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한 줌- 사랑 #3

이미은200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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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랬습니다.

 

 

'너무 사랑한다'는 표현이 좋을까,

 

 

'무척 사랑한다'는 표현이 좋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라는 말도 '무척'이라는 말도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포장하려 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 자격을 잃은 표현이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나의 일상의 말들을 그대와 함께 나누기 시작하면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새 종이를 여남은 번씩 구겨가며 쏟은 말로도

 

 

어쩐지 다하지 못한 것만 같던 아쉬움이

 

 

단 한 줄의 아침인사를 적은 쪽지만으로도 충분히 흡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 앞에 덧붙일 수식의 말을 생각하며

 

 

어쩐지 모자란 것만 같던 석연치 못함이

 

 

일상을 담은 한마디 안부의 말로도 충분히 가실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그대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에게 닿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맑은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아름다운 꾸밈말로만 닦은 사랑의 말에 한 때 현혹되기보다는

 

 

조금 허름하더라도

 

 

내 일상의 곳곳에서 그대에게 보내는 정성스런 말에

 

 

오래도록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여름, 나는 어느 바닷가에 펼쳐진 백사장의 모래가

 

 

무척 눈부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래 빛이 너무 탐스러워

 

 

한 줌만 쥐어다가 가져간 유리병 속에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내 방 선반의 한 쪽에 놓은 유리병 속 모래에는

 

 

더 이상 그 지난날의 눈부신 여름이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동네 놀이터에 흩어져 아무렇게나 밟히는 모래알보다도

 

 

더 보잘 것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모래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대의 얼굴을 보았다면

 

 

얼마나 마음이 쓰였을까를 생각하며

 

 

지금에야 얼굴이 붉어지는 기억입니다.

 

 

사랑도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백사장 안의 한 톨 모래알과 같은 것이어서

 

 

바다 옆에 놓인,

 

 

주어진 그대로의 모습일 때 가장 눈부시고 아름답습니다.

 

 

굳이 한 줌 쥐어 담지 않아도 닿는 마음이 평온하고

 

 

굳이 유리병 속에 가져오지 않아도 바라보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도 같은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사랑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고자 노력을 쏟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러한 노력만큼 어렵고도 우스운 수고는 없습니다.

 

 

사랑은 그리움이라는 정의도,

 

 

사랑은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정의도 어느 하나 틀리지 않듯

 

 

사랑은 이렇다 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랑한다는 말속에 꼭 들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라면

 

 

나는 감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주는,

 

 

진실한 마음을 가장 먼저 꼽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그대는 한 걸음을 나아가기 전에 두 걸음을 물러나는 사람입니다.

 

 

미리 헤어질 것을 염려하여 하나의 인연을 만나기까지

 

 

오랜 망설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대를 바라보는 나로 하여금

 

 

많은 기다림을 견디게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그대는 비로소 나아가기 시작할 때

 

 

마음이 견고한 사람입니다.

 

 

제 안에 하나의 인연이 머물 집을 짓기 시작할 때

 

 

한 장 한 장의 벽돌을 쌓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마음 그을리며 견디어 낸 내 기다림으로 하여금

 

 

가장 아늑한 휴식으로 미소짓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그대의 마음으로부터 들리는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 아침이면 눈을 뜨고 종일 숨을 쉬는 일처럼 소중합니다.

 

 

지난 스므 해 동안 나를 깨우고 간 많은,

 

 

진실이라 믿었던 마음들이 그대의 마음 앞에 화석이 되고 맙니다.

 

 

내게 그대의 사랑한다는 말은 이렇듯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게 빚어진 진실입니다.

 

 

나는 요즘 매일같이 나의 일상을 담아 그대에게 보냅니다.

 

 

나는 하루하루 맡기듯 흘리던 일상을 그대에게 보내기 시작하고부터

 

 

좀더 단정하고 남루하지 않은 일상이 되도록 다듬고 채우는 법을 배웁니다.

 

 

지금도 이른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커피점에서

 

 

조금은 식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헤이즐넛 향을 그대에게 보내는 중입니다.

 

 

헤이즐넛 온기에 담아 보내는 내 마음이 그 온기만큼 따사로운지요.

 

 

이렇게 나의 일상의 숨결마다 그대가 하나일 수 있는 오늘이

 

 

내겐 큰 감사이고 축복이며 말하지 못할 행복입니다.

 

 

 

 

나의 숨결을 사는 그대,

 

 

귀 기울여 그대의 숨결을 고르는 그 가느다란 성심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