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로망) 치명적인 사랑 [17]

귀여운누나2004.03.31
조회682

 

 

 

 

 

#17. 강 혁, 그도 슬프구나...

 

 

 

 

 


" 뭐야? 또 이렇게 비가 오고 에이씨 구질구질해 죽겠네."


나영이 식탁에 앉아 투덜거렸다.


" 근데 강혁씬 도대체 어디간 거야. 오늘도 촬영있는 데."


서경이 숟가락을 챙기면서 대답한다.


" 촬영장으로 곧장 오겠지. 설마 펑크내겠습니까?"


영원이 거든다.


" 모르죠, 워낙 어디로 튈지 몰라서... "


서경의 말에 나영이 역시나 짜증스런 말투로 얘기한다.


" 그러게 말야, 진짜 내가 성질 많이 죽었지. 힘들어서 못해 먹겠어. "


내가 생각해도 나영 이가 참 대단하다.


그렇게 둘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그래도 용케 잘 버티는 걸 보면..


" 근데 그 놈 요즘 은근히 매력 있단 말야? "


" 매력 ? "


" 응, 앞뒤 안 가리고 튀는 게 은근히 귀여워. 어떻게 보면 내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


" 너... 완전히 콩각지 라도 씌인 거 아니야. 아휴 난 그렇게 제 멋대로인 사람 딱 질색이야. 그래도 영원씨 스타일이 좋지. 멋있고 친절하고 조용하고... 안그래요. "


서경이 은근한 눈길로 영원을 바라보면서 얘기한다.


영원은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다.


내 생각엔 서경이 농담인 척 하지만 정말로 그를 맘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 참, 나 늦었다. "


나영이 밥을 먹다말고 허둥대며 나갔다.


' 또 저러고 나가다가 뭐 잊어버리고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


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데 또 뭐 없어 졌다고 찾으면 곤란한데...


" 영원씨, 우리도 서둘러요. "


모두가 나가고 집에는 나 혼자 남았다.


' 그나저나 강혁인 어디 가서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거야? '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라니까. 쯧쯧쯧...


다루기 힘든 인간...


그런 인간을 좋다고 하는 나영을 생각하면...


그래서 옛말에 짚신도 짝이 있고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나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 영원씨 콘서트도 잘 됐음 좋겠다. 난 어느새 그의 팬이 되었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


설거지를 마치고 청소를 마치고 그의 뮤직비디오를 10번도 더 보고는 그 기분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창가에 핀 들꽃... 화분...


물을 줄 때가 지났나?


' 너무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이 지나치면 일찍 죽어요...'


그의 말이 너무 신경이 쓰여서 물을 안 준지가 꽤 된 것 같은데...


너무 사랑하지 않아도 죽을 수도 있는 데...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지?


물 좀 주자...


화분에 물을 주고는 밖을 내다 봤다.


비가 오려나?


이런 비가 오려는 날은 기분이 좋아진다.


난 햇살 쏟아지는 날이 싫다.


이상하게 더 우울해지는 느낌이랄까?


비가 올 듯 흐린 날이 오히려 바람이 불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다.


호숫가에 가보고 싶어졌다.


비 오는 날 호수에서는 비린 향이 난다.


상큼한 비린 향이랄까?


돌아오는 길에 우체통을 들여다봤다.


' 웬 편지? '


' 영원씨 한테 왔네. 봉투에 아무것도 써 있지 않네... '


발신자는 없고 수신자만 있다?


팬 레턴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팬 레터 같은 것 이 온걸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다 사무실로 오는 것 같던데... 웬일이지?

 

역시 팬들은 극성인가 보네...여기 주소를 어떻게 알고.'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얌전히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내려왔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이상하게 궁금증이 생기고 관심이 가는 것은 왜일까?


" 따르릉... "


" 따르릉... "


" 여보세요? "


"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


" 두 번 울리고 바로 받은 건데요?"


 나영이 기집애다.


" 넌 사사건건 그렇게 말대답이니? "


" 웬일이세요? "


" 어쭈, 말꼬린 왜 돌리고 그래. 이젠 지가 무슨 집주인이라고 된 양 난리네. 강혁씨 집에 들어왔어? "


" 아니요? "


" 그래 연락도 없었 구..."


" 네... "


전화기 밖에서 매니저와 감독이 한 참 강혁 욕을 해대는 소리가 들린다.


" 알았어. "


쌀쌀하게 딱 끊어버리는 전화.


전화기도 나영을 닮았나... 쌀쌀하긴...


" 그나저나 이 놈은 또 어디로 튄 거야. 어쩐지 며칠 잘 한다했어. 어이구... 쯧쯧... 진짜 어떻게 자랐 길래... 그렇게 다루기 힘들게 돼먹지가 않았냐? 진짜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한 놈이라니까 "


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진짜 궁금해? "


아! 깜짝이야?  누구야?


 헉! 그 놈이다..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었나보네... 어쩌지? 과거 어쩌고 해서 저번에 나영 이가 당하던 생각이 순간 떠올라 움찔했다.


그가 다가와 앉는다.


그리고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나에게 음흉한 눈빛으로 얘기한다.


" 너, 나한테 관심있니? "


" 관심? 미쳤냐?  내가 너한테 관심 있게? "


" 이런 섭섭하네... 난 너한테 관심이 많은 데... "


" 쓸데없이... 그나저나 지금 난리들 났는데 어디 갔다온 거야? "


" 그럴 일이 좀 있었어. "


" 아무리 중요한 다른 일이 있어도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켜라. 괜히 엄한 사람들 고생시키지 말 구... 뭐 별로 중요한 일도 없었을 테지만... "


"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별로 중요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 "


화가 난 걸까?


" 화났어? ... 넌 진짜 네 생각만 하는 구나. 화낼 사람은 네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선의의 충고 하나 하겠는데... 너 그 딴식으로 살지 말고 성격 고쳐... 왜 그렇게 매사가 삐딱하냐? "


그의 눈치를 살폈는데 의외로 슬픈 표정이다.


" 왜 그래? 너답지 않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


" 나다운 게 뭔데? "


" 너다운 거?... 내가 그렇게 싫은 소리를 해대는 데도 가만있으니까 이상하다. 넌 원래 남 속 박박 긁으면서 남이 네 속 긁는 건 못 참잖아. "


" 내가 그랬나? "


" 뭐? 그럼 너 여태 그것도 모르고 그런 거야? 어쩐지"


" 무슨 뜻이야? "


" 아니 그러니까 성격 드러운 놈이나 공주병 있는 여자나 결국은 자기 자신은 착하거나 겸손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한다 이 말이지? 그러니까 남들 의식 안하고 자기 멋대로 잖아. "


" 멋대로... 그래... 내가 원래 내 멋대로 지? "


그가 공허하게 웃으며 쇼파에 널 부러지듯 눕는다.


난 옆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 넌 보이는 것만 믿지? "


고개를 푹숙인채 그가 말했다.


" 무슨 뜻이야? "


" 너 영원이 좋아하지? "


" 무슨 소리야? "


" 아니, 오해하지마...너 뿐 아니라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 매너 좋고 한사람만 영원히 사랑할 것 같은 착한 놈이라고 생각하잖아. "


" 그렇긴 하지.. 솔직히 너보단 백 배는 낫지 않겠어? "


" 맞아... 백 배 아니 천 배는 나을 거야..."


이번엔 슬프게 웃는다.


그러더니 미친놈처럼 실실대기 시작한다.


" 야, 근데 너 술 마셨니? "


잘 몰랐는데 그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 조금 마셨지. 아주 조금 마셨어. 아주 조금... "


그러면서 손톱만큼 마셨다는 액션을 한다.


'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


" 기다려, 물 한잔 가져올게. 뚱딴지같은 놈... "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물 한잔을 가지고 와서 그에게 내 밀었다.


그는 팔을 큰 대자로 쇼파에 걸고는 고개는 앞으로 푹 숙여 떨군 채 그새 잠이 들었나보다.


" 야, 마셔,,, 무슨 술을 그렇게 먹냐? "


난 그의 고개를 들어 쇼파에 기대주었다.


그런데... 그가 울고 있다.


눈을 감은 채...


왜 그러는 걸까?


너무 당황한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남자의 눈물이라...


그것도 전혀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자의...


와!


정말 호소력이 있구나...


근데 진짜 안 하던 짓을 하고...


정말 무슨 일 있나?


순간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무 물 마셔. 자... "


난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하며 물을 권했다.


그가 물 컵을 받아들더니 마시지 한 모금 마시고는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쿠션을 끌어안고는 쇼파에 쭈그리고 기댄다.


어린아이가 엄마가 없을 때 외로워서 혼자 잠드는 모습 같은...


그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참... 그가 고아라고 하지 않았나?


갑자기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 얘기가 하고 싶어... "


그가 눈을 감은 채 얘기했다.


" 무슨 얘기? "


" 그냥 내 얘기... "


" 네 얘기? ... 얘기해 봐... "


" 아니야, 내가 많이 취했나 부다... "


피식 실소를 하더니 일어난다.


일어나는 그를 난 끌어 앉히며 물었다.


" 얘기해... 못들은 걸로 해 줄게... 너 누군가한테 네 얘기 한적 없지? "


" 내 얘기?  내 얘기? ... 그렇구나... 해 줄 얘기가 없어... 알다시피 난 별것 아니 놈이라서. "


" 넌 특별나.. "


" 내가? "


" 그래... 넌 잘 모르나 보구나. 넌 특별한 구석이 있어."


" 그럴까? ... 하긴 난 특별한 놈일 수도 있겠다. 특별히 많이 아픈 놈일 수도..."


그리곤 그가 말이 없다.


쿠션을 끌어안고는 쇼파에 누웠다.


그리고는 곧 잠이 들었다.


그의 얘기가 듣고 싶었었는데...


" 왜 사람들이 다 아플까? "


또 아픔이 나에게 전염됐나보다.


슬퍼진다.


밖에는 어느새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다.


비가 와서 인지 거실이 어두침침한데도 난 불을 켜지 않고 호수로 난 창 쪽에 쭈그리고 앉아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한 방울....


두 방울....


" 따르릉 "


" 따르릉 "


"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


" 혁씨 아직도 안 들어왔어? "


" ... "


" 뭐야? 왜 말이 없어"


" 네. 아직 안 들어왔어요. "


" 아이 진짜 어디 간 거야? 지금 감독님하고 연기자 바꾼다고 난리 났는데... 미치겠네 "


난 잠든 그를 바라보았다.


" 넌 무슨 사연이 있는 거니? 사람들은 그가 그냥 제 멋대로 안 들어 왔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그에겐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


잠든 그의 모습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다른 모습이 느껴졌다.


때묻지 않은 착한 아이의 얼굴 같은...


이 사람에게도 인간다운 모습이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순간 그의 마음 속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웃기는 놈이었다.


왜냐구요?


그렇게 하루를 펑크를 냈으면 미안해하면서 열심히 영화촬영에 몰입했어야 하는데 그 다음날부터는 이틀 걸러 한번씩 밤을 새고 오더니 그리고는 영화촬영이 막바지에 돌입할 즈음에는 아예 일주일 이상을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고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래서 그 영화는 물 건너 가버렸다.


감독이 너무 화가 나서는 배우를 바꿔 버렸거든요.


신인인 주제에 주인공도 아니고 어느 감독이 그런 신인스케줄에 맞추겠어요.


쯧쯧 정말 대책 안서는 놈이죠.


지금도 이놈이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아직도 안 들어왔거든요.

 

 

 

 


#. 혁은 어디에?...

 

 

 

 


" 혁아! 정말 미안하다. 이 아버지가 너한테 변변히 해 준 것도 없이... 콜록콜록... 내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도 네가 이렇게 방황하거나 힘들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어쩐다지? 불쌍한 것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인데... 이 놈 이 어린 힘찬이 만은 네가 꼭 거둬서 키워야 한다. 다른 아이들은 다른 시설로 보내더라도 이 녀석만은 네 아이나 다름없이 키워야지... 꼭 "


" 네! 걱정하지 마세요. "


그는 눈에서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내며 비장하게 대답했다.


그리곤 아버진 그렇게 돌아가셨다.


평상시에도 간이 좋지 않아 힘든 일을 하기 힘들었는데...

 

혁이 마져 속을 썩이고 거둬야 할 아이들도 있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혁은 정말 효도를 못 다한 자식의 심정으로 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 죄송합니다. 정말로... "


그는 뭐가 그렇게 죄송한 것일까?


그렇게 여러 날 동안을 병간호를 했다.


그래서 촬영을 펑크냈던 것이다.


삼일간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니 그에게 남겨진 거라곤 이 낡은 고아원 아닌 시설과 아이들...


그리고 힘찬이 뿐이었다.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혁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고 어린 힘찬 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이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옹알이를 하고... 엄마 없이 크는 이 아이가 자신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스산하게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그의 발 밑에서 나뒹굴고 있는 것을 쳐다보면서 공동묘지를 내려오는 길을 걸었다.


와! 이렇게 푸르르 구나.


그래서 마음이 더 슬픈가?


한바탕 큰비라도 오려나?


아님. 태풍이라도... 그래 태풍이 올 때가 되었어.


젠장... 그냥 태풍이 와서 이 세상이 끝나버렸음 좋겠네.


이젠 또 어쩐다...


그나마 믿고 의지하던 아버지 마저 돌아가셨으니...


당장 이 아이들과 힘찬이 힘찬인 어쩌지...


그는 고아원으로 향했다.


그는 고아원 앞마당에 앉았다.


여기...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가 12월이었을걸... 그 추운 겨울날 수연 이가 좋지 않은 몸을 해 가지고는 여기 앉아서 울고 있었지...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했다.


" 여보세요."


" 저예요. "


홍란주 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왜? "


" 저기, 원장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


" 그래, 안됐네... "


그녀는 사무적으로 받았다.


순간 강혁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 저기 그래서 말인데... 좀 도와 주세요."


" 뭘? "


" 아이들..."


" 그래, 아이들은 내가 좋은 후원자를 알아볼게. 적절한 사람이 있을 거야. "


" 그리고 힘찬이..."


" 힘찬이? 누구?"


혁은 또 한번 섭섭함을 느꼈다.


전엔 느끼지 못했는데,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순간 그녀에게서 늘 느껴져 왔던 보이지 않는 냉냉 함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 같은 것...


때로는 포근한 엄마 같지만...


문득문득 느껴지는 냉정한 카리스마 같은 것...


그녀를 위대해 보이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존경이랄까 그런 것을 가졌던 것이 그녀였던 것 같았다.


처음으로 그에게 큰 해결사가 되어주기도 했고 말이다.


" 힘찬이 라면? 근데 왜? "


" 아니예요. "


더 이상 대꾸하고 싶지 않아서 그는 그냥 말없이 끊어 버렸다.

 

 

 

 

 

 

 

 

!!! 날씨가 정말 따뜻한 봄이네요. 가끔 좀 쌀쌀하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날씨예요. 근데 주말 쯤엔 비라고 한방울 와 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비오는날을 좋아하거든요. 뭔가 싱그러운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