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종일 쓸데없이 바쁘드랬습니다. 겨우내 밀려 두었던 가게 컴퓨터 청소를 한가지씩 하기 시작 했습니다. 잠시 들려서 리플달고, 또 청소 하고.. 중독인가요? 잠시전 저녁먹고, 음악 들으면서. 커피마시면서, 글 씁니다. 쬐끔 밑에 사량도 야그... 욕지도, 사량도, 등 통영 앞바다에 조그마한 섬들이 많습니다. 1984년 모전자 회사에서(S전자 서비스 센터) 서해 인천 부근부터 남해 부산 까지 섬을 순회 하면서 무료 전자제품 수리를 했더랬습니다. 그때 저는 11월 1일 부터 보름간 통영(당시 충무) 앞바다섬을 보름간 담당 했더랬지요. 당시 느낌 소감 한가지! 우리나라의 바다가 이렇게 맑고 깨끗한줄 새삼 느꼈더랬습니다. 선착장에 배대어놓고 바다물속을 보면 지금의 대형 시설수족관을 보는 느낌 그대로 였습니다. 그때의 느낌 아직도 그대로 간직 하고 있습니다. 그뒤로 몇해를 해마다 마산MBC방송국에서 주최하여 의사, 가전제품 수리회사 등등이 한번에 방문 했더랬지요. 에전에 잘나갈때의 추억 이었습니다. 참 그때 들었던 생명보험 지급 만기가 올해 입니다. 여기까지는 서론, 주저리... 어제 밤에 퇴근하여 출출한 배를 채우면서 저녁무렵부터 생겼던 두통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와 큰딸이 합창하여 술 적게 먹어라는겝니다. 술을 매일 먹으니 몸이 버텨나냐, 나이 낼모래면 쉰인데, 마냥청춘이냐고 매일 연장으로 마시면 되냐고 둘이서 공격 을 해댑니다. 큰딸의 평소 지론은 아버지가 아프지 말고 오래 사시라는거지요. 그래야 자기 시집가는것도 보고 꼬맹이(6살) 잘키워서 시집가는거 볼거아니냐 입니다. 저는 그냥 딸들 키워서 시집 보내고 나면 다른 욕심 없는데 하면서 그냥 스트레스생기면 술로 달래고 했는데 그러고 지나다 보니 어느덧 나의 몸은 나 혼자 만의것이 아닌 가족의 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가족을 위해서라면 하는 주변적인 사람으로 나자신을 생각 했는데 가족들은 저를 가족의 중심으로 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온 건강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사는날 까지 큰탈없이 그냥 살면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큰딸이 하는말, 큰딸 자신은 병없이 오래오래 사는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그순간 저는 정신이 멍해져옴을 느꼈습니다. 먼저간 처가 생각 났기 때문이지요. 겨우 나이 40에 교통사고로 갔으니 평소 말은 안해도 가슴속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다음 말을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가장으로 책임도 다못하고 헤메고 있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저를 중히 여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과 저못지 않게 큰애도 속으로는 먼저간 엄마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를 느꼈습니다. 저의 책임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에혀 제가 쳐져 있으면 않되겠지예? 어렵지만 버티고 힘 낼랍니다. 아~자~ 파이팅 40방 여러분 같이 힘내고 오늘도 무사히 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남자의 행복 이야기...
오늘 종일 쓸데없이 바쁘드랬습니다.
겨우내 밀려 두었던 가게 컴퓨터 청소를 한가지씩 하기 시작 했습니다.
잠시 들려서 리플달고, 또 청소 하고.. 중독인가요?
잠시전 저녁먹고, 음악 들으면서. 커피마시면서, 글 씁니다.
쬐끔 밑에 사량도 야그...
욕지도, 사량도, 등 통영 앞바다에 조그마한 섬들이 많습니다.
1984년 모전자 회사에서(S전자 서비스 센터) 서해 인천 부근부터 남해 부산 까지 섬을 순회 하면서
무료 전자제품 수리를 했더랬습니다.
그때 저는 11월 1일 부터 보름간 통영(당시 충무) 앞바다섬을 보름간 담당 했더랬지요.
당시 느낌 소감 한가지!
우리나라의 바다가 이렇게 맑고 깨끗한줄 새삼 느꼈더랬습니다.
선착장에 배대어놓고 바다물속을 보면 지금의 대형 시설수족관을 보는 느낌 그대로 였습니다.
그때의 느낌 아직도 그대로 간직 하고 있습니다.
그뒤로 몇해를 해마다 마산MBC방송국에서 주최하여 의사, 가전제품 수리회사 등등이 한번에
방문 했더랬지요. 에전에 잘나갈때의 추억 이었습니다.
참 그때 들었던 생명보험 지급 만기가 올해 입니다.
여기까지는 서론, 주저리...
어제 밤에 퇴근하여 출출한 배를 채우면서 저녁무렵부터 생겼던 두통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와 큰딸이 합창하여 술 적게 먹어라는겝니다.
술을 매일 먹으니 몸이 버텨나냐, 나이 낼모래면 쉰인데, 마냥청춘이냐고
매일 연장으로 마시면 되냐고 둘이서 공격 을 해댑니다.
큰딸의 평소 지론은 아버지가 아프지 말고 오래 사시라는거지요.
그래야 자기 시집가는것도 보고 꼬맹이(6살) 잘키워서 시집가는거 볼거아니냐 입니다.
저는 그냥 딸들 키워서 시집 보내고 나면 다른 욕심 없는데 하면서
그냥 스트레스생기면 술로 달래고 했는데 그러고 지나다 보니
어느덧 나의 몸은 나 혼자 만의것이 아닌 가족의 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가족을 위해서라면 하는 주변적인 사람으로 나자신을 생각 했는데
가족들은 저를 가족의 중심으로 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온 건강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사는날 까지 큰탈없이 그냥 살면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큰딸이 하는말, 큰딸 자신은 병없이 오래오래 사는게 꿈이라고 하더군요.
그순간 저는 정신이 멍해져옴을 느꼈습니다.
먼저간 처가 생각 났기 때문이지요.
겨우 나이 40에 교통사고로 갔으니 평소 말은 안해도 가슴속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다음 말을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가장으로 책임도 다못하고 헤메고 있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저를 중히 여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과
저못지 않게 큰애도 속으로는 먼저간 엄마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를 느꼈습니다.
저의 책임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에혀 제가 쳐져 있으면 않되겠지예? 어렵지만 버티고 힘 낼랍니다.
아~자~ 파이팅 40방 여러분 같이 힘내고 오늘도 무사히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