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즈음 내가 타는 배(신양수산 1보성호)는 부산에서 출항하여 폭풍주의보로 기상이 험한 가운데 비바람과 높은 파도를 헤치며 3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조업지역(동지나해 양쯔강 연안)에 도착하여 첫 투망을 실시했다....
3~5 미터로 두들겨 대는 파도가 너무 심한지 선장 나으리 께선 투망한 그물을 바로 올리라고 해서 선원들은 그럴꺼면 머하러 투망했냐는듣 궁시렁 대며 다시 양망작업에 들어갔다.
이당시 내가 근무했던 배는 쌍끌이 기선 저인망으로 두척 이 한조가 되어 조업하는 100톤급 어선이었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은 바다의 저층을 배두척이 그물을 달고 조류를 따라서 끌고 다니다 약서너시간후에 양선박이 접선하여 그물을 감아올린다....
5월엔 대게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 시기라서 한국의 어선들은 동지나해 먼곳까지 와서 꽃게를 잡는다.....
그런데 우리배는 출항하자 마자 남해상에 내려진 폭풍주위보로 인해 3일간 험한 파도와 싸우며 근근히 조업지까지 왔건만 세찬 비바람과함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두들겨대는 높은 파도는 조업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장은 선원들의 안전사고를 우려해 기상이 좋아질때까지 조업을 중단한다고 하고 힘들게 내려논그물을 다시 올리란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 조업 장면 동영상
조업지역 주위엔 이미 타선박들이 험한 파도를 감싸안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엔 조업을 중단하고 빈그물을 선미에 차고 바람과 파도에 배를 맞겨서 둥둥 떠다니는 배도 있었고 어떤 지독한 배들은 그런 와중에도 조업을 강행 하는 배도 간혹 눈에 띄었다...
파도가 말이 3에서 5미터이지 100톤급되는 작은 어선으로 이런 파도 만나면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건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알꺼다...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거세게 밀어 부치는 파도로 인해 선박내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때 갑판위에서 작업 할라치면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언제 파도가 자신에게 덮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누기도 힘든 몸에다 버틸려고 주위의 모든 부착물을 붙잡고 작업용 비닐 옷(선원들은 갑빠라고 부른다) 까지 입고 있으니 몸은 천근 만근이요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각종 윈치 소리에 그물을 끌어올리는 와이어들은 여기저기서 지나다니고 그러다 옆으로 밀어부친 파도에 맞으면 저만치 내동댕이 쳐지는건 보통이라...
온몸은 짜디짠 바닷물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그나마 5월께엔 차갑지 않은 바다라서 춥지 않은게 다행이지만 겨울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치가 떨린다....
이럴땐 정말 돈도 싫어진다.
하지만 선원들은 파도와 싸우며 다시 양망작업에 돌입했다...
나는 그당시 성산 수산업 고등학교 기관사 실습 기간이라
(이때엔 성산수고생들의 실습 선박은 거즘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 이었다.)
말이 실습생이지 이곳에서의 생활은 거즘다 노동 착취였다....
거의 모두는 실습생이라고 해서 보수는 노동한 만큼 받지도 못했다...
그당시 이런 선박의 선주들은 고교 실습생들을 선호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배에 근무를 마치고 나니 선주는 적자를 이유로 그당시 달랑 13만원을 주는게 아닌가.
6개월 근무한 보수가 13만원이었으니 일반선원의 한달치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으로 차비 하라고 보내더라....
후에 이 회사(신양수산)는 망했다고 들었다...
원양어선이 파도에 전복되는 생생한 동영상
나는 윈치에 감기는 두께2센치정도 되는 와이어를 차례로 감기게하는 파이프를 들고 선수에 장착된 윈치 앞에서 배위로 넘쳐드는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와이어가 다 감길때까지 버티고 서서 파이프를 대고 감기는 와이어 에 차례로 롤링 하는 일(이일은 선원들 모두가 꺼리는 일이었다.
와이어가 다 감길 때 까지 선수로 밀려오는 파도를 그대로 뒤집어써야 하는 위치라서 이 일은 대게 실습생들에게 시킨다.) 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브릿지 밑에서 파도를 피하고 쭈그려 앉아있던 연세 지긋한 갱상도 가 고향인 갑판장이 갑자기 우현쪽 바다를 쳐다 보며
"아이고..........우짜노!.........저....저.....저 배 넘어어 간다!!!!!!!!!!!!!"
면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 소릴 잘 듣지못하고(윈치소리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갑판장 얼굴만 쳐다 보는데 옆에있던 다른 선원이 옆에서 작업하던 배가 전복됐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양망을 하고 있던 우리 배와 약 100 여 미터 떨어진곳에서 인천 선적의 11안영호가 투망 준비를 하고 있는걸 봤었다...
나 뿐 아니라 여러 선원들은 투망 준비를 하는 11안영호를 보고
- "저놈들 아주 지독한 놈들이네"
라고 한마디씩 했다.
다른 어선들은 이미 조업포기하고 그물을 거둬 들이거나 피항지로 떠나는데도 조업을 강행하니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 조업을 시키는 선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당시 선장과 일반선원의 보수 차이는 무려 열배 이상이나 됐으니 선장들은 그런 악조건에서도 조업을 불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어족 자원이 많은 북한 해상까지 월선 하여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게 나포되는 일까지도 있었다...
이즈음에 나의 동창도 북한에 나포됐다가 9개월 만에 풀려났었다...
전복되는 11안영호를 지켜보던 선장은 그즉시 우리배의 그물에 부표를 달고 다시 내리라고 지시하면서 타선박과도 분주히 무선 교신을 했다...
주위엔 타 선박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거즘다 피항길로 이동하고 있던 터라 11안영호 옆에는 우리배와 11안영호 자선인 12 안영호 밖엔 없었다.
그래도 우리배는 그당시 쌍글이 기선 저인망중 신조선에 속했고 크기도 제일 큰배여서 항해하는덴 큰 지장이 없었지만 인천 선적 배들은 거즘다 100톤 안팍으로 선령도 오래된 선박이었다....
나도 처음 실습했던 배가 92톤 밖에 안된 인천선적 배였다...
그배에서 나는 백령도 근해에서 1983년12월 24일 저녘 투망때 재수없게 투망하는 그물에 걸려서 다른 선원과 함께 바다에 빠진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크리스 마스 이브때만 되면 그때 일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또한 그일 한달 전에는 동료 선원 한명이 서로 싸우다가 항해중 실종 됐고..
새벽에 양망하는 그물에 시체가 걸려올라오기도 하고 동료선원이 와이어에 튕겨서 바다에 빠지는 사고도 있었고 ...
그래서 조기 하선하고 부산 내려와서 부산 남포동 소재 한마음 음악 다방에서 음악디제이 생활을 두달여 하다가 선배의 소개로 다시 부산 선적인 제1 보성호에 근무하게 됐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첫 출어에 또다시 험한 바다에서 다른배의 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뒤집어진 배에서
험한 파도에 허우적대는 선원들을 구출하게 될줄이야...
암튼 그때 일을 생각하면 넌저리 난다...
지금은 소종한 경험으로 남아 이렇게 인터넷 도움으로 그때의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참 좋은 세상이다....^^...
알래스카 대게 잡이 어선들의 치열한 삶의전쟁
우리는 얼른 양망하던 그물에 부표를 매달아 다시 투망하고 11안영호쪽으로 전속력 접근했다...
접근해보니 이미 바다위엔 허우적 대며 살려달라는 11안영호 선원들이 파도속에 잠겼다 올라왔다 하며 생존의 사투를 하고 있었다.
자선인 12안영호의 선원들은 저마다 라이프 부의를 줄에 달고 선원들을 구출 하고있었다.
그런데 높은 파도에선 물에 빠진 사람 구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선 접근하기도 어렵고 설사 접근했다 하더라도 파도에 휘청거리는 배가 물에빠진 사람위로 올라서면 그사람은 배 밑바닥에 깔리게 된다...
그래서 12안영호 선장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젊은 선원들은 자신의 몸에 줄을 묶고 바다에 뛰어내려 한명씩 한명씩 차례로 동료 선원들을 구출 하고 있었다.
우리배도 구출에 동참 했지만 쉽사리 접근이 안되고 선원들은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11안영호 선원들만 안타깝게 쳐다만 볼 뿐 그누구하나 뛰어내리지 않았다.
12안영호 선원들의 처절한 구출작업에도 몇몇11안영호 선원들은 이미 조류와 높은 파도에 밀려나기 시작하고 몇몇은 죽었는지 그냥 떠다니다가 가라앉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우리배 선장은 12안영호 선장의 애절한 구조요청만 무선으로 듣고 있을뿐 달리 손쓸수가 없는상황 이었다...
선장은 12안영호 선원들처럼 우리 선원들에게 줄을 묶고 바다에 입수해서 구조해주길 바랬지만 자신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선뜻 나서는 선원들이 없었다.....
그러다 40대 중반인 항해사가 안타깝게 죽음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안영호 선원들의 모습을 보고 작정을 했던지 자신의 몸에 줄을묶고 라이프쟈켓을 입고 바다에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항해사는 눈앞에서 익사위기에 처한 선원들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는지 용기를 내고 구조작업에 동참 할려는거 같았다...
사실 그 배에선 내가 제일 젊은 나이였는데 작년(1983년 겨울) 첫실습때 워낙 더러븐 경험을 많이 해놔서 물에 들어가는건 죽기보다 싫은 나였다...
이러니 주위 선원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게로 꼿히기 시작한다....
참말 난감하다....
하지만 40중반의 항해사가 먼저 뛰어 내리니 나도 할 수 없이 몸에 줄을 묶고 뛰어 내렸다.
수영이야 어릴적부터 늘 고향인 제주도 성산포 바다에서만 살았던 나였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사오미터나 되는 파도속에 몸을 맏겨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나는 만약 잘못되면 배위의 동료 선원들이 구해주기를 바라고 뛰어내렸다...
선장은 우선 70여미터 쯤에서 보이는 11안영호 선원쪽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접근시켰다.
약 20여미터 쯤 접근할때 갑판위에서 그래도 슈퍼맨 처럼 우아하게 뛰내렸다.....ㅋㅋ
쓔웅.......... 텀벙... 철푸덕... 웩웩....
파도를 보고 잔잔할 타이밍을 보고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만 엉겹결에 뛰어 내려 파도속에 곤두박질 치고 짜디잔 바닷물을 션한 동동주 들이키듯 한사발 먹고나니 숨이 턱 막히고 속이 메스꺼워 진다...
정신을 차리고 수면으로 떠오르는데 ....
허거걱!...
이건 ..........정말 파도가 장난이 아니였다.
파도와 파도사이로 빨려들어갈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보이는건 하늘에 낮게 깔린 시커먼 비구름 뿐.....이내 눈앞이 캄캄해져오고 그만 자신감이 떨어져 내가 죽는게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뇌리를 스친다....
하이고.... 이래가 내가 살긋나?..........
수영이라면 넘 하는 만큼 자부 한다던 나였는데 거세게 몰아부치는 파도엔 나도 속수무책이다...
하이고................. 우짜겄노.............
우선 내가 살아야하는게 아닐까 순간 생각도 들었지만 라이프 쟈켓까지 입고 뛰어 내렸는데 죽지는 않을 겄이라고 생각하고 파도속에 내 팽겨쳐진 11안영호 선원 쪽으로 헤엄쳐가다 쉬다를 몇번 반복 하고보니 나의 몸은 이미 50대가 넘어 보이는 그 선원까지 다다르고 나는 잽싸게 옆구리에 묶어뒀던 라이프부위와 줄을 그 선원에게 던져주고 내 몸에 묶인 생명줄을 본선을 향해 힘차게 당겼다....
그 순간 나의 동료들은 누구나 할 것없이 나의 생명줄을 힘차게 당기며 안영호 선원과 나를 끌어올린다 ...
이렇게 해서 우리배는 그후 소중한 생명 둘을 무사히 구조하고 12안영호도 11안영호 나머지 선원 8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머지 선원 3명은 끝내 구출 하지못하고 더욱 억쎄게 불어닥치는 바람과 한층 높아진 파도로 구조가 불가능해서 일단 우린 피항지 대흑산도를 향해 달렸다....
나중에 조업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가 탄배는 부산 해양경찰에서 수여한 표창장과 감사패가 회사 사무실에 자랑 스럽게 걸려 있었다.
마도로스 스토리 / 생생한 리얼리틱 나의 선박생활 경험담 1
이 이야기는 제가 근 15년을 선박 생활 하면서 겪은 실화 입니다.
1984년 5월즈음 내가 타는 배(신양수산 1보성호)는 부산에서 출항하여 폭풍주의보로 기상이 험한 가운데 비바람과 높은 파도를 헤치며 3일간의 항해를 마치고 조업지역(동지나해 양쯔강 연안)에 도착하여 첫 투망을 실시했다....
3~5 미터로 두들겨 대는 파도가 너무 심한지 선장 나으리 께선 투망한 그물을 바로 올리라고 해서 선원들은 그럴꺼면 머하러 투망했냐는듣 궁시렁 대며 다시 양망작업에 들어갔다.
이당시 내가 근무했던 배는 쌍끌이 기선 저인망으로 두척 이 한조가 되어 조업하는 100톤급 어선이었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은 바다의 저층을 배두척이 그물을 달고 조류를 따라서 끌고 다니다 약서너시간후에 양선박이 접선하여 그물을 감아올린다....
5월엔 대게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는 시기라서 한국의 어선들은 동지나해 먼곳까지 와서 꽃게를 잡는다.....
그런데 우리배는 출항하자 마자 남해상에 내려진 폭풍주위보로 인해 3일간 험한 파도와 싸우며 근근히 조업지까지 왔건만 세찬 비바람과함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두들겨대는 높은 파도는 조업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장은 선원들의 안전사고를 우려해 기상이 좋아질때까지 조업을 중단한다고 하고 힘들게 내려논그물을 다시 올리란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 조업 장면 동영상
조업지역 주위엔 이미 타선박들이 험한 파도를 감싸안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엔 조업을 중단하고 빈그물을 선미에 차고 바람과 파도에 배를 맞겨서 둥둥 떠다니는 배도 있었고 어떤 지독한 배들은 그런 와중에도 조업을 강행 하는 배도 간혹 눈에 띄었다...
파도가 말이 3에서 5미터이지 100톤급되는 작은 어선으로 이런 파도 만나면 두려움이 먼저 앞서는건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알꺼다...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거세게 밀어 부치는 파도로 인해 선박내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때 갑판위에서 작업 할라치면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언제 파도가 자신에게 덮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누기도 힘든 몸에다 버틸려고 주위의 모든 부착물을 붙잡고 작업용 비닐 옷(선원들은 갑빠라고 부른다) 까지 입고 있으니 몸은 천근 만근이요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각종 윈치 소리에 그물을 끌어올리는 와이어들은 여기저기서 지나다니고 그러다 옆으로 밀어부친 파도에 맞으면 저만치 내동댕이 쳐지는건 보통이라...
온몸은 짜디짠 바닷물에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그나마 5월께엔 차갑지 않은 바다라서 춥지 않은게 다행이지만 겨울에 이런 상황이 생기면 치가 떨린다....
이럴땐 정말 돈도 싫어진다.
하지만 선원들은 파도와 싸우며 다시 양망작업에 돌입했다...
나는 그당시 성산 수산업 고등학교 기관사 실습 기간이라
(이때엔 성산수고생들의 실습 선박은 거즘다 쌍끌이 기선 저인망 이었다.)
말이 실습생이지 이곳에서의 생활은 거즘다 노동 착취였다....
거의 모두는 실습생이라고 해서 보수는 노동한 만큼 받지도 못했다...
그당시 이런 선박의 선주들은 고교 실습생들을 선호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배에 근무를 마치고 나니 선주는 적자를 이유로 그당시 달랑 13만원을 주는게 아닌가.
6개월 근무한 보수가 13만원이었으니 일반선원의 한달치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으로 차비 하라고 보내더라....
후에 이 회사(신양수산)는 망했다고 들었다...
원양어선이 파도에 전복되는 생생한 동영상
나는 윈치에 감기는 두께2센치정도 되는 와이어를 차례로 감기게하는 파이프를 들고 선수에 장착된 윈치 앞에서 배위로 넘쳐드는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와이어가 다 감길때까지 버티고 서서 파이프를 대고 감기는 와이어 에 차례로 롤링 하는 일(이일은 선원들 모두가 꺼리는 일이었다.
와이어가 다 감길 때 까지 선수로 밀려오는 파도를 그대로 뒤집어써야 하는 위치라서 이 일은 대게 실습생들에게 시킨다.) 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브릿지 밑에서 파도를 피하고 쭈그려 앉아있던 연세 지긋한 갱상도 가 고향인 갑판장이 갑자기 우현쪽 바다를 쳐다 보며
"아이고..........우짜노!.........저....저.....저 배 넘어어 간다!!!!!!!!!!!!!"
면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 소릴 잘 듣지못하고(윈치소리에)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갑판장 얼굴만 쳐다 보는데 옆에있던 다른 선원이 옆에서 작업하던 배가 전복됐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양망을 하고 있던 우리 배와 약 100 여 미터 떨어진곳에서 인천 선적의 11안영호가 투망 준비를 하고 있는걸 봤었다...
나 뿐 아니라 여러 선원들은 투망 준비를 하는 11안영호를 보고
- "저놈들 아주 지독한 놈들이네"
라고 한마디씩 했다.
다른 어선들은 이미 조업포기하고 그물을 거둬 들이거나 피항지로 떠나는데도 조업을 강행하니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 조업을 시키는 선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당시 선장과 일반선원의 보수 차이는 무려 열배 이상이나 됐으니 선장들은 그런 악조건에서도 조업을 불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심지어 어족 자원이 많은 북한 해상까지 월선 하여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게 나포되는 일까지도 있었다...
이즈음에 나의 동창도 북한에 나포됐다가 9개월 만에 풀려났었다...
전복되는 11안영호를 지켜보던 선장은 그즉시 우리배의 그물에 부표를 달고 다시 내리라고 지시하면서 타선박과도 분주히 무선 교신을 했다...
주위엔 타 선박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거즘다 피항길로 이동하고 있던 터라 11안영호 옆에는 우리배와 11안영호 자선인 12 안영호 밖엔 없었다.
그래도 우리배는 그당시 쌍글이 기선 저인망중 신조선에 속했고 크기도 제일 큰배여서 항해하는덴 큰 지장이 없었지만 인천 선적 배들은 거즘다 100톤 안팍으로 선령도 오래된 선박이었다....
나도 처음 실습했던 배가 92톤 밖에 안된 인천선적 배였다...
그배에서 나는 백령도 근해에서 1983년12월 24일 저녘 투망때 재수없게 투망하는 그물에 걸려서 다른 선원과 함께 바다에 빠진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크리스 마스 이브때만 되면 그때 일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또한 그일 한달 전에는 동료 선원 한명이 서로 싸우다가 항해중 실종 됐고..
새벽에 양망하는 그물에 시체가 걸려올라오기도 하고 동료선원이 와이어에 튕겨서 바다에 빠지는 사고도 있었고 ...
암튼 첫 실습기간엔 이래저래 사고만 겹치다가 나까지 그런일을 당하니 나중엔 밥맛이 없더라...
그래서 조기 하선하고 부산 내려와서 부산 남포동 소재 한마음 음악 다방에서 음악디제이 생활을 두달여 하다가 선배의 소개로 다시 부산 선적인 제1 보성호에 근무하게 됐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첫 출어에 또다시 험한 바다에서 다른배의 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뒤집어진 배에서
험한 파도에 허우적대는 선원들을 구출하게 될줄이야...
암튼 그때 일을 생각하면 넌저리 난다...
지금은 소종한 경험으로 남아 이렇게 인터넷 도움으로 그때의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참 좋은 세상이다....^^...
알래스카 대게 잡이 어선들의 치열한 삶의전쟁
우리는 얼른 양망하던 그물에 부표를 매달아 다시 투망하고 11안영호쪽으로 전속력 접근했다...
접근해보니 이미 바다위엔 허우적 대며 살려달라는 11안영호 선원들이 파도속에 잠겼다 올라왔다 하며 생존의 사투를 하고 있었다.
자선인 12안영호의 선원들은 저마다 라이프 부의를 줄에 달고 선원들을 구출 하고있었다.
그런데 높은 파도에선 물에 빠진 사람 구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선 접근하기도 어렵고 설사 접근했다 하더라도 파도에 휘청거리는 배가 물에빠진 사람위로 올라서면 그사람은 배 밑바닥에 깔리게 된다...
그래서 12안영호 선장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젊은 선원들은 자신의 몸에 줄을 묶고 바다에 뛰어내려 한명씩 한명씩 차례로 동료 선원들을 구출 하고 있었다.
우리배도 구출에 동참 했지만 쉽사리 접근이 안되고 선원들은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11안영호 선원들만 안타깝게 쳐다만 볼 뿐 그누구하나 뛰어내리지 않았다.
12안영호 선원들의 처절한 구출작업에도 몇몇11안영호 선원들은 이미 조류와 높은 파도에 밀려나기 시작하고 몇몇은 죽었는지 그냥 떠다니다가 가라앉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우리배 선장은 12안영호 선장의 애절한 구조요청만 무선으로 듣고 있을뿐 달리 손쓸수가 없는상황 이었다...
선장은 12안영호 선원들처럼 우리 선원들에게 줄을 묶고 바다에 입수해서 구조해주길 바랬지만 자신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선뜻 나서는 선원들이 없었다.....
그러다 40대 중반인 항해사가 안타깝게 죽음의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안영호 선원들의 모습을 보고 작정을 했던지 자신의 몸에 줄을묶고 라이프쟈켓을 입고 바다에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항해사는 눈앞에서 익사위기에 처한 선원들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는지 용기를 내고 구조작업에 동참 할려는거 같았다...
사실 그 배에선 내가 제일 젊은 나이였는데 작년(1983년 겨울) 첫실습때 워낙 더러븐 경험을 많이 해놔서 물에 들어가는건 죽기보다 싫은 나였다...
이러니 주위 선원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게로 꼿히기 시작한다....
참말 난감하다....
하지만 40중반의 항해사가 먼저 뛰어 내리니 나도 할 수 없이 몸에 줄을 묶고 뛰어 내렸다.
수영이야 어릴적부터 늘 고향인 제주도 성산포 바다에서만 살았던 나였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
사오미터나 되는 파도속에 몸을 맏겨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나는 만약 잘못되면 배위의 동료 선원들이 구해주기를 바라고 뛰어내렸다...
선장은 우선 70여미터 쯤에서 보이는 11안영호 선원쪽으로 조심스럽게 배를 접근시켰다.
약 20여미터 쯤 접근할때 갑판위에서 그래도 슈퍼맨 처럼 우아하게 뛰내렸다.....ㅋㅋ
쓔웅.......... 텀벙... 철푸덕... 웩웩....
파도를 보고 잔잔할 타이밍을 보고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만 엉겹결에 뛰어 내려 파도속에 곤두박질 치고 짜디잔 바닷물을 션한 동동주 들이키듯 한사발 먹고나니 숨이 턱 막히고 속이 메스꺼워 진다...
정신을 차리고 수면으로 떠오르는데 ....
허거걱!...
이건 ..........정말 파도가 장난이 아니였다.
파도와 파도사이로 빨려들어갈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보이는건 하늘에 낮게 깔린 시커먼 비구름 뿐.....이내 눈앞이 캄캄해져오고 그만 자신감이 떨어져 내가 죽는게 아닌가 불안한 생각이뇌리를 스친다....
하이고.... 이래가 내가 살긋나?..........
수영이라면 넘 하는 만큼 자부 한다던 나였는데 거세게 몰아부치는 파도엔 나도 속수무책이다...
하이고................. 우짜겄노.............
우선 내가 살아야하는게 아닐까 순간 생각도 들었지만 라이프 쟈켓까지 입고 뛰어 내렸는데 죽지는 않을 겄이라고 생각하고 파도속에 내 팽겨쳐진 11안영호 선원 쪽으로 헤엄쳐가다 쉬다를 몇번 반복 하고보니 나의 몸은 이미 50대가 넘어 보이는 그 선원까지 다다르고 나는 잽싸게 옆구리에 묶어뒀던 라이프부위와 줄을 그 선원에게 던져주고 내 몸에 묶인 생명줄을 본선을 향해 힘차게 당겼다....
그 순간 나의 동료들은 누구나 할 것없이 나의 생명줄을 힘차게 당기며 안영호 선원과 나를 끌어올린다 ...
이렇게 해서 우리배는 그후 소중한 생명 둘을 무사히 구조하고 12안영호도 11안영호 나머지 선원 8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머지 선원 3명은 끝내 구출 하지못하고 더욱 억쎄게 불어닥치는 바람과 한층 높아진 파도로 구조가 불가능해서 일단 우린 피항지 대흑산도를 향해 달렸다....
나중에 조업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가 탄배는 부산 해양경찰에서 수여한 표창장과 감사패가 회사 사무실에 자랑 스럽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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