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이렇게 몇장 몇절 적으실 정도로 성경을 자세히 읽으셨다면, 이렇게 이해하셨을리 없으셨을텐데요...
안타깝습니다.
[민수기 31장 15~18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 우선 여기서 언급되는 브올의 사건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미디안 여인과 음행하며 '바알브올'을 섬기다가 염병이 발생해 24,000명이 죽은 사건(민25:1-9)을 가리킵니다. 기본적으로 미디안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대로 거행된 성전이었고, 미디안을 멸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미디안 남자는 이미 전멸시켰고 미디안 여자 중에서 남자를 아는 여자들만 죽였던 것은 그런 여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접촉하여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과 우상을 전파할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죠. 처녀들을 살려둔 이유는 개인적으로 추측해볼 때 이스라엘에 여자가 부족했던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듯 여기서의 논점은 숫처녀이냐 아니냐 보다는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에 방해가 덜한가 아니면 아주 악질적인 장애요소가 될 것인가 인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13~22절]
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 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비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인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 씌움을 인하여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그 여자로 그 남자의 평생에 버리지 못할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보십시오. 본문은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버렸을 때의 처벌법과 여자의 순결과 불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순결을 강조하심으로써 영적, 신앙적 순결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여자가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남자 역시 정결하게 처신해야 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부계사회였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남녀평등 이상으로 남자에게도 여자에게 이상으로 육체적 순결을 지킬 것이 요구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성범죄에 적용된 극형은 선민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순결과 여호와 신앙 변질을 방지키 위한 하나님의 진지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당시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는 풍속에는 남녀 간 혹은 남창까지 등장하여 성적인 문란성도 가미되어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 순결을 잘 지킨다면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데 한결 유리했겠죠. 또 순결함이 여호와 신앙의 일부이기도 하구요.
[신명기 22장 23~27절]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치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일반이라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 여기에 제가 더 부연할 것이 있나요. 다시 읽어보니 처음 글 쓰신 분은 본문을 다 적지 않으시고 24절까지만 적으셨더라구요. 통간은 강간이 아니고 상호 합의 간에 이루어진 성관계를 말합니다. 약혼자가 있는 처녀가 다른 남자와 통간하면 안 되는 것, 상식적으로도 납득되시지요? 또한 성읍 중에서 소리지르지 아니한 건 작성자가 쓴 것처럼 여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강간이 아닌 합의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성읍 중에 있어서도’ 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으면 구출될 수 있는 상황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대비적으로 ‘들에서’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때의 성관계는 본문에서 강간이라고 명시되며 이때는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 명령됩니다.
덧붙여 [신명기 22장 28~29절] 말씀입니다.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통간하는 중 그 두 사람이 발견되거든
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바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남자도 책임을 지길 바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만 순결을 지켜야 하고 남자는 행실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것이 사회적 관습상 묵인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하나님이 과연 그것을 기뻐하셨을지, 아니면 마지못해 내버려두셨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게다가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남녀 간 성관계는 결혼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은 본문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위기 21장 9절]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찌니라
→ 불사른다는 표현 때문에 하나님이 무섭고 두려우신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성적인 순결을 강조하신 이유는 자기 백성이 여호와 신앙을 더 잘 지키길 바라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만 싹 옮겨놓은 작성자의 의도를 저는 씁쓸하게 파악할 수 있겠네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 전체가 순결하기 원하시지만 제사장에게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길 바라셨습니다.
[레위기 21장 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백성 중의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려니와
골육지친인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찌니라
→제사장에게 유독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군인이 죄를 짓거나 하면 죄가 더 중한 것(군인 맞나요? 형사인 것 같기도 하구요..)처럼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으레 모범을 보여야 할 자들(예를 들면 선생님)이 죄를 지었다 하면 뉴스에 더 크게 오르내리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하물며 이는 신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니 그 엄밀함과 엄격함은 충분히 납득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인간과는 달리 죄와 정반대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최대한 거룩한 방식으로 섬겨야겠죠? 이때 9절 말씀에서 딸도 물론 행음 자체도 큰 잘못이지만 제사장의 딸로서 자기를 더럽히면 그 아비인 제사장까지 욕을 먹이는 셈이고 이는 또 제사장이 섬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 있기에 엄중히 처벌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자를 쓰시지 않으셨다는 작성자의 주장은 잘못입니다. 사사기 4장 4~6절을 보면,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드보라가 보내어 야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딸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0~22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 보이십니까? 딸이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혈루증을 열두 해나 앓았다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불결하다고 외면당하고 멸시받았을 여인에게 예수님은 여자여, 혹은 여보게 도 아닌 딸아 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 사랑이, 그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고린도전서 11장 3절~15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에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리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 그를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은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를 취해 만들어졌고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난다고 적혀있습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습니까?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독지혜사 파워 라이프 성경의 해설을 보면 머리에 수건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해 두었네요. <본문은 교회 예배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복음 증거와 더불어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엄격한 가부장제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사거나 심지어 교회 내의 질서를 혼잡하게 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바울은 여자가 존재론적, 인격적으로 남자와 동등하되 다면 그 사역과 역할에 있어서 지켜져야 할 질서를 지적한다. 한편 머리에 수건을 쓰는 풍습 자체는 초대교회 당시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지 시대를 초월하여 엄수되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여기서도 일단 기독지혜사 파워 라이프 성경의 해설을 잠깐 기록해 보겠습니다. <교회 내에서의 여자의 위치 - 일견 본문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본문의 조치는 공적 예배의 질서 유지를 위해 취해졌으며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의 맥락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만 여성이 가정이나 교회에서 남성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적 질서는 영원히 존재한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접촉을 함에 있어서 정이 생기고 사랑이 생길 가능성은 언제나 위험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가부장적이고 남자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을 따르던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 이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남자와 여자가 교회라는 한 물리적 공간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을 터, 그 규율이나 제재가 엄격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봐야겠지요. 해설에서 말하는 원칙적 질서란 창세기 3장 16~17절을 잠깐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하와와 아담이 여호와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어 벌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여자만 해산의 고통을 겪은 끝에 낳고, 남자가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힘이 세고 근육량이 많다는 것 그러므로 일하기에 더 유리하고 특화되어 있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요즘에야 진통제로 해산의 고통을 줄이기도 하고 지식 정보화 시대가 도래해 여자도 일을 하고 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남자가 가정을 부양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니까요.
[디모데전서 2장 9~15절]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여성에 대한 수동적 덕목의 요구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질서유지라는 특수 목적을 고려한 것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또한 남녀 관계에 있어서 창조 질서에 의거한 지시를 주고 있습니다. 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뱀이 선악과를 먹으라고 인간을 꾀일 때 하와가 먼저 넘어가 다시 아담을 꼬드겼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15절입니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규율이 시대에 따라 어찌되었든 여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핵심요약>
이 긴 글 혹시라도 관심 있게 읽어주셨다면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보잘것없지만 성경말씀 대조해가며 최대한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 읽으실 수 없더라도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남자와 여자 모두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순결을 강조하심으로써 영적, 신앙적 순결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혹시 벌써 육체적 순결을 지키시지 못한 분이 있더라도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도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도록 하셨죠. 우리는 그 분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인생은 이 전과는 다른 삶이어야겠죠. 또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면 또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평안을 주십니다. 또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하며 그분이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부디 여러분도 일초라도 빨리 하나님을,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 사사였던 적이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혈루증 앓던 여자를 딸이라고 불러주시며 그 믿음을 보고 구원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 질서를 위해 여성에게 다소 수동적인 역할이 요구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창조 질서에 의거해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고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돌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모두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기독교를 오도하지 말아주세요!
님이 이렇게 몇장 몇절 적으실 정도로 성경을 자세히 읽으셨다면, 이렇게 이해하셨을리 없으셨을텐데요...
안타깝습니다.
[민수기 31장 15~18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 우선 여기서 언급되는 브올의 사건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미디안 여인과 음행하며 '바알브올'을 섬기다가 염병이 발생해 24,000명이 죽은 사건(민25:1-9)을 가리킵니다. 기본적으로 미디안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대로 거행된 성전이었고, 미디안을 멸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미디안 남자는 이미 전멸시켰고 미디안 여자 중에서 남자를 아는 여자들만 죽였던 것은 그런 여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접촉하여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과 우상을 전파할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죠. 처녀들을 살려둔 이유는 개인적으로 추측해볼 때 이스라엘에 여자가 부족했던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듯 여기서의 논점은 숫처녀이냐 아니냐 보다는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에 방해가 덜한가 아니면 아주 악질적인 장애요소가 될 것인가 인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13~22절]
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 그와 동침한 후에 그를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가로되 내가 이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그 처녀의 부모가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 가지고 그 성읍 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처녀의 아비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의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인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 씌움을 인하여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비에게 주고 그 여자로 그 남자의 평생에 버리지 못할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 보십시오. 본문은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버렸을 때의 처벌법과 여자의 순결과 불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순결을 강조하심으로써 영적, 신앙적 순결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여자가 순결을 지켜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남자 역시 정결하게 처신해야 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부계사회였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남녀평등 이상으로 남자에게도 여자에게 이상으로 육체적 순결을 지킬 것이 요구되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성범죄에 적용된 극형은 선민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순결과 여호와 신앙 변질을 방지키 위한 하나님의 진지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당시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는 풍속에는 남녀 간 혹은 남창까지 등장하여 성적인 문란성도 가미되어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 순결을 잘 지킨다면 여호와 신앙을 지키는 데 한결 유리했겠죠. 또 순결함이 여호와 신앙의 일부이기도 하구요.
[신명기 22장 23~27절]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치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일반이라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 여기에 제가 더 부연할 것이 있나요. 다시 읽어보니 처음 글 쓰신 분은 본문을 다 적지 않으시고 24절까지만 적으셨더라구요. 통간은 강간이 아니고 상호 합의 간에 이루어진 성관계를 말합니다. 약혼자가 있는 처녀가 다른 남자와 통간하면 안 되는 것, 상식적으로도 납득되시지요? 또한 성읍 중에서 소리지르지 아니한 건 작성자가 쓴 것처럼 여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강간이 아닌 합의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성읍 중에 있어서도’ 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 여자가 소리를 질렀으면 구출될 수 있는 상황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대비적으로 ‘들에서’ 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때의 성관계는 본문에서 강간이라고 명시되며 이때는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 명령됩니다.
덧붙여 [신명기 22장 28~29절] 말씀입니다.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만나 그를 붙들고 통간하는 중 그 두 사람이 발견되거든
그 통간한 남자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로 아내를 삼을 것이라 그가 그 처녀를 욕보였은즉 평생에 그를 버리지 못하리라
→바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남자도 책임을 지길 바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만 순결을 지켜야 하고 남자는 행실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것이 사회적 관습상 묵인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하나님이 과연 그것을 기뻐하셨을지, 아니면 마지못해 내버려두셨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게다가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남녀 간 성관계는 결혼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은 본문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위기 21장 9절]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찌니라
→ 불사른다는 표현 때문에 하나님이 무섭고 두려우신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성적인 순결을 강조하신 이유는 자기 백성이 여호와 신앙을 더 잘 지키길 바라시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만 싹 옮겨놓은 작성자의 의도를 저는 씁쓸하게 파악할 수 있겠네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 전체가 순결하기 원하시지만 제사장에게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길 바라셨습니다.
[레위기 21장 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백성 중의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려니와
골육지친인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함이니 그를 불사를찌니라
→제사장에게 유독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군인이 죄를 짓거나 하면 죄가 더 중한 것(군인 맞나요? 형사인 것 같기도 하구요..)처럼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또 으레 모범을 보여야 할 자들(예를 들면 선생님)이 죄를 지었다 하면 뉴스에 더 크게 오르내리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네요. 하물며 이는 신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섬기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니 그 엄밀함과 엄격함은 충분히 납득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인간과는 달리 죄와 정반대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최대한 거룩한 방식으로 섬겨야겠죠? 이때 9절 말씀에서 딸도 물론 행음 자체도 큰 잘못이지만 제사장의 딸로서 자기를 더럽히면 그 아비인 제사장까지 욕을 먹이는 셈이고 이는 또 제사장이 섬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 있기에 엄중히 처벌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여자를 쓰시지 않으셨다는 작성자의 주장은 잘못입니다. 사사기 4장 4~6절을 보면,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드보라가 보내어 야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딸이라는 표현이 분명히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0~22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 보이십니까? 딸이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혈루증을 열두 해나 앓았다면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불결하다고 외면당하고 멸시받았을 여인에게 예수님은 여자여, 혹은 여보게 도 아닌 딸아 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 사랑이, 그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고린도전서 11장 3절~15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에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리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 그를 위하여 지음받았다는 것은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를 취해 만들어졌고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난다고 적혀있습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습니까?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독지혜사 파워 라이프 성경의 해설을 보면 머리에 수건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해 두었네요. <본문은 교회 예배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복음 증거와 더불어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엄격한 가부장제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사거나 심지어 교회 내의 질서를 혼잡하게 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바울은 여자가 존재론적, 인격적으로 남자와 동등하되 다면 그 사역과 역할에 있어서 지켜져야 할 질서를 지적한다. 한편 머리에 수건을 쓰는 풍습 자체는 초대교회 당시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지 시대를 초월하여 엄수되어야 할 사항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여기서도 일단 기독지혜사 파워 라이프 성경의 해설을 잠깐 기록해 보겠습니다. <교회 내에서의 여자의 위치 - 일견 본문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권을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본문의 조치는 공적 예배의 질서 유지를 위해 취해졌으며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의 맥락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만 여성이 가정이나 교회에서 남성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적 질서는 영원히 존재한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접촉을 함에 있어서 정이 생기고 사랑이 생길 가능성은 언제나 위험하게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가부장적이고 남자 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남녀 칠세 부동석을 따르던 과거 우리나라의 모습 이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남자와 여자가 교회라는 한 물리적 공간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을 터, 그 규율이나 제재가 엄격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봐야겠지요. 해설에서 말하는 원칙적 질서란 창세기 3장 16~17절을 잠깐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하와와 아담이 여호와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어 벌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여자만 해산의 고통을 겪은 끝에 낳고, 남자가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힘이 세고 근육량이 많다는 것 그러므로 일하기에 더 유리하고 특화되어 있다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요즘에야 진통제로 해산의 고통을 줄이기도 하고 지식 정보화 시대가 도래해 여자도 일을 하고 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남자가 가정을 부양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니까요.
[디모데전서 2장 9~15절]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여성에 대한 수동적 덕목의 요구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 공동체 내에서의 질서유지라는 특수 목적을 고려한 것임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또한 남녀 관계에 있어서 창조 질서에 의거한 지시를 주고 있습니다. 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뱀이 선악과를 먹으라고 인간을 꾀일 때 하와가 먼저 넘어가 다시 아담을 꼬드겼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15절입니다. 여자에게 요구되는 규율이 시대에 따라 어찌되었든 여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핵심요약>
이 긴 글 혹시라도 관심 있게 읽어주셨다면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보잘것없지만 성경말씀 대조해가며 최대한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 읽으실 수 없더라도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남자와 여자 모두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순결을 강조하심으로써 영적, 신앙적 순결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혹시 벌써 육체적 순결을 지키시지 못한 분이 있더라도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도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도록 하셨죠. 우리는 그 분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인생은 이 전과는 다른 삶이어야겠죠. 또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면 또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평안을 주십니다. 또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하며 그분이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하시는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부디 여러분도 일초라도 빨리 하나님을,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 사사였던 적이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혈루증 앓던 여자를 딸이라고 불러주시며 그 믿음을 보고 구원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 질서를 위해 여성에게 다소 수동적인 역할이 요구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창조 질서에 의거해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고 남자는 여자를 아끼고 돌보아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모두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