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하던날. 난 마치 10년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것마냥 기뻤다. 작은 휠체어에 실려정말 지겨웠던 내 입원기에 대해 두번다신 돌이키고싶지않은 일들이라 단정지으며 그렇게 병원문을 나서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꿈길마냥 즐겁기만했다. 아버지의 차로 몇십분간 달린 끝에 드디어 집에 도착. 그렇게 다시찾은 집에서 가족들과의 세번째 삶이 펼쳐졌다. 월, 수, 금. 일주일중에 그 삼일은 계속 병원에 다니고, 그외에 날들은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며 내삶은 숨돌릴새가 없이 바쁘게만 시간이 흘러갔다. 어떤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3년동안 물리치료를받으면 걷게 될거라는 의사의 말에 그때부터 다시금 병원과의 지겨운 전쟁이 시작됐다. 삶에 대한 끈을 쉽게 놓지못한 나와 그런 나를 둘러싼 가족들. 우리는 그렇게 다시 하염없는 시간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스쳐지나는 하루속에 난 일장춘몽의 의미를 깨달을수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그런 시간속에 잊혀져간 일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집의 경제사정으로 물리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난 집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하시던 사업의 부도로 집을 비우시고 어머니와 형과 나. 세식구가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부업을 하시며 힘들게 나와 형을 이끌어 주셨다. 그렇게 우리 삼모자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고 다시 우리네식구는 함께 살게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오신후. 한참동안의 직업상에 공백기를 가지셨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는 잦은 다툼을 벌이셨고, 또 많이 울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아픈지 3년째되던 해의 9월이었다. 어머니께서 피곤하시다며 가을철의 그 차가운 방에 자리도 안펴시고 그냥 주무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손끝이 저리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이내 또몸의 절반이 저려온다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의원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한의사가 직접 왕진을 와서 '중풍' 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네식구중에 두식구가 같은 병을 앓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아프시고 얼마지나지않아 내게 당신만의 비밀 한가지를 털어놓으셨다. 바로 우리 두형제를 낳기전에 아이를 가졌다가 아버지께서 속을 썩여서 유산을 시켜버린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뒤에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두명에 딸하나를 낳게 되어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의식없던 그동안에 만났던 그가 바로 누나였을까? 나는 순간 떠오르는 그에 대한 생각에 괴로운 마음을 감출수없었다.
잊지못할 이야기(5)
퇴원을 하던날. 난 마치 10년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것마냥 기뻤다. 작은 휠체어에 실려
정말 지겨웠던 내 입원기에 대해 두번다신 돌이키고싶지않은 일들이라 단정지으며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서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꿈길마냥 즐겁기만했다.
아버지의 차로 몇십분간 달린 끝에 드디어 집에 도착.
그렇게 다시찾은 집에서 가족들과의 세번째 삶이 펼쳐졌다.
월, 수, 금. 일주일중에 그 삼일은 계속 병원에 다니고, 그외에 날들은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그
렇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며 내삶은 숨돌릴새가 없이 바쁘게만 시간이 흘러갔다.
어떤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3년동안 물리치료를받으면 걷게 될거라는 의사의 말에 그때부터 다시금 병원과의 지겨운
전쟁이 시작됐다.
삶에 대한 끈을 쉽게 놓지못한 나와 그런 나를 둘러싼 가족들. 우리는 그렇게 다시 하염없는 시
간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스쳐지나는 하루속에 난 일장춘몽의 의미를 깨달을수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그런 시간속에 잊혀져간 일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집의 경제사정으로 물리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난 집에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하시던 사업의 부도로 집을 비우시고 어머니와 형과 나. 세식구가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부업을 하시며 힘들게 나와 형을 이끌어 주셨다.
그렇게 우리 삼모자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고 다시 우리네식구는 함께 살게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돌아오신후. 한참동안의 직업상에 공백기를 가지셨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는
잦은 다툼을 벌이셨고, 또 많이 울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아픈지 3년째되던 해의 9월이었다.
어머니께서 피곤하시다며 가을철의 그 차가운 방에 자리도 안펴시고 그냥 주무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손끝이 저리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더니 이내 또몸의 절반이 저려
온다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한의원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한의사가 직접 왕진을 와서 '중풍'
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네식구중에 두식구가 같은 병을 앓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아프시고 얼마지나지않아 내게 당신만의 비밀 한가지를 털어놓으셨다. 바로 우
리 두형제를 낳기전에 아이를 가졌다가 아버지께서 속을 썩여서 유산을 시켜버린 아이가 있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뒤에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두명에 딸하나를 낳게 되어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
다면 내가 의식없던 그동안에 만났던 그가 바로 누나였을까? 나는 순간 떠오르는 그에 대한 생
각에 괴로운 마음을 감출수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