 사유리 어디있거나 어디갔는지 모르냐 ?’ 뭁어보더군요 - 참고로 게이코는 위로 오빠가 둘인 막내였고 기오코는 외동딸...저는 위로 언니가 둘인 막내입니다 저야 당연히 사유리 행방을 모른다고 답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바로 사유리의 집으로 달려갔고 어차피 사유리의 행방을 모르는건 둘 다 마찬가지인 처지라 백방으로 사유리 행방을 찾아다녀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유리의 행방과 소식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습니다 가출이라도 된것인지...실종이 된것인지... 아니면 유괴나 납치라도 된것인지... 어느쪽이든 사유리마저 잘못되면 그땐 정말 큰일이기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유리...너마저 잘못되면 안돼...’ 사유리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느 골목 한구석에 쪼그려앉아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슬피 울었습니다. 기오코...게이코...사유리... 합창단 시절 그렇게 4인방...혹은 4총사로 불리던 친구들은 그렇게 찢겨져나간 상처의 뒤안길에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라져버렸고 나중에 60-70 할머니 될 때까지 함께 하자던 10대 초반 소녀시절의 철없는 맹세는 더 이상 지킬수 없는 언약이 되어 허망하게 흩어져 버리고 저는 도쿄에 혼자 남았습니다 합창단은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는 것 외에 저는 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막상 그렇게 책상앞에 다시 앉으니 합창단 시절 3년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던걸까요 영어...수학...그외 기타... 소학교 시절엔 존재하지 않던 과목들을 마주대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적은 자연스레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저는 공부에도 흥미를 잃은채 저 혼자 휴일이나 쉬는날에 나들이나 여행을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2차대전 주도자란 책임으로 그 패전의 책임을 지고 1940년에 분단된 일본 남일본은 다행히 그래도 영국과 미국 관할이라 자유진영이 되었지만 소련의 치하로 들어간 훗카이토를 비롯한 아오모리...이와테...이키타...이와테...이자카와 그리고 미아키와 후쿠시마...니키타까지가 공산지하 북일본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남부지역 사람들은 그래도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중부지역에 사는 일본인중의 상당수는 북일본에 가족,친척이 있는...가족,친척 고향이 있어도 갈수도 없고 소식도 전할길 없는 이른바...이산가족...실향민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래도 군사분계선 인근 남일본 정부가 배려로 마련해준 망향각에 때되면 모여 북에 두고온 가족과 친척 고향을 그리는 모임을 갖기도 하고 그 광경이 무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아니면...같은 내 나라 동포가 겪는 망향과 실향의 아픔을 동병상련으로 느껴보려는것인지 혹은 어느 어설푼 문화 예술인이 그런 실향과 이산의 아픔을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으로 그려보려는 어설픈 오만과 치기인지 군사분계선 인근 망향각은 관광지 아닌 관광지가 된지 이미 십수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그곳을 찾는 것은 그렇게 합창단 해체의 아픔을 겪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는 사춘기 소녀의 이유없는 반항심인지 아니면 그런곳을 찾는 어르신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한번쯤 어루만져 드리고픈 순수한 소녀의 마음인지 아니면 그 외 또 알 수 없는... 미래를 잃어버린 어린 소녀의 정신분열적 행각이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공부가 손에 안 잡힐때는 이따금 여행삼아 이따금 군사분계선 인근 망향각을 찾곤 했습니다 - 어차피 시외버스로 그래봐야 한두시간 거리인데요 뭐 이미 중학교 1-2학년 정도 거리면 용돈모아 차비랑 점심값 해서 충분히 오갈수 있는 거리죠 뭐 그곳에서 우연히... 사연안고 이따금 망향각 찾는 어르신 두분을 만나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2차대전 책임으로 분단이 된지는 이미 20년 조금 넘는 세월 저는 분단이 된뒤 10년뒤에야 태어난 50년대 초반 태생이고 그곳에서 북에 있는 가족,친지를 그리워 해야할 나이라면 최소한 서른은 넘어야 정상인 것을... 나이어린 소녀가 이따금 이런곳을 찾는것에 의아해진 두 어르신이 제 손을 잠사 잡더군요 나이로 봐서 제가 직접 그런 사연이 있는건 아닐듯하고 부모님이나 그 윗대로라도 무슨 사연이 있는것인지 저는 뭐...그런건 아니고...그저 가끔 공부가 손에 안 잡힐 때 이곳을 여행삼아 찾아오곤 한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만난 두분중 이미 나이 40을 넘긴 아주머니로 고향은 일본 북부지역이고 위로 언니 밑으로 동생 둘이 더 있는데 하필 분단되기 딱 1년전 도쿄로 시집와서 북에있는 언니와 동생...그리고 부모님을 만날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시더군요 또 다른 일행은 역시 어느덧 나이 40 전후의 중년부인들인데 따님 3자매고 위로 오빠가 한분 더 있는데 역시 분단되기전 1930년대 후반에 돈벌러 북부 공잗지대로 떠난 오빠가 이후 더 이상 소식도 편지도 전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며 슬프게 울더이다 설사 사상과 이념 혹은 전쟁이나 주민동요 같은 문제가 있을수 있다 하더라도 그저 북에있는 가족한데...한달...아니 일년에 한번이라도 편지한장 소식한번이라도 전해줄수 있게만 해준다면 왜 그 조차도 못하게 하는거냐며 북의 공산독재도...남의 반공 군사정권도 모두 원망하며 처절하게 하염없이 우시더이다 그러고보면 한분은 4자매중 둘째로 세명의 자매와 생이별하고 혼자 남은 처지 또다른 삼자매는 위로 있는 오빠가 북으로 가버린 처지 비록 그분들처럼 분단과 이산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로부터 20여년뒤에 있던 정치적 격변상황에서 겪어야했던 또다른 아픔이 있는 제게 묘하게 동질감과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 그분들이 우실 때 함께 눈물 흘려드렸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중학교 생활이 끝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공부가 안되고 심란할 때 이따금 여행삼아 찾았던 망향각도 더 이상은 싫증이 났는지 이전처럼 그리 자추 찾게되진 않았는데 다시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심란할땐 그저 동네 뒷동산에 나가 구성지게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것 그래도 한때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었고 합창단이고 뭐고 그런건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되었고 할 의욕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내면의 끼만은 주체할수 없었던지 동네 뒷동산 올라서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게 그 당시 제 유일한 소일거리이자 답답한 속내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길이었다고나 할까요ㅕ 근데 그게 또다른 운명의 길로 안내할줄이야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저와는 비슷한 상처가 있는분이었는데 원래 민간상업방송에서 음악프로 피디를 하며 간간히 작곡활동도 하던 그런 분이라는데 그분 역시 언론통폐합으로 일자리를 잃은뒤 한 몇 년 방황의 시간을 갔다가 그때부터는 지방의 소극장이나 밤무대 혹은 선술집 같은데서 노래부를만한 가수를 찾는 그런 일종의...기획사 매니저랄까 그런일을 하는 분이었다고 하네요 사실 처음엔 혹시 사기꾼 아닌가 경계도 했습니다 무슨 아역배우를 시켜준다...합창단을 시켜준다 그런식으로 접근해서 어린 아이나 그 부모 금품을 갈취하려드는 그런 사기꾼 많다는 이야기 정도는 저 정도 위치면(*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출신) 충분히 귀동냥 정도로 들을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다행히 애초 경계했던 그런 사기꾼은 아닌듯했고 나름 제 노래실력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저는 솔직하 언론통폐합과 어린이 합창단 해체의 상처가 아직은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을때라 그 악몽과 상처를 다시 겪는게 두려워서라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헌데 뜻밖에도 그분 은근히 끈질긴 분이더군요 두 번,세번 저희집까지 찾아와 간곡히 설득하시더군요 그 와중에 – 아무래도 저희 부모님도 자연스레 만났을터이고 - 그렇기 언론통폐합때 폐방된 민간상업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란걸... 눈치없이(!!!) 우리 부모님이...그분에게 말해버린 모양입니다 그걸 알고나서 그분은 더더욱 끈질기게 절 찾아와 제안하시더이다 - 이번일은 방송국 같은데 출연하는 그런일 아니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상처가 있는 몸으로 NHK고 뭐고 그딴데 들어갈 생각 추호도 없다 대신 다른 무대에 설 기회를 줄터이니... 솔직히 그 재능...그 시간,,,이대로 썩히긴 아깝지 않냐 거듭되는 찾아옴과 설득에 아니면 애초에 제 고집이 그렇게까지 완고하고 강하진 못했던것인지 전 결국 무너지고 말았고 그분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그분이 틈틈이 작사,작곡한 노래 몇곡을 제 이름 음반으로 취입한다는 전제하여 테스트삼아 노래를 시켰습니다 엔카라는게 근본적으로 슬픈 노래고...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 어느덧 20여년 남다른 복잡하고 슬픈 역사를 지닌 이들의 한과 사연들이 그대로 스며들어서인지 이 시절 엔카는 그렇게 슬픈 가락과 함께 서글픈 사연들이 담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범삼아 제가 그 무렵 취입한 노래 몇 개를 보여드리자면 ‘밤깊은 항구에 홀로 서있는 나 / 누구를 찾기위해 이리 헤매나 보고싶은 그리운 사람 올리없는곳 / 나 혼자 그 무슨 미련이 많아 혼자 이리도 처연하고 쓸쓸헤가 / 헤매도는고 갈매기 구슬픈 소리마져 내 가슴 같아 / 이리도 아려오는데 기약없는 이별속에 떠난 그이는 / 이 밤이 지나도 올줄 모르고 지지않는 밤 오지않는 새벽 한가운데 / 영원히 정처없이 헤매이네 ’ - ‘깊은밤’이란 제목에 기약없는 이별, 오지않는 상봉으로 인해 마치 이 시간이 어둡고 깊은밤같은 이산의 한이 은근슬쩍 스며든 노래가사입니다 이런것도 있어요 ‘이 고장 눈은 왜 이리 미지근한지 / 만져봐도 춥지않고 가슴에 대봐도 싸늘한 느낌이 없구나 내 두고온 고향의 눈은 그토록 차고 시려워 / 깊은밤 잠든꿈이 한번에 사라질 지경이었는데 / 뜨뜻미지근하고 자주 찾지도 않는 눈은 애매한 눈물처럼 질척거리네 이 고장 겨울은 춥지도 않아 / 겨울도 봄같지 않고 봄은 겨울같지 않네 타향이 고향같지 않고 고향도 타향같지 않아 / 그 어느곳 발붙이지 못하고 헤매이는 몸 / 언제나 다시 갈 수 있는 고향길일까 기약없는 이별은 한으로 남는데 / 가슴시린 사연 한자락 마음붙일곳 없어 북녘의 그 춥던 겨울만 못내 그리워하며 / 질퍽거리는 눈물만 공연히 발에 채이네 - 겨울...하지만 북일본의 겨울처럼 춥지않은 이 고장의 눈에 빗대 고향잃고 어정쩡하게 헤매이는 나그네의 사연을 노래한 것이랍니다. 하나 더 소개해 드릴까요 ’세월이 가면 우리는 늙네 / 시간을 멈출줄 아는자 어디에도 없어 고향길 갈때까지 잠시 멈춰줄수 있다면 / 그 얼마나 고마움일까 부질없는 소밍인줄 알면서 자꾸만 미련두는건 / 갈 수 없는 고향과 무심한 세월때문 / 아아...그 어떤 사자(使者)가 정녕 이 마음을 안다면 세월은 멈추게 하고 늙음은 기다리게 해준다면 / 무슨 소망이 더 있을꼬 시간이 가면 우리는 아네 / 언젠가 죽음의 사자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는 것을 / 고향길 막힌 비통한 심정은 커져만 가는데 시간이 더 가면 그땐 아예 지칠까 / 무정한 사자는 야속도 하게 저만치 발자욱소리 다가오는데 / 늙음은 싫소 세월만 멈추게 해다오 사자여 제발 그 발자욱소리 / 지금말고 조금만 더 있다가 어차피 지지않는 밤 오지않는 새벽이라면 / 시간도 멈추게 해줄순 없겠소 아아...정녕 슬픈인연...구슬픈 사연 / 무정한 운명의 신은 사자만 보낼뿐 늙은이의 아픈 사연은 조금도 봐주지를 않네‘ - 고향과 가족을 잃고 무심한 세월속에 늙어가는 어떤이의 사연을 담은 노래입니다. 막상 그렇게 17세에 엔카가수로 데뷔하고 나니 나이어린 소녀가수가 이산과 실향의 아픔 그리고 그리움과 이별,상실의 아픔을 가슴깊이 노래하는게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는지 혹은 나이많은 어르신들의 가슴을 울렸는지 주로 밤무대나 선술집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저를 나이드신 할아버지는...고향의 부모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며 손을 잡고 한참을 우시다 가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나이어린 친구가 참 기특하다며 돈을 몇푼 더 얹어주시기도 하는등 17세에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가수 밤무대와 선술집올 오가는 무명가수로서의 수입은 그런대로 짭짤했습니다 절 데뷔시켜준 피디겸 매니저분도 자신의 사람 알아보고 스타로 유망한이 일아보는 눈이 제법 주효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 때문인지 ’내 말 듣기 잘하지 않았냐 ?‘며 뿌듯해 하시기도 하더군요 어쨌거나 저도 어느덧 17-18세 그 시절의 시간은 학교 공부보단 밤무대,선술집 공연을 오가며 돈 버는데 더 재미가 들려 그저 이걸 젊은시절 잠시의 치기로 해보는게 아닌 이대로 그냥 이대로 엔카가수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들더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나이는 어린 나이인지 막상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휴식을 취할때면 보통은 그냥 만화책 보다 잠드는게 제 일상중 하나였습니다 그러고보면 그 시절 일본은 엔카 외에도 한참 만화열풍이 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일단 어린이,청소년들이 즐겨보는 만화의 주제는 대충 구분하면 크게 세가지 정도로 분류할수 있었습니다 우선 남자애들이 즐겨보는 주로...외계에서 쳐들어오는 악당을 지구의 정의의 용사들이 무찌르는 로봇만화 여자애들이 즐겨보는 주로 판타지로 이국적인 분위기하에서 나이어린 소녀나 공주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국이나 신분높은 왕자와 사랑을 이루는 그런 순정만화 – 특히 이런식의 순정만화 여주인공은 ’출생의 비밀‘ 같은게 양념처럼 들어가 있더군요 아니면 그냥 천애고아나 빈털터리 가난한집 혹은 신분 낮은 천한집안 소녀로 설정하든가 또 그 외에 4차원이나 타임머신 혹은 평행우주 같은 것을 다루는 다소 황당하지만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신비로운 환상을 심어주기 충분한 그런류의 만화도 있었습니다 한참 어린이,청소년 만화가 붐을 이루자 TV에서도 어린이 시간대에 그런 만화를 원작으로한 만화영화를 직접 제작해 방영해주기도 한다던데... 이 시절 정권에서 의도적으로 만화산업과 캐릭터 산업을 육셩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기도 했습니다 사실...이른바 반정부나 재야 성향이 강한이들인 정부가 만화산업을 육성하는 이유가 어린이,청소년들이 정치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라고도 하고 또 비슷한 맥락으로...역시 다른 이상한 정치,사상 같은데 물들지 않게 애초에 어린시절 초장부터 황당무계한 로봇만화나 순정만화 혹은 타임머신이나 4차원,판타지물을 다루는 공상만화에 확실하게 눈과귀를 사로잡히게 하자 그런 의도가 있는거라 비난하기도 했지만 전 뭐 그 시절...무슨 그런 복잡한 정치문제 크게 관심가질 나이나 상황은 아닌 주로 밤무대와 선술집을 오가는 17세 무명가수일뿐 다만 그런류의 환타지 만화를 너무 즐겨본 탓인지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시절 어울리돈 기오코...게이코...그리고 사유리까지 여전히 이따금 혼자 상념에 잠기다보면 그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히지 않을수가 없는데 자살한 게이코나 이민간 기오코는 그렇다치고 갑자기 실종된 사유리는 어찌된것인지 그러고보면 이미 언론통폐합과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해체 그리고 사유리의 갑작스러운 실종까지가 벌써 한 5-6년의 시간이 흐른뒤인데 사실 사유리의 언니와 그 뒤에 몇 번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유리는 그때까지도 아직 실종상태로 생사여부를 알길이 없다고 하더이다 당시 들리는 소문으론 유괴범이나 불순세력... 또는 정부에서 납치해갔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 하지만 아무리 군사정권이라도 대놓고 반정부 활동이라도 하던 문화,예술계나 방송,연예가 인사쯤 된다면 모를까 그런 12세 밖에 안된 어린아이를 일부러 납치해서 해꼬지를 할 이유는 없을테고 또 어느어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느 지방의 정신병원에 장기 수감상태더라는 말까지 있던데 그 어느것 하나 정확한 사실여부는 명쾌하게 확인된게 없었습니다. 사유리는 과연 어떻게 된걸까... 그 당시 저는 공상과학 만화에 푹 빠진 17세 소녀답게 납치설이나 유괴설 정신병원 수감설같은 실제 떠도는 소문과는 별개로... 혹시 외계인에 납치되거나 4차원 평행우주 공간 같은데로 잘못 빨려들어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건 아닐지 그냥 혼자 밤에 별의별 상상을 다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일뿐 자살한 게이코...이민간 기오코와 달리 도저히 그 소식여부 확인할길이 없는 사유리의 소식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미궁속 그 자체로 궁금함과 의문만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세월은 어느덧 60년대를 지나 70년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대망(?)의 70년대로요 일단 정가에는 좀 변화가 생겼어요 일단 60년대 초반 그렇게 ’마지막 군사쿠데타‘격인 그 쿠데타를 일으켜 언론통폐합부터 한 정권이 어느덧 10년정도 집권한 시점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권을 이양한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70년대 초반에...실로 군사쿠데타가 있은지 대략 20여년만에 총선이 치러지고 새 총리가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부와 반공세력이 뒷받침이 된 자유민주주의라기보단 반공을 더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전체 의석 500석중 60% 이상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거대여당이 되었고 대략 70-80석 밖에 되지 않는 올망졸망한 여러 소수야당이 들어선 상황이라 정치권에서 그 이상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긴 쉽자 않았습니다 정치권은 거대여당의 날치기 통과와 야당의 실력저지 그리고 야당은 자기네들끼리의 분열과 파벌싸움으로 날밤을 지새 젊은층과 중도층은 그런 정치싸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치를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이른바 만화영화와 엔카를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원한다는 시책이 발표된것도 그 무렵(7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비록 군부의 지원을 받아 집권한 정치세력이언정 아마 보좌하는 비서진중 문화산업이나 수출입국 같은 문제에 탁월한 지략가라도 있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앞서 만화산업과 캐릭터산업 육성이 어린이,청소년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고 환상적인 꿈만 갖게되는 그런 ’국민우민화‘에 주효하다는 각성(?)이 있었는지 어느덧 NHK 하나만으론 그 많은 만화영화 수요 충당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늦어도 70년대 중반 개국 목표로 ’만화영화‘만 전문으로 만들어 방송하는 케이블 방송사를 하나 기획중이란 이야기가 특히 어린이,청소년 대상 소년신문이나 소년잡지엔 잔뜩이나 미화시켜 보도하고있어 글자그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한껏 기대와 꿈(?)에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정녕 문화산업이나 수출입국 욱성정책에 있어 나름 탁월한 지략가가 하나 생겨나 만들어진 정책방향인지 아니면...어느어느 강력한 반정부,재야인사들의 주장처럼 국민우민화...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공상과학에나 4차원,평행우주,타임머신,우주여행 같은데 잔뜩 헛바람만 불게 만들어 현실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애초에 이상한 사상이 주입되는 것을 원천 봉쇄시키려는 작전이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닌이상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어찌되었든 4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20년이 조금 넘었던 실로 길었던 군사정권 시절 일본은 여전히 남과북이 분단된채로 공산정권이 북부지역을 차지한 상황 가난과 독재,정치적 핍박에 시달리면서도 이어진 공화정조차도 반공 보수 거대여당의 탄생으로 더 이상 정치적 희망이나 변화를 기대할수 없는상황에서 만화영화와 엔카만 충만하게 넘쳐나는 기형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70년대 중반 어느 무렵... 그러고보니 17세에 엔카가수로 데뷔 어느덧 20대 중반으로 성장한 저는 작심한 듯 이웃나라들이나 한번 쭉 여행해 보기로 했었습니다 먼저...우리에게 30년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된 이후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반도국가 그 외...만주지역의 거란...여진...그리고 하북과 중원을 다스리고 있는 흉노와 그 주변 몇몇 작은 소국들까지 한바퀴 쭉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반도를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다녀보았고 그 외 나라들은...별다른 신통찮은...관심거리가 그리 많지 않아서였는지 대충 한 2-3일 정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보긴 했는데 그렇게 보름은 좀 넘게 20일은 채 안되는 대략 17-18일 정도의 일정으로 반도국가와 그 주변 만주나 하북,중원등의 여러나라를 돌아보고 온거죠 그중 가장 많은 일정을 소비한 첫 방문지인 반도국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먼저 이루며 우리보다 먼저 이루게 되었다는 그 나라 일주일 넘게 돌아본 제 솔직한 느낌은 그저...’그래, 잘사는 나라인가보다‘ 그 정도 느낌 그 이상 별다른 감홍이 없었습니다 뭐 일주일 정도 여행에서 특별히 그곳에서 가까이 지내는 친구,지인이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 나라 사람들과 얼마나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며 역사니 문화니 그런것들을 세세히 알게 되겠습니까만 일주일 방문한 잘사는 반도국가의 느낌은 그냥...뭔가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느낌 잘뻗은 고속도로와 빠르고 쾌적한 기차와 전철... 도시마다 자랑스럽게 우뚝 서있는 수많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단지 이 나라 사람들은 전부 디자이너만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예술적으로 잘만든 건물들...그 정도 빼놓고는 웬지...뭔가 사람들 표정이... 힘이 없고 기운이 빠지고...뭔가 지루하고 답답해하는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너무 잘살게 되어서 더 이상의 자극이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 더 가질게 없는것일까요 - 가령 세계에서 가장 높은산 정복하면 그 다음엔 정복할 산이 없는것처럼 아니면 그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자극받을일이 별로 없었기에 그저 잘사는 나라의 거대하기 돌아가는 기기의 작은 톱니바퀴처럼 그렇게 숨쉴틈 없는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만을 반복하고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방문한 그 나라는 그저 뭔가 사람들 표정이 힘이 없고 많이 지루하고 답답해하는 분위기더라...그 외엔 별다른 감홍이 없었습니다 그 외에 만주와 하북,중원을 차지하고 있는 거란...여진...흉노 그 외에 몇몇 작은 소국들은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싫을 것도 없는 그 정도 평이한 느낌 신기한게 있다면 일본은 섬나라라 외국을 가려면 필히 비행기를 타야하지만 반도에서 대륙의 국가들을 가려면 고속열차를 타면 되지 굳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점 언뜻 들은 이야기론 이 반도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유럽이나 아프리카 끝까지도 간다는 말도 있던데 뭐 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그 먼곳까지 그것도 기차타고 갈 필요성을 못느껴셔 20일이 채 안되는 반도국가와 주변국가 방문 여행일정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저에게는 어느덧 20대 중반 지나 후반으로 접어드는 그저그런 일본의 흔한 엔카가수의 일상이 지속될 뿐입니다. 오늘도 어느어느 지방의 밤무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바벨칠세(만화)‘ 시리즈 만화책 마지막장을 흥미롭게 넘겨보다 잠뜰 따름입니다
17세 엔카가수의 비애
밤깊은 어느
이름모를 남서해안의 항구
항구옆 어느 작은 선술집에서
17세의 엔카가수(저)는
남몰래 술잔을 기울입니다
살짝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밤깊은 바닷가에 우두커니 서면
저 바다건너 있는 어느 나라의
풍요로움과 풍악소리가
귓전에 환청처럼 들리는 듯 합니다
어떤이는 그런말을 하더군요
문화는...예술은...
대개는 결국 어느정도 배부르고 풍요로울 때
즐길수 있는 것이라구요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사람이...좀 등따습고 배부르고
사는데 여유가 생길 때
먹고사는 문제 외의 다른것들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게 인지상정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남다른 슬프고 한많고 억울한 역사
파란만장하고 격동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
그 시절의 한과 설움 사연들
또는 격동의 세월아 한 개개인의 삶을
어떤식으로 꿰뚫고 지나갔는지를
노래할수 있고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줄수 있는것이라고요
전생의 무슨 업보가 그리 있기에...
이 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그보다 더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끈이들이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에 비해 바다건너 어떤 반도국가는
그러고보면...우리가 한때 식민지 삼으며
짖밟고 즐기던 그런 나라라는데
지금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룬채
잘먹고 잘살고 있다 하더군요
상전벽해(桑田碧海)란게 바로
이런걸 두고 말하는것인지
한때 우리의 발밑에 있던 어떤 나라는
지금은 독립하여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고
그들을 짖밟고 조롱하던이들은
그 인과와 업연이라도 받는지
거듭되는 정치혼란과 가난속에서
슬픈 엔카나 듣고 즐기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연세 좀 드신 어르신들은
최소한 이십여전전 아니 그보다 더 이전의 시간들에
그 나라를 짖밟고 조롱하던 그 시간들을
어제의 희열이자 추억이고 향수마냥
아직도 그때의 이야기를
꼰대스럽고 장황하게 한바탕 무용담처럼 늘어놓지만
전후(戰後)에 태어난 저희같은 어린 아이들은
겪어보지도 않았고 태어니가도 전에 있던일
그저 꿈같고 전설같은 이야기
나이많은 아저씨,할아버지들의 술취한 넋두리 정도로나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여기 일본 남서해안 바다의 한 작은 술집에서 숨어살며
노래부르는 17세 슬픈 엔카가수는
이 섬나라 지난시절 슬프고 억울한 한과 사연을
노래로 지어부르며 그 시절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의
돈과 박수를 받으며 그 댓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제게도
가슴아픈 사연 한조각은 있습니다
그...격동의 정치적 격랑 한구석에서
이제 겨우 소학교 상급학년 나이가 되었던 어린소녀가
겪었던 그 격동의 시간 한구석에서
있었던 일을 가슴아픈 추억삼아
노래로 들려드릴까 합니다
내 나라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원죄와 업보로
그보다 더 큰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라들에 의해
그 미래가 결정되었습니다
우선 전쟁의 죄과로...30년 식민지를 삼았던 나라를
토해내어(독립시켜주고)
지들끼리 살게 해주고
그리고 일본의 본토는 강대국들이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두 번다시 전쟁같은거 치르지 말라고 한
강대국들의 경고라고나 할까요
그로인해 이 나라의 반이
그 당시 소위 공산주의를 주도하는 나라에 의해
‘북일본’이 되어 공산진영이 된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나라의 역사는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북일본은 일본천황의 먼 후예라는
- 실제로는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다는
자가 소련을 등에업고 집권하여 사실상 왕이나 황제
또는 그보다 더한 신격화로 1인 지배체제가 된
그런 나라가 되었고
북일본의 그렇게 꼬인 역사는
남일본의 역사도 함께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일단 그래도 1940년...
반도를 독립시켜주고 우리는 반으로 갈라놓은 그 시점부터
일단 초창기 한 10년은 그런대로
형식적으로나마... - 아마 소위 자유진영 국가들의
관리하가 된 덕분인지 몰라도
초창기 10년은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 체제가 만들어져
그럭저럭 흘러갔습니다
하지만...내부적으론 계속되는 정치혼란과
특히 전쟁 주범들을 사회 기득권(정계,재계,군부등)에서
완전히 배세시켜야 한다는 학생데모와 재야의 움직임
그렇가 거듭되는 정치혼란,사회혼란이 거듭되다가
마침내는 이런식으로 가다 ‘공산주의’ 세상이 될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반공을 기치로 내건 군사쿠데타가
한 서너번정도 일어났다고 하네요
어른들 말씀으로는 50년데에
그런식의...쿠데타와 역쿠데타...또는 쿠데자 주도세력내의
알력과 파벌다툼으로
그렇개 50년대 10년이 정신없이 흘러가버렸고
60년데에 들어서
‘마지막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집권세력은
무엇보다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갈수록 대중과 사회에 영향력이 커져가는
언론과 방송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언론과 방송의 역할을
국민계몽, 사회계몽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 방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명분하에
대대적인 언론과 방송 정리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언론은 그렇다치고...방송의 경우엔
그때까지 일본에 공영방송 NHK외에
TV와 라디오를 하는 민간 상업방송이
서너개정도 있었던걸로 아는데
그걸 모두 NHK 공영방송으로 일절 통폐합시킨다는게
새로 집권한 군부 쿠데타 세력의 집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대적인 언론통폐합 작업은
60년대 초반 이제 겨우 소학년 4-5학년을 거쳐
6학년 졸업반으로 들어가는 제게도
크나큰 충격의 독화살이 되어
삼장과 가슴 한군데를 뚫고 지나가는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선 전 어린시절부터...노래 좀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게다가 외모도 좀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추천과 권유가 있어
민간상업방송의 어린이 합창단원이 되었습니다
처음 어린이 합창단원이 되었을 때
그러고보면 초창기 그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이
총 인원은 50명 정도...그중 여자아이가 35명...남자아이는
열댓명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채 순진하고 철없는 마음으로
시작된 민간방송의 어린이 합창단 생활
사실 다 똑같은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성격,취향은 다 제각각이라
그 많은 합창단 전원과 친하게 지낼수는 없는 법이고요
그렇게 합창단 생활을 시작해 한 몇 달 지내고보니
적당히 마음과 취향이 맞는 친구 두어명이 생겨
기오코...게이코...그리고 사유리
그리고 저까지 네명
한때 이 방송사 합창단원 사총사...사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넷이 정말 절친으로...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굳이 꼭 합창단 연습이나 공연일정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연습을 핑계로 사흘이 멀다하고 만나 우리끼리
밥도 사먹고...여기저기 놀러도 다녀보고
그야말로 세상물정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그렇게
마음껏 어울려 다녔죠.
그때 아직 나이 11-12세 정도 된 어린 소녀들이
사뭇 당도하게 이 다음이 나이 60-70넘은 할머니 될 때까지
이 우정 변치않게 해달라 서로 손꼭잡고 맹세도 하고
아무튼...그렇게 대략 소학교 4학년때 시작한 합창단 생활
6학년 끝날 무렵까지 대략 2년남짓
세상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어울리며
그랗게 살았던 것 샅았습니다.
게이코...기오코...그리고 사유리
그리고 저까지 네명
어린이 합창단이야 당연히 소학교 졸업하면 그만두게 되겠지만
그 이후에라도 음악활동을 계속하든 공부를 하든
또는 다른일을 하든
우리 우정많은 나중에 나이들어 할머니 될 때까지
변치말자던
나이 고작 11-12세때 같이 손잡고 했던
제법 진지하기까지 했던 그 맹세는
맹수의 발톱과도 같았던 정치적 격랑속에
허망하게 찢겨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애초 정권잡은 이들이 내린 지침은
그때까지 존재했던 3-4개 정도의 민간상업방송(* TV,라디오 모두 포함해서)을
공영방송 NHK로 통합시킨다는 방침이었습니다
아무리 방송을 국민계몽,사회교양 역할을 지향하게 하고
특히 방송을 통해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지 못하게 하는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대략 10-20년 넘게 별다른 문제없이
민간상업방송에서 일하던 종사자들에겐
청천벽력깥은 소식이었습니다
애초 권력자들의 방침은 무조건 흡수통합이었지만
NHK측은 그 많은 인원을 지금 한꺼번에 다 수용하는건 무리라며
인원을 다소 감축 내지는 구조조정하는 선에서
내부 지침을 또 따로 세웠다네요
일단 어린이 합창단의 경우엔 저희가 원래 소속되어있던
민간방송사는 50명 조금 넘는 규모
다른 방송사는 30-40명 정도 규모였더고 들었는데
다 받아주진 못하고 대략 열명 안팎선에서
간단한 테스트나 선별수리 작업을 통해
받아준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그건 어린이 합창단뿐만 아니라 성인 악단이나 무용단 합창단
그회 극회나 성우극회, 아나운서나 기자 그 외 방송스텝,직원들
거의 비슷한 기준이라
전부 다 NHK로 들어가진 못하고
대략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 인원만
받아준다는 방침이었죠
방침과 소식이 전해진날
이미 어린이 합창단원들은 모두 울고불고 난리였습니다
구체적인 방침이 내려오기전에
이미 합창단원들의 마음은 천갈래,만갈래 찢겨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합창단 더 이상 못하겠다...그냥 공부나 하겠다
혹은 엄마,아빠한테 말했더니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거나
외국으로 나가자고 했다는 아이
실성이라도 한 듯 넋놓은채 아무말도 못하는 아이
그저 울기만 하는 아이...
심지어 ‘차라라 죽고싶다’며 이제 겨우 소학교 4-5학년 어린아이 말로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미
제각기 천갈래 만갈래로 찢겨지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우리 네 사람...사총사...
마치 그날 통폐합 방침이 전해진날 합창단원 분위기가
이미 그 운명을 예언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고나 할까요
통합방침이 전해지고
민간방송사들은 제각기 눈물의 고별방송을 보내고
그 다음날
공영방송 NHK는 눈치도 없이 그렇게 받아준 식구들과 함께
한참 즐거운 축하 팡파레를 울리고 있을 때
그리고 사흘쯤 지났을 때...
게이코가 먼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저한테 전화를 한 게이코 부모님의 말씀은
아침에 일어나라고 밥먹으라고 해도 반응이 없어
의아해서 들어가보니
이미 목을맨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어 있다 하더군요
어린이 합창단을 더 이상 할수 없게된
소학교 6학년 어린이의 충격받은 자아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기오코와의 이별이었습니다
다만 자살한 게이코와는 달리
기오코 부모님은 한참 심각하게
앞으로의 일들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답니다
당시 기오코 아버지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사업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아마 학창시절 마당발이셨는지
역시 일본에 살거나 시집간 친구가 몇몇 있었는데
‘거기서 고생하지 말고 미국으로 오라’는 친구나 선배들의 제안이
여러차례 있었나봅니다
따라서 고민꿑에...하나밖에 없는 딸까지 이렇게 된 판에
더 이상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과 삶을 시작해보자
그렇게 설득했다고 하네요
기오코도 어차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부모님뜻을 따르기로 했답니다
당시엔 아직 일본에서 미국까지 직행 비행기는 없던 시절이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한달정도 미국행 뱃길
항구에서 배웅하며 슬픈 이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가더라도 가끔 연락도 주고 편지도 하고 그래...’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국제전화도 쉽지 않았고
편지도 뭐...어차피 미국에서 온전히 정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을테니
기오코와의 이별도...어차피 이것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슬피 울었습니다
게이코에 이어 기오코까지...
이미 4총사의 맹세는 두 사람이 떠나버리고 나서
저와 사유리 둘밖에 남지 않은상황
저는 바로 사유리의 일이 걱정되어 찾아갔습니다
‘행여 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돼
그까짓 합창단 더 못하게 되었으면 어때...다른 일을 하더라도
우리 우정은 변치 않기로 했잖아’
그렇게 행여 사유리까지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그렇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건만
평상시 성격답지 않게 별로 말도 없고 대꾸도 없던 사유리
한달쯤 지났을 때
사유리의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건 것은 사유리와 세 살터울 언니
‘혹시 사유리 어디있거나 어디갔는지 모르냐 ?’
뭁어보더군요
- 참고로 게이코는 위로 오빠가 둘인 막내였고
기오코는 외동딸...저는 위로 언니가 둘인 막내입니다
저야 당연히 사유리 행방을 모른다고 답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바로 사유리의 집으로 달려갔고
어차피 사유리의 행방을 모르는건 둘 다 마찬가지인 처지라
백방으로 사유리 행방을 찾아다녀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유리의 행방과 소식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습니다
가출이라도 된것인지...실종이 된것인지...
아니면 유괴나 납치라도 된것인지...
어느쪽이든 사유리마저 잘못되면 그땐 정말 큰일이기에
눈앞이 아득해지고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유리...너마저 잘못되면 안돼...’
사유리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느 골목 한구석에 쪼그려앉아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슬피 울었습니다.
기오코...게이코...사유리...
합창단 시절 그렇게 4인방...혹은 4총사로 불리던
친구들은 그렇게 찢겨져나간 상처의 뒤안길에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사라져버렸고
나중에 60-70 할머니 될 때까지 함께 하자던
10대 초반 소녀시절의 철없는 맹세는
더 이상 지킬수 없는 언약이 되어 허망하게 흩어져 버리고
저는 도쿄에 혼자 남았습니다
합창단은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하는 것 외에
저는 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막상 그렇게 책상앞에 다시 앉으니
합창단 시절 3년의 공백이 생각보다 컸던걸까요
영어...수학...그외 기타...
소학교 시절엔 존재하지 않던 과목들을 마주대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적은 자연스레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저는 공부에도 흥미를 잃은채
저 혼자 휴일이나 쉬는날에 나들이나 여행을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2차대전 주도자란 책임으로
그 패전의 책임을 지고 1940년에 분단된 일본
남일본은 다행히 그래도 영국과 미국 관할이라
자유진영이 되었지만
소련의 치하로 들어간
훗카이토를 비롯한
아오모리...이와테...이키타...이와테...이자카와
그리고 미아키와 후쿠시마...니키타까지가
공산지하 북일본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남부지역 사람들은 그래도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중부지역에 사는 일본인중의 상당수는
북일본에 가족,친척이 있는...가족,친척 고향이 있어도
갈수도 없고 소식도 전할길 없는
이른바...이산가족...실향민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래도 군사분계선 인근 남일본 정부가 배려로 마련해준
망향각에 때되면 모여
북에 두고온 가족과 친척 고향을 그리는
모임을 갖기도 하고
그 광경이 무슨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지
아니면...같은 내 나라 동포가 겪는 망향과 실향의 아픔을
동병상련으로 느껴보려는것인지
혹은 어느 어설푼 문화 예술인이 그런 실향과 이산의 아픔을
글이나 그림이나 음악으로 그려보려는
어설픈 오만과 치기인지
군사분계선 인근 망향각은
관광지 아닌 관광지가 된지 이미
십수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그곳을 찾는 것은
그렇게 합창단 해체의 아픔을 겪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는 사춘기 소녀의
이유없는 반항심인지
아니면 그런곳을 찾는 어르신들의 아픔이나 슬픔을
한번쯤 어루만져 드리고픈 순수한 소녀의 마음인지
아니면 그 외 또 알 수 없는...
미래를 잃어버린 어린 소녀의 정신분열적 행각이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공부가 손에 안 잡힐때는 이따금
여행삼아 이따금 군사분계선 인근 망향각을
찾곤 했습니다
- 어차피 시외버스로 그래봐야 한두시간 거리인데요 뭐
이미 중학교 1-2학년 정도 거리면
용돈모아 차비랑 점심값 해서
충분히 오갈수 있는 거리죠 뭐
그곳에서 우연히...
사연안고 이따금 망향각 찾는
어르신 두분을 만나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2차대전 책임으로 분단이 된지는
이미 20년 조금 넘는 세월
저는 분단이 된뒤 10년뒤에야 태어난 50년대 초반 태생이고
그곳에서 북에 있는 가족,친지를 그리워 해야할 나이라면
최소한 서른은 넘어야 정상인 것을...
나이어린 소녀가 이따금 이런곳을 찾는것에 의아해진 두 어르신이
제 손을 잠사 잡더군요
나이로 봐서 제가 직접 그런 사연이 있는건 아닐듯하고
부모님이나 그 윗대로라도 무슨 사연이 있는것인지
저는 뭐...그런건 아니고...그저 가끔 공부가 손에 안 잡힐 때
이곳을 여행삼아 찾아오곤 한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만난 두분중 이미 나이 40을 넘긴 아주머니로
고향은 일본 북부지역이고 위로 언니 밑으로 동생 둘이 더 있는데
하필 분단되기 딱 1년전 도쿄로 시집와서
북에있는 언니와 동생...그리고 부모님을
만날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시더군요
또 다른 일행은 역시 어느덧 나이 40 전후의 중년부인들인데
따님 3자매고 위로 오빠가 한분 더 있는데
역시 분단되기전 1930년대 후반에
돈벌러 북부 공잗지대로 떠난 오빠가
이후 더 이상 소식도 편지도 전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며
슬프게 울더이다
설사 사상과 이념 혹은 전쟁이나 주민동요 같은 문제가
있을수 있다 하더라도
그저 북에있는 가족한데...한달...아니 일년에 한번이라도
편지한장 소식한번이라도 전해줄수 있게만 해준다면
왜 그 조차도 못하게 하는거냐며
북의 공산독재도...남의 반공 군사정권도
모두 원망하며 처절하게 하염없이 우시더이다
그러고보면 한분은 4자매중 둘째로 세명의 자매와 생이별하고
혼자 남은 처지
또다른 삼자매는 위로 있는 오빠가 북으로 가버린 처지
비록 그분들처럼 분단과 이산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로부터 20여년뒤에 있던 정치적 격변상황에서
겪어야했던 또다른 아픔이 있는 제게
묘하게 동질감과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
그분들이 우실 때
함께 눈물 흘려드렸습니다.
그러다 어느덧 중학교 생활이 끝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공부가 안되고 심란할 때 이따금 여행삼아 찾았던 망향각도
더 이상은 싫증이 났는지 이전처럼
그리 자추 찾게되진 않았는데
다시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심란할땐 그저 동네 뒷동산에 나가 구성지게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 것
그래도 한때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었고
합창단이고 뭐고 그런건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되었고
할 의욕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내면의 끼만은 주체할수 없었던지
동네 뒷동산 올라서 한바탕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는게
그 당시 제 유일한 소일거리이자
답답한 속내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길이었다고나 할까요ㅕ
근데 그게 또다른
운명의 길로 안내할줄이야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대충 저와는 비슷한 상처가 있는분이었는데
원래 민간상업방송에서 음악프로 피디를 하며
간간히 작곡활동도 하던 그런 분이라는데
그분 역시 언론통폐합으로 일자리를 잃은뒤
한 몇 년 방황의 시간을 갔다가
그때부터는 지방의 소극장이나 밤무대 혹은 선술집 같은데서
노래부를만한 가수를 찾는
그런 일종의...기획사 매니저랄까
그런일을 하는 분이었다고 하네요
사실 처음엔 혹시 사기꾼 아닌가 경계도 했습니다
무슨 아역배우를 시켜준다...합창단을 시켜준다 그런식으로
접근해서 어린 아이나 그 부모 금품을 갈취하려드는
그런 사기꾼 많다는 이야기 정도는
저 정도 위치면(*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출신) 충분히
귀동냥 정도로 들을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다행히 애초 경계했던 그런 사기꾼은 아닌듯했고
나름 제 노래실력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저는 솔직하 언론통폐합과 어린이 합창단 해체의 상처가
아직은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을때라
그 악몽과 상처를 다시 겪는게 두려워서라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헌데 뜻밖에도 그분
은근히 끈질긴 분이더군요
두 번,세번 저희집까지 찾아와 간곡히 설득하시더군요
그 와중에 – 아무래도 저희 부모님도 자연스레 만났을터이고
- 그렇기 언론통폐합때 폐방된 민간상업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란걸...
눈치없이(!!!) 우리 부모님이...그분에게 말해버린 모양입니다
그걸 알고나서 그분은 더더욱 끈질기게
절 찾아와 제안하시더이다
- 이번일은 방송국 같은데 출연하는 그런일 아니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상처가 있는 몸으로 NHK고 뭐고
그딴데 들어갈 생각 추호도 없다
대신 다른 무대에 설 기회를 줄터이니...
솔직히 그 재능...그 시간,,,이대로 썩히긴 아깝지 않냐
거듭되는 찾아옴과 설득에
아니면 애초에 제 고집이 그렇게까지
완고하고 강하진 못했던것인지
전 결국 무너지고 말았고
그분의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그분이 틈틈이 작사,작곡한 노래 몇곡을
제 이름 음반으로 취입한다는 전제하여
테스트삼아 노래를 시켰습니다
엔카라는게 근본적으로 슬픈 노래고...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 어느덧 20여년 남다른
복잡하고 슬픈 역사를 지닌 이들의 한과 사연들이
그대로 스며들어서인지
이 시절 엔카는 그렇게 슬픈 가락과 함께
서글픈 사연들이 담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범삼아 제가 그 무렵 취입한 노래 몇 개를 보여드리자면
‘밤깊은 항구에 홀로 서있는 나 / 누구를 찾기위해 이리 헤매나
보고싶은 그리운 사람 올리없는곳 / 나 혼자 그 무슨 미련이 많아
혼자 이리도 처연하고 쓸쓸헤가 / 헤매도는고
갈매기 구슬픈 소리마져 내 가슴 같아 / 이리도 아려오는데
기약없는 이별속에 떠난 그이는 / 이 밤이 지나도 올줄 모르고
지지않는 밤 오지않는 새벽 한가운데 / 영원히 정처없이 헤매이네 ’
- ‘깊은밤’이란 제목에 기약없는 이별, 오지않는 상봉으로 인해
마치 이 시간이 어둡고 깊은밤같은 이산의 한이 은근슬쩍 스며든
노래가사입니다
이런것도 있어요
‘이 고장 눈은 왜 이리 미지근한지 / 만져봐도 춥지않고 가슴에 대봐도
싸늘한 느낌이 없구나
내 두고온 고향의 눈은 그토록 차고 시려워 / 깊은밤 잠든꿈이 한번에 사라질
지경이었는데 / 뜨뜻미지근하고 자주 찾지도 않는 눈은
애매한 눈물처럼 질척거리네
이 고장 겨울은 춥지도 않아 / 겨울도 봄같지 않고 봄은 겨울같지 않네
타향이 고향같지 않고 고향도 타향같지 않아 / 그 어느곳 발붙이지 못하고
헤매이는 몸 / 언제나 다시 갈 수 있는 고향길일까
기약없는 이별은 한으로 남는데 / 가슴시린 사연 한자락 마음붙일곳 없어
북녘의 그 춥던 겨울만 못내 그리워하며 / 질퍽거리는 눈물만 공연히 발에
채이네
- 겨울...하지만 북일본의 겨울처럼 춥지않은 이 고장의 눈에 빗대
고향잃고 어정쩡하게 헤매이는 나그네의 사연을 노래한 것이랍니다.
하나 더 소개해 드릴까요
’세월이 가면 우리는 늙네 / 시간을 멈출줄 아는자 어디에도 없어
고향길 갈때까지 잠시 멈춰줄수 있다면 / 그 얼마나 고마움일까
부질없는 소밍인줄 알면서 자꾸만 미련두는건 / 갈 수 없는 고향과
무심한 세월때문 / 아아...그 어떤 사자(使者)가 정녕 이 마음을 안다면
세월은 멈추게 하고 늙음은 기다리게 해준다면 / 무슨 소망이 더 있을꼬
시간이 가면 우리는 아네 / 언젠가 죽음의 사자 한걸음 한걸음
다가온다는 것을 / 고향길 막힌 비통한 심정은 커져만 가는데
시간이 더 가면 그땐 아예 지칠까 / 무정한 사자는 야속도 하게
저만치 발자욱소리 다가오는데 / 늙음은 싫소 세월만 멈추게 해다오
사자여 제발 그 발자욱소리 / 지금말고 조금만 더 있다가
어차피 지지않는 밤 오지않는 새벽이라면 / 시간도 멈추게 해줄순 없겠소
아아...정녕 슬픈인연...구슬픈 사연 / 무정한 운명의 신은 사자만 보낼뿐
늙은이의 아픈 사연은 조금도 봐주지를 않네‘
- 고향과 가족을 잃고 무심한 세월속에 늙어가는 어떤이의 사연을
담은 노래입니다.
막상 그렇게 17세에 엔카가수로 데뷔하고 나니
나이어린 소녀가수가 이산과 실향의 아픔
그리고 그리움과 이별,상실의 아픔을 가슴깊이 노래하는게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는지 혹은 나이많은 어르신들의
가슴을 울렸는지
주로 밤무대나 선술집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저를
나이드신 할아버지는...고향의 부모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같다며
손을 잡고 한참을 우시다 가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나이어린 친구가 참 기특하다며
돈을 몇푼 더 얹어주시기도 하는등
17세에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가수
밤무대와 선술집올 오가는 무명가수로서의 수입은
그런대로 짭짤했습니다
절 데뷔시켜준 피디겸 매니저분도
자신의 사람 알아보고 스타로 유망한이 일아보는 눈이
제법 주효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 때문인지
’내 말 듣기 잘하지 않았냐 ?‘며
뿌듯해 하시기도 하더군요
어쨌거나 저도 어느덧 17-18세 그 시절의 시간은
학교 공부보단 밤무대,선술집 공연을 오가며
돈 버는데 더 재미가 들려
그저 이걸 젊은시절 잠시의 치기로 해보는게 아닌
이대로 그냥 이대로 엔카가수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그 생각이 들더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나이는 어린 나이인지
막상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휴식을 취할때면
보통은 그냥 만화책 보다 잠드는게
제 일상중 하나였습니다
그러고보면 그 시절 일본은 엔카 외에도
한참 만화열풍이 일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는데
일단 어린이,청소년들이 즐겨보는 만화의 주제는
대충 구분하면 크게 세가지 정도로 분류할수 있었습니다
우선 남자애들이 즐겨보는 주로...외계에서 쳐들어오는 악당을
지구의 정의의 용사들이 무찌르는 로봇만화
여자애들이 즐겨보는 주로 판타지로 이국적인 분위기하에서
나이어린 소녀나 공주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적국이나 신분높은 왕자와 사랑을 이루는
그런 순정만화 – 특히 이런식의 순정만화 여주인공은
’출생의 비밀‘ 같은게 양념처럼 들어가 있더군요
아니면 그냥 천애고아나 빈털터리 가난한집 혹은
신분 낮은 천한집안 소녀로 설정하든가
또 그 외에 4차원이나 타임머신 혹은 평행우주 같은 것을 다루는
다소 황당하지만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신비로운 환상을 심어주기 충분한
그런류의 만화도 있었습니다
한참 어린이,청소년 만화가 붐을 이루자
TV에서도 어린이 시간대에 그런 만화를 원작으로한
만화영화를 직접 제작해 방영해주기도 한다던데...
이 시절 정권에서 의도적으로 만화산업과 캐릭터 산업을 육셩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기도 했습니다
사실...이른바 반정부나 재야 성향이 강한이들인
정부가 만화산업을 육성하는 이유가
어린이,청소년들이 정치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라고도 하고
또 비슷한 맥락으로...역시 다른 이상한 정치,사상 같은데 물들지 않게
애초에 어린시절 초장부터 황당무계한 로봇만화나 순정만화
혹은 타임머신이나 4차원,판타지물을 다루는 공상만화에
확실하게 눈과귀를 사로잡히게 하자
그런 의도가 있는거라 비난하기도 했지만
전 뭐 그 시절...무슨 그런 복잡한 정치문제 크게 관심가질 나이나 상황은 아닌
주로 밤무대와 선술집을 오가는 17세 무명가수일뿐
다만 그런류의 환타지 만화를 너무 즐겨본 탓인지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시절 어울리돈 기오코...게이코...그리고 사유리까지
여전히 이따금 혼자 상념에 잠기다보면
그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히지 않을수가 없는데
자살한 게이코나 이민간 기오코는 그렇다치고
갑자기 실종된 사유리는 어찌된것인지
그러고보면 이미 언론통폐합과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 해체
그리고 사유리의 갑작스러운 실종까지가
벌써 한 5-6년의 시간이 흐른뒤인데
사실 사유리의 언니와 그 뒤에 몇 번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유리는 그때까지도 아직 실종상태로
생사여부를 알길이 없다고 하더이다
당시 들리는 소문으론 유괴범이나 불순세력...
또는 정부에서 납치해갔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 하지만 아무리 군사정권이라도 대놓고 반정부 활동이라도 하던
문화,예술계나 방송,연예가 인사쯤 된다면 모를까
그런 12세 밖에 안된 어린아이를 일부러 납치해서
해꼬지를 할 이유는 없을테고
또 어느어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느 지방의 정신병원에 장기 수감상태더라는 말까지 있던데
그 어느것 하나 정확한 사실여부는 명쾌하게
확인된게 없었습니다.
사유리는 과연 어떻게 된걸까...
그 당시 저는 공상과학 만화에 푹 빠진 17세 소녀답게
납치설이나 유괴설 정신병원 수감설같은
실제 떠도는 소문과는 별개로...
혹시 외계인에 납치되거나 4차원 평행우주 공간 같은데로
잘못 빨려들어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건 아닐지
그냥 혼자 밤에 별의별 상상을 다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상은 어디까지나 상상일뿐
자살한 게이코...이민간 기오코와 달리
도저히 그 소식여부 확인할길이 없는 사유리의 소식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미궁속 그 자체로
궁금함과 의문만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세월은 어느덧 60년대를 지나
70년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대망(?)의 70년대로요
일단 정가에는 좀 변화가 생겼어요
일단 60년대 초반 그렇게
’마지막 군사쿠데타‘격인 그 쿠데타를 일으켜
언론통폐합부터 한 정권이
어느덧 10년정도 집권한 시점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정권을 이양한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70년대 초반에...실로 군사쿠데타가 있은지 대략 20여년만에
총선이 치러지고 새 총리가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군부와 반공세력이 뒷받침이 된
자유민주주의라기보단 반공을 더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전체 의석 500석중 60% 이상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거대여당이 되었고
대략 70-80석 밖에 되지 않는 올망졸망한
여러 소수야당이 들어선 상황이라
정치권에서 그 이상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긴
쉽자 않았습니다
정치권은 거대여당의 날치기 통과와 야당의 실력저지
그리고 야당은 자기네들끼리의 분열과 파벌싸움으로 날밤을 지새
젊은층과 중도층은 그런 정치싸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치를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이른바 만화영화와 엔카를
정부가 본격적으로 지원한다는 시책이 발표된것도
그 무렵(7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비록 군부의 지원을 받아 집권한 정치세력이언정
아마 보좌하는 비서진중 문화산업이나 수출입국 같은 문제에
탁월한 지략가라도 있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앞서 만화산업과 캐릭터산업 육성이
어린이,청소년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고 환상적인 꿈만 갖게되는
그런 ’국민우민화‘에 주효하다는 각성(?)이 있었는지
어느덧 NHK 하나만으론 그 많은 만화영화 수요 충당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늦어도 70년대 중반 개국 목표로
’만화영화‘만 전문으로 만들어 방송하는
케이블 방송사를 하나 기획중이란 이야기가
특히 어린이,청소년 대상 소년신문이나 소년잡지엔
잔뜩이나 미화시켜 보도하고있어
글자그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한껏 기대와 꿈(?)에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정녕
문화산업이나 수출입국 욱성정책에 있어
나름 탁월한 지략가가 하나 생겨나 만들어진 정책방향인지
아니면...어느어느 강력한 반정부,재야인사들의 주장처럼
국민우민화...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공상과학에나
4차원,평행우주,타임머신,우주여행 같은데
잔뜩 헛바람만 불게 만들어
현실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애초에 이상한 사상이 주입되는 것을
원천 봉쇄시키려는 작전이었는지는
당사자가 아닌이상 알 수 없는 일이지만요
어찌되었든
4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20년이 조금 넘었던 실로 길었던 군사정권 시절
일본은 여전히 남과북이 분단된채로 공산정권이 북부지역을
차지한 상황
가난과 독재,정치적 핍박에 시달리면서도
이어진 공화정조차도 반공 보수 거대여당의 탄생으로
더 이상 정치적 희망이나 변화를 기대할수 없는상황에서
만화영화와 엔카만 충만하게 넘쳐나는
기형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70년대 중반 어느 무렵...
그러고보니 17세에 엔카가수로 데뷔
어느덧 20대 중반으로 성장한 저는
작심한 듯 이웃나라들이나 한번 쭉
여행해 보기로 했었습니다
먼저...우리에게 30년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된 이후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반도국가
그 외...만주지역의 거란...여진...그리고 하북과 중원을 다스리고 있는
흉노와 그 주변 몇몇 작은 소국들까지
한바퀴 쭉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반도를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다녀보았고
그 외 나라들은...별다른 신통찮은...관심거리가 그리 많지 않아서였는지
대충 한 2-3일 정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돌아보긴 했는데
그렇게 보름은 좀 넘게 20일은 채 안되는 대략 17-18일 정도의 일정으로
반도국가와 그 주변 만주나 하북,중원등의
여러나라를 돌아보고 온거죠
그중 가장 많은 일정을 소비한 첫 방문지인 반도국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먼저 이루며 우리보다 먼저 이루게 되었다는 그 나라
일주일 넘게 돌아본 제 솔직한 느낌은
그저...’그래, 잘사는 나라인가보다‘ 그 정도 느낌
그 이상 별다른 감홍이 없었습니다
뭐 일주일 정도 여행에서 특별히 그곳에서 가까이 지내는
친구,지인이 있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 나라 사람들과 얼마나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며 역사니 문화니
그런것들을 세세히 알게 되겠습니까만
일주일 방문한 잘사는 반도국가의 느낌은
그냥...뭔가 답답하고 지루하다는 느낌
잘뻗은 고속도로와 빠르고 쾌적한 기차와 전철...
도시마다 자랑스럽게 우뚝 서있는 수많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단지
이 나라 사람들은 전부 디자이너만 있나 착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예술적으로 잘만든 건물들...그 정도 빼놓고는
웬지...뭔가 사람들 표정이...
힘이 없고 기운이 빠지고...뭔가 지루하고 답답해하는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너무 잘살게 되어서 더 이상의 자극이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 더 가질게 없는것일까요
- 가령 세계에서 가장 높은산 정복하면 그 다음엔 정복할 산이 없는것처럼
아니면 그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자극받을일이 별로 없었기에
그저 잘사는 나라의 거대하기 돌아가는 기기의 작은 톱니바퀴처럼
그렇게 숨쉴틈 없는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만을
반복하고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방문한 그 나라는
그저 뭔가 사람들 표정이 힘이 없고 많이 지루하고 답답해하는
분위기더라...그 외엔
별다른 감홍이 없었습니다
그 외에 만주와 하북,중원을 차지하고 있는
거란...여진...흉노 그 외에 몇몇 작은 소국들은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싫을 것도 없는 그 정도 평이한 느낌
신기한게 있다면 일본은 섬나라라 외국을 가려면
필히 비행기를 타야하지만
반도에서 대륙의 국가들을 가려면 고속열차를 타면 되지
굳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점
언뜻 들은 이야기론 이 반도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유럽이나 아프리카 끝까지도 간다는 말도 있던데
뭐 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그 먼곳까지
그것도 기차타고 갈 필요성을 못느껴셔
20일이 채 안되는 반도국가와 주변국가 방문 여행일정은
그렇게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저에게는
어느덧 20대 중반 지나 후반으로 접어드는
그저그런 일본의 흔한 엔카가수의 일상이
지속될 뿐입니다.
오늘도 어느어느 지방의 밤무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바벨칠세(만화)‘ 시리즈 만화책 마지막장을
흥미롭게 넘겨보다 잠뜰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