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벽기도와 빨간펜

남편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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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공황발작의 시작 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후반부에는 무엇보다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결혼 전 미래의 아내가 그 중심에 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의 아내는, 적어도 내 기대 속의 그 역할을 감당해 주지 못했다. 종종 새벽녘에 눈을 뜨면, 아직 오지도 않은 노후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함께 추억을 나누면서 정신적으로 공감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막연한 불안이 가슴을 짓누른다. 거동이 불편해진 노년의 내 모습, 혼자 누워 있는 침대 위의 적막한 풍경이 겹쳐질 때면 답답함과 숨 막힘 같은 공포가 순식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해 밀려온다. 이런 공포는 주로 잠에서 깬 직후나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찾아오고, 때로는 아무 예고 없이 오후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거나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한 상태 속에서도 최대한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애쓴다. ‘지금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것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은 내 상상일 뿐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앞당겨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타이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또 다시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남는다. 그로 인해 발작이 없는 평상시에도, 나는 늘 불안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2024-01-01(월) 식사 중 서러움 아내가 아이들을 맡기고 성가대로 간 이후(2023-11-19)부터, 나는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에도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다. 점심과 저녁을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에서 해결하며 버텼고 생각보다 그 비용은 많이 들었다. 고민 끝에 두 끼 중 한 끼만 먹어보기로 하고,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만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오늘 저녁, 배가고픈 상태에서 따뜻한 국을 한 숟가락 떠 넣는 순간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인데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이 텅 비어 있는 듯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겨우 참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도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이성을 되찾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눈물은 단순히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다. 책임과 피로, 그리고 관계의 소외가 겹겹이 쌓여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울컥함이었다. 그때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얼굴 예쁜 여자보다 손맛 좋은 여자랑 살아야 오래 간다.” “예쁜 여자는 잠깐이지만 음식 잘하는 여자는 평생 간다.” 그 말들이 왜 존재하는지, 왜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건 단지 음식의 맛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날 따뜻한 국물 한 숟가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내 마음 어딘가에 고여 있던 외로움과 그리움이 서러움으로 표현한 것이였다.
2024-01-02(화) 아내가 빨간펜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쯤, 아내가 나에게 뜬금없이 묻듯 말했다. “3년 안에 애터미(다단계)로 연봉 1억 벌까? 아니면 빨간펜(영업)으로 연봉 1억 벌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과거 도테라에 깊이 빠졌던 때가 떠오르면서, 또다시 다단계의 그림자가 우리 가정을 뒤덮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도 다단계를 할 생각이야?” 하지만 아내는 내 불안이나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결국 나는 한숨을 쉬며 “그래도 다단계보단 빨간펜이 낫겠지…”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지금은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게 먼저야. 막내가 중학생 될 때까지만이라도,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엔 집에 있어줘.” 나는 아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가족이 함께 안정되고 행복하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늘 내 바람과 반대로 흘렀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마저 자신의 일정으로 채우려 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혼자 남겨지는 모습은 늘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 아내는 일하러 다니는 나에게 "당신이 집에서 애들 보면 되지"라며 내 탓으로 돌리곤 했다.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손길이 절실할 나이인데, 아내는 정작 자신이 좋아서 낳은 아이들보다 하고 싶은 일이 더 우선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날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후 아내는 돈벌러가는게 아닌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빨간펜에 다닌다고 했다.
2024-01-02(화) 아이들과 새벽기도 때문에 이혼 결심 퇴근 후 저녁에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기도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04:40경, 아내가 첫째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려가려 할 때 나는 그 모습에 참다 못해 이혼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굳건히 첫째를 데리고 새벽기도에 갔다. 나는 집에 있으면 화가 날 것 같아 새벽에 출근을 했다. 19:20경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며, “애들이 새벽기도 다니는 건 이혼 사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하는 듯한 말투였다. 사실상 “당신이 이혼을 원해도 이혼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 후 아내는 매주 화요일마다 변함없이 새벽기도에 다녔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고, 우리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2024-01-02(화) 공황발작으로 정신과 방문1 최근 들어 공황 발작이 자주 나타나서,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문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그동안 마음속 깊이 눌러 담아왔던 아내와의 갈등을 하소연하듯 이야기했다. 40분가량 이어진 상담 속에서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듯한 순간도 있었다. 상담을 마친 뒤, 나는 일주일치 처방받은 약을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약을 복용한 후부터 여러 변화가 느껴졌다. 졸림과 멍한 기운이 있었고, 식욕과 성욕이 줄었으며 약간의 두통도 함께했다. 가끔은 금단 증상처럼 불안감이 몰려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갑자기 강해지기도 했다. 무기력감과 활력 저하도 심하게 느껴졌고, 평소와 다르게 담배를 피우는 일조차 귀찮아졌다. 이 모든 변화가 쌓이면서 문득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느 순간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낯선 감각이었다.
2024-01-06(토) 공황발작으로 정신과 방문2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낯선 감각이 계속되어, 결국 며칠 만에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현재 복용 중이던 약은 중단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대신 내 안에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강박적인 성향’, 즉 강박증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 해결될 일이 아니라 꾸준한 면담 치료,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대로 두면 나뿐 아니라 가족들도 심리적으로 지칠 수 있다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아내와 갈등이 있을 때, 그때그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서로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말이 쉽게 들리지 않았다. 예전에도 나는 여러 번 아내에게 내 진심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아내는 내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몰두했고, 결국 내가 전달하려던 말은 닿지 못한 채 엇갈리기만 했다. 내가 설명하려 했던 마음의 결이 아내에게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상담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2024-01-12(금) 아내에게  이날 아내가 나에게 불평 불만을 토로할때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 조건들이 불행한 게 아니라, 자기가 그 조건에 불만을 가져서 불행해지는 거야. 자기가 잘못 결정해서 이미 지어진 과보는 자기가 책임 있게 받아야 하고, 앞으로는 이런 결정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필요해. 자기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면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아.” 나는 진심으로 아내가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말은 아내에게 그렇게 닿지 않았다. 아내는 곧바로 자신을 비난하는 말로 받아들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말을 외면했고,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서로의 마음은 또 한 번 어긋나 있었다.
2024-01-18(목) 정관 수술 둘째가 태어난 후 2017년 4월 무렵부터 아내는 부부관계를 할 때마다 “애 생기면 낳을 거야. 나 결혼 전에 네 명 낳는다고 했지?”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 표현에는 묘한 압박과 협박 같은 기운이 깔려 있었다. 처음에는 흘려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내 마음에 작은 돌처럼 쌓여갔다. 이후 셋째가 태어난 2018년 9월 3일, 아내는 스스로 출산과 동시에 난관 결찰술을 받았다. 이후 주변사람들과 형님(내 누님)에게 “남편이 피임수술을 안 해서 내가 했다”며 나를 탓하는 듯 말해왔다. 이후 임신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어도, 부부관계 때마다 반복되는 그 말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수십 번 반복되는 말에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마침내 오늘, 정관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가 이미 피임수술을 했기 때문에 굳이 내가 추가로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1년 이내의 임신 확률은 0.5%도 되지 않고, 10년이 지나도 누적 임신율이 1.5% 정도라며 충분히 안정적인 피임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굳어진 상태였고 그렇게 수술은 받았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아내는 볼때면 둘째가 태어났을 때 아니, 첫째가 태어났을 때 바로 했어야 했는데 후회가 들었다. 수술 이후 아내는 더 이상 관계할 때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미 겪었으니 이제는 너도 겪어야 한다는 듯, 오로지 수술을 받기만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2024-01-30(화) 공황발작 04시 무렵 잠에서 깨어났고 아내를 깨울까봐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04시 45분, 아내는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는 05시쯤 매번 그렇듯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누워있다가 05시 40분경, 아무 예고도 없이 공황발작이 밀려왔다. 숨이 가빠지고 몸이 떨리며, 감기 몸살로 약해진 몸은 그 순간 더 큰 무력감에 휩싸였다. 한참을 버티다 결국 06시 30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다시 잠에 들었다. 07시 30분 다시 일어나 08시에 출근길에 올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다. 며칠 전, 1월 2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내가 첫째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려가려 했던 그날, 나는 참지 못하고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에 교회에가는 결정이 내 의견이나 고민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려졌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관의 깊은 간극이 너무도 뚜렷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은 아내와 나 사이의 균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었고, 그 긴장과 정서적 압박이 결국 오늘 새벽 공황발작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 것 같다. 몸의 피로만이 아니라 마음의 피로가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2024-01-31(수) 아내의 폭언 셋째가 팬티에 똥을 쌌다는 이유로, 아내는 극심한 분노와 절망감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로 "너가 팬티에 똥쌀 때마다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서 죽고 싶다"라고 셋째에게 폭언을했다. 매번 그런 말을 듣는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될까 깊은 슬픔과 걱정이 밀려왔다.
2024-02월 어느날, 경계성 지능의 실마리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내와 함께 살아오면서, 아내의 일상은 겉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내의 독특한 면모를 그저 ‘개성’이라 생각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점이 있는 법이니까.
 에어컨이나 선풍기 청소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모습도, 나는 그저 아내만의 스타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되는 행동과 반응들이 마음속에 의문을 남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성격 문제라기보다는, 어딘가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아내는 혼자 무언가를 집중해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멈춰 서곤 했다. 선풍기를 조립하거나, 아이들과 퍼즐을 맞추는 일, 혹은 일상과 다른 낯선 문제 앞에서, “못 하겠어”라며 나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문제 상황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불안해하거나 충동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보다, 지식처럼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도 자주 보였다. 더 복잡한 사회적 상황이나 추상적인 개념 앞에서는 길을 잃곤 했다. 내가 설명하려 해도 아내는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보다, 이해를 못하는 듯 “당신 생각이랑 달라”라며 외면하거나 심지어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외부로 향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부담은 당연한 듯 내 몫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실수를 겉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새겨 다음에는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아내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잘못조차 순간의 감정에 따라 판단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10년간 아내의 그런 모습을 계속 지켜보며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과거 도테라(다단계)를 다닐 때 처럼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오거나 하염없이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거짓말도 절실히 믿으면서 많은 지출을 했다.  그런 아내의 행동과 패턴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서 검색해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친 단어, ‘경계성 지능’. 처음엔 낯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낯설지 않았다. 마치 아내의 행동과 사고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듯한 글귀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2024-02-01(목) 빨간펜 키클랩 입고

 키클랩


 이날, 빨간펜에서 판매하는 키클랩 12개월분이 집으로 배송되었다. 아내는 내가 이런 걸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새로운 계획을 꺼냈다. 집을 도서관처럼 꾸미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집안에는 이전에 빨간펜에서 구매했던 책 500권과, 그보다 앞서 있던 책 100여 권이 꽂혀 있었다. 마음속에서 부담과 걱정이 즉시 교차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말아줘. 지금처럼 필요한 책은 필요할 때 빌리거나 사서 보자.” 아내의 충동적인 계획과 욕심은, 현실적인 부담감과 걱정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2024-02-01(목) 또 다시 차 이야기를 꺼낸 아내 지난 2023년 10월 8일, 아내가 차로 내 발등을 다치게 한 일이 있었고 이후 차 이야기는 하지 않다가 오늘 다시 차 이야기를 꺼냈다.  23시 10분경, 아내는 2월 9일 처가에서 아버지 산소를 찾을 예정이라며 “우리는 언제 차 사?” 나는 마음속 깊은 답답함과 화를 누르며 말했다. “당신이 원하던 큰집을 사느라 종자돈 다 쓰고, 대출 원리금 갚느라 내가 그동안 모아온 금도 팔고, 당신이 당장 필요하다던 식탁, 소파, 침대도 샀고, 얼마 전에 가족 여행까지 다녀온 상황에서 다시 차 이야기를 하냐.” 아내는 이번에도 현실적인 여건보다 자신의 욕구만을 강조하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싸우지 않기 위해 또다시 마음속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2024-02-02(금) 술마시러 나간 아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을 나에게 맡기고 20:20경 술 마시러 나갔다. 그리고 23:00경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이렇게 자주 나가고, 아이들을 내가 돌보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2024-02-15(목) 아내가 둘째에게 20:30경 석식 후, 아내는 나를 의식한 듯 둘째에게 말했다. "둘째야, 너는 나중에 결혼할 때 가정 환경이 화목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사람과 꼭 결혼해라."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결혼 후 10년 동안, 퇴근 후 저녁만 먹고 곧장 7시 30분까지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해오던 일들은 마치 모두 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말없이 반복해 오던 일들이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쌓아온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안에 담겼던 마음마저 부정당한 듯한 기분이 오래도록 남았있다.
2024-02-18(일) 당신과 있으면 불행해아내가 아이들에게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비난하는 말들을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당신과 있으면 불행해.” 라며 그말을 비난으로 받아드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원인이 되어 아내가 불행해졌고, 그 불행이 아이들에게까지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내를 불행하게 하려는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그 점을 걱정해서 꺼낸 말이었을 뿐이었다. 오늘도 아내에게는 나의 말이 비난으로 받아들여졌고 아내의 감정이 언제나 대화의 가장 앞자리에 놓였다. 매번 우리의 대화는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아이들을 위한 걱정에서 시작된 말이, 결국에는 내가 아내를 공격한 말이 되어 돌아오는 반복된 상황 속에서, 나는 점점 말문을 닫게 되어 갔다.
2024-02-29(목) 빨간펜 책 입고

빨간펜 책 21박스


 새벽까지 일을하고 퇴근한 날이었다. 몸이 축 늘어진 채로 오전까지 깊이 잠에 빠져 있었는데, 09시 25분경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느껴진 낯선 기척에 눈을 떴을 때, 집 안에는 이미 빨간펜 책들이 박스로 쌓여있었다. 한눈에 셀 수 없을 만큼 쌓여 있는 박스들을 보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내가 우리집 비밀번호를 택배 아저씨에게 알려주었고 집안에 박스를 쌓아두었다. 당황스러움은 곧 익숙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일들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였지만,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수록 마음 한켠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담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그 박스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마 전 아내가 집을 도서관처럼 꾸미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아내를 말렸지만 아내는 내 의견을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 순간 나는 올 것이 온 거구나. 놀라움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미 예견된 결과를 마주한 사람처럼,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되는 상태였다. 그날의 21박스는 단순한 책 배송이 아니라, 나와 상의되지 않은 결정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 가정 안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쌓여 있는 박스들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에서만 조용히 무게를 느꼈다. 지금도 많은량의 책을 볼때면 그때의 감정이 살아나고 있다.
2024-03-01(토) 진짜 이 사람 사라졌음 좋겠어요

 진짜 이 사람 사라졌음 좋겠어요


 어제 빨간펜에서 들어온 책들 때문에 집에 있으면 아내와 싸울거 같아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금쪽이 촬영 후 오은영 박사님이 말한것 처럼2023-02-28부터 아내가 원하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달 말일에 생활비를 이체했다. 하지만 아내는 서로 의논도 없이 내 말을 무시하며 생활비를 과도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제 새로 들어온 책이 많아 그 수량만큼 기존에 있던 책들 처분하고 매월 소비 내역과 잔액을 메일로 보내야만 생활비를 이체해주겠다고 알렸다. 아내는 다른 사람에게 보낸다는걸 나에게 "이번에 책 전집 샀는데 새로 들어온 책 수량만큼 있었던 책들 처분하고 매월 소비금과 잔액 엑셀로 만들어서 메일로 발송해야 생활비 이체할거임 진짜 이 사람 사라졌음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나의 의도나 맥락은 사라지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가 하는 일들에 방해하는 방해꾼으로만 여겨지고 있었다.
2024-03-01(토) 아내의 거짓말(빨간펜) 아내가 빨간펜에서 급여를 받고 일하러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간펜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남편에게는 급여 받는다는 걸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아내가 빨간펜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편파적으로 이야기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만약 내가 아내의 급여를 알게 되면, 생활비를 안 주거나 깎거나, 급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아내에게 경고한 듯했다. 처음 아내가 빨간펜에 다닐 때만 해도 “돈 벌려고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가는 것”이라며 말했고 나는 ‘그래, 잘해봐’라고 응원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져 버려 씁쓸함과 배신감이 교차했다. 앞으로 무엇을 믿고 아내와 살아야하는가 의심이 들었다.
2024-03-11(월) 빨간펜 1박2일 연수 19:20경 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얼마 전 빨간펜에서 진급했다며 1박 2일 연수에 간다면서 아이들을 봐달라고 했다. 나는 솔직히 연수 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아내는 장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이미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내 마음 한켠에는 복잡한 감정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집에 빨간펜에서 준 상장이 걸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