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말이죠...

은영2004.03.25
조회712

정말 피곤했다.

내가 생각해도 집에서 하는 일도 없는데, 왜 피곤한지 나도 모르겠다.

일종의 상실감이 아닌 가 싶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도 주부로써 집에서만 있었다면 이 독일생활이 별반 다를 것 없이

아니, 오히려 더 편했을 텐데 갑자기 바뀌어버린 , 주부로써만 살아야 하는 독일생활이

한심하기도 하고 , 무섭기도 하고, 외롭고, 힘들기도 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그 말은 참으로 명언중에 명언인 듯 싶다.

요즘은 그나마 네이트에 재미를 붙여서인지

처음보다는 점점 좋아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마도 지훈어머님, 젖살공주님, 율리아님,  none님,  쥰세이님, 푸른냇물님 등

네이트를 사랑하시는 분들의 동병상련같은 마음이 같이 하지 않았나 싶다.

 

어제도 정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를 향해 갔다.

언제나 아늑한(나만의 생각이지만)침대에서 하늘을 향해 자다가  불편했는지

옆으로 돌아 누우려고 하는데,

몸은 돌아가는데 왼쪽팔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떨결에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만졌는데 감각 자체가 없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무서웠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울 수가 없었고,

엉겁결에 오른팔로 왼팔을 주무르고 꾹 꾹 누르기도 하고 맛사지도 했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25분을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이 가리키고 있었다.

 

만져도 느낌도 없고 꼬집어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이 왼쪽팔을 어떻게 해야하나?

병명도 모르는 이 아픔이, 이 고통이 "만약"을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의료보험은 있나? -아, 가입 했지.

응급병원의 전화번호가 몇번이었지? - 그래, 전에 다녔던 학원 강사가 응급전화번호를 한장에 요약해서

                                                         정리해 준 것 있지.

만약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그래서 입원해서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남편과 아이들 밥과 빨래는 어떻게 하지?

최악의 상태로 팔을 잘라야 하는 상태까지 간다면?

그러다가 내가 죽는다면?

 

온갖 상상을 다 하면서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었다.

팔은 약간의 저린 증상을 미미하게 남긴 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

 

똑같은 일을 독일에서 당했는데 왜 무서움과 두려움이 앞을 가려 사리판단을 흐리게 했는지..

한국의 하늘이 그리웠다.

고향이 이토록 그리운지,

 

고향이 그립고, 대한민국의 하늘이 그리운 것은 노년층의

쓸데없는 하소연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더 젊었더라면,

그래서 이 사회에 융화가 될 수 밖에(직업) 없었더라면,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주부로써만 충실했더라면,

내가 내 인생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사 바치겠노라고 맹세하고 외국으로 나왔더라면,

지금의 난 좀  좋았을 듯  싶다.

 

독일로 오기전 어떤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고향이 그리우도 못가는 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어떤 분이 한국식당에서 술을 드시고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그때는 다 똑같은 하늘인데 독일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대한민국에서 보는 하늘이 무엇이 다를까?

그건 분명히 나이먹은 어르신들이 향수병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는데..

 

어느날 저녁을 준비했다.

평소에 남편이 먹고 싶다는것을 애써 준비했는데 남편이 하는 말

"완전 술 안주네?"

 

그날 메뉴는 골뱅이 무침, 닭똥집, 참치찌게...

내가 보기엔 진수성찬이었는데...

열심히 준비한 아내의 성의를 무시한다고...

앞으로는 이런 것 구경도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밥과 같이 그것들을 먹는데 맥주와는 술술 넘어가던 사랑스러운 안주들이

밥과는 껄끄럽게 나의 식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술안주에 밥먹을 일은 없었을 텐데..

 

이젠 웬만한 건 포기하고 사는 방법을 알았다.

나처럼 살지 않는 모든 분들이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