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더블 침대를 쓴다면 애인이라도 있어서 가끔 와서 자고 간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싱글 침대가 더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비상시에는 붙여서 더블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그러기엔 그 두 침대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저거요. 하나는 라꾸라꾸라고 홈쇼핑에서 한 때 선전 하던 거 아시죠? 그거에요. 혼자 살고 보니 찾아오는 녀석들이 많아요. 밤에 술마실 상대가 없는 놈은 한밤중에 찾아오기도 하고요. 결혼한 놈은 부부싸움 하고 오기도 하고요. 걔중에 백수 친구 놈은 한달에 이십일은 와서 기생을 할 때도 있고요. 남자 뿐만 아니죠. 여자 친구도 가끔 와서 재워달라고 할 때도 있어요. 민아씨라고 하셨나요..? 민아씨도 각오해두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아예 싱글 침대를 하나 더 산 거에요. 제가 또 누가 옆에서 자면 잠을 못자는 성격이라 저렇게 멀찍이 놓아둔 거고요."
"아. 네....."
그 남자가 한 말 중에 '누가 옆에서 자면 잠을 못자는 성격'이란 말로 미루어 보아 정말로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미국에 가서도 집안의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지 매일 전화로 물어볼 결벽증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벽증 환자가 남에게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은 깔끔한 환경에서 사는 혜택을 누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인테리어와 정리 정돈이 잘 된 상태였다.
"아..차라도 한잔 드실래요? 보통 커피를 마시지만 요즘에 중국에서 사온 장미차가 좋아서요. 장미차 한 잔 드세요."
"아..네."
나는 그냥 커피나 한잔 달라고 하려다가 그 남자가 준다는 장미차를 마셔보기로 했다. 웬지 이런 집에서는 그런 차가 어울릴 것 같았다.
무선 포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끓고 있는 모습조차도 아늑해 보였다.
"물 위에 이렇게 장미 꽃봉오리가 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환해져요."
남자는 차분한 손놀림으로 찻잔에 물을 붓고는 나에게 한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찻잔을 내려다 보았는데 정말 빨간 꽃봉오리가 둥둥 떠 있는 모양에 이 남자로 인해 아까부터 불쾌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집으로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냐...옹'
아까 그 검은 고양이가 내 발 쪽으로 오는 바람에 나는 놀라서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이리와.....레종."
남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불렀는데 난 고양이 이름을 듣고 웃고 말았다.
"하하하하...레종이에요? 이 고양이 이름이?"
"네....저 녀석 처음 왔을 때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제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맥라이언 이름을 따서 '라이언'으로 할까 했는데....마침 담배가 눈에 딱 띄더라고요. 귀엽죠?"
"아..네."
고양이를 한번도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는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좋은 이유는요. 강아지처럼 사람한테 엉겨붙지 않아요. 독립적이죠. 내가 왔다고 해서 달려들거나 하는 일도 드물고요. 이 녀석이 웃긴 게 내 무릎에 앉았다가도 내가 조금이라도 무릎을 움직이면 바로 내려가 버려요. 내가 불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요. 추운 날엔 내 침대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데 아침에 내가 일어나면 바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요."
정말 남자의 말대로 까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미국으로 간다면 저 고양이는?
"미국에 가면 레종이 보고 싶겠어요."
나는 은근슬쩍 고양이의 거취를 물었다.
"안 그래도 그게 젤 심각한 문제에요.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은 마음에 들지만 고양이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았다.
"저...괜찮으시다면......"
"네?"
"우리 레종도 같이 봐주시면 안될까요?"
이 남자 나한테 고양이까지 집에 끼어 세놓을 생각인가 보다.
"저.... 아직 이 집에 들어올지 결정도 안했는데요?"
나는 일단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 고민이 되었다.
집이 마음에 드는 만큼 고양이를 감수해볼까?
"아. 제가 마음이 급했나 보네요. 일단 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이제 결정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집은 마음에 들지만 고양이는 사양하겠다고 말할까 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저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가 30만원이라고 하셨죠?"
"네. 여러 군데 집을 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이만한 조건이 없다는 걸..."
"네. 그건 인정하겠어요. 대신 이건 어떨까요? 제가 레종을 키우는 대신 월세를 안받으시는 걸로 하면요...레종의 사료비도 있을테고 또 제가 레종을 키우는 노동력도 있고요. 원래 고양이는 조건에 없던 거잖아요."
나는 고양이를 빌미로 인생 최고의 내가 유리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치였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레종이 만약 병이 나거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월세는 그때까지 쳐서 다 받고, 그 이후는 월세를 내셔야 합니다."
일단 나는 오케이이다. 까짓 고양이 하나 못키우랴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식물조차도 한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고양이를 호랑이로라도 키울 만큼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럼 오늘 계약을 하시겠어요?"
"네."
나는 이젠 오히려 이 남자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대답을 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를 들고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럼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세요."
나는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월세 30만원을 지우고 그 위에 사인을 하고 계약서 아래에 마지막으로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내 사인 위에 적힌 '이현수'라는 이름을 보며 이 남자의 이름이 '이현수'라는 것을 인지하며 아까 맞선을 볼 때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기억이 났다.
"언제 미국에 가세요?"
이왕 이렇게 결정되었다면 빨리 이 집에 들어오고 싶어서 물었다.
나는 이제 해방된 몸이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강민아 독립만세!'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토요일에 출국합니다."
"오전에요?"
"네. 새벽 6시 비행기입니다."
"그럼 제가 토요일에 와도 되겠군요."
"네. 편할대로 하세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이렇게 설레일까 싶었다. 독립만 하면 나의 모든 문제가 이백 퍼센트쯤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왔다.
앞으로 내가 그곳이 내 집이라 생각하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내 앞에 나타나준 것을 마음 속으로 감사해하며....
시기적절한 남자(3)
혼자 산다는 남자가 싱글 침대를 두개나 놓고 있다는 것은 수상한 일이기도 했다.
오히려 더블 침대를 쓴다면 애인이라도 있어서 가끔 와서 자고 간다는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싱글 침대가 더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비상시에는 붙여서 더블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그러기엔 그 두 침대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저거요. 하나는 라꾸라꾸라고 홈쇼핑에서 한 때 선전 하던 거 아시죠? 그거에요. 혼자 살고 보니 찾아오는 녀석들이 많아요. 밤에 술마실 상대가 없는 놈은 한밤중에 찾아오기도 하고요. 결혼한 놈은 부부싸움 하고 오기도 하고요. 걔중에 백수 친구 놈은 한달에 이십일은 와서 기생을 할 때도 있고요. 남자 뿐만 아니죠. 여자 친구도 가끔 와서 재워달라고 할 때도 있어요. 민아씨라고 하셨나요..? 민아씨도 각오해두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아예 싱글 침대를 하나 더 산 거에요. 제가 또 누가 옆에서 자면 잠을 못자는 성격이라 저렇게 멀찍이 놓아둔 거고요."
"아. 네....."
그 남자가 한 말 중에 '누가 옆에서 자면 잠을 못자는 성격'이란 말로 미루어 보아 정말로 성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미국에 가서도 집안의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지 매일 전화로 물어볼 결벽증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결벽증 환자가 남에게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은 깔끔한 환경에서 사는 혜택을 누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인테리어와 정리 정돈이 잘 된 상태였다.
"아..차라도 한잔 드실래요? 보통 커피를 마시지만 요즘에 중국에서 사온 장미차가 좋아서요. 장미차 한 잔 드세요."
"아..네."
나는 그냥 커피나 한잔 달라고 하려다가 그 남자가 준다는 장미차를 마셔보기로 했다. 웬지 이런 집에서는 그런 차가 어울릴 것 같았다.
무선 포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끓고 있는 모습조차도 아늑해 보였다.
"물 위에 이렇게 장미 꽃봉오리가 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환해져요."
남자는 차분한 손놀림으로 찻잔에 물을 붓고는 나에게 한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찻잔을 내려다 보았는데 정말 빨간 꽃봉오리가 둥둥 떠 있는 모양에 이 남자로 인해 아까부터 불쾌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집으로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냐...옹'
아까 그 검은 고양이가 내 발 쪽으로 오는 바람에 나는 놀라서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이리와.....레종."
남자는 상냥한 목소리로 고양이를 불렀는데 난 고양이 이름을 듣고 웃고 말았다.
"하하하하...레종이에요? 이 고양이 이름이?"
"네....저 녀석 처음 왔을 때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제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맥라이언 이름을 따서 '라이언'으로 할까 했는데....마침 담배가 눈에 딱 띄더라고요. 귀엽죠?"
"아..네."
고양이를 한번도 귀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는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좋은 이유는요. 강아지처럼 사람한테 엉겨붙지 않아요. 독립적이죠. 내가 왔다고 해서 달려들거나 하는 일도 드물고요. 이 녀석이 웃긴 게 내 무릎에 앉았다가도 내가 조금이라도 무릎을 움직이면 바로 내려가 버려요. 내가 불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요. 추운 날엔 내 침대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데 아침에 내가 일어나면 바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요."
정말 남자의 말대로 까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미국으로 간다면 저 고양이는?
"미국에 가면 레종이 보고 싶겠어요."
나는 은근슬쩍 고양이의 거취를 물었다.
"안 그래도 그게 젤 심각한 문제에요.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는데.... "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은 마음에 들지만 고양이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았다.
"저...괜찮으시다면......"
"네?"
"우리 레종도 같이 봐주시면 안될까요?"
이 남자 나한테 고양이까지 집에 끼어 세놓을 생각인가 보다.
"저.... 아직 이 집에 들어올지 결정도 안했는데요?"
나는 일단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 고민이 되었다.
집이 마음에 드는 만큼 고양이를 감수해볼까?
"아. 제가 마음이 급했나 보네요. 일단 집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이제 결정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집은 마음에 들지만 고양이는 사양하겠다고 말할까 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저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가 30만원이라고 하셨죠?"
"네. 여러 군데 집을 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이만한 조건이 없다는 걸..."
"네. 그건 인정하겠어요. 대신 이건 어떨까요? 제가 레종을 키우는 대신 월세를 안받으시는 걸로 하면요...레종의 사료비도 있을테고 또 제가 레종을 키우는 노동력도 있고요. 원래 고양이는 조건에 없던 거잖아요."
나는 고양이를 빌미로 인생 최고의 내가 유리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눈치였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레종이 만약 병이 나거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월세는 그때까지 쳐서 다 받고, 그 이후는 월세를 내셔야 합니다."
일단 나는 오케이이다. 까짓 고양이 하나 못키우랴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식물조차도 한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고양이를 호랑이로라도 키울 만큼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럼 오늘 계약을 하시겠어요?"
"네."
나는 이젠 오히려 이 남자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대답을 했다.
남자는 미리 준비해둔 계약서를 들고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럼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세요."
나는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월세 30만원을 지우고 그 위에 사인을 하고 계약서 아래에 마지막으로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내 사인 위에 적힌 '이현수'라는 이름을 보며 이 남자의 이름이 '이현수'라는 것을 인지하며 아까 맞선을 볼 때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기억이 났다.
"언제 미국에 가세요?"
이왕 이렇게 결정되었다면 빨리 이 집에 들어오고 싶어서 물었다.
나는 이제 해방된 몸이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강민아 독립만세!'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토요일에 출국합니다."
"오전에요?"
"네. 새벽 6시 비행기입니다."
"그럼 제가 토요일에 와도 되겠군요."
"네. 편할대로 하세요."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이렇게 설레일까 싶었다. 독립만 하면 나의 모든 문제가 이백 퍼센트쯤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집을 나왔다.
앞으로 내가 그곳이 내 집이라 생각하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내 앞에 나타나준 것을 마음 속으로 감사해하며....
---------------클릭, 시기적절한 남자 4편 보기--------------
추신1 : 오랜만이죠?
회사 일이 바빠서 소설 쓸 틈이 없지만 그래도 쓰고 싶은 마음에 일단 1편을 올리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요즘 상황으로서는 일일연재를 감히 꿈꾸기가 힘들어서요.
그런데 게시판지기님이 어떻게 아셨는지 오늘의 톡으로 올려주시는 바람에 이젠 안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일연재는 힘들더라도 정말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신2: 어떻게들 지내셨어요?
제가 주말 인사에서 빼버리는 성격 나쁜 돈많은 부자님들은 더 돈을 많이 모으셨는지,,,
염장커플들은 얼마나 솔로부대로 복귀하셨는지...
그리고 꼬박꼬박 인사를 드리는 솔로부대들은 여전히 전투력 이빠이인지...
주6일제 노동자들은 주5일제 소식은 아직 없으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