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잊는다는 말입니다. 너무도 아프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몸속에 저장된 자기방어 시스템의 작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망각하기 싫은 아픔도 분명히 있습니다. 더 아프고 싶고, 망각에 맡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별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옆에 없다는 사실만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혼자 버려진 느낌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간직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리고 끝장에는 잊고야 말 사람이라는 것,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자체가 이렇게 고된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막상 당하고 나면 그저 망연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약한 심성은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
심하게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넘기며 고요히 슬픔을 다스리는 길 뿐이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을 원망해도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 내 마음을 스스로가 지키지 못했다는 원죄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보여 집니다.
어느덧 오십을 후딱 넘긴 나이입니다. 이 나이에 누구를 사랑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기에 얼굴만 붉어집니다. 평소의 생각대로 조그만 체통이나마 지키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늙어가며, 얼마 후에 손 흔들고 떠날 세상을 관조하여 굳건하면 만족합니다.
며칠 전에는 저에게 형님뻘 되는 분이 자살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여파로 이혼하고 십여 년을 혼자서 떠돌다가 월세방에서 새벽에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몸에 지녔던 수첩도 모두 불태워 없앴기에 연고자에게 연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례식 때에는 상주나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몇의 친구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누가 필요하겠습니까?
쓸쓸하게 갔다고 친구들은 눈시울 붉혔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무표정이었습니다. 유서 한 장 써놓지 않고 담담하게 떠났으니 그 분의 초연한 행동에 고개 숙일 수뿐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날 준비는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조그만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아마 살아있는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직도 덜 늙었다는 말이며, 항상 부러워하던 초연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죽음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사랑을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우습기만 합니다. 살만큼 살았고, 고생한 만큼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마음이 오락가락하니 나는 못난 사람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잡념에 시달리다가 문인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습니다.
여러 명의 문인들에 둘러싸여 문학을 이야기 했습니다. 수필작가의 모임을 만드는데, 나를 보고 수필작가동인회의 회장을 맡으라고 자꾸 권했습니다. 또한 다음달에 있을 문학제의 수필문학상 내정자로 내가 내정되었다고 상 받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은 온통 누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 시인은 아내를 데리고 동석했는데, 술김에 즉석에서 아내에게 바치는 시를 하나 지어서 읊었습니다. 그 시인의 아내는 고개를 돌리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려 애썼습니다. 아내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많은데, 가난한 주머니 때문에 죽을 때까지도 못해줄 것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지어서 바치는 그 모습 하나만으로 시인은 아내에게 모두를 해 준 것만 같았습니다. 웃음이 넘치는 자리지만 왠지 내 마음은 무척 쓸쓸해졌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내 인생은 저런 아내도 없을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시를 지어서 바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년만 젊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미 지난 세월은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오직 묵직한 나이로 어깨를 누를 뿐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여생입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고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갈 삶이기에 그다지 원망스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봄바람이 춥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의 오후 (먼 여인에게)
어느 날의 오후
망각이란 것이 있습니다.
아픔을 잊는다는 말입니다. 너무도 아프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몸속에 저장된 자기방어 시스템의 작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망각하기 싫은 아픔도 분명히 있습니다. 더 아프고 싶고, 망각에 맡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별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옆에 없다는 사실만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혼자 버려진 느낌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간직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리고 끝장에는 잊고야 말 사람이라는 것,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자체가 이렇게 고된 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막상 당하고 나면 그저 망연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려 했지만, 나약한 심성은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
심하게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넘기며 고요히 슬픔을 다스리는 길 뿐이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을 원망해도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 내 마음을 스스로가 지키지 못했다는 원죄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보여 집니다.
어느덧 오십을 후딱 넘긴 나이입니다. 이 나이에 누구를 사랑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나이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기에 얼굴만 붉어집니다. 평소의 생각대로 조그만 체통이나마 지키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늙어가며, 얼마 후에 손 흔들고 떠날 세상을 관조하여 굳건하면 만족합니다.
며칠 전에는 저에게 형님뻘 되는 분이 자살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여파로 이혼하고 십여 년을 혼자서 떠돌다가 월세방에서 새벽에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몸에 지녔던 수첩도 모두 불태워 없앴기에 연고자에게 연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례식 때에는 상주나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몇의 친구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떠나는 사람에게 누가 필요하겠습니까?
쓸쓸하게 갔다고 친구들은 눈시울 붉혔지만 정작 죽은 사람은 무표정이었습니다. 유서 한 장 써놓지 않고 담담하게 떠났으니 그 분의 초연한 행동에 고개 숙일 수뿐이 없었습니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날 준비는 항상 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조그만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아마 살아있는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직도 덜 늙었다는 말이며, 항상 부러워하던 초연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죽음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사랑을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우습기만 합니다. 살만큼 살았고, 고생한 만큼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마음이 오락가락하니 나는 못난 사람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잡념에 시달리다가 문인들을 만나러 집을 나섰습니다.
여러 명의 문인들에 둘러싸여 문학을 이야기 했습니다. 수필작가의 모임을 만드는데, 나를 보고 수필작가동인회의 회장을 맡으라고 자꾸 권했습니다. 또한 다음달에 있을 문학제의 수필문학상 내정자로 내가 내정되었다고 상 받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은 온통 누구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 시인은 아내를 데리고 동석했는데, 술김에 즉석에서 아내에게 바치는 시를 하나 지어서 읊었습니다. 그 시인의 아내는 고개를 돌리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추려 애썼습니다. 아내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많은데, 가난한 주머니 때문에 죽을 때까지도 못해줄 것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지어서 바치는 그 모습 하나만으로 시인은 아내에게 모두를 해 준 것만 같았습니다. 웃음이 넘치는 자리지만 왠지 내 마음은 무척 쓸쓸해졌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내 인생은 저런 아내도 없을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시를 지어서 바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년만 젊었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미 지난 세월은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오직 묵직한 나이로 어깨를 누를 뿐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여생입니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고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갈 삶이기에 그다지 원망스런 마음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봄바람이 춥기만 했습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