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 머리카락 잡혔네요..

2009.02.23
조회2,440

뱃속엔 계류유산된 아이가 있고

배밖에는 돌도 안된 둘째와 연년생 큰애가 있고

여기는 도와줄 사람은 커녕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프랑스이고(남편 발령으로 왔음)

한국에는 친정엄마가 대장암으로 전신에 암세포가 다 퍼져서

............절대 항암 다시는 안한다 하시더니 손주들 다시 볼때까지만 딱 살겠다고

항암...그 고통을 다시 시작하셨다 하고......................

 

배 안에 셋째는 임신이라는 거 알고 눈물 허벌나게 흘리며

도저히 낳을 상황이 아닌데..보내야 하나..어째야 하나...괴로와했더니

엄마 마음을 알았는지..혼자 가버렸다.엄마에게 죄책감 주기 싫었니? 아가...

이틀전에 피가 펑펑 나와서 병원에 갔더니 계류유산인거 같다며 약주길래(자궁수축제)

계속 하혈...생리처럼..핑핑 어지럽다.

내일 병원가서 아기집이 없어졌으면 괜찮은데 아니면 소파술을 해야 한다는데..

애들 때문에...병원가서 수술대위에 자빠져 누워있을 수나 있을까...

 

남편은 오늘 골프갔다가 오후 3시에 왔다

짜증이 난다..내가 운동 좀 하라고 한건 사실이다. 고도비만이거든..하지만...

셋째임신인거 안게 저번주인데 저번주부터 계속 12시 넘기고 오고

얘기들어보면 정말 사소한 접대..빠질수도 있고 양해 구할 수도 있는 접대들이던데.

말로는 계속 피나오냐 어떡하냐 좋은것좀 먹어야 할텐데 하면서도

어젯밤에 둘째땜에 잠 한숨 못잔거 뻔히 알면서도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둘쨰 재우면서 나도 모르게 자버렸다.

2시간 비몽사망 잠들고 깨어서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은 소파에서 자고 있고

큰애는 혼자서 놀다가 엄마보니 반갑다고 히히 웃는다

엄마가 동생 재울때는 방해하면 안된다고 몇번 혼나더니 이젠 알아서 기다린다

세살도 안된게 영특하기도 하지.. 싶다가도 마음이 짠해진다

남편이 부시시 일어나더니 하는 말..

"당신 자는 동안 빵에 쨈 발라서 애 먹이고 책을 세권이나(!) 읽어줬다구"

그래그래...참 힘든 일 했다 그래.....고맙다고 하면 정말 기세등등해서

자기만한 남편이 없다느니 어쩌고 하며 계속 고마워 하라고 난리고

차라리 아무말 안하는게 낫다.

 

저녁준비를 한다

남편이 자기가 할테니 나가서 애 보란다. 그래서 양파는 어떻게 하고 감자는 이렇게

고기는 저렇게..설명을 대충 해주고 나갔다가 한참 지나 돌아와보니

뭐가 제대로 된게 없다. 내가 했으면 벌써 다 만들어 식사 나갔을텐데.

"감자 이리주고 내가 할테니 얼른 나가...둘째가 또 사고 칠라..."

나도 내 목소리에 짜증 실린거 안다.

남편이 갑자기 큰소리로 버럭한다.

"니가 시켜놓고 왜 못하게 해! 이쒸!""

꾹 참고 반찬 밥 해서 남편것 따로 담고 애들 것 따로 담고 상을 차렸다

내가 애들 먹이고 있으니 남편이 자기 밥은 본체만체 하며 컴퓨터 들고 방으로 가버린다

애들 둘 밥 먹이는 거 전쟁이다

먹이고 나서 설겆이 하러 갔더니 큰애가 옷에 똥을 쌌다

큰애 치우고 났더니 둘쨰가 똥을 쌌다

둘째 똥 치우는데 큰애가 운다, 똥쌌다고 혼날까봐 지레 방어막을 친다. 어이구 가쓰나.

큰애 달래고 기저귀 차기싫어 내뺴는 둘쨰 쫓아다니며 기저귀 채우니 진이 빠진다........

그새 흘린 밥풀들과 반찬들과 장난감들과 책들로 뒤덤벅이 된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애들한테 비디오 하나 틀어주고 부엌에 들어와보니

수북한 설겆이감...........평소대로라면 남편이 설겆이는 해주었다.

애들 보는걸 너무 힘들어하는 남편인지라..애들과 있으면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차라리 자기가 집안일 한다고 자기가 먼저 말했으면서도

할때마다 자기가 설겆이 해주셨노라, 이런 남편이 세상에 어디있냐

온갖  떠세 다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해주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밥도 안처먹고 애가 울건 말건 내다보지도 않고.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알면서. 자기는 하루종일 놀다왔으면서.

나중에 애들 다 재우고 한숨돌리면 그제서야 나와서 화가 풀린척 말걸며

밥 또 챙겨달라 하겠지

난 남편의 저런 요령이 싫다 정말 싫다

내 몸상태가 이런데도 엄마맘이 어떤건데 이런상황에까지 저렇게 잔머리를 굴릴까

남편이 손도 안댄 밥과 반찬들을 모두 버려버렸다

그릇들도 전부 깨버렸다

소리소리 지르며 지랄발광을 했다

속이 좀 시원해졌다

쌓인게 너무 많다...................아픈 친정엄마에게 걱정갈까봐 잘사는 척 하는것도

아들을 남편인지 아는 시어머니에게 보란듯 사랑하며 사는 척 하는것도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다)

 

남편이 와서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한다..............................

감자 깎지 말고 내가 할테니 애들 좀 봐달라는 내가 뭘 잘못했길래

꼬장부리고 밥도 안먹고 TV만 보냐고 소리 질렀다

난 먹지도 못하는 밥 시간도 없고 입맛도 없고

힘들게 차렸는데 왜 숟가락도 들지않느냐 했더니

남편은 "내가 돼지냐? 먹기싫은데도 먹어야 해?" 하더니

내가 잠든 두시간 동안 자기가 애한테 쨈빵 먹이고 책 세권 읽어줬다는 얘길 또 한다.

진짜 큰 일 했다...죽여버리고 싶다..............

나가라고 소리지르며 손으로 가슴팍을 두어대 쳤다

갑자기 남편이 내 머리채를 움켜잡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유산때문인지 겁나게 빠지던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한웅큼이 날라갔다

"나도 얼마나 참는 줄 알아! 정신 좀 차려!" 하면서

머리를 친다 뻑뻑.. 소리는 귓전에 들리는데...아프지가 않다

정신이 정말 번쩍 나기는 헀다

오호라...나도 맞네? 오 니가 날 때려?

소리를 버럭질렀다 <나가!꼴도보기 싫어!>

남편은 내가 겁먹을줄 알았는데 여전히 기세등등해서 소리지르며 덤비니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후후....그래 니네 집안 사람들은 강한자에 약하고 약한자에

강한게 전통이지....다 똑같아.....시댁에 대한 미움까지 겹쳐진다

몇번 더 고성이 오가고..남편이 이혼얘기를 한다

그래 제발 부탁이다 내가 늘 말했잖아. 이혼해달라고.  

순간 큰애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왔고 둘째애가 큰소리에 놀라 그제야 울기 시작했다

싸움 종료.

 

남편은 집을 나가겠다며 씩씩거리고 짐을 싸더니

애들 재우는 사이 다시 되돌아왔다

애들 재우고 거실로 나와보니 청소 말끔히 해놓았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니가 집을 못나간건 하룻밤 호텔비가 아까와서겠지 절대로 나한테 굽히자는 수작은

아닐것이고

거실 청소를 해놓은건 힘든 마누라 나몰라라 하고 개꼬장까지 부린걸 사과하자는게

아니라 내일 또는 모레 있을 2차전때 내가 <너 하루종일 뭘 도와줬는데>라는 말에

청소했다고 내뺼 구멍 만들자는 수작일 것이다

남편의 이런 요령이 정말 징그럽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갈 구멍 변명할 수작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그게 아무리 터무니없는 변명일지라도 밀어붙힌다

 

 

다른 사람들도 마누라가 계류유산했는데 저따위로 굴까?

예전에 추석때 일주일간 시댁있자고 해서 둘째 임신한채로 첫째 달래가며

힘들게 집안 치우게 애기 이유식거리 만들어 얼리고 난리치고 있는데

자기 무한도전 재방송 못보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종일 꼬장부리고 드러누워서 애는 쳐다보지도 않을때부터 저놈을 갖다버렸어야 했다

 

친정엄마 아빠가 가깝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매일매일 오면 인사안해도 되는건가? TV보면서 방문밖으로 나와보지도 않는다

그게 얼마나 괘씸한 짓인지 아예 개념이 없다는 것도 어이없다

내가 저런놈과 왜 같이 사는 걸까

이혼하면 친정엄마 충격받을까봐. 그래. 그거밖에 답이 없구나.

 

같이 살면 살수록 똑같은 년이 될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