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살아남은자의 영화보다도 더 비참한 이야기..

혈안200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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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3월 어느 날.
대전 구석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태어났다.
잦은 도박과 바람으로 어머니를 못살게 굴던 아버지와
그 서러움을 풀 곳이 없어 자식에게 화를 풀던 어머니 사이에서 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불행과 행복의 차이도 모를 나이
다들 부모님이 싸우고 원래 이렇게 거지같이 살아가는 줄 알았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를 알게 된 그 어느 날.
내 동생이 태어나던 1991년도엔 행복했다.
아니, 행복한 줄로만 알았다.
아주 잠깐이나마 집안에 웃음이 맴돌았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도박과 바람은 끊이질 않았고
결국 어머니도 그에 맞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지도 얼마 되지않은 동생과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채 자랐다.

내가 중학생이 될 무렵 부모님은 동생과 나를 두고 별거를 시작하셨다.
자식은 서로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는 찰나에
고아원으로 보내기엔 뭣하셨는지 친할머님께서 우리를 거두어 주셨다.
그리고 매일같이 욕을 해댔다.
더 이상 귀찮게 굴지말고 길바닥에 나가 죽으라며.

동생에겐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견디기 힘들어서
나 혼자 큰집에서 뛰쳐나와 살았다.
몇달간 여러 친구집을 전전하다가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자취방도 잡고 다른 친구들과 동거를 하고 살았다.
중간에 몇번 크게 아플때엔 부모님께 연락했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병하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친구들에게 의료보험증이나 돈을 빌려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3이 될 무렵 친할머니께서 아버지께 뭐라고 말씀 드렸는지
어느새 아버지와 동생이 내 자취방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듣도 보도 못한 새엄마를 모시고..

간간히 부모님과 연락은 하고 지냈지만
몇년만에 같은 집에서 지내게 된 아버지와의
생활은 너무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전과 같이 매일 새엄마와 싸워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듯 싶다.

몇달이 흐른후 어느새 새엄마도 두어번 바뀌고
아버지께서 잡은 월세방에 살기 시작했다.
난 그 꼴이 더 이상 보기 싫어 일부러
대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다.
타지 생활도 아주 잠깐,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선 내 가정사를 보고 나를 관심사병으로 따로 취급했다.
혹시 딴 마음이라도 먹고 수류탄이나 총을 악용할까봐
그리 걱정이 되었는가보다.
내 나름 도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대장이 많이 신경써주는 것 같았다.
따로 불러서 무슨 힘든일은 없는지 하고싶은게 있는지 자주 물어봐주고
관심도 가져주고 나를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한 여름 유격훈련도중 호흠곤란및 가슴통증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신경을 써주던 대대장이 군화발로 나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보니 가슴을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진
내 등을 얼마나 짓밟었는지 가슴을 부여잡았던 내 손등이 다 으깨져 있었었다.

그 이후로도 자대생활을 하며 몇번이나 아팠었지만
엑스레이나 약물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기에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이유인 즉 스트레스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진단을 내렸기에.
그 해 말 휴가때 잠시 진료차 들린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엔
심장옆에 뚜렷히 보이는 혹이 달려 있었다.
자대복귀가 얼마 남지않아 병원에선 자대로 돌아가고 나면
진단서를 제출하고 바로 군병원이라도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들은후에 복귀를 했다.
자대에서 진단서를 내밀며 그 얘기를 했더니
이제 혹한기 훈련이 얼마 남지않아 준비할 것이 많으니
훈련이 끝나면 가라고 말하더라.
훈련이 끝나고 병원을 가는데 꼬박 한달이 걸렸다.

통합병원을 가니 여기선 제대로 된 검사조차 안된다고 서울로 가쟨다.
그렇게 구급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검사를 받고 그 좁은 병실에서 여러 부대원들과 뒤엉켜
3주를 넘게 보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불침번도 서고
식판도 나르고 같이 피부병도 옮아가며.
그러다 검사결과가 나오니 암이랜다.
여지껏 다른 사람들과 같은 질병에 노출되어 생활했는데
이제서야 급하게 역경리병실로 옮기라느니,
오늘 불침번은 내 대신 누가할지 정하고 오라느니.

분명히 신검땐 1급 받았었는데..
신검 이전에도 통증이 심해서 MRI, CT, X-RAY촬영 다 했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왜 이제서야..
"생식세포 종양 중기.."
그 말을 들었을땐 나도 모르게 군의관에게 화부터 먼저 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말 미안하지만..

암덩어리가 너무 커서 당장 수술조차 하지 못하기에
불가피하게 항암치료부터 시작했다.
그래야 암덩어리의 부피를 줄이고 심장에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수술을 해야 하니까..
서서히 머리카락과 눈썹들이 빠지고
내 기운도 슬슬 빠져나갈때 쯤 자대에서 간부가 하나 왔다.
내 소식을 자대원들에게 전하기 위해 왔다며..
그래서 한다는 소리가 유격때 대대장이 밟았던거 사과한댄다.
그때 바로 병원으로만 보냈어도 수술까지는 할 필요는 없었는데..
참고로 해주던 말이 내가 어차피 대대장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봤자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일찌감치 포기하랜다.
대대장도 이렇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냐고..
참 나.. 그렇게 미안하면 지 발로 걸어올 것이지 고작 중위를 보내서 통화나 하려고..
정말 남은 기운마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얼마후 어머니가 찾아왔다.
눈물을 흘리시며 미안하다고 하실땐 정말 미안해서 우는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갖고싶다던 노트북을 사오셨덴다.
난 노트북같은거 가지고 싶다고 말한적 없는거 같은데..
알고보니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둔걸로 여섯개의 보험사에서 거의 2억을 타가셨다더라.
그러고 내겐 노트북 하나 던져주고 가신거다.
지금도 꾸준히 어머니가 보험료를 타는걸로 알고있다.
퇴원하고 나서 얼마나 분통이 터지던지 보험회사를 찾아갔더니
내가 딱 만 스무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께 떼어드린 등초본으로 지급자 변경을 해서
난 단 한푼도 구경도 못한다더라.
같이 사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어머니한테 생활비를 받아가며 사는것도 아닌데..
그래 사실 내가 낸 보험료도 아니지만 뒷 얘기를 듣고 나니 완전 뒷골이 땡기는 거다.
친할머니와 친척들에게 찾아가서 그랬덴다.
얘 살려야 되지 않겠냐고, 병원비를 내놓으라면서.
그러고 몇천 받아낸걸로 알고있다.
참고로 난 수술받는 날까지 군인의 신분이었기에
그때까지의 치료비 및 수술비 입원비는 전부 국방부에서 나왔다.
이런 신발 성기같은 경우가 어딨나.

그렇게 퇴원을 하고 이래저래 혼자 일을 하면서
남은 대학교 등록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녔다.
물론 학교를 다닐때에도 생활비가 없어 주말마다 알바를 해야했다.
어쩌다 한번 서울로 놀러오라는 친구의 말에
잠깐 갔다가 다단계를 당했다. 말 그대로 당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말에
대학생 신분으로 몇십만원짜리 화장품과
몇십만원짜리 건강식품은 전혀 필요 없다는 생각에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 판매원 사이에 친구란 놈까지 합세해서
나를 둘러싸고 왜 이걸 안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거다.
잘 들어라 다단계하는 빌어먹을 친구 새끼야.

난 정말 친구가 잃기 싫어서
그냥 돈을 버리자는 생각에 대출을 하고 그 상품을 샀다.
물론 그 물건들은 여기저기 나눠줘 버렸지만.
다단계 회사에선 계속 연락이 오는거다.
이제 슬슬 나도 친구하나 물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난 그때 내가 정말 절친하다고 느꼈던 친구에게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걸 생각해보니
내가 데려가는 친구도 날 그렇게 생각할까봐
절대 데려가지는 못하겠더라..
그렇게 친구를 잃어야 했다.. 물론 돈도 잃었고..

나중엔 그 대출금이 발목을 묶고 묶어 빚더미가 되었다.
몇달도 채 남지않은 대학생활마저 개판이 되어버린채..
다단계는 하기 싫고 학교는 다녀야 겠는데
대출금은 갚아야 겠고.. 완전 꼬여버렸다.
어떻게든 졸업은 해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든 갚아나가리라 이를 악물고.
얼마 후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지금 동생을 어머니가 데리고 과외를 시키고 있는데
한달에 8~90만원이 들어간다며 동생 학비좀 보태라고.
그.리.고. 이제 곧 동생 대학교 들어가니까
동생 대학 등록금 벌어오라고.
우와....

너무 기가 막혀서 어머니 집으로 찾아갔다..
레미안 아파트에 차는 로체.
옷장안엔 옷이 다 들어가지도 않을만큼 새옷으로 가득 찼다.
난 그때 느꼈다.. "아.. 그때 나온 보험료와 친가가 준 돈이 다 이리 들어갔구나.."
얼마전엔 로체가 체어맨으로 바뀌어 있더라.
대체 보험료가 한달에 얼마씩이나 나오길래..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은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 난 나의 인생.
서로 각자 참견말고 나만 꾸준히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한번 뒤엉켜버린 인생은 절대 풀어지지 않는 법인가보다..
어디서 일을 해도 그게 올바른 일이라면 대출금조차 갚기가 힘들고
친구에게 한번 배신당하고 나니 어디하나 마음놓고 기댈 사람이 없다..
머릿속엔 몇번이고 이 지옥을 전부 불태워 버릴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대대장도 죽여버리고 엄마아빠 집에 불도 질러 버리고
친구새끼 목을 따서 죽여버리겠다고..
물론 꿈을 꿈일뿐 절대 현실로 옮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머릿속이라도 그렇게 풀어놓지 않으면
정말 당장 내가 미쳐버릴 지경이다..
아니면.. 이 머리를 물 속 깊이 담아 영원히 표현해 낼 수 없도록 막어버리고 싶은 생각뿐..

이젠..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