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며 말하는데, 우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난간에 기대 먼 곳만 보며 대답했다.
“남의 거? 그 집이 왜 이 기자 거야?”
“나한테 먼저 얘길 꺼냈으니까 내 거지.”
“억지 좀 부리지마.”
“우 기자야말로 우기지마.”
“어쨌든 나는 들어가 살 거야. 이미 전화해서 집에도 다 얘기해 놨어. 그리고 이 기자는 지금 사는 집 있잖아. 괜히 이사하면 귀찮을 텐데, 그냥 살아.”
뭐? 뭐라구? 하, 요것 봐라. 에라, 모르겠다. 급한 김에 거짓말이 나왔다.
“난 오늘 보증금 돌려받기로 했어.”
“지금 부장님한테 말을 들었는데, 언제 벌써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얘기가 됐어? 말이 될 소리를 좀 해라.”
어쭈! 이 인간 봐라?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계약 기간이 다 됐단 말이야! 그렇잖아도 집 구하고 있던 중이었다구!”
“돌려받기로 했다구?”
갑자기 우 기자의 어조가 달라졌다. 내 말에 조금 수긍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와, 성공인가? 우 기자가 웬 일로 내 말에 물러서지?
“그래! 오늘 저녁에!”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러자 우 기자가 다시금 얄미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으래?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은 것도 아니고, 아무 상관 없겠네. 계약을 연장하든지, 그게 싫으면 보증금 받은 걸로 다른 집 구하든가.”
“뭐?”
“어쨌든 난 거기서 살 거니까 마음대로 해. 이 기자도 들어와 살든지. 방도 두 개던데.”
“뭐라구? 같이 살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우 기자, 지금 어떻게 된 거 아냐?”
“뭐야? 내가 혼자 살 집인데 불쌍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불쌍해서 봐줘?”
“들어와 살든가, 싫으면 다른 집 구해봐.”
우 기자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냥 내려가 버렸다. 정말 어이 없는 인간이다. 그래. 해보잔 말이지.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부장이 일요일까지 짐 빼고 나면, 어차피 화요일까지는 우 기자나 나나 수요일에 나오는 잡지 마감 맞추느라 이사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 이사는 기사를 넘기고 나서 하게 될 거다, 그렇다면 내가 우 기자보다 먼저 이사를 하도록 하자, 라고.
아마 우 기자는 김병대 부장이 출국하고 나서 다음 주말에나 이사를 하겠지? 그럼 난 주말이 되기 전, 수요일에 출근을 좀 늦게 하니까 그날 새벽에 이사해서 집 다 차지하고, 문 꼭 걸어잠그고 있어야지. 그럼 아무 말도 못 하겠지? 그렇게 돌려보내는 수 밖에,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니!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 휴게실 앞을 지나는데 우 기자와 친한 구철수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이 기자가 그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너도 들어가겠다고 했단 말이야?”
“나, 집 너무 멀잖아. 매일 인천에서 여기까지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웬만하면 양보하지 그러냐? 이 기자 성격에 그 집 내주겠냐?”
“두고 봐야 알지.”
“이거 큰 싸움 또 한번 나겠구만.”
하! 나는 기막혀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래. 두고 봐야 알지! 두고 보자고, 우지훈!
아,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다. 이렇게 우 기자가 밉상인데, 갑자기 정치권에서 엄청난 대선 자금 비리가 터진 것이었다. 지난 주에 예정에도 없던 특별취재 한답시고 고생했기 때문에 이번 주는 좀 한가하다 싶었더니, 대선 자금 스캔들 때문에 우 기자와 내가 긴급 취재팀에 또다시 투입되었다. 이사 준비에다, 말도 안 되게 집을 가로채려고 하는 우 기자를 견제하는 것 만으로도 심경이 괴로워 돌아가실 지경인데, 우 기자와 합동 취재를 해야 하다니!
위에서는 어떻게든 검찰을 구슬려서 기사를 만들어 오라고 하는데, 검찰 측은 수사 중이라며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검찰에서 짤막하게 브리핑하는 것으로는 신문 기사나 TV 뉴스의 몫이다. 우리 같은 잡지사 기자들은 그 이상의 것을 잡아내고, 거기다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 분석까지 해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나와 우 기자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모 의원의 전직 운전 기사를 간신히 찾아내어 어떻게든 정보 하나라도 캐내려고 종일 애쓰다 겨우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둘 다 하루 내내 굶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나와 우 기자가 의견 일치를 보는 건, 가끔 이렇게 배가 고플 때 만이다. 만약 인간이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면 우 기자와 내가 의견 일치를 본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자장면이요!”
중국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주문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털썩 주저앉는데, 우 기자가 곱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그대로 서 있었다.
저 표정은 또 뭐야? 꼭 괴물처럼 생겨 가지고는. 다리도 안 아픈가? 하긴, 앉든지 말든지 알 게 뭐냐.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다리를 두드리고 있는데, 우 기자가 힘주어 말했다.
“저는 볶음밥 주세요!”
그리고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또 얼굴이 왜 저러시나.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얼굴이 아주 밉상이다. 나는 우 기자가 보기 싫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옆에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흥. 지금이야 좋겠지. 니들, 언제까지 가나 보자. 괜히 속으로 툴툴거리며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그런데 앞에 앉은 우 기자의 표정이 아주 볼 만 했다.
“내 것도 같이 좀 놔주면 안 돼?”
“댁은 손 없으셔?”
나의 날카로운 대답 때문인지 옆에 앉은 연인이 쳐다보았다. 내가 괜히 머쓱해져서, 수저를 꺼내어 우 기자 앞에 놓으려고 했는데, 우 기자가 내 손을 탁 뿌리치더니 자기가 스스로 놓았다.
“아까도 그래. 내가 있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자기 것만 딱 주문하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음식이 나왔다. 내가 배고파서 참는다! 나는 우 기자를 노려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얌전히 밥 좀 먹어보려 했더니, 우 기자가 다시 핀잔을 주었다.
“또 완두콩 골라내? 그거 다 먹는 건데, 아깝지도 않아?”
“남이사 완두콩을 골라내든, 면발을 골라내든!”
“입맛이 그렇게 까다로우니 누가 좋다고 그래?”
“댁이 안 좋아해주시는 게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네요.”
“오호, 이 기자는 정말 행운아야. 축하해! 평생 그 행운 지속되겠네.”
우 기자와 내가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쳐다보았다. 내가 저 인간하고 정말 얼굴 팔려서 밥도 못 먹어요. 주위 사람들한테 민망해서 조용히 참고 밥 좀 먹어보려고 했더니, 우 기자가 또 시비를 걸어왔다.
“집 문제는 어떻게 되고 계신가?”
“이사 준비는 끝났는데.”
“난 지금 말이지, 이사하려면 집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신데?”
“아, 상식 말이야? 난 내가 부장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게 나와 우리 모든 사무실 사람들의 상식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하! 결국 같이 들어가 살자 이거야? 정말 무서운 여자네!”
“우 기자, 진짜 그렇게 우길래? 그게 말이 되니? 어떻게 우 기자가 그 집에 들어온다고 난리야? 그 집, 처음부터 내가 들어가기로 한 집이야!”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보다 못한 중국집 주인이 와서 말했다.
“저어, 손님들, 죄송합니다만, 다른 손님도 계셔서….”
“저 남자만 내쫓으면 이 집 조용해 질 거예요.”
“저, 손님, 지금 식사 중이신데, 어떻게….”
우 기자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나의 일격에 만족하면서 다시 자장면발을 입에 쓱 넣고 있는데, 우 기자의 말이 들려왔다.
“저 여자 보고 좀 조용히 하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이번엔 우 기자였다. 흥! 절대 질 수 없지.
“문제는 간단하지. 원래 내가 들어가기로 했던 집에 내가 들어가면 되는 거야. 들어올 수 없는,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서 문제가 된 거니까, 그 사람만 안 들어오겠다, 그럼 해결되는 거야.”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에 서 있는 주인에게 마무리로 한 마디 했다.
“아저씨, 저 남자한테 아주 차가운 물 한잔 가져다 주세요. 정신을 좀 못 차리는 것 같아서요.”
으으으. 마무리까지 한다고는 했지만 이 분위기 너무 싫다. 정말 수습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화가 잔뜩 나있는 우 기자와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과 그런 우리 세 사람을 민망하게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을 보면서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죄송합니다.”
문득 우 기자가 말했다. 웬 죄송? 거기다 존대말까지? 무슨 일이람?
“아니, 저 여자 말고, 사장님께요.”
그럼 그렇지. 니가 나한테 죄송이라는 말을 쓸 리가 없지.
“네. 저기,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알겠어요.”
내가 말했다. 나도 양심은 있는 인간이니까. 솔직히 우 기자만 빼고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는 건 사실이다. 주인이 물러간 후, 잠시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여기서 그만 먹는 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난 정말 꾸역꾸역 열심히도 먹었다.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장면은 잘도 넘어갔다. 드디어, 바닥이 보였다.
“난 다 먹었는데, 회사로 들어가야지?”
내가 우아하게 물었다. 우 기자가 아직 4분의 3 밖에 못 먹은 것을 보면서 속이 다 시원했다. 흥, 내가 이겼다. 나는 도도하게 일어나서 우아하게 계산을 했다. 물론 내 것만. 속으로는 나도 우 기자 때문에 신경질이 나 죽을 지경이었지만, 우 기자도 나 못지 않게 화가 났을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중국집에서 나와 회사로 걸어가고 있는데, 옆으로 우 기자가 나를 휙 지나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라지. 그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우 기자가 휘청했다. 발을 삐었나 보았다. 우 기자는 아픈 듯이 멈춰 서서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나는 푸푸 웃으며 그 옆을 지나 우 기자를 앞서서 유유히 걸어갔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갔는데도 우 기자가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우 기자가 절룩거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넘어지랬지, 아프랬나? 칫! 잘난 척 하더니. 먼저 회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우 기자가 옆에 와서 섰다.
“걸음마나 제대로 배우고 사회로 진출하셨어야지. 그 나이에 발목이나 삐고.”
“내가 발목을 삐든 팔을 삐든 무슨 상관이야.”
엘리베이터가 오자, 우 기자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잠자코 탔다. 으이구, 정말 밉상이다, 저 인간.
<달콤동거> [2] - 내 인생의 999번, 우지훈 기자(2)
<달콤동거> [2] - 내 인생의 999번, 우지훈 기자(2)
부장실에서 나온 나는 우 기자를 옥상으로 불러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남의 걸 가로채는 게 취민가보지?”
나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며 말하는데, 우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난간에 기대 먼 곳만 보며 대답했다.
“남의 거? 그 집이 왜 이 기자 거야?”
“나한테 먼저 얘길 꺼냈으니까 내 거지.”
“억지 좀 부리지마.”
“우 기자야말로 우기지마.”
“어쨌든 나는 들어가 살 거야. 이미 전화해서 집에도 다 얘기해 놨어. 그리고 이 기자는 지금 사는 집 있잖아. 괜히 이사하면 귀찮을 텐데, 그냥 살아.”
뭐? 뭐라구? 하, 요것 봐라. 에라, 모르겠다. 급한 김에 거짓말이 나왔다.
“난 오늘 보증금 돌려받기로 했어.”
“지금 부장님한테 말을 들었는데, 언제 벌써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얘기가 됐어? 말이 될 소리를 좀 해라.”
어쭈! 이 인간 봐라?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군!
“계약 기간이 다 됐단 말이야! 그렇잖아도 집 구하고 있던 중이었다구!”
“돌려받기로 했다구?”
갑자기 우 기자의 어조가 달라졌다. 내 말에 조금 수긍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와, 성공인가? 우 기자가 웬 일로 내 말에 물러서지?
“그래! 오늘 저녁에!”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러자 우 기자가 다시금 얄미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으래? 보증금을 아직 돌려받은 것도 아니고, 아무 상관 없겠네. 계약을 연장하든지, 그게 싫으면 보증금 받은 걸로 다른 집 구하든가.”
“뭐?”
“어쨌든 난 거기서 살 거니까 마음대로 해. 이 기자도 들어와 살든지. 방도 두 개던데.”
“뭐라구? 같이 살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우 기자, 지금 어떻게 된 거 아냐?”
“뭐야? 내가 혼자 살 집인데 불쌍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불쌍해서 봐줘?”
“들어와 살든가, 싫으면 다른 집 구해봐.”
우 기자는 거기까지 말하고 그냥 내려가 버렸다. 정말 어이 없는 인간이다. 그래. 해보잔 말이지.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부장이 일요일까지 짐 빼고 나면, 어차피 화요일까지는 우 기자나 나나 수요일에 나오는 잡지 마감 맞추느라 이사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 이사는 기사를 넘기고 나서 하게 될 거다, 그렇다면 내가 우 기자보다 먼저 이사를 하도록 하자, 라고.
아마 우 기자는 김병대 부장이 출국하고 나서 다음 주말에나 이사를 하겠지? 그럼 난 주말이 되기 전, 수요일에 출근을 좀 늦게 하니까 그날 새벽에 이사해서 집 다 차지하고, 문 꼭 걸어잠그고 있어야지. 그럼 아무 말도 못 하겠지? 그렇게 돌려보내는 수 밖에,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니!
사무실로 내려오는 길, 휴게실 앞을 지나는데 우 기자와 친한 구철수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이 기자가 그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너도 들어가겠다고 했단 말이야?”
“나, 집 너무 멀잖아. 매일 인천에서 여기까지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웬만하면 양보하지 그러냐? 이 기자 성격에 그 집 내주겠냐?”
“두고 봐야 알지.”
“이거 큰 싸움 또 한번 나겠구만.”
하! 나는 기막혀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래. 두고 봐야 알지! 두고 보자고, 우지훈!
아, 정말 지독히도 운이 없다. 이렇게 우 기자가 밉상인데, 갑자기 정치권에서 엄청난 대선 자금 비리가 터진 것이었다. 지난 주에 예정에도 없던 특별취재 한답시고 고생했기 때문에 이번 주는 좀 한가하다 싶었더니, 대선 자금 스캔들 때문에 우 기자와 내가 긴급 취재팀에 또다시 투입되었다. 이사 준비에다, 말도 안 되게 집을 가로채려고 하는 우 기자를 견제하는 것 만으로도 심경이 괴로워 돌아가실 지경인데, 우 기자와 합동 취재를 해야 하다니!
위에서는 어떻게든 검찰을 구슬려서 기사를 만들어 오라고 하는데, 검찰 측은 수사 중이라며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검찰에서 짤막하게 브리핑하는 것으로는 신문 기사나 TV 뉴스의 몫이다. 우리 같은 잡지사 기자들은 그 이상의 것을 잡아내고, 거기다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 분석까지 해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나와 우 기자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모 의원의 전직 운전 기사를 간신히 찾아내어 어떻게든 정보 하나라도 캐내려고 종일 애쓰다 겨우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둘 다 하루 내내 굶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나와 우 기자가 의견 일치를 보는 건, 가끔 이렇게 배가 고플 때 만이다. 만약 인간이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면 우 기자와 내가 의견 일치를 본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저씨, 자장면이요!”
중국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주문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털썩 주저앉는데, 우 기자가 곱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그대로 서 있었다.
저 표정은 또 뭐야? 꼭 괴물처럼 생겨 가지고는. 다리도 안 아픈가? 하긴, 앉든지 말든지 알 게 뭐냐.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다리를 두드리고 있는데, 우 기자가 힘주어 말했다.
“저는 볶음밥 주세요!”
그리고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또 얼굴이 왜 저러시나.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얼굴이 아주 밉상이다. 나는 우 기자가 보기 싫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옆에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흥. 지금이야 좋겠지. 니들, 언제까지 가나 보자. 괜히 속으로 툴툴거리며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내 앞에 놓았다. 그런데 앞에 앉은 우 기자의 표정이 아주 볼 만 했다.
“내 것도 같이 좀 놔주면 안 돼?”
“댁은 손 없으셔?”
나의 날카로운 대답 때문인지 옆에 앉은 연인이 쳐다보았다. 내가 괜히 머쓱해져서, 수저를 꺼내어 우 기자 앞에 놓으려고 했는데, 우 기자가 내 손을 탁 뿌리치더니 자기가 스스로 놓았다.
“아까도 그래. 내가 있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자기 것만 딱 주문하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음식이 나왔다. 내가 배고파서 참는다! 나는 우 기자를 노려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얌전히 밥 좀 먹어보려 했더니, 우 기자가 다시 핀잔을 주었다.
“또 완두콩 골라내? 그거 다 먹는 건데, 아깝지도 않아?”
“남이사 완두콩을 골라내든, 면발을 골라내든!”
“입맛이 그렇게 까다로우니 누가 좋다고 그래?”
“댁이 안 좋아해주시는 게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네요.”
“오호, 이 기자는 정말 행운아야. 축하해! 평생 그 행운 지속되겠네.”
우 기자와 내가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쳐다보았다. 내가 저 인간하고 정말 얼굴 팔려서 밥도 못 먹어요. 주위 사람들한테 민망해서 조용히 참고 밥 좀 먹어보려고 했더니, 우 기자가 또 시비를 걸어왔다.
“집 문제는 어떻게 되고 계신가?”
“이사 준비는 끝났는데.”
“난 지금 말이지, 이사하려면 집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신데?”
“아, 상식 말이야? 난 내가 부장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게 나와 우리 모든 사무실 사람들의 상식인 줄 알고 있었는데?”
“하! 결국 같이 들어가 살자 이거야? 정말 무서운 여자네!”
“우 기자, 진짜 그렇게 우길래? 그게 말이 되니? 어떻게 우 기자가 그 집에 들어온다고 난리야? 그 집, 처음부터 내가 들어가기로 한 집이야!”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보다 못한 중국집 주인이 와서 말했다.
“저어, 손님들, 죄송합니다만, 다른 손님도 계셔서….”
“저 남자만 내쫓으면 이 집 조용해 질 거예요.”
“저, 손님, 지금 식사 중이신데, 어떻게….”
우 기자의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나의 일격에 만족하면서 다시 자장면발을 입에 쓱 넣고 있는데, 우 기자의 말이 들려왔다.
“저 여자 보고 좀 조용히 하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이번엔 우 기자였다. 흥! 절대 질 수 없지.
“문제는 간단하지. 원래 내가 들어가기로 했던 집에 내가 들어가면 되는 거야. 들어올 수 없는,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서 문제가 된 거니까, 그 사람만 안 들어오겠다, 그럼 해결되는 거야.”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에 서 있는 주인에게 마무리로 한 마디 했다.
“아저씨, 저 남자한테 아주 차가운 물 한잔 가져다 주세요. 정신을 좀 못 차리는 것 같아서요.”
으으으. 마무리까지 한다고는 했지만 이 분위기 너무 싫다. 정말 수습이 안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화가 잔뜩 나있는 우 기자와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과 그런 우리 세 사람을 민망하게 쳐다보는 주위의 시선을 보면서 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죄송합니다.”
문득 우 기자가 말했다. 웬 죄송? 거기다 존대말까지? 무슨 일이람?
“아니, 저 여자 말고, 사장님께요.”
그럼 그렇지. 니가 나한테 죄송이라는 말을 쓸 리가 없지.
“네. 저기,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알겠어요.”
내가 말했다. 나도 양심은 있는 인간이니까. 솔직히 우 기자만 빼고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 잘못 없는 건 사실이다. 주인이 물러간 후, 잠시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여기서 그만 먹는 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난 정말 꾸역꾸역 열심히도 먹었다. 그렇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장면은 잘도 넘어갔다. 드디어, 바닥이 보였다.
“난 다 먹었는데, 회사로 들어가야지?”
내가 우아하게 물었다. 우 기자가 아직 4분의 3 밖에 못 먹은 것을 보면서 속이 다 시원했다. 흥, 내가 이겼다. 나는 도도하게 일어나서 우아하게 계산을 했다. 물론 내 것만. 속으로는 나도 우 기자 때문에 신경질이 나 죽을 지경이었지만, 우 기자도 나 못지 않게 화가 났을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중국집에서 나와 회사로 걸어가고 있는데, 옆으로 우 기자가 나를 휙 지나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라지. 그럼 속이 시원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우 기자가 휘청했다. 발을 삐었나 보았다. 우 기자는 아픈 듯이 멈춰 서서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나는 푸푸 웃으며 그 옆을 지나 우 기자를 앞서서 유유히 걸어갔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갔는데도 우 기자가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우 기자가 절룩거리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넘어지랬지, 아프랬나? 칫! 잘난 척 하더니. 먼저 회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우 기자가 옆에 와서 섰다.
“걸음마나 제대로 배우고 사회로 진출하셨어야지. 그 나이에 발목이나 삐고.”
“내가 발목을 삐든 팔을 삐든 무슨 상관이야.”
엘리베이터가 오자, 우 기자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잠자코 탔다. 으이구, 정말 밉상이다, 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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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아직 안 끝났어?”
옆에서 우 기자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조용히 좀 해. 시끄러워서 못 하겠잖아.”
이번 취재 건은 정식 인터뷰보다 비공식 인터뷰, 현장 취재가 많아서 아무리 채널을 조정해도 소리 잡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얼른 줘야 기사를 쓰지!”
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는 우 기자와 나를 본 유영숙 기자가 다가와서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요즘 언니랑 우 선배랑 사이가 더 심해진 거 같아요.”
“우 기자랑 내 사이가 심해진 게 아니라, 우 기자 인간성이 날로 심해지는 거지.”
“부장님 아파트 땜에 그런 거죠?”
“어떻게 그렇게 끼어들 수가 있니? 정말 상식이 없는 인간이야.”
“음, 제 생각에도 이번엔 우 선배가 좀, 무리한 것 같아요.”
유 기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뒤에서 구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뭐야? 선배,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우 기자하고 얘기 잘 해봐. 서로 감정 싸움만 하지 말고. 천천히 얘기하다 보면, 해결 방법이 나올 수 있잖아. 우 기자도 계속 집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사정이 안 돼서 망설였던가 보더라고.”
“대화? 뭐라고 대화를 해볼까? 어떻게 남의 걸 뺏을 수가 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볼까?”
“이 기자는 지금 자취하던 집 있으니까….”
“선배!”
나는 구 기자의 말을 끊고 말했다.
“우 기자한테 가서 전해요. 나 절대 포기 안 할 거고,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우기는 거, 절대 못 봐준다고!”
내가 벌떡 일어나서 휴게실을 나오는데, 마침 들어오던 우 기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찡그리며 우 기자를 노려 보는데, 우 기자도 지지 않고 쏘아보며 말했다.
“똑바로 좀 보고 다녀!”
“나 지금 누구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게 없거든. 그 쪽이 조심하셔!”
문을 쾅 닫고 휴게실을 나오는데 안에서 구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가 웬만하면 포기해라. 그거 부장님이 이 기자한테 먼저 말한 건 맞잖아.”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떻게 포기하냐?”
감정 싸움을 하지 말고 대화를 하라구? 저 인간 이하하고? 난 포기한다. 도저히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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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대 부장이 출국하는 날, 부장을 전송하기 위해서 잡지사 기자들 몇 명이 나와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가셔서 환송회도 못해 드리고 어떡합니까, 서운해서.”
“1년 후면 오는데 뭐가 아쉬워. 나를 아예 보내고 싶은가 보지? 그런데, 두 사람 중에 누가 들어갈지는 아직도 결정 못 했나?”
부장이 웃으며 물었다. 안내 방송에서는 탑승을 서두르라고 나오고, 부장의 가족들은 차례로 인사하고 들어갔다. 한참을 보다 돌아서는데, 저쪽에서 우 기자와 구 기자가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남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주위 기자들을 두루 돌아보며 우 기자가 말했다.
“당연히 내가 들어가기로 했지.”
그렇게 말해봐라. 결국은 내가 들어가서 문 잠그고 있을 거니까. 말로 100번 들어가면 뭐 하니, 내가 들어가 있을 건데.
“우 기자가 도를 넘는구나. 합의를 가장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거, 심히 좋지 않다.”
나는 점잖게 한마디를 하고는 힘차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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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겠지요?
과연 그 집은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지, 다음편을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김현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