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

박병석2004.03.28
조회537

사는게 너무 허망한 대한에 아들 박중사.......

먼저, 저의 진술을 기독교인의 신앙 양심에

따라서 거짓됨이 없이

사실을 기록한 것임을 밝혀 진술 합니다.

저는 1986년 10월 05일 여산 하사관 훈련소

 6개월 과정을 끝내고

 7일 휴가 후 사단에 전입을 했습니다.

 (10월 05일 사단장에게 신고하고,

 03일 후 자대로 배치 받았습니다.)

195연대 2대대 막사에서 자대 배치 3일

후 하사인 저에게 일등병 1명과

상병 2명이 내무반에서 신고식을 하라고 했습니다.

정식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

구타와 욕설의 전주였습니다.

저의 소개는 내무반 입소 때 간단히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경례를 하고 고참병들

(이등병을 제외하고,일등병 이상)에게

깎듯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배운

것이 있었고, 하사관의 명예 문제도 있어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자, 윽박질렀습니다.

 안하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저녁에 당시 ? ? ? 일등병 외 6명이

내무반에 있는 저를 막사 뒤로 끌고 갔습니다.

막사 뒤에서 저를 무릎을 꿀리고

꿇어앉은 저를 군화발로 명치를 세 번 찼습니다. 

저녁 먹은 것을 다 토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날 저는 할 수 없이 내무반에서 내무반장

입회하에 사병들에게 하사인 저는 경례를 하고,

신고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 단체로 (약 30명 정도)저녁식사 후

내무반을 수리중이어서 임시로 쳐 놓은 천막

내무반 입구 10m 지점에서 저를 갑자기 내무반으로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 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안 들어가려고 하니까 사병들이 욕설을 해 데면서

군화발로 무릎, 정강이, 얼굴, 배 등을 차고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끌려 들어가면 죽을

것 같아서 끌려가는 도중에 플라타나스 나무를

끌어안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5분정도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그 때는 ? ? ? 병장이 주도를 했습니다.

저는 하사관의 멋과 명예와 군인의 본분과

중간 간부로서 받은 교육을 상실하고 참담함과 두려움이

저를 비참하게 했습니다.

인격도 상실된 저는 혼돈된 상태에서 그나마

남자의 근성이저를 버티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들의 얼굴이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가난 때문에 지원한 하사관, 정부의 돈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입소해서 시작된 군 생활,

가난도 해소 하고 국가에 봉사도 하고,개인의

명예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생활이 두려웠습니다.

체육 대회 때 사단에 함께 배치를 받아 헤어졌던 동기들을 만났는데

신고식때 저처럼 구타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동기는 얼굴에 야전삽에 찍힌 상처가 있었습니다.

동기들도 저와 형편이 비슷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의 쪽의 구타를 많이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관례라는 말을 듣고 부대 내에서도 모른 척 넘어간다고

 하면서 조금 지내면 괜찮아 지겠지 하는 하소연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86년 11월 어느 날 내무반에서 병들이 심한

욕과 함께 철모를 던지고 야전삽을 던졌습니다.

저는 피하면서 하지 말라고 말만 했습니다.

그 누구도 말려주는 이도 없었고, 참으로 외롭고,

서럽고, 날마다 계속되는 사병들의 단체 공격이 두려웠습니다.

이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제 되지 않는

이름뿐인 부하들을 위에서는 시키라고 주문이

계속됐습니다.

밑에서는 반항하고 공격하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웃음을 잃고 대치상태의

1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전체 50명 내무반 인원 중에 2/3가 저를 괴롭혔습니다.

일반하사 내무반장이 팀 스피리트 훈련 중에 병들을

통제 한다고 M16 소총으로 저의 왼쪽 팔꿈치를

내리 찍었습니다.

이 때는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팔이 아파서 붕대를 감고 잘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맞은 팔이 지금도 아픕니다.

 당시, ? ? ? 내무반장은 병들과 합세를

해서 저를 공격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서 위축이 되었고,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7년 08월 경 특공 훈련 중 1층

높이에서 잘못 떨어져 등과(척추) 목을 다쳐 더욱 힘들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도복 띠로 팔과 어깨를 압박하여 매 걸고 다녔습니다.  

중대장 막사와 대대장 막사가 저의 내무반 옆에 있어서 그들도 내가

공격당하고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식당 선임하사에게 저의 고통을 보고하니까

 괴로워도 참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안 되자, 중대장이 총 4명인데 그 중 2명에게

내가 밖에서 술을 대접하면서 힘들고, 괴롭고 아예

공포스럽기까지 하며, 부대원 들이 반항을 하고,

통제가 안 되며 저를 오히려 공격한다고, 구타를 당한

이야기를 하니까 그들은 웃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병들이 저 앞으로 PX에서 저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음식을 차입해서 먹었습니다.

 2~3만원 이면 될 것이 7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PX 관리 방위병에게 얘기를 해도 잘 모르겠다며 협조가 안됐습니다.

 자대 배치 4개월째부터 6개월가량 같은 일이 계속 되다가,

중대장들과 얘기를 한 후 PX차입은 줄었으나 저의 따돌림과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병 2명이 있었는데, 그 2명이 나를 위로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참으라면서 함께 교회가자고 했습니다.

수요일에 교회에 가기 때문에 그 날이 참으로 그리워지고,

그 날은 심정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유일한 낙이 수요일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공포로

가득 찬 생활에서 저는 악몽에 시달리고, 한 번도 편안한 잠자리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수의 사병들이 비위를 맞출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현실이 너무나도 암담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통령 선거 때 부대 전체가 경호부대로 배정 됐고,

88올림픽이 열릴 무렵, 문제가 된 저를 부대에서는 전출시키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예고도 없이 논산 훈련소로 전출이 됐습니다.

 전출 신고식 때 중대장이 박 하사는 터미네이터 보다도 강하다고 했습니다.

저의 구타당하고, 공포와 두려움의 나날들과 맹목적일 정도의 따돌림

내용을 알고 있다는 투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심신이 이미

골병들어 있었습니다.

논산 자대로 이동 후 첫 훈련이 있었습니다. 훈련소 23연대에서

여름 야외 각개 전투 훈련 때에 피곤해서 잠깐 졸았다고

? ? ? 중사가 지시봉으로 때렸습니다. 지시봉이 두 동강이가 나니까

양팔로 양 어깨를 잡고 무릎으로 20~30번 정도 가슴을 치다가

내가 넘어지니까 한번 죽어봐라 면서 두 손으로 목을 졸랐습니다.

그렇게 계속하다가 내가 기절 상태가 되니까

손을 놓고서 나를 방치 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보니 많은 훈련병이

이 사실을 주위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내가 울고 있으니 조교들과 훈련병들이

아프겠다고 하니까 양 중사가 나는 상처는 나지 않고 증거가 남지

 않도록 가슴 속으로 골병만 나게 때렸다고 하며 때리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구타를 당할 때 중대장이 보고도 아무런 지시 없이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참으로 하소연 할 곳이 없었습니다. 

 논산 국군 통합 병원에서 3개월 입원 했을 때는 축구하다가

무릎 부상을 입어 입원해 있었으나 등과 목과 팔을 함께 치료

하고 있었습니다.

X-레이도 찍고 물리치료도 했으나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등의 척추와 목과 팔의 고통을 계속 호소하자 간호 장교가

밖에 나가서 CT 촬영을 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여일 입원해 있다보니 조금 괜찮아 지는 것 같아 퇴원을

했습니다. 

제대 5개월을 앞두고 훈련병 사격 훈련이 있었는데, 훈련이 끝난 후

정리를 끝내고 내무반에서 TV를 본다고 중대장이 지시봉으로 뒤통수를

심하게 때렸습니다. 훈련병이 보는 앞에서 교관이면서 중사인 저를

구타한 것입니다.

 지시봉이 두 동강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뒷날 출근을 안 하니까 서기병이 데리러 와서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을 하니까 교육계에서 불렀습니다.

가서 중대장과 저는 반성문을 쓰라는 지시에 제가 중대장이

먼저 잘못했다고 쓰니까 교육계가 저를 보고 네가 잘못 했으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하면서 중대장에게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제대하는데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중대장에게 제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중대장이 저를 툭툭 치면서 밀쳤습니다.

 아무튼 그것으로 끝이 났으나 그 후 기간 병들과 동료들이

중대장의 눈치를 보면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외롭고, 서글퍼지고, 몸의 아픔고 더 심해졌습니다.

출근하기가 힘들 정도로 팔꿈치와 무릎, 목과 척추가

아팠습니다.

저는 하숙방이나 자취방에서 항상 심한 불안감에 불을 켜 놓아야 했고,

밤새 잠을 못 자고 공포심으로 떨었고,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사물 집중이 잘 안되고, 물질이 자주 흐려 보이고 먼 곳을 보면 갑자기

쓰러지려고 하면서 사물이 겹쳐 보이거나 아른거리기도 했습니다.

눈곱이 심하게 자주 끼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쑥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조금만 참고 있다가 제대하면 괜찮아 지겠지 했습니다.

 제대 무렵에 제가 너무 쇠약해졌다면서 같이 근무하는 군인들이 약을

지어 먹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몸이 불편하니까 군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대인 관계에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휴가 때마다, 집에 가서도 군 생활이 너무 힘들고 구타가 심하다고

하니까 경찰보다 군대의 힘이 세니까, 구제의 길은 참고, 너무 아프면

의무대에서 치료 받고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군대 생활이 더욱 힘들어지고,해결도 안될뿐더러

고문관으로 몰린다고, 참으라고만 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서글펐지만,

그래도 죽기 살기로 참고 또 참으며 제대의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제대 후 저는 공포와 불안이 저를 계속 쫒아 다니면서 환상이

보이고, 환청이 들리고,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발소리만 들어도 군화소리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기로 작정하고 저의 고향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끌어다가 불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고 온 동네에 불이 나버렸습니다.

방송이 되고 난리가 났지만 고향 어르신들의 선처로 풀려났습니다.

그 이후에 또 가스통을 틀어놓고 뒷집 아줌마를 잡아다가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가 저의 친구 어머니인데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지혜로 별 탈 없이 끝이 났으나

그 날 이후로 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고,

부산 대남 정신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대남 병원에서 약을 타다 먹습니다.)

한강 이남에 잘한다는 병원은 다 다녀 보았으나 차도가 없어 약을

먹어야 사는 불쌍한 처지가 됐습니다.

제 나이가 39살입니다.

그 동안에 치료한다고 없는 돈 있는 돈 많이 까먹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신 지체 장애 2급을

받아 사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변두리에서 저의 생을

날마다 죽이고 있습니다. 저의 남은 생을 구제하여 주십시오.

그나마 군대에서 맞이한 신앙이 지금의 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를 불러서 물어보시면 저의 능력이 닿는 데로 위와 같이

진술 하겠습니다.

 지금도 온몸이 아프고 불안으로 떨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시는 어머니, 앞 못 보시는 아버지께 편안한

마음 한 번이라도 드리고 싶고

군대의 원 원 관계가 풀리면 심신도 놓임을 받을 것 같아 호소하는 것입니다.

부디 풀어 주십시오.       

 

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부하에게 구타당해 정신지체2급된박중사입니다(동생이씀)이글은 저희형님 박병운이 심한우울증으로

정신지체2급장애까지온데대한경위서이며

저의가족과 부사관(하사관)으로 제대한

제가입증할수있읍니다.

저는 군생활당시 격었던 사실들이 있지만

이일이 무난히 해결 된다면 선의에 피해자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찬으로서

꼭형님에 억울한 마음을 글로라도 표현해서

풀어주어 네티즌들이 알아서 꼭 잘해결되어

국가를위해 일하다가 저토록 처참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 해결을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다만 눈먼 장님의 아버지와 전번매미태풍으로

인해 팔이 부러저도 보산받지모하시고 치료해야만

했던 어머니에 애타는심정과정신지체 장애로 2급이된

형님을 위해서 이제는우리군현실이 어땠는지

알아야겠기에 이렇게 호소합니다.

네티즌여러분 부디 팔순에가까운 노부모의

사후에 정신지체 장애2급의아들 생활고를걱정하셔서

눈먼장님아버지와 노쇠하여 팔부러진 어머니에

간청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세요.

청와대인터넷신문고에도 올리고 국방부에도올리고

했지만 처리가 다됐다면서 대답을 회피합니다.

우리대한민국의 네티즌의 힘을 빌리고자 이렇게

간곡히청합니다.

네티즌 여러분에 힘을 모아주세요.....

010-8285-7700부산 동대신동에 삽니다.

sunbirdss@naver.com

sunbirdss@hanmail.net

sunbirdss@orgio.net

추신:그때당시는 투표도 집권여당에 찍으라고 보이지 않는 강제가 공공녕하게 드러났고 또한 확인해서 찍지않으면 군생활이 괴로웠으니깐요 부하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지요 그치만 저는 굴복하지않았지만요

이제는 인터넷시대라 다시는 이런 고통스럽고 참혹스런일이 일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인터넷

사용자여러분에게 고합니다.

대한민국에 이고통스런 현실를 이제는 알려서 다시는 우리에 부모와 형제에게

슬픔과 좌절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군사독재시절일어났던 일입니다.

이런 현실이 다시는없어야하지 않겠어요.....

인터넷 사용자여러분 저희형님에 억울한 사실을 랄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