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들은 자신의 의견과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도적과 같이 은밀하게 폭력을 자행하고 그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것을 가르친 적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상대가 폭력이나 약탈을 하려하면 똑같이 대응하지말고 오히려 허용하라는 것을 가르친다.(마 5:38-40: 누 6:29-39)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위의 예수가 지키라고 한 것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예수가 독생자라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죄가 쌓이지 않는다고 사기꾼먹사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데 이것은 행위와 믿음은 별개라는 교리에 의거하고 있다.
많은 개독교회에서는 행위와 믿음은 별개라는 괴상망칙한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앞의 (1)번 글에서 보면 예수가 직접 한 말은 행위와 믿음은 따로 떨어 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반기독교적인 가르침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독먹사들이 이런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의 구절이다.
그러나 로마서의 내용들은 에수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에수를 전도하는 제자들의 말들을 엮은 것이다.
이것이 어째서 예수의 말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일까?
개독교는 예수가 아닌 그의 제자를 신으로 받드는 종교인가?
당시 로마에 바울과 베드로가 예수를 전도하는 상황을 본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당시 로마에서 믿고 있던 이집트의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즉 야훼는 오시리스 남신과 같이 비유하고 예수는 그의 독생자이며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호루스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서 믿음으로(로마서 3장:22절: 28절)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되찾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3:28) 하느님은 유다인만의 하느님이신 줄 압니까? 이방인의 하느님이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과연 이방인의 하느님도 되십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셔서 할례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개독교의 비열한 아전인수격의 경전해석(6)★
개독들은 자신의 의견과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도적과 같이 은밀하게 폭력을 자행하고 그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것을 가르친 적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상대가 폭력이나 약탈을 하려하면 똑같이 대응하지말고 오히려 허용하라는 것을 가르친다.(마 5:38-40: 누 6:29-39)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위의 예수가 지키라고 한 것에 반하는 행동을 해도 예수가 독생자라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 죄가 쌓이지 않는다고 사기꾼먹사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데 이것은 행위와 믿음은 별개라는 교리에 의거하고 있다.
많은 개독교회에서는 행위와 믿음은 별개라는 괴상망칙한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앞의 (1)번 글에서 보면 예수가 직접 한 말은 행위와 믿음은 따로 떨어 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반기독교적인 가르침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독먹사들이 이런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로마서의 구절이다.
그러나 로마서의 내용들은 에수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에수를 전도하는 제자들의 말들을 엮은 것이다.
이것이 어째서 예수의 말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일까?
개독교는 예수가 아닌 그의 제자를 신으로 받드는 종교인가?
당시 로마에 바울과 베드로가 예수를 전도하는 상황을 본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당시 로마에서 믿고 있던 이집트의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쉽도록 설명하고 있다.
즉 야훼는 오시리스 남신과 같이 비유하고 예수는 그의 독생자이며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호루스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서 믿음으로(로마서 3장:22절: 28절)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되찾게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3:28)
하느님은 유다인만의 하느님이신 줄 압니까? 이방인의 하느님이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과연 이방인의 하느님도 되십니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셔서 할례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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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개독교회 먹사들은 위의 로마서 3장 28절 부분만 떼어내서 저 내용이 마치 예수만 신으로 믿으면 예수가 지키라고 한 율법 따위는 깡그리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맨 아래 31절에는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율법은 교회 먹사의 말도 아니고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말도 아니며 바로 에수의 말이다.
예수의 율법은 무엇인가? 앞의 1,2,3,4,5, 번에 나와 있으니 참조해 보시기 바란다.
그것에 의거해서 본다면 위의 기독경의 내용이 개독교회에서 주장하는 행위와 믿음은 별개이라는 교리(?)가 정당화 될수 있는 구절이 절대 될 수 없다.
이것은 개독먹사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반 예수적인 반 기독교적인 내용들을 마치 기독교인양 포장해서 그 근거까지 왜곡해서 사실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사기치는 파렴치범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