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벌써 서른을 넘겼다.

장인호2004.03.21
조회290

내가 벌써 서른을 넘겼다.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한 남자입니다.

나이는 서른하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군대갔다오고 ,벌써 직장생활한지 육년차입니다.

우선 저에 인생에대해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잘 살고있는지 알고 싶어서 용기네어 글을 올립니다.

우선은 국민학교아니 초등학교라고 해야겠죠.

수원에서사시는 외할아버지께서 사기꾼에 걸려 갖고 있던 땅을 다 날리면서 외가 쪽이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되었고 ,아버지께서 4년을 사우디 근로자로 일하면서 모은 돈모두를 아버지 몰래 외가에 투자했던 어머니는 자책감에 시달리셨고,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게만은 알리지 않으려고 하셨죠.

아버지는 친구분과 목장을 하기로 하셨다면서 경기도 광주로 이사를 하자고 하셨고,

어머니는 친구분께 빚을 내어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버지와 친구분은 불화가 생겨 갈라서게 되었고 다시 그 곳에서 버섯재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우리 네 가족은 비늘 하우스에서 새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산으로들로 정신없이 뛰는 재미가 정말 좋았거든요.

하지만 버섯재배도 실패하고 다시 강화도 고모댁에서 작은 공장을 하셨는데.우리 집은 다시 경기도 광주에서 강화도로 이사를 하겠되었습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라는 생각으로 돈을 다시 끌어모아 부모님들은 열심히 일하셨지만.

때마침 중국과 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공장은 이익을 내는것이 아니라 부체만 쌓아갈 뿐이였습니다.

부모님은 다시 고모님댁에서 나와 식당을 개업하셨지만,저희 부모님은 너무 세상을 모르셨습니다.

세상을 몰랐기에 자식들에게는 무능한 부모로 비쳐지고 주위 지인들에게는 무시당하는 그런 ....

식당을 접고 ,우리 식구는 야밤도주하듯 이사를 했고 그 당시 저는 고 3이였습니다.

전 그 길로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일생에 한번뿐인 졸업식장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주유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한 5개월를 모아서 가리봉에 방을 얻어 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군입대를 1년 연기하고 동생을 제가 돌보기로 하고 저는 다시 이일 저일 안해본거 없이 모든일을 했습니다. 동생은 전문대에 진학하였고 저는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입대전 부모님을 찾아 뵈었지만 이미 나이를 드시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신 부모님은 허름한 무허가 컨데이너 박스에서 초라하게 지네고 계셨습니다.

저는 군 제대후 직장을 잡았고,동생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 하였습니다 4년단기하사로,,

저는 동생이 4년이라는 군 생활동안 어느정도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단기하사로 지원입대를 시켰습니다.

그때가 제나이 25살

저 또한 i m f 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월급100만원에 세금제하고 92만원 자취방을 얻을 돈이 없어서,직장형과 함께 월세 방을 얻어생활하였고,또 일부에 돈은 우리 집 빚을 갖고 부모님생활비를 드려야 했죠.

제 나이 25살부텨 저는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것은 날 버리려는 것처럼 너무도 냉정하게

날 괴롭혔습니다.동생마져 4년이란 군생활동안 모은 돈없이 제대를 하였고 제대후 바로 결혼을 하였습니다.제 나이 29살 그동안 제가 모은 돈 2천만원 모두를 동생에게 주었고, 전 작은 자취방하나 가지려던

바램을 다시 접고 친구의 집으로 다시 이사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집안에 빚은 3천만원이 남았고 동생은 제수씨와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정규직이 되었고 아직까지 친구 집에 얻혀 살고 있습니다

제 나이 31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전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이지만 우리 부모님과 동생을 위해 저는 저 자신을 25해 부터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자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산넘에 그 곳에 내가 서 있어서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