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시절 다이어리를 펼쳐 보다

JunY 2009.03.07
조회264

군 시절 긁적여 보았던 일기장을 보고 옛생각이 나서 적어보았던건데;

 

판에 한번 올려보네요  -

 

 

-  4월 18일 [아프다]

아픕니다..

정말 혼이 날아가게 많이 아픕니다.

어제 점심 저녁을 안 먹었습니다..

먹고 토하는건 이제 너무 괴롭거든요..

덕분에 새벽에 입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어제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다행이예요..

하지만 밥을 먹지 않아 쓰린 속을 잡고 펜을 긁적입니다.

제가 앓고있는..
그러니까 지금 유행하는 이것이 요새 유행하는 독감이랍니다.

사회에서 몇년간 병원 문턱도 안 밟은 나인데..
지금은 비실비실 종합병원입니다.

게다가
분명 두끼나 안먹었는데 설사를 합니다..

....

숙변이 녹았나봅니다..

아랫배가 들어가고 건강해지겠네요..

독감의 증세이기는 하지만 좋게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좋게 생각하고 있으니..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  4월 19일 [목욕]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감기기운이 심해 두통으로 고생하며 일어난 오늘 특별히 목욕을 시켜준다고 합니다.

오래된 목욕탕 보일러가 굉음을 내며 빨간 녹이 섞인 따뜻한 물을 토해냅니다.

10평정도의 목욕탕은 샤워기가 6개이고

한번에 16명씩 씻고 나오랍니다.

그리고 씻는 시간은 15분입니다.

.....

이번이 벌써 3번째 목욕이고 이전의 두번은 10분이었습니다.

히죽..

5분이나 늘어서 넉넉합니다. 행복합니다.

 


-  5월 4일 [통화]

길고 길던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왔습니다.

훈련병때 지내던 1중대에서 뛰어서 10초 위치의 4중대입니다..

더이상 86번 훈련병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던 이등병이 되었습니다.

.....

전입신병이라는 명찰을 달고 행정보급관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면담 도중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어보신 행정보급관님이 부모님과 통화를 하시면서

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아드님과 아직 통화못하셨죠?"라고 말합니다.

가슴이 '쿵'했습니다..

전화기를 받는데 손이 마구 떨립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목소리에

제일 먼저 기억난..

입소날 집에서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모습..
입소날 차안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모습
입소할때 306보충대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리는 어머니 눈물 소리.

'몸 건강히 잘 있다고 말씀드려야 되는데.. '라는 생각만 할뿐

가뜩이나 나이 많은 이등병이 어머니 전화 한통화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정말 울기 싫었는데 그렇게 안되더랍니다.

내색을 안하려고

"네."

"네.."

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목구멍까지 말이 넘어오려고 하는데..

한마디 말도 못하고

"건강하시죠?"

라는 말한마디 못했습니다..


우는거 들키면 더 슬퍼하실까봐..
더 마음아파하실까봐..


이를 물고 대답만...

그저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문득 벽에 붙은 거울을 보았습니다.

참 가관이더군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고 찡그린 표정이라니..

빨개진 얼굴에 찡그리고 흘러내린 눈물로 지저분한 얼굴..

대한민국 이등병의 모습.

 


-  10월 24일 [휴가]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힘들던 유격훈련때도 이것하나로 버텼는데.. 라고 혼자 살며시 웃어봅니다.


아침공기는 많이 차가웠습니다..

위병소를 나서는 나를 맞는 따뜻한 공기..

"군대안은 왜 그렇게 추운거야?" 라며 위병소 근무중인 맞후임에게 넌지시 농담 한마디를 던져봅니다.

곧 부모님께서 차를 타고 마중 나오셨습니다.

혼자 갈수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우리 아들 빨리 보고 싶으시다며 굳이 여기까지 오셨네요.

창문 밖으로 반갑게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건강하셨죠?"

말없이 내 두손을 꼭 잡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며칠전 입대한 동생녀석의 빈 공백이 많이 크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시간동안 부모님과 달리는 차안에서 대화를 하며 집에 도착했습니다.

...

그리고 도착한 집..

가장 눈에 띄는 그것..

달력 숫자 밑 쓰여있는 삐뚤삐둘한 숫자들과..

오늘 날짜에 크게 써있는 .. 내 이름..

그리고 내 이름을 수없이 감싸고 있는 하트모양..

휴가를 기다린건 나뿐이 아니었나 봅니다.

한장씩 넘겨본

달력에는 수많은 하트에 둘러쌓인 동생의 이름도 씌여있었습니다.

"동생 1월에 100일휴가 나와요?"

어머니께서 말없이 웃으십니다..

참..
잘해야될거 같다..

정말..
잘해야될거 같다..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