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엄마의 바람은 내가 태어나서도 8년이나 계속됐고, 덕분에 성격좋기로 소문났던 아빠의 성격까지 망가졌어요. 10년 전, 월급 200 넘게 받고 일하던 아빠가 술으로 시간을 보내며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는 아빠가 집을 나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셨고. 어린 오빠와 난 집에서 외롭게 컸습니다. 화를 못 참은 아버진 엄마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만 가발까지 구입하셔서 밖을 나가셨습니다. (어릴적이지만 엄마의 가발을 사러 갔던게 기억 나네요.) 어린 제가 잘때 외로워 엄마의 품에 파고들면 엄마는 저를 거칠게 밀어내셨고 아빠의 품으로 가 잠들곤 했었습니다. 엄마에게 큰소릴 치기도 하셨었지만 먼저 이혼 얘길 꺼낸 적 한번 없이 엄마를 감싸주던 아빠가, 엄마에게 가족 여행을 가자며 먼저 얘길 하셨고 몇날 몇일을 싫다고 우리끼리 갔다 오라며 여행을 거부하던 엄마가 여행을 오케이 하자, 아빠는 여행가서 먹을 장거리를 봐오겠다며 잠시 집을 비운사이 또 다시 엄마는 집을 나가셨어요. 8년동안 기억나는건, 엄마의 가출, 아빠가 술 드시는거. 그것밖에 기억 안나네요. 겨우 자릴 잡으신 아빠는 회사를 다니시게 되었고, 엄마가 자주 집을 나가시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번갈아가며 우릴 돌봐 주셨습니다. 하루는 집에 엄마와 저 혼자 있었는데,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한통 받으시더니 엄마가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 였지만 또 엄마가 집을 나가려는걸 알곤 맨발로 엄마를 쫓아나와 큰길까지 따라 갔습니다. 택시를 잡은 엄마를 놓지 않으려 울고 불고 떼쓰고, 이미 택시에 타버린 엄마의 옆에 앉으려 발악하길 10여 분, 엄마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지나가는 한 남학생에게 "얘 좀 잡아줘요. 모르는 앤데 자꾸 달라붙네." 라며 남학생에게 날 잡게한뒤 택시를 타고 가버리셨습니다. 어릴때부터 심각한 길치였던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몰라 엄마만 기다리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엄마가 떠난 그 자리에서 엄마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빠에게 발견된 전 길바닥에 누워 잠든채 아빠의 등에 엎혀 집으로 돌아왔구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마자, 엄마는 두번 다신 저희에게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 흔한 슈퍼 하나 없는 산골짜기 할머니집에서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며 밭 갈고, 마늘 심고, 논 메고, 농사일을 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 아빠의 집으로 오게 되었고 6년동안 떨어져 있던 아빠와 전, 남보다 더 어색하게 지냈습니다. 하루에 하는 말이라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다녀오셨어요. 이 말들 뿐. 어릴때부터 이렇게 힘든일을 같이 겪고 자란 친 오빠라는 사람은 제가 중1이 되던 때부터 절 때리기 시작했고, 그 폭력은 4년간 계속 되었습니다. 이유는, 컴퓨터가 고장났다 너 때문이다. 설겆이를 왜 안해놨냐. 밥을 왜 안해놨냐. 청소를 왜 안해놨냐. 빨래를 왜 안해놨냐. 갖가지 이유로 자신의 기분이 조금만 나쁘면 절 때렸습니다. 오빠는, 자신의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방문을 닫아달라 자신의 방 불을 꺼달라 물을 갖다 달라 밥을 차려달라 먹은 밥을 치워달라 자신이 먹을 과자를 사다달라 왜 이 과자를 사왔냐, 다른걸로 바꿔와라.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고 절 시종처럼 부려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짜증나서 싫다는 한마디를 했다하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리며 신발x 미친x 개 같은x 소릴 다 들어먹어야 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외도 덕분에 성격이 많이 망가지셨고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이 되곤 하셨습니다. 하루는 술을 드시고 와서 싱크대 밑이 더럽다며 새벽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싱크대 밑만 닦으래서 밤새도록 싱크대 밑만 닦다가 잠 한숨 못자고 학교에 갔습니다. 또 하루는, 침대 밑에 쓰레기가 있다며 집 밖으로 나가서 벌을 세워놓곤 깜빡 잠이 드셨는지 그날 비가 엄청 많이 쏟아부었는데 5시간동안 비 맞으며 손들고 무릎꿇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평소엔 말이 아에 없으십니다. 집에선 과묵하시다가도 밖에서 다른 분들 만나면 왁자지껄 해지세요. 그러다가도 술만 드시면 저희에게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시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전 사랑한단 말은 커녕, 생일날 생일축하드려요. 한마디 못해드렸네요. 하루는 제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와서 놀았었는데 친구가 가고 난 뒤 아빠가 그러시더라구요. 집에서 제가 웃는걸 처음 봤다면서. 서운하신건지 섭섭하신건지.. 그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정말 집에선 웃을 일이 없습니다. 아빠는 말 한마디 안하시고 오빠는 1분에 한번씩 심부름을 시키고 (오버 아니에요, 정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또 시키고, 또 시키고..)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자퇴를 냈습니다. 알바 하면서 집에서 지냈는데, 알바가 아침 10시부터 저녁 6까지 입니다. 오빠는 중학교때부터 저의 통금시간을 저녁 6시까지로 정해놓고 6시가 지나면 1분마다 문자를 보냈습니다. 1대 2대 3대 4대. 1분에 한대씩 때릴꺼라며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발로 배를 차서 저를 넘어뜨리곤 일으켜 세워서 무릎으로 배를 찍고.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리던 사람이에요. 저희 오빠가. 학교 다닐땐 5시에 마쳐서 그럭저럭 6시에 맞춰 들어왔는데, 알바를 시내에서 하다보니 딱 6시에 마치는것도 아니고 청소하고 뭐 하고 하다보면 집에오는 시간이 버스타고 20분 걸립니다. 그럼 하루에 20~30대는 매일 맞았어요. 누구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라고 물으면 아빠 라고 대답했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싫어 라고 물으면 오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아빠 생각하며 버티고 버티고 있는데, 어느 날 저녁,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 밥도 못먹고 초저녁부터 자고 있었습니다. (집에선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해 본적 한번 없어요.) 아빤 그날도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고, 설겆이가 안되있다며 절 불러 앉히시곤 2~3시간 가량 잔소리를 하시더니 피곤하셨는지 잘꺼라며 저에게 방에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3시간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전, 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너무 아파 인상을 썼고, 그걸 본 아버진 "인상쓰네 개 같은x이.."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너무 서러워서 자리에 우뚝 서 버렸고. 거기에 대고 아버진 또 "또 인상쓰나 미친x이." ....더 이상 제가 그 집에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폭력과 욕설을 참아낸 이유는 아빠였는데, 아빠마저 절 등져 버리시니 어린 마음에 너무 외롭고 서러워서 집을 나와버렸어요. 아버지는 몇년간 놀고 계신 상태였고, 매일 매일 술을 드시느라 술값으로 돈을 다 쓰시고. 집 나올때 100원 한푼 가져나오지 못했었어요. 그나마 알바한 돈으로 찜질방에서 지내며 하루에 한끼는 커녕, 빵 하나 먹으면 많이 먹는거였죠. 그렇게 1달이 흐르고 가족들은 아무도 절 찾지 않았어요. 물론 부모입장으로 걱정되는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도저히 버틸수가 없었던 절, 욕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돈없고 밥 못먹더라도 남자집에선 자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찬바람 부는 겨울, 비까지 오는 날에도 터미널에서 밤을 새곤 했습니다. 차가운 물로, 시린 손 불며 세수하고. 비누조차 없어 그냥 물로만 머릴 감고, 말리지도 못하고 알바를 가곤 했어요. 그렇게 2년을 지내고, 우연히 고모와 연락이 닿았고 아빠와 만났습니다. 이제 다시 집 나가지 말라며, 걱정 많이 했다며.. 술을 드시고 하신 말이었지만 진심인게 느껴졌어요. 집으로 돌아갔을때 오빠는 군대에 간 상황이었고, 아빠는 학교를 다시 다닐때까지 저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집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방3개 거실도 어느정도 크고, 아무튼 어느정도 괜찮은 주택의 (아빠 이름으로 된 집이에요.) 저희 집은, 어느샌가 방한칸짜리에 화장실도 밖에 있는.. 주방과 욕실이 함께 붙은. (자취방) 그런 집으로 옮겨졌더라구요. 2년동안도 아빤 일을 하지 않으셨었구요. 하루는, 제가 친구에게 빌린 돈이 있어서 그걸 돌려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친구의 야자가 10시에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날 아빤 친구분을 만나러 나가신 상태였고 10분만 나가서 친구 돈 돌려주고 오잔 생각에 잠시 밖에 나가 돈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빠가 와 계셨어요. 문을 두드리니 누구냐고 묻습니다. "아빠 저에요." 라고 했더니 제 말은 일절 들을 생각도 없으신지 "니 같은 딸 둔적없다. 나가라" 라며..절 내 쫓으셨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이유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욕부터 들어먹었습니다. 그래도 모나지 않고 성격은 밝게 자라왔는데.. 더 이상 갈곳도 없고. 중학교때 선생님께 연락해, 염치없이 돈 30만원을 빌려 모텔 달방을 잡고 살았어요. 지금까지 딱 3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힘들지만 견딜만 해요. 밝게 웃으며 잘 지내고 있구요..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한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정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 해 본 적도 없고 보고싶단 생각조차 해보질 못했네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값싼 동정따위 받으려고, 또는 위로나 받자고 쓴 글이 아닙니다. 따뜻한 집에서 엄마의 사랑과 정성섞인 따뜻한 밥 먹으면서 왜 반찬이 이것밖에 없냐며 투정하는, 입을 옷 많으면서 옷이 없다고 용돈 안주는 엄마를 욕하는, 배부른 아이들에게 지금 너희들은 아주 행복한거라고. 엄마 아빠 계실때 잘 해드리라고. 부디 그 행복 오래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에요.. 제발. 행복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지 말고. 그 행복을 느끼며, 따뜻한 가정속에서 따뜻한 아이들로 자나라길 바래.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진 모르겟지만, 싸이월드나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말고 엄마 안마 한번 해드리는건 어떠니? 속으론 무지 좋아하실껀데.. - 아직 20살 밖에 안됐지만, 너희들의 행복을 바라는 언니로 부터. 113
우리집 가정사. 한번 들어보실래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엄마의 바람은
내가 태어나서도 8년이나 계속됐고,
덕분에 성격좋기로 소문났던 아빠의 성격까지 망가졌어요.
10년 전, 월급 200 넘게 받고 일하던 아빠가
술으로 시간을 보내며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는 아빠가 집을 나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셨고.
어린 오빠와 난 집에서 외롭게 컸습니다.
화를 못 참은 아버진 엄마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만 가발까지 구입하셔서 밖을 나가셨습니다.
(어릴적이지만 엄마의 가발을 사러 갔던게 기억 나네요.)
어린 제가 잘때 외로워 엄마의 품에 파고들면
엄마는 저를 거칠게 밀어내셨고
아빠의 품으로 가 잠들곤 했었습니다.
엄마에게 큰소릴 치기도 하셨었지만
먼저 이혼 얘길 꺼낸 적 한번 없이 엄마를 감싸주던 아빠가,
엄마에게 가족 여행을 가자며 먼저 얘길 하셨고
몇날 몇일을 싫다고 우리끼리 갔다 오라며 여행을 거부하던 엄마가
여행을 오케이 하자,
아빠는 여행가서 먹을 장거리를 봐오겠다며 잠시 집을 비운사이
또 다시 엄마는 집을 나가셨어요.
8년동안 기억나는건, 엄마의 가출, 아빠가 술 드시는거.
그것밖에 기억 안나네요.
겨우 자릴 잡으신 아빠는 회사를 다니시게 되었고,
엄마가 자주 집을 나가시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번갈아가며 우릴 돌봐 주셨습니다.
하루는 집에 엄마와 저 혼자 있었는데,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한통 받으시더니
엄마가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 였지만 또 엄마가 집을 나가려는걸 알곤
맨발로 엄마를 쫓아나와 큰길까지 따라 갔습니다.
택시를 잡은 엄마를 놓지 않으려 울고 불고 떼쓰고,
이미 택시에 타버린 엄마의 옆에 앉으려 발악하길 10여 분,
엄마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지나가는 한 남학생에게
"얘 좀 잡아줘요. 모르는 앤데 자꾸 달라붙네."
라며 남학생에게 날 잡게한뒤
택시를 타고 가버리셨습니다.
어릴때부터 심각한 길치였던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몰라 엄마만 기다리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엄마가 떠난 그 자리에서 엄마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빠에게 발견된 전
길바닥에 누워 잠든채 아빠의 등에 엎혀 집으로 돌아왔구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마자,
엄마는 두번 다신 저희에게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 흔한 슈퍼 하나 없는
산골짜기 할머니집에서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며
밭 갈고, 마늘 심고, 논 메고,
농사일을 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 아빠의 집으로 오게 되었고
6년동안 떨어져 있던 아빠와 전, 남보다 더 어색하게 지냈습니다.
하루에 하는 말이라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다녀오셨어요.
이 말들 뿐.
어릴때부터 이렇게 힘든일을 같이 겪고 자란 친 오빠라는 사람은
제가 중1이 되던 때부터 절 때리기 시작했고,
그 폭력은 4년간 계속 되었습니다.
이유는,
컴퓨터가 고장났다 너 때문이다.
설겆이를 왜 안해놨냐.
밥을 왜 안해놨냐.
청소를 왜 안해놨냐.
빨래를 왜 안해놨냐.
갖가지 이유로 자신의 기분이 조금만 나쁘면 절 때렸습니다.
오빠는,
자신의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방문을 닫아달라
자신의 방 불을 꺼달라
물을 갖다 달라
밥을 차려달라
먹은 밥을 치워달라
자신이 먹을 과자를 사다달라
왜 이 과자를 사왔냐, 다른걸로 바꿔와라.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고 절 시종처럼 부려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짜증나서 싫다는 한마디를 했다하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리며
신발x 미친x 개 같은x
소릴 다 들어먹어야 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외도 덕분에 성격이 많이 망가지셨고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이 되곤 하셨습니다.
하루는 술을 드시고 와서
싱크대 밑이 더럽다며
새벽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싱크대 밑만 닦으래서
밤새도록 싱크대 밑만 닦다가 잠 한숨 못자고 학교에 갔습니다.
또 하루는,
침대 밑에 쓰레기가 있다며
집 밖으로 나가서 벌을 세워놓곤
깜빡 잠이 드셨는지
그날 비가 엄청 많이 쏟아부었는데
5시간동안 비 맞으며 손들고 무릎꿇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평소엔 말이 아에 없으십니다.
집에선 과묵하시다가도
밖에서 다른 분들 만나면 왁자지껄 해지세요.
그러다가도 술만 드시면
저희에게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시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전 사랑한단 말은 커녕,
생일날 생일축하드려요. 한마디 못해드렸네요.
하루는 제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와서 놀았었는데
친구가 가고 난 뒤 아빠가 그러시더라구요.
집에서 제가 웃는걸 처음 봤다면서.
서운하신건지 섭섭하신건지.. 그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정말 집에선 웃을 일이 없습니다.
아빠는 말 한마디 안하시고
오빠는 1분에 한번씩 심부름을 시키고
(오버 아니에요, 정말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또 시키고, 또 시키고..)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자퇴를 냈습니다.
알바 하면서 집에서 지냈는데,
알바가 아침 10시부터 저녁 6까지 입니다.
오빠는 중학교때부터 저의 통금시간을 저녁 6시까지로 정해놓고
6시가 지나면
1분마다 문자를 보냈습니다.
1대
2대
3대
4대.
1분에 한대씩 때릴꺼라며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발로 배를 차서
저를 넘어뜨리곤
일으켜 세워서 무릎으로 배를 찍고.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때리던 사람이에요. 저희 오빠가.
학교 다닐땐 5시에 마쳐서
그럭저럭 6시에 맞춰 들어왔는데,
알바를 시내에서 하다보니
딱 6시에 마치는것도 아니고 청소하고 뭐 하고 하다보면
집에오는 시간이 버스타고 20분 걸립니다.
그럼 하루에 20~30대는 매일 맞았어요.
누구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라고 물으면
아빠 라고 대답했고
세상에서 누가 제일 싫어 라고 물으면
오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아빠 생각하며 버티고 버티고 있는데,
어느 날 저녁,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 밥도 못먹고 초저녁부터 자고 있었습니다.
(집에선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해 본적 한번 없어요.)
아빤 그날도 술을 드시고 들어오셨고,
설겆이가 안되있다며 절 불러 앉히시곤
2~3시간 가량 잔소리를 하시더니
피곤하셨는지 잘꺼라며 저에게 방에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3시간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전,
일어서는 순간 다리가 너무 아파 인상을 썼고, 그걸 본 아버진
"인상쓰네 개 같은x이.."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 순간, 너무 서러워서 자리에 우뚝 서 버렸고.
거기에 대고 아버진 또
"또 인상쓰나 미친x이."
....더 이상 제가 그 집에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폭력과 욕설을 참아낸 이유는 아빠였는데,
아빠마저 절 등져 버리시니 어린 마음에 너무 외롭고 서러워서
집을 나와버렸어요.
아버지는 몇년간 놀고 계신 상태였고,
매일 매일 술을 드시느라 술값으로 돈을 다 쓰시고.
집 나올때 100원 한푼 가져나오지 못했었어요.
그나마 알바한 돈으로 찜질방에서 지내며
하루에 한끼는 커녕, 빵 하나 먹으면 많이 먹는거였죠.
그렇게 1달이 흐르고 가족들은 아무도 절 찾지 않았어요.
물론 부모입장으로 걱정되는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도저히 버틸수가 없었던 절, 욕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돈없고 밥 못먹더라도 남자집에선 자지 말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찬바람 부는 겨울, 비까지 오는 날에도
터미널에서 밤을 새곤 했습니다.
차가운 물로, 시린 손 불며 세수하고.
비누조차 없어 그냥 물로만 머릴 감고,
말리지도 못하고 알바를 가곤 했어요.
그렇게 2년을 지내고, 우연히 고모와 연락이 닿았고
아빠와 만났습니다.
이제 다시 집 나가지 말라며,
걱정 많이 했다며..
술을 드시고 하신 말이었지만 진심인게 느껴졌어요.
집으로 돌아갔을때 오빠는 군대에 간 상황이었고,
아빠는 학교를 다시 다닐때까지 저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집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방3개 거실도 어느정도 크고, 아무튼 어느정도 괜찮은 주택의
(아빠 이름으로 된 집이에요.)
저희 집은, 어느샌가 방한칸짜리에 화장실도 밖에 있는..
주방과 욕실이 함께 붙은. (자취방)
그런 집으로 옮겨졌더라구요.
2년동안도 아빤 일을 하지 않으셨었구요.
하루는, 제가 친구에게 빌린 돈이 있어서
그걸 돌려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친구의 야자가 10시에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날 아빤 친구분을 만나러 나가신 상태였고
10분만 나가서 친구 돈 돌려주고 오잔 생각에
잠시 밖에 나가 돈을 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빠가 와 계셨어요.
문을 두드리니
누구냐고 묻습니다.
"아빠 저에요."
라고 했더니
제 말은 일절 들을 생각도 없으신지
"니 같은 딸 둔적없다. 나가라"
라며..절 내 쫓으셨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이유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욕부터 들어먹었습니다.
그래도 모나지 않고 성격은 밝게 자라왔는데..
더 이상 갈곳도 없고.
중학교때 선생님께 연락해,
염치없이 돈 30만원을 빌려
모텔 달방을 잡고 살았어요.
지금까지 딱 3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힘들지만 견딜만 해요.
밝게 웃으며 잘 지내고 있구요..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한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정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 해 본 적도 없고
보고싶단 생각조차 해보질 못했네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값싼 동정따위 받으려고, 또는 위로나 받자고 쓴 글이 아닙니다.
따뜻한 집에서
엄마의 사랑과 정성섞인 따뜻한 밥 먹으면서
왜 반찬이 이것밖에 없냐며 투정하는,
입을 옷 많으면서 옷이 없다고
용돈 안주는 엄마를 욕하는,
배부른 아이들에게 지금 너희들은 아주 행복한거라고.
엄마 아빠 계실때 잘 해드리라고.
부디 그 행복 오래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에요..
제발.
행복 속에서 또 다른 행복을 찾지 말고.
그 행복을 느끼며,
따뜻한 가정속에서 따뜻한 아이들로 자나라길 바래.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진 모르겟지만,
싸이월드나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지말고
엄마 안마 한번 해드리는건 어떠니?
속으론 무지 좋아하실껀데..
- 아직 20살 밖에 안됐지만, 너희들의 행복을 바라는 언니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