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1983년 부터 지금까지 15년간 각종 선박에 근무하면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은 글입니다....
어선이 높은 파도에 의해 전복되는 생생한 동영상
1989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1등 기관사로 근무하는 부산 기륭해운 소속 모래 운반선 17성운호(1200톤급)는 1989년 10월 28일 아침 부산 감천항에서 출발하여 모래 채취 하역차 신안군 압해도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우리배는 안개 자욱한 감천 앞바다를 지나 거제도 서이말을 통과할즈음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오일청정기(퓨어리파이어) 를 분해 소재후 조립하고 재 가동한후 뒤늦게 식당으로가서 기관장 옆자리에 앉았다.
기관장은 사무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내용은 기관장님 자신이 왜 부산에서 바로 버스로 진도에 가지 않고 배로 다시 왔는지 사무장이 물어봤다.
기관장은 어제 오후에 나에게 자신의 부친 제사를 18년 만에 다시 모시게 되어 고향인 진도에 간다고 했는데 기관장은 버스로 가도 될 일인데도 부득이 배에 다시 승선 해서 사무장이 왜 그런건지 물어본거였다.
그당시 근무했던 동종의 모래 운반선
기관장 말씀은 주엔진 상태가 안좋아서 완도까지 운항하며 상태 확인후 완도에서 하선 했으면 한다고 사무장에게 부탁했다.
완도는 우리배가 지나가는 항로라 사무장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기관장님은 완도에 다다를 무렵 또다시 하선지를 변경했다.
아무래도 주엔진의 보쉬펌프 플런저 상태가 좋지않아 엔진 출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고 스페어 플런저는 목포의 엔진 수리 공장에 재생가공을 의뢰해논 상태라 교체할 부품이 없었고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나는 매 시간 마다 엔진의 상태를 체크하며 인디케이터로 데이타를 뽑았다.
내가 판단하기엔 출력저하가 있지만 공선 운항이라 항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기관장님은 만에 하나 일어날 엔진 고장을 염려 했던지 안심하지 못했던겄이다.
그래서 기관장님은 진도의 벽파진에서 하선하여 고향으로 가기를 원했고 나는 목포에 입항한뒤 엔진 수리공장에 가서 플런저를 찾아와서 교체하라고 했다.
사무장도 그렇게 하라고 해서 우리는 일정대로 벽파진으로 항로를 잡고 계속 항해했다.
벽파진은 해남 땅끝 에서 목포를 가는 길목인 울돌목 전에 있는 진도에 소재한 작은 어항이다.
울돌목은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가장 쎄기로 알려진 곳이고 대부분의 배들은 이곳을 지날때 하행 선박은 썰물때 상행 선박은 밀물조류를 타고 가야만 통과가 가능 할정도로 물쌀이 쎈 곳이기에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이 물쌀을 이용해서 왜군을 수장시킨 명량해전의 역사적인 장소 이기도하며 진도와 해남 우수영을 잊는 사장교(진도 대교)가 건설된 곳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제2 진도대교가 완공됐다고 한다.
벽파진에 도착하니 진도 대교 통과 상행운항을 위해 조류가 바뀌길 기다리는 선박 여러척이 벽파진 앞바다에서 앵커를 내려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배도 두시간후 바뀔 조류를 기다리기위해 앵커를 내렸다.
그런데 기관장은 자신의 하선지를 진도 대교 통과한후 진도쪽 대교끝에 위치한 작은 포구인 녹진어항에서 한다고 해서 사무장은 그곳은 물살에 쎈곳인데 라이프 보트를 내릴수 있겠냐고 갑판장에게 물어봤다...
갑판장은 조류가 썰물로 바뀌는 시점에만 그 지역엔 조류가 약하게 감소한다며 그 시점에 보트를 내리면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판단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
사무장은 그낭 벽파에서 바로 가면 될껄 왜 굳이 녹진에서 내릴려고 하는지 기관장에게 푸념 했지만 기관장은 녹진으로 가면 집으로 가는길이 빠르다는 애기만 할 뿐 아무 애기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도 대교 숭어 뜰채 잡이
60이 다된 나이에 한동안 모시지 못했던 자신의 부친 제사를 18년 만에 모시게 되서 기관장도 마음이 무거웠으리라 생각 했지만...
녹진 포구가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된 곳이 될줄은 전혀 알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밀물 조류를 따라 진도 대교를 무사히 통과하고 녹진 포구 앞으로 가서 6시간후 썰물로 바뀔 조류를 기다리기위해 다시 앵커를 내렸다.
그런데 기관장은 녹진에서 내릴때 나도 동참해서 내리자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는데 기관장은 녹진에서 목포가는 버스타고 목포에 가서 맏겨둔 플런저를 찾아 오라고 했다.
자신은 제사 지내고 바로 배에 복귀한다고 하며 지금의 엔진 상태론 엔진 출력이 모래 펌핑 작업을 진행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이미 회사에 통보했고
사무장에게도 플런저 교체후에 작업하자고 요청해놨다고 했다.
나는 상관의 지시라 그렇게 한다고 하고 주엔진 연료 펌프인 보쉬 펌프를 아쎔블리로 들어내고 박스에 싸놓은뒤 목포로 가기위해 준비했다...
6시간이 지난 무렵 나를 비롯한 기관장이하 갑판부원과 조리장이 목포를 가기위해 선미 푸프 데크에고정된 오픈식 라이프 보트 쪽으로 갔다 갑판장은 미리 나와서 고정 로프를 풀고 데비트를 좌현쪽 으로 옮겨 놓았다.
오픈식 라이프 보트엔 추진용으로 소형 공냉식 3기통 디젤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서 보트를 내리기전 나는 보트의 엔진을 시동하고 보쉬 펌프 박스를 보트에 싫었다 부피가 커서 갑판부원과 조리장과 함께 목포까지 동행 하기로 해서 일행 4명은 라이프 보트에 올라탔다.
기관장은 날씨가 추웠던지 말끔한 양복위에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나머진 간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보트에 올라탔고 갑판장은 보트를 안전하게 수면에 안착시키기위해 데비트 윈치를 조작했고 보트 선수부엔 다른 선원이 안전줄을 잡고 있었는데 보트가 수면에 닿자마자 강한 조류에 밀려 선수부가 가라앉았다...
선수 안전줄을 잡고있는 선원은 밀려들어가는 보트를 잡을려고 안간힘을 썻지만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그도 미처 손을 쓸 수 가 없었다.
보트는 이내 빠른 물살에 뒤집히고 동승한 4명도 모두 갑작스레 뒤집히는 보트에서 차디찬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는 빨려들어가는 물쌀에 얼마간 물속에서 어우적 대다 간신히 수면위로 머리를 올려보니 이미 우리 배는 20여미터나 멀어져 있었고 나의 몸은 맹렬한 조류에 진도대교 밑의 세찬 와류지역으로 밀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머맀속에서 살아야 됨을 느끼고 미친듯이 녹진 포구 끝으로 반은 조류에 밀리고 반은 힘껏 온 힘을 다한 수영으로 헤엄쳐 갔다.
거침없이 울돌목 진도 대교 밑으로 로 밀어내는 차가운 물살은
살아야 된다는 나의 강한의지를 꺽지 못했다.
어릴적부터 눈만 뜨면 바다(제주도 성산포)에서 살아온 나였지만 평생 살면서 이렇게 세찬 물살은 처음 이었다.
조류는 삼켜 버릴듯 달려드는 야수처럼 나의 몸을 수면위로 올렸다가 다시 끌어내리더니 혼탁한 물속에선 나를 뱅뱅 돌리며 내팽겨치고...
그렇치만 군(해병대)에서도 수영이라면 항상 자신 있었던 나였고 그간의 힘든 선박생활을 겪었고
그간의 산전 수전 육박전까지 치룬 내가 쉽게 무너지진 않으리라...
좌우간 악착같이 죽음의 그림자와 대항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녹진 포구의 끝자락을 향해 있는 힘껏 헤엄쳐갔다...
빨려들다 뒤집히다 밀려 올라오다를 수 백번 반복하다보니 이젠 내가 타는 배는 보이지도 않았고 야속한 녹진 포구 끝자락은 내내 그자리에서 다가오지도 않았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죽음의 공포감과 육체에 뚫려진 모든 구멍을 통해스며든 짜디짠 바닷물은 어느새 물먹은 하마 처럼 나의 배를 부풀어 오르게하고 그에따라 흠뻑 젖은 바지자락에 힘겨운 헤엄치기를 수차례 하면서 차츰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나갔다....
아........ 이래서 죽는 거구나....
순간 순간 떠오르는 어머니와... 나 없인 못산다는 예쁜 순이 얼굴이 슬라이드 처럼 나의 시야에 스처지나간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다... 포기를 할려고 하는데...
하늘이 도왔을까...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그냥 밀리는 조류에 몸을 맡기려고 다리를 내리는 순간....
아......... ㅜㅜㅜㅜㅜㅜㅜㅜ
신발이 벗겨져 나간 나의 발바닥에 전해지는 모래의 부드러운 느낌이....
이젠 살았다는 순간 머리에 스치는건 그건 모래 처럼 느껴진 발바닥의 느낌은 수심이 이젠 얕아 졌다는걸 직감했다.
살았다...
이런 느낌은 그 어느 누구도 느껴 보지 못했으리라......
나는 힘차게 다시금 그 모래 바닥을 딛고 몸을 세워보니 수심은 나의 가슴께 까지 물이 차올랐다...
조류가 쎄지만 발을 디딜 수가 있기에 나는 온 힘을 다헤 바닥을 박차고 녹진 포구 끝자락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로 향했다...
그러기를 30분쯤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삶의 희망인 녹진 포구로 다다랐다...
천근 만근이 된 몸을 겨우 뭍에다 올려놓곤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동행들의 뇌리에 스처 지나간다.
어떻게 됐을까 나의 배는 약 2키로 미터 밖에서 안개에 휩싸여 희미하게 보이고 진도대교 밑에선 부서질듯 밀려오는 세찬조류가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맹렬히 소용돌이 치고 있었는데 순간 그 소용돌이 쪽으로 기관장 님이 밀려들어가는게 아닌가.......
그렇다 저건 분명 기관장님이었다...
연세가 많았고 더구나 두터운 옷까지 입고 물에 입수된 그는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의 와류쪽으로 밀려 들어간 것이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그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약300 여미터에 있는 녹진포구 어항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다 보니 이미 마을 주민들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들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떤분은 앉아서 땅을 치고 있었고 어떤 분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울고 있었고...
나는 어항에 매어져 있는 해경 경비정으로 뛰어 내려가 근무하고 있는 해경에게 사고 사실을 말하고 구조요청을 했으나 해경 근무자는 그 경비정의 경비정장이 아직 부재중이라 경비정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무슨 어이가 없는 일인가 바로 앞에서 한사람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대장이 없다고 구조에 나서지 않는다는건...
10분 지났을까 경비정장이라는 분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서 들어와 어찐된 일인지 뭍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어찌 되든 저찌 되든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더니 그 경비정장의 말이 가관이다 이미 대교 밑으로 휩쓸린 사람은 생존이 제로 라 지금 나서 바야 구조엔 소용이 없단다...
쳐 죽일 놈들...
그런데 더욱 가관인건 그 경비정장 얼굴이 뻘겋게 된 사실은 술을 먹어서 그렇게 됐다.
나와 이야기 중에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진동했다.
근무중에 음주라니...
지금의 진도대교
지금이야 그런일이 없겠지만 20년전 그당시 대다수 해경의 근무가 이렇게 태만했다...
그 전에도 어선 근무할때 보면 해경들이 검문을 이유로 배에 올라와선 어획한 고기나 그외에 돈까지 뜯어가는걸 수차례 보아와서 더욱 이런 상황하에 그들이 자발적인 행동을 바라지 않았다...
그후 동행했던 다른 선원 두명은 뒤집힌 보트의 안전줄을 붙잡고 다시 본선에서 구출됐으나 기관장님은 그날이후 29일 만에 사고지역에서 40여 키로 미터 떨어진 해남 땅끝 마을 어란진 부근 해상에서 발견 되었고 ....
그가 발견되기 까지 나는 목포해경에 수감되어 조사 받느라 수많은 악몽의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수차례 목포 해경 시체 안치소에 가서 다른곳에서 발견된 해안 변사체를 보게됐다...
기관장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 해야 했고 시체 안치소를 다녀온뒤엔 밥도 먹지 못하고 어김없이 밀려 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나마 정신적 쇼크가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어떤땐 참 지독한 놈이구나 하고 쓴 웃음이 나올때가 많다.
그 경비정장은 자신의 음주사실이 알려질까바 전전근긍 했고 경비정장의 작성한 사건 보고서에 기관장과 내가 엔진 부속 구입차 목포로 이동중 발생사고라고 해서 다행히 기관장은 재해 보상을 받게 되어 그나마 그의 가족들에겐 위안이 되었으리라....
나는 보헙사 직원의 집요한 추궁과 회유를 받았지만 굳게 다믄 나의 입은 결국 근무중 사고로 결정되었고 그 경비정장의 보고서가 판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간 세번의 해난 심판과 보험 소송 재판을 받으면서 두달여를 고생했던 나는 그후 그배를 그만두고 동원산업 참치 선망선 기관사로 직장을 옮겨 버렸다....
마도로스 스토리 2 / 해남 우수영에서의 선박 전복사고
이 글은 제가 1983년 부터 지금까지 15년간 각종 선박에 근무하면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은 글입니다....
어선이 높은 파도에 의해 전복되는 생생한 동영상
1989년 10월 29일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1등 기관사로 근무하는 부산 기륭해운 소속 모래 운반선 17성운호(1200톤급)는 1989년 10월 28일 아침 부산 감천항에서 출발하여 모래 채취 하역차 신안군 압해도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우리배는 안개 자욱한 감천 앞바다를 지나 거제도 서이말을 통과할즈음 아침 식사를 했다.
나는 오일청정기(퓨어리파이어) 를 분해 소재후 조립하고 재 가동한후 뒤늦게 식당으로가서 기관장 옆자리에 앉았다.
기관장은 사무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내용은 기관장님 자신이 왜 부산에서 바로 버스로 진도에 가지 않고 배로 다시 왔는지 사무장이 물어봤다.
기관장은 어제 오후에 나에게 자신의 부친 제사를 18년 만에 다시 모시게 되어 고향인 진도에 간다고 했는데 기관장은 버스로 가도 될 일인데도 부득이 배에 다시 승선 해서 사무장이 왜 그런건지 물어본거였다.
그당시 근무했던 동종의 모래 운반선
기관장 말씀은 주엔진 상태가 안좋아서 완도까지 운항하며 상태 확인후 완도에서 하선 했으면 한다고 사무장에게 부탁했다.
완도는 우리배가 지나가는 항로라 사무장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기관장님은 완도에 다다를 무렵 또다시 하선지를 변경했다.
아무래도 주엔진의 보쉬펌프 플런저 상태가 좋지않아 엔진 출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고 스페어 플런저는 목포의 엔진 수리 공장에 재생가공을 의뢰해논 상태라 교체할 부품이 없었고 기관장의 지시에 따라
나는 매 시간 마다 엔진의 상태를 체크하며 인디케이터로 데이타를 뽑았다.
내가 판단하기엔 출력저하가 있지만 공선 운항이라 항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기관장님은 만에 하나 일어날 엔진 고장을 염려 했던지 안심하지 못했던겄이다.
그래서 기관장님은 진도의 벽파진에서 하선하여 고향으로 가기를 원했고 나는 목포에 입항한뒤 엔진 수리공장에 가서 플런저를 찾아와서 교체하라고 했다.
사무장도 그렇게 하라고 해서 우리는 일정대로 벽파진으로 항로를 잡고 계속 항해했다.
벽파진은 해남 땅끝 에서 목포를 가는 길목인 울돌목 전에 있는 진도에 소재한 작은 어항이다.
울돌목은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가장 쎄기로 알려진 곳이고 대부분의 배들은 이곳을 지날때 하행 선박은 썰물때 상행 선박은 밀물조류를 타고 가야만 통과가 가능 할정도로 물쌀이 쎈 곳이기에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이 물쌀을 이용해서 왜군을 수장시킨 명량해전의 역사적인 장소 이기도하며 진도와 해남 우수영을 잊는 사장교(진도 대교)가 건설된 곳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제2 진도대교가 완공됐다고 한다.
벽파진에 도착하니 진도 대교 통과 상행운항을 위해 조류가 바뀌길 기다리는 선박 여러척이 벽파진 앞바다에서 앵커를 내려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배도 두시간후 바뀔 조류를 기다리기위해 앵커를 내렸다.
그런데 기관장은 자신의 하선지를 진도 대교 통과한후 진도쪽 대교끝에 위치한 작은 포구인 녹진어항에서 한다고 해서 사무장은 그곳은 물살에 쎈곳인데 라이프 보트를 내릴수 있겠냐고 갑판장에게 물어봤다...
갑판장은 조류가 썰물로 바뀌는 시점에만 그 지역엔 조류가 약하게 감소한다며 그 시점에 보트를 내리면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 판단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
사무장은 그낭 벽파에서 바로 가면 될껄 왜 굳이 녹진에서 내릴려고 하는지 기관장에게 푸념 했지만 기관장은 녹진으로 가면 집으로 가는길이 빠르다는 애기만 할 뿐 아무 애기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진도 대교 숭어 뜰채 잡이
60이 다된 나이에 한동안 모시지 못했던 자신의 부친 제사를 18년 만에 모시게 되서 기관장도 마음이 무거웠으리라 생각 했지만...
녹진 포구가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된 곳이 될줄은 전혀 알지 못했으리라.
우리는 밀물 조류를 따라 진도 대교를 무사히 통과하고 녹진 포구 앞으로 가서 6시간후 썰물로 바뀔 조류를 기다리기위해 다시 앵커를 내렸다.
그런데 기관장은 녹진에서 내릴때 나도 동참해서 내리자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는데 기관장은 녹진에서 목포가는 버스타고 목포에 가서 맏겨둔 플런저를 찾아 오라고 했다.
자신은 제사 지내고 바로 배에 복귀한다고 하며 지금의 엔진 상태론 엔진 출력이 모래 펌핑 작업을 진행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이미 회사에 통보했고
사무장에게도 플런저 교체후에 작업하자고 요청해놨다고 했다.
나는 상관의 지시라 그렇게 한다고 하고 주엔진 연료 펌프인 보쉬 펌프를 아쎔블리로 들어내고 박스에 싸놓은뒤 목포로 가기위해 준비했다...
6시간이 지난 무렵 나를 비롯한 기관장이하 갑판부원과 조리장이 목포를 가기위해 선미 푸프 데크에고정된 오픈식 라이프 보트 쪽으로 갔다 갑판장은 미리 나와서 고정 로프를 풀고 데비트를 좌현쪽 으로 옮겨 놓았다.
오픈식 라이프 보트엔 추진용으로 소형 공냉식 3기통 디젤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서 보트를 내리기전 나는 보트의 엔진을 시동하고 보쉬 펌프 박스를 보트에 싫었다 부피가 커서 갑판부원과 조리장과 함께 목포까지 동행 하기로 해서 일행 4명은 라이프 보트에 올라탔다.
기관장은 날씨가 추웠던지 말끔한 양복위에 두꺼운 외투까지 입고 있었다.
나머진 간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보트에 올라탔고 갑판장은 보트를 안전하게 수면에 안착시키기위해 데비트 윈치를 조작했고 보트 선수부엔 다른 선원이 안전줄을 잡고 있었는데 보트가 수면에 닿자마자 강한 조류에 밀려 선수부가 가라앉았다...
선수 안전줄을 잡고있는 선원은 밀려들어가는 보트를 잡을려고 안간힘을 썻지만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그도 미처 손을 쓸 수 가 없었다.
보트는 이내 빠른 물살에 뒤집히고 동승한 4명도 모두 갑작스레 뒤집히는 보트에서 차디찬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는 빨려들어가는 물쌀에 얼마간 물속에서 어우적 대다 간신히 수면위로 머리를 올려보니 이미 우리 배는 20여미터나 멀어져 있었고 나의 몸은 맹렬한 조류에 진도대교 밑의 세찬 와류지역으로 밀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머맀속에서 살아야 됨을 느끼고 미친듯이 녹진 포구 끝으로 반은 조류에 밀리고 반은 힘껏 온 힘을 다한 수영으로 헤엄쳐 갔다.
거침없이 울돌목 진도 대교 밑으로 로 밀어내는 차가운 물살은
살아야 된다는 나의 강한의지를 꺽지 못했다.
어릴적부터 눈만 뜨면 바다(제주도 성산포)에서 살아온 나였지만 평생 살면서 이렇게 세찬 물살은 처음 이었다.
조류는 삼켜 버릴듯 달려드는 야수처럼 나의 몸을 수면위로 올렸다가 다시 끌어내리더니 혼탁한 물속에선 나를 뱅뱅 돌리며 내팽겨치고...
그렇치만 군(해병대)에서도 수영이라면 항상 자신 있었던 나였고 그간의 힘든 선박생활을 겪었고
그간의 산전 수전 육박전까지 치룬 내가 쉽게 무너지진 않으리라...
좌우간 악착같이 죽음의 그림자와 대항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녹진 포구의 끝자락을 향해 있는 힘껏 헤엄쳐갔다...
빨려들다 뒤집히다 밀려 올라오다를 수 백번 반복하다보니 이젠 내가 타는 배는 보이지도 않았고 야속한 녹진 포구 끝자락은 내내 그자리에서 다가오지도 않았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죽음의 공포감과 육체에 뚫려진 모든 구멍을 통해스며든 짜디짠 바닷물은 어느새 물먹은 하마 처럼 나의 배를 부풀어 오르게하고 그에따라 흠뻑 젖은 바지자락에 힘겨운 헤엄치기를 수차례 하면서 차츰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 나갔다....
아........ 이래서 죽는 거구나....
순간 순간 떠오르는 어머니와... 나 없인 못산다는 예쁜 순이 얼굴이 슬라이드 처럼 나의 시야에 스처지나간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다... 포기를 할려고 하는데...
하늘이 도왔을까...
헤엄치기를 포기하고 그냥 밀리는 조류에 몸을 맡기려고 다리를 내리는 순간....
아......... ㅜㅜㅜㅜㅜㅜㅜㅜ
신발이 벗겨져 나간 나의 발바닥에 전해지는 모래의 부드러운 느낌이....
이젠 살았다는 순간 머리에 스치는건 그건 모래 처럼 느껴진 발바닥의 느낌은 수심이 이젠 얕아 졌다는걸 직감했다.
살았다...
이런 느낌은 그 어느 누구도 느껴 보지 못했으리라......
나는 힘차게 다시금 그 모래 바닥을 딛고 몸을 세워보니 수심은 나의 가슴께 까지 물이 차올랐다...
조류가 쎄지만 발을 디딜 수가 있기에 나는 온 힘을 다헤 바닥을 박차고 녹진 포구 끝자락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로 향했다...
그러기를 30분쯤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그렇게 바라던 삶의 희망인 녹진 포구로 다다랐다...
천근 만근이 된 몸을 겨우 뭍에다 올려놓곤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동행들의 뇌리에 스처 지나간다.
어떻게 됐을까 나의 배는 약 2키로 미터 밖에서 안개에 휩싸여 희미하게 보이고 진도대교 밑에선 부서질듯 밀려오는 세찬조류가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맹렬히 소용돌이 치고 있었는데 순간 그 소용돌이 쪽으로 기관장 님이 밀려들어가는게 아닌가.......
그렇다 저건 분명 기관장님이었다...
연세가 많았고 더구나 두터운 옷까지 입고 물에 입수된 그는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의 와류쪽으로 밀려 들어간 것이다...
내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그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약300 여미터에 있는 녹진포구 어항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다 보니 이미 마을 주민들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들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떤분은 앉아서 땅을 치고 있었고 어떤 분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울고 있었고...
나는 어항에 매어져 있는 해경 경비정으로 뛰어 내려가 근무하고 있는 해경에게 사고 사실을 말하고 구조요청을 했으나 해경 근무자는 그 경비정의 경비정장이 아직 부재중이라 경비정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무슨 어이가 없는 일인가 바로 앞에서 한사람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대장이 없다고 구조에 나서지 않는다는건...
10분 지났을까 경비정장이라는 분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서 들어와 어찐된 일인지 뭍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어찌 되든 저찌 되든 일단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더니 그 경비정장의 말이 가관이다 이미 대교 밑으로 휩쓸린 사람은 생존이 제로 라 지금 나서 바야 구조엔 소용이 없단다...
쳐 죽일 놈들...
그런데 더욱 가관인건 그 경비정장 얼굴이 뻘겋게 된 사실은 술을 먹어서 그렇게 됐다.
나와 이야기 중에 그의 입에선 술냄새가 진동했다.
근무중에 음주라니...
지금의 진도대교
지금이야 그런일이 없겠지만 20년전 그당시 대다수 해경의 근무가 이렇게 태만했다...
그 전에도 어선 근무할때 보면 해경들이 검문을 이유로 배에 올라와선 어획한 고기나 그외에 돈까지 뜯어가는걸 수차례 보아와서 더욱 이런 상황하에 그들이 자발적인 행동을 바라지 않았다...
그후 동행했던 다른 선원 두명은 뒤집힌 보트의 안전줄을 붙잡고 다시 본선에서 구출됐으나 기관장님은 그날이후 29일 만에 사고지역에서 40여 키로 미터 떨어진 해남 땅끝 마을 어란진 부근 해상에서 발견 되었고 ....
그가 발견되기 까지 나는 목포해경에 수감되어 조사 받느라 수많은 악몽의 시간을 보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수차례 목포 해경 시체 안치소에 가서 다른곳에서 발견된 해안 변사체를 보게됐다...
기관장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 해야 했고 시체 안치소를 다녀온뒤엔 밥도 먹지 못하고 어김없이 밀려 오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나마 정신적 쇼크가 없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어떤땐 참 지독한 놈이구나 하고 쓴 웃음이 나올때가 많다.
그 경비정장은 자신의 음주사실이 알려질까바 전전근긍 했고 경비정장의 작성한 사건 보고서에 기관장과 내가 엔진 부속 구입차 목포로 이동중 발생사고라고 해서 다행히 기관장은 재해 보상을 받게 되어 그나마 그의 가족들에겐 위안이 되었으리라....
나는 보헙사 직원의 집요한 추궁과 회유를 받았지만 굳게 다믄 나의 입은 결국 근무중 사고로 결정되었고 그 경비정장의 보고서가 판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간 세번의 해난 심판과 보험 소송 재판을 받으면서 두달여를 고생했던 나는 그후 그배를 그만두고 동원산업 참치 선망선 기관사로 직장을 옮겨 버렸다....
그후 근무 했던 동원산업 소속 남태평양 참치 선망선
78편의 이런 저런 생생한 경험담이 담겨있는 나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alpala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