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를 관측한 세종대왕

완소혜교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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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측우기록이 세밀하고 자상한 나라도 없었다는 것은 정설이 돼 있다.  조선시대의 측우기록인 '풍운기'를 보면 비오는 모양의 강약까지 8단계로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다.

 

미우(微雨), 세우(細雨), 소우(小雨), 하우(下雨), 쇄우(灑雨), 취우(驟雨), 대우(大雨), 폭우(暴雨)가 그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각 도로 하여금 비가 땅 속 어느만큼 스몄는가 하는 것까지 측정하여 농정을 베풀도록 했다. 또 홍수에 대비하여 강물마다 수표를 세워 수심을 측정하고 폭우를 내리면 강물의 유속을 재어 봉화대로 그 속도를 알려줌으로써 하류지역의 피해를 줄이도록 했다.

 

조선시대 과학적인 방법으로 홍수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설치된 것이 수표이다. 수표는 세종 23년(1441년) 세종대왕께서 서울시내에 있는 청계천과 한강변의 암석 위에 설치하여 홍수의 높이를 관측하는 것이 처음이다.  그 뒤로도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 전국의 주요 하천에 수위표를 설치하여 관측하였다.

 

수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돌로 만들었다.  그 수표가 지금 하나 남아있다.

그것은 청계천 수표교 서쪽 상류 약 10m 거리에 설치되어 홍수위를 관측하여 왔던 것으로 청계천 복개 때 장충단 공원에 이설하였다가 그 뒤 다시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 수표는 길이 2m 남짓 직경 30㎝ 정도인 육각형 돌기둥으로서 1주척(周尺)마다 직선눈금을 넣어 10척까지 한자로 매척의 높이가 표시되어 있다. 당초 수표교에 설치되어 있을 때는 다리 위에서 관측할 수 있도록 수표교에서 바라보이는 면에 3, 6, 9척마다 8㎝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놓아 멀리서도 쉽게 홍수의 높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수표는 영조 36년(1760년) 청계천의 홍수범람으로 생기는 시내의 수해를 줄이기 위하여 청계천의 준설 및 유지관리를 전담하는 기구인 준천사를 개설하면서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표에 의하여 관측된 홍수위의 기록은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명종 9년(1554년) 7월 15일 「大水漢江水標 二十一尺二寸」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수표교는 조선 세종 때 청계천에 세운 다리 중의 하나이다. 길이 27.5m, 폭 7.5m, 높이 4m 6모로 된 큰 다리 기둥에 길게 모진 시렁을 얹고 그 사이에 판석을 깔아 만들었다. 청계천으로 흐르는 수량을 측정하였던 다리로 다리 돌기둥에 경(庚) - 진(辰) - 지(地) - 평(平)이란 표시를 해서 물의 깊이를 재었다.

 

영조 때에는 다리 동쪽에 있던 준천사란 관아에서 수량의 변화를 한성판윤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내용출처 : [기타] 인터넷 : http://www.redmi.com/water1/main4-1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