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아니야, 감정이 안 살잖아. 너 내가 연기 공부 좀 하라 그랬지. 오늘은 이만 다 접어. 내일 다시 찍자."
" 제기랄 까다롭긴. 이것보다 얼마나 더 잘하라고 그래. 다시 찍긴 뭘 다시 찍어."
" 그러니까 감독이 시키는 대로 좀 잘 하지 그랬어요.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러냐. 자 이렇게 눈에 힘을 주고 분노에 찬 듯 노려보면서..."
하면서 나영은 감정을 몰입해 간다.
" 놀구 있네.... 까불지마. "
나영의 턱을 들어올리며 노려보다가는 놓아주고 간다.
해는 이미 졌고 주변에는 조명등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 이놈 어디 갔어. 또 어디로 샌 거 아냐? "
" 모르겠어요. 연기 못한다고 한 소리 듣더니 기분 상했나봐요. "
" 자식, 연기를 그렇게 못하나. 얼굴 좀 잘 생긴 거 빼고는 재주라곤 없는 얘를 우리 이사장님은 뭘 보고 발탁을 한 거야? "
혁의 오토바이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는 촬영 때문에 며칠째 수연일 보지 못했다 라는 죄책감에 지금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수연인 여전히 허공만 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수연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수연아, 잘 지냈니? 나야. 혁이... 그동안 자주 못 왔지? 미안해..."
" 오늘은 보니까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은 데... "
" 힘찬 이도 많이 컸어... "
" 보고싶지? ... 조금만 더 크면 데려올게.... 힘찬이 걱정은 하지마. 잘 지내"
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 같다.
' 아이 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는 그녀...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걸까? '
그러구보니 힘찬이 본지도 오래됐다.
내일은 힘찬이 데리고 놀이동산에라도 갈까?
벌써 걸어다니고 제법 말도 알아듣고 말도 몇 마디씩 한다.
요즘 들어 자꾸 밖에 나가자고 한다고 원장아버지가 얘기했던 기억이 났다.
원장아버지... 요즘은 어떠신지?
안 뵌지도 오래다...
그는 그 날 밤을 수연이 옆에서 지내고 다음날 오전에 원장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갔다.
늘 수척해 보이는 아버지, 제법 많이 큰 힘찬이, 혁은 이들과 모처럼의 해후를 즐겼다.
촬영장에서는 그가 나타나지 않자 핸드폰을 해대며 안달을 했다.
한참을 안달을 하며 촬영을 포기하려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 야, 너 어떻게 된 놈이 시간도 하나 딱딱 못 맞추냐? "
" 뭐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 데 뭘 그래요? "
" 시작을 안 하긴 뭘 안 해. 그럼 배우 없이 필름만 찍냐? 자 다들 빨리 준비해."
감독이 호되게 핀잔을 준다.
" 야 임마, 너 어젠 어디서 잤어. 집에도 안 들어갔다며. "
" 내가 그런 것도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해요."
매니저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자 빨리들 준비해..."
어제 부족했던 씬을 다 찍고는 다음 씬 촬영에 들어갔다.
혁은 나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영은 혁을 위해 옷 여러 벌을 준비해 놓았다.
옷을 고르던 혁은
" 옷이 뭐 이러냐? 너 코디 맞아? 이런걸 어떻게 입어. "
나영 에게 시비를 걸었다.
순간 나영은 그동안 참았던 화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 영화배우면 배역에 맞는 옷을 입어야지. 지금 네 배역에는 딱 어울리는 옷이야. 감독님도 오케이 했는 데 네가 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
화내는 나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담스러우리 만치 바짝 갖다대고는
" 넌 화낼 때가 젤 루 매력 있더라. "
하면서 웃다가는 노려보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 그럼 너나 입어."
옷을 나영 에게 던지고는 촬영하러 가버렸다.
" 레디 엑션!"
혁과 한 여자가 서있고 카메라가 두 사람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곤 두 사람이 진하게 키스를 한다.
' 감독은 혁의 키스 연기는 맘에 드는 모양이다.'
빼지 않고 성격답게 화끈한 키스였다,
나영은 순간 여배우가 자신으로 바뀌는 응큼한(?) 상상을 했다.
" 수고했어. 맘에 들어. 오늘 촬영은 이만.."
" 수고들 하셨습니다. "
다들 서로 인사하며 정리들이 한창이다.
" 키스신하나는 아주 끝내주게 하네. 경험이 많은가봐.?"
" 너 나한테 관심 있어? "
응큼한 시선으로 혁이 쳐다본다.
" 누가 관심 있대? "
나영은 튕기듯 새침하게 대답했다.
" 그럼 신경 끊어. "
" 피...치... 두고보라지 넌 내가 찍었어 "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며 웃었다.
몇달 후.
" 이것들아, 밥 안 처먹냐? "
" 네? "
" 할머니 방금 전에 밥 먹었잖아요. "
이년들이 내가 노망이라도 난 줄알아. 언제 밥을 먹어. 그건 아침 먹은 거지. 이년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나."
" 아니 할머니 아까 저녁 먹었잖아요. "
" 뭐야, 빨리와서 먹든 말든해, 난 상 두 번 안차린다. "
나영과 서경은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가 벙찐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영은 자신의 귀에다 원을 그려대며 입을 삐죽거린다.
" 저 노인네 완전히 미친거 아냐? 언니"
" 넌 무슨 그런 소릴하니? 뭐 맞있는 거라도 해 놓으셨나? "
서경은 주방으로 갔고 나영이 따라 나섰다.
" 할머니 뭐 맛있는 거 하셨어요?."
" 그랬지, 히히. "
음흉한 초점없는 눈빛으로 밥만 자꾸 퍼먹는다.
마구 흘려가며 ...
그 모양이 좀 얘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서경은 앞에 놓인 그릇을 열었다.
" 할머니 이게 뭐예요.? "
" 그거 네년이 좋아하는 닭도리 탕이잖아. 맛있겄지. 내가 특별히 생각나서 준비혔어. 맛있게 먹더라고."
" 할머니."
" 언니, 뭔데? "
" 하악! "
그냥 생닭이 토막도 쳐 지지 않은 채 들어있다.
" 이 노인네가 미쳤구만 , 미쳤어."
" 뭐야, 이년아, 다시 한 번 얘기해봐 . 이년이 지금 뚫린 입이라고 막말이야."
할머니는 온 얼굴에 밥풀을 붙이고는 나영이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댄다.
서경은 기겁을 하여 말렸으나 어디서 나는 지 할머니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 할머니, 그거 놓고 얘기하세요. 서경씨, 할머니가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거예요.?"
" 모, 모르겟어요. 할머니가 이상하세요."
" 뭐야, 이년아, 내가 이상하다고. 이년들이. "
다시 서경에게 달려들려고 하는것을 영원덕에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그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한 나영이 저만치 서서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씩씩거린다.
" 분명히 저 할망구가 노망이 든게 틀림없어. 언니 내 말이 맞지? 빠빨리 기획사에 전화해서 가정부 바꿔 달라고 하자. 응"
" 그만해 나영아, "
" 할머니, 좀 들어가서 쉬세요. 네"
" 아니 난 안 피곤해. 이년들아. 니들이나 가서 쉬어."
그렇게 하루를 마감한 그들은 그 다음날도 아침먹자마자 또 아침을 차린 할머니 덕에 아침, 점심, 저녁 매끼를 두끼씩 먹어야했다.
평상시엔 상 두번 안 차리기로 유명했던 이 할머니가 말이다.
" 언니, 나 무서워 죽겠어. 저러다가 저 할머니가 나 해꼬지라도 하면 어떻게해. 표정봐봐. 초점이 없는 게 장난이 아니잖아."
" 알았어. "
서경은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다.
" 저기 할머니께서 나이도 있으시고 하셔서........"
" 네."
그렇게 며칠 후 할머니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고 병원에서 치매로 판정이 났다.
할머니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와서는 할머니를 모셔가기로 했다.
오늘은 할머니가 떠나시는 날..
" 나 가기 싫어, 안 갈거야."
" 어무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십니꺼, 여기서 어무이 몸이 이리 됐부렀는 디 뭐가 좋다고요. 어서 타이소. 실장님. 그럼 이만 가볼랍니더. 참 그리고 이건 어디 까지나 산재니께 보상은 톡톡히 해주시겠지요. 그 약속하신대로 퇴직금하고 온라인 통장으로 좀 입금해 주이소. 그럼 이만 가볼랍니더."
" 할머니,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몸 건강하셔야 돼요."
서경이 할머니 손을 꼭 잡으며 얘기한다.
" 나, 안갈래, 나 좀 안가게 해줘. 이 놈이 날 굶겨 죽일겨. 응. 나 좀 숨겨줘."
" 아이고, 어무이. 무신 소릴 하십니꺼. 남들이 들으면 진짠 줄 알겠심더. 어서 가입시더. 야! 집한 번 좋다."
넉살 좋게 집을 한 번 훓어보더니 차에 탄다.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영원이 한마디한다.
" 아들이 썩 잘해 줄것 같지 않은 데요."
" 그러게요. 잘 사셔야 될 텐데."
" 그러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지. 그럼 새 가정부는 언제 오나요?"
나영이 실장에게 묻는다.
" 글쎄, 그게 좀 시간이 걸릴것 같은데. 요즘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특히 이런 외진 곳에 상주 가정부를 찾아야하니 쉽진 않을 거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알아보지."
(러브로망) 치명적인 사랑 [11]
#11. 그들을 사랑하는 여인들...
여기는 ** 방송국 리허설현장...
객석에는 관객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한쪽에서는 세트를 꾸미느라 한창이고 무대 위에 서있는 영원은 한창 노래연습 중 이었다.
서경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또 한번 그의 완벽한 외모에 매료되었다.
잠시 후 본 방을 위해 관객들이 들어올 준비를 하고 영원은 대기실로 들어갔다.
영원의 마지막 머리를 매만지는 서경의 손끝이 전과 같지 않게 떨렸다.
영원도 그 미묘한 변화를 느낀 것일까?
거울 속에서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 진지한 미소를 보냈다.
서경은 자신이 얼굴이 빨개졌을 까봐 걱정하면서 다시 한번 거울로 확인을 했다.
드디어 본 방이 시작되었고 그를 보기 위해 그의 팬클럽이 총동원된 것 같았다.
다들 그의 이름과 얼굴이 들어있는 프랭카드 들을 들고는 아우성이다.
무대 위에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의 우수 어린 눈빛과 얼굴...
그가 노래하고 있다.
흐릿한 조명아래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윤곽선으로 인해 서경은 팬들 이상으로 흥분이 되었다.
점점 더 그에 대한 간절한 맘이 깊어 가는 것이 문득 두렵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서경은 관객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영원의 집에는 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그 편지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할머니에 의해 영원의 방으로 옮겨졌으며 할머니는 특유의 성격답게 입에 침을 발라가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봉투 속에서 튀어나온 사진 두 장을 보고는 할머니는 자지러 질 뻔했다.
사진은 수연과 영원이 함께 찍은 사진과 영원이 떠난 후 찍은 듯한 슬프게 웃어 보이는 수연의 얼굴이 들어있다.
" 아이고 곱기도 하지.. 이 처자는 누구 다냐? ... 둘이 애인인 갑는데? ... 이쁜 샥시네... 우리 아들 소개 시켜 줘야지. "
하면서 할머니는 사진을 치마 속 쌈지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에게는 이미 결혼한 아들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본지도 꽤 오래됐을 텐데... 말이다.
혁은 요즘 영화촬영으로 정신이 없었다.
역할은 복서들의 얘기였는데 그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 역할을 맘에 들어했다.
며칠을 도장에서 권투연습을 했다.
실전연습으로 진짜 복서와도 대련을 했는 데... 그래도 제법 잘 버틴 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도 싸움에 관한 자질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했다.
어렸을 때 그는 아이들에게 맞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 싸움 잘했던 영원은 든든한 보호막이였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동안 몸은 됐는데 심장이 약해서 싸움을 못했었나보다.
매니저는 녀석이 이렇게 열심인 것에 신통한지 계속 싱글거리며 옆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그의 코디를 맡은 나영은 무척 힘들었다.
그는 의상을 자기 멋대로 결정해 버려서 나영이 준비한 옷들은 입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 메이크업을 할라치면 몇 시간을 뻐댕기며 원판이 좋은데 무슨 화장이냐며 메이크업자체를 싫어했다.
워낙 성격이 깐깐한 나영이 조차도 혁의 성격에는 손을 들 정도 였다.
오늘도 그와 실갱이를 한판 해야 할 판이다.
하루의 시작은 늘 그러했다.
그랑 싸우지 않은 날이 신기할 정도였다.
오늘은 야외촬영이 있어서 지금 강원도 어디쯤의 벌판에 나와있다.
한참을 실갱이 하다 겨우 자리에 혁을 앉히고 매이크업을 시작했다.
조금 있더니 이내 나영의 붓을 밀어버리고는 일어나서 가버렸다.
" 나 참... "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나영은 그런 그가 요즘 들어 싫지가 않다.
뭔가 묘한 끌림이 있다.
반항적인 그의 이미지가...
감독이 해가 져가니까 빨리빨리 촬영하자고 종용한다.
진짜 조금만 있으면 짧은 가을해가 다 넘어가겠다 싶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카메라가 돌기 시작한다.
" 내가 고양이에게 생선 먹는 법을 가르쳤나 보군... 이 배은 망덕한 놈. 내 오늘 나의 실수를 만회하지... "
혁의 상대연기자가 대사를 했다.
" 넌 네 안위를 위해 부하들을 팔아먹은 파렴치한 놈이야. 난 오늘 내 친구들의 원수를 갚는다. 너 하나의 쾌락을 위해 정의를 바친 내 친구들의 복수를 해 주겠다."
혁이 대사를 받았다.
" 컷! 혁아, 그게 뭐야, 감정을 더 넣어서 처절하게 다시! "
다시 한번 찍고 감독은 다시 컷!을 외쳤다.
" 아니야, 혁아. 너 좀더 분노에 찬 표정을 지어야지.. 친구들의 원수를 갚는 표정이 뭐 그래. 다시"
" 컷!"
" 그게 아니야, 감정이 안 살잖아. 너 내가 연기 공부 좀 하라 그랬지. 오늘은 이만 다 접어. 내일 다시 찍자."
" 제기랄 까다롭긴. 이것보다 얼마나 더 잘하라고 그래. 다시 찍긴 뭘 다시 찍어."
" 그러니까 감독이 시키는 대로 좀 잘 하지 그랬어요.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러냐. 자 이렇게 눈에 힘을 주고 분노에 찬 듯 노려보면서..."
하면서 나영은 감정을 몰입해 간다.
" 놀구 있네.... 까불지마. "
나영의 턱을 들어올리며 노려보다가는 놓아주고 간다.
해는 이미 졌고 주변에는 조명등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 이놈 어디 갔어. 또 어디로 샌 거 아냐? "
" 모르겠어요. 연기 못한다고 한 소리 듣더니 기분 상했나봐요. "
" 자식, 연기를 그렇게 못하나. 얼굴 좀 잘 생긴 거 빼고는 재주라곤 없는 얘를 우리 이사장님은 뭘 보고 발탁을 한 거야? "
혁의 오토바이는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는 촬영 때문에 며칠째 수연일 보지 못했다 라는 죄책감에 지금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수연인 여전히 허공만 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수연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수연아, 잘 지냈니? 나야. 혁이... 그동안 자주 못 왔지? 미안해..."
" 오늘은 보니까 더 예뻐 보이는 것 같은 데... "
" 힘찬 이도 많이 컸어... "
" 보고싶지? ... 조금만 더 크면 데려올게.... 힘찬이 걱정은 하지마. 잘 지내"
또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 같다.
' 아이 얘기만 하면 눈물을 흘리는 그녀...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걸까? '
그러구보니 힘찬이 본지도 오래됐다.
내일은 힘찬이 데리고 놀이동산에라도 갈까?
벌써 걸어다니고 제법 말도 알아듣고 말도 몇 마디씩 한다.
요즘 들어 자꾸 밖에 나가자고 한다고 원장아버지가 얘기했던 기억이 났다.
원장아버지... 요즘은 어떠신지?
안 뵌지도 오래다...
그는 그 날 밤을 수연이 옆에서 지내고 다음날 오전에 원장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갔다.
늘 수척해 보이는 아버지, 제법 많이 큰 힘찬이, 혁은 이들과 모처럼의 해후를 즐겼다.
촬영장에서는 그가 나타나지 않자 핸드폰을 해대며 안달을 했다.
한참을 안달을 하며 촬영을 포기하려는 순간 그가 나타났다.
" 야, 너 어떻게 된 놈이 시간도 하나 딱딱 못 맞추냐? "
" 뭐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 데 뭘 그래요? "
" 시작을 안 하긴 뭘 안 해. 그럼 배우 없이 필름만 찍냐? 자 다들 빨리 준비해."
감독이 호되게 핀잔을 준다.
" 야 임마, 너 어젠 어디서 잤어. 집에도 안 들어갔다며. "
" 내가 그런 것도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해요."
매니저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자 빨리들 준비해..."
어제 부족했던 씬을 다 찍고는 다음 씬 촬영에 들어갔다.
혁은 나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영은 혁을 위해 옷 여러 벌을 준비해 놓았다.
옷을 고르던 혁은
" 옷이 뭐 이러냐? 너 코디 맞아? 이런걸 어떻게 입어. "
나영 에게 시비를 걸었다.
순간 나영은 그동안 참았던 화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 영화배우면 배역에 맞는 옷을 입어야지. 지금 네 배역에는 딱 어울리는 옷이야. 감독님도 오케이 했는 데 네가 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
화내는 나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담스러우리 만치 바짝 갖다대고는
" 넌 화낼 때가 젤 루 매력 있더라. "
하면서 웃다가는 노려보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 그럼 너나 입어."
옷을 나영 에게 던지고는 촬영하러 가버렸다.
" 레디 엑션!"
혁과 한 여자가 서있고 카메라가 두 사람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곤 두 사람이 진하게 키스를 한다.
'
감독은 혁의 키스 연기는 맘에 드는 모양이다.'
빼지 않고 성격답게 화끈한 키스였다,
나영은 순간 여배우가 자신으로 바뀌는 응큼한(?) 상상을 했다.
" 수고했어. 맘에 들어. 오늘 촬영은 이만.."
" 수고들 하셨습니다. "
다들 서로 인사하며 정리들이 한창이다.
" 키스신하나는 아주 끝내주게 하네. 경험이 많은가봐.?"
" 너 나한테 관심 있어? "
응큼한 시선으로 혁이 쳐다본다.
" 누가 관심 있대? "
나영은 튕기듯 새침하게 대답했다.
" 그럼 신경 끊어. "
" 피...치... 두고보라지 넌 내가 찍었어 "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리며 웃었다.
몇달 후.
" 이것들아, 밥 안 처먹냐? "
" 네? "
" 할머니 방금 전에 밥 먹었잖아요. "
이년들이 내가 노망이라도 난 줄알아. 언제 밥을 먹어. 그건 아침 먹은 거지. 이년들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나."
" 아니 할머니 아까 저녁 먹었잖아요. "
" 뭐야, 빨리와서 먹든 말든해, 난 상 두 번 안차린다. "
나영과 서경은 거실에 앉아 TV를 보다가 벙찐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영은 자신의 귀에다 원을 그려대며 입을 삐죽거린다.
" 저 노인네 완전히 미친거 아냐? 언니"
" 넌 무슨 그런 소릴하니? 뭐 맞있는 거라도 해 놓으셨나? "
서경은 주방으로 갔고 나영이 따라 나섰다.
" 할머니 뭐 맛있는 거 하셨어요?."
" 그랬지, 히히. "
음흉한 초점없는 눈빛으로 밥만 자꾸 퍼먹는다.
마구 흘려가며 ...
그 모양이 좀 얘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서경은 앞에 놓인 그릇을 열었다.
" 할머니 이게 뭐예요.? "
" 그거 네년이 좋아하는 닭도리 탕이잖아. 맛있겄지. 내가 특별히 생각나서 준비혔어. 맛있게 먹더라고."
" 할머니."
" 언니, 뭔데? "
" 하악! "
그냥 생닭이 토막도 쳐 지지 않은 채 들어있다.
" 이 노인네가 미쳤구만 , 미쳤어."
" 뭐야, 이년아, 다시 한 번 얘기해봐 . 이년이 지금 뚫린 입이라고 막말이야."
할머니는 온 얼굴에 밥풀을 붙이고는 나영이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댄다.
서경은 기겁을 하여 말렸으나 어디서 나는 지 할머니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 할머니, 그거 놓고 얘기하세요. 서경씨, 할머니가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거예요.?"
" 모, 모르겟어요. 할머니가 이상하세요."
" 뭐야, 이년아, 내가 이상하다고. 이년들이. "
다시 서경에게 달려들려고 하는것을 영원덕에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그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한 나영이 저만치 서서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씩씩거린다.
" 분명히 저 할망구가 노망이 든게 틀림없어. 언니 내 말이 맞지? 빠빨리 기획사에 전화해서 가정부 바꿔 달라고 하자. 응"
" 그만해 나영아, "
" 할머니, 좀 들어가서 쉬세요. 네"
" 아니 난 안 피곤해. 이년들아. 니들이나 가서 쉬어."
그렇게 하루를 마감한 그들은 그 다음날도 아침먹자마자 또 아침을 차린 할머니 덕에 아침, 점심, 저녁 매끼를 두끼씩 먹어야했다.
평상시엔 상 두번 안 차리기로 유명했던 이 할머니가 말이다.
" 언니, 나 무서워 죽겠어. 저러다가 저 할머니가 나 해꼬지라도 하면 어떻게해. 표정봐봐. 초점이 없는 게 장난이 아니잖아."
" 알았어. "
서경은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다.
" 저기 할머니께서 나이도 있으시고 하셔서........"
" 네."
그렇게 며칠 후 할머니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고 병원에서 치매로 판정이 났다.
할머니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와서는 할머니를 모셔가기로 했다.
오늘은 할머니가 떠나시는 날..
" 나 가기 싫어, 안 갈거야."
" 어무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십니꺼, 여기서 어무이 몸이 이리 됐부렀는 디 뭐가 좋다고요. 어서 타이소. 실장님. 그럼 이만 가볼랍니더. 참 그리고 이건 어디 까지나 산재니께 보상은 톡톡히 해주시겠지요. 그 약속하신대로 퇴직금하고 온라인 통장으로 좀 입금해 주이소. 그럼 이만 가볼랍니더."
" 할머니,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몸 건강하셔야 돼요."
서경이 할머니 손을 꼭 잡으며 얘기한다.
" 나, 안갈래, 나 좀 안가게 해줘. 이 놈이 날 굶겨 죽일겨. 응. 나 좀 숨겨줘."
" 아이고, 어무이. 무신 소릴 하십니꺼. 남들이 들으면 진짠 줄 알겠심더. 어서 가입시더. 야! 집한 번 좋다."
넉살 좋게 집을 한 번 훓어보더니 차에 탄다.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영원이 한마디한다.
" 아들이 썩 잘해 줄것 같지 않은 데요."
" 그러게요. 잘 사셔야 될 텐데."
" 그러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지. 그럼 새 가정부는 언제 오나요?"
나영이 실장에게 묻는다.
" 글쎄, 그게 좀 시간이 걸릴것 같은데. 요즘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말이야. 특히 이런 외진 곳에 상주 가정부를 찾아야하니 쉽진 않을 거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알아보지."
" 요즘 저희도 바쁜데 될 수 있는 대로 좀 빨리 구해주세요."
" 그러지."
실장이 탄 차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잠시 서 있었다.
~~~ 다음편엔 새 가정부가 등장합니다. 너무 정신 없나요.
그래도 재밌게 봐 주시구요. 늘 필독하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