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인파였다. 합격자공지가 붙은 대학내 캠퍼스 공지판앞은 합격소식을 확인하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마다 앞다투어 공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육탄전을 방불케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환성과 비명이 뒤섞여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몸집이 자그마한 수아 역시 그 육탄전속에 휘말렸다. 하얀 더풀코트를 입고서 발끝을 세우며 목을 학처럼 길게 빼보아도 도저히 사람들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장막처럼 앞에서 막고 있던 학생이 비명을 내지르며 뛰쳐나가는 사이 수아는 밀려밀려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웠다.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학생은 분명히 낙방의 고배를 마신모습이었다. 척보기에도 그랬다. 과연 자신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명문중의 명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그동안 흘린 피땀이 얼마란 말이냐. 아마도 그 피땀을 다 받아보면 한강을 흘러넘칠 일이었다. 수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험번호와 이름들이 빼곡히 적힌 대좌보를 보기 위해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집중해야 해. 집중을...’ 온 정신을 집중하며 찌푸린 눈살을 한 채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등 뒤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수아는 자신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그 잡음에 순간 화가 나서 고개를 팩 돌렸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고 했더니 키가 멀대같이 큰 여자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저렇게 크게 음악을 듣고 있다니. 도대체 이어폰은 왜 낀거냐? 차라리 밖으로 듣고 다니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귀를 막고 있는 이어폰을 통해 고스란히 음악이 세어나왔다. 마치 함께 이어폰을 꽂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 음악이라는 것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아마도 하드락정도쯤 되는 음악을 듣는 모양이었다. 얼핏 본 그 여자는 긴 머리에 늘씬한 키를 가진 하얀 얼굴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잘 보지는 못했지만 보이쉬한 스타일을 즐기는 모양이다. 마치 락가수라도 되는 양 온 몸을 검은 가죽으로 휘어감고 해골목걸이에 그것도 모자른지 메탈릭한 느낌의 목걸이가 몇 개 더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팔마다 치렁치렁 매단 팔찌에 도대체 몇 개를 낀건지 셀 수도 없을만큼의 반지를 걸고 있는 모습은 잘못 보면 당장이라도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며 예언을 해 줄 것 같은 마녀의 모습이었다. ‘저렇게 요란한 차림에다가 쿵쾅거리는 음악에 완전히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을 했구만. 가만있어도 눈에 띌 것 같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욕구불만이라 저렇게 온 몸을 쇠로 휘감고 다니는걸까? 하여간 정말 개성 강한 여자로구나.’ 그러나 지금 그런 곳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수아는 화들짝 놀란 채 몸을 돌려 다시 수험번호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목을 쭉 빼고 번호를 훑었다. 그리고 마치 주문을 외우는 모습으로 번호를 훑어내려가다가... “야호~” 수아는 그 모질었던 수험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쾌청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하늘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만세! 만세!” 어찌나 기분 좋은지 마치 경칩때 세상에 나온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표출했다. 너무 기뻤다. 그도 그럴것이 위로 셋 있는 오빠가 전부 명문대 출신인 데다가 작은 오빠가 바로 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왔던 것이다. 그 오빠의 구박과 멸시를 받아가며 흘린 피눈물이 얼마며 반드시 합격해서 그 잘난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하며 갈았던 칼이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어찌나 갈았는지 이제는 닳고 다 닳아버린 칼을 떠올리자 수아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됐어. 이제 된거야. 민수겸. 두고보자. 작은오빠라는 탈을 쓰고 있는 악마같은 자식. 두고보자구!’ 수아는 한 번 더 수험번호를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방방거리며 집으로 달려가려는 찰나 앞에 걸어가던 사람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엄청나게 큰 음악을 이어폰에서 흘리던 바로 그 여자였다. ‘뒷모습보니 영락없는 남자구만. 저 어깨를 보라지. 머릿결 하난 죽이네.’ 수아는 쪼르르 뛰어가 그사람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만년필을 주워들었다. 척 보기에도 값어치가 상당히 나가보이는 물건이었다. 수아는 순간적으로 이걸 인마이포켓해버려?하는 갈등의 상황을 겪다가 성스러운 날 나쁜 짓을 하고싶지 않아 앞서가는 그녀를 불렀다. 어깨가 축 쳐진 채 걸어가는 모습이 아마도 쓰디쓴 낙방의 고배를 마신 모양이었다. 수아는 한칼할것같은 그 뒷모습을 쫓아 화풀이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걸음을 빨리해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에효. 들을 리가 있어? 저렇게 음악을 크게 듣는데. 도대체 저러다가 뒤에서 오토바이라든가 차라도 달려들면 어쩌려고 저렇게 다니는걸까?’ 수아는 어쩐지 힘없어보이는 그 뒷모습을 재빨리 쫓아 옷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아는 만년필을 꼭 쥔 채로 그녀앞에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는 바로... 그였다. 남자였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나다를까 자신의 옷 끄트머리를 잡아당긴 수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이어폰을 빼든 그녀 아니 그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데?” 게다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등빨이 엄청난 거구가 수아를 고양이앞에 쥐 마냥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저런 사람을 어떻게 여자로 착각한거지? 머리만 길었지 엄청 겁나게 보이는 남자잖아? 저 허연 이마만 보였다고 해도 어찌 이런 착각을...’ 매섭기는 했지만 필시 잘생겼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의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한 수아는 순식간에 말을 더듬어버렸다. 수아는 꽃돌이에 약했던 것이다. “저..저기 이 만년필을 떨어뜨리셨거든요?” 수아는 그 수려한 눈으로 자신에게 감사의 눈웃음을 날려줄 것을 고대하며 만년필을 다소곳이 앞으로 내밀었다. ‘합격 날 드디어 내 인생에 꽃이 피는구나.’ 그러나 양 볼을 수줍게 붉히며 내민 만년필은 좀처럼 그녀의 손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양가집 규수처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 보니 사라진 것은 만년필이 아니라 요란스럽게 차려입은 남자였다. 전혀 자신과 관계없다는 일인 양 이미 저만치 가버리고 없었다. ‘뭐..뭐야? 분명 저 남자 주머니에서 떨어진 걸 봤단 말야.’ 수아는 다시 쪼르르 뛰어가 그를 불렀다. 다행히도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아서 이번에는 수아가 부르는 말을 들은건지 그가 우뚝 선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수아로서는 휘청거릴 정도로 짜증을 부리며 화를 벌컥 냈다. 엄청난 욕과 함께. “씨파 뭐야? 왜 자꾸 부르냔 말야!” 순간 돌이 되어버린 수아였다. 수아의 손에서 만년필이 툭 하고 떨어져내렸다. 입이 쩍 벌어진 채 수아는 그 엄청난 욕과 짜증의 향연에 휘둘리고 말았다. ‘뭐 이런 개차반같은 녀석이 다 있어? 누군 욕 할줄 몰라서 안하나? 젠장! shit! 그러나 참자. 오늘 같은 날.’ 수아는 애써 자신을 다잡고는 허리를 숙여 만년필을 주워들어 그의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거 그 쪽 주머니에서 떨어진 거 봤다구요. 돌려드리려고 했을 뿐이잖아요.” 수아는 새초롬하게 말하며 만년필을 쥔 손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낯선 욕쟁이가 수아의 손에 든 만년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정말이지 차가운 표정이었다. “어차피 이제 필요없으니까 니가 가지든지 버리든지 맘대로 해! 그리고 너!” 낯선 욕쟁이가 눈을 부라리며 수아를 노려보았다. 수아는 순간 간이 콩알만해졌다. 실로 무서웠다. “한번만 더 부르면 그 땐 그 만년필로 찍어버릴 줄 알아. 새겨 들었어?” 수아는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인생 최대의 행복한 날 인생 최대의 협박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십구년간 아니 이십년간 고이 자란 나야.. 집안에서는 귀한 딸로 애지중지 받들여졌고 엄마든 오빠든 공주처럼-’ “야! 왜 살아돌아왔냐? 떨어지면 한강물에서 건져올리라며?” 작은오빠 수겸이 건들거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개코가 공주고 애지중지냐? 아들이 귀한 우리 집안에서 나의 존재는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였던 것을’ 수아는 짜증이 나서 수겸을 획 노려보며 소리쳤다. “오빠가 날 그렇게 막 대하니까 밖에서도 날 막보는거 아냐!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센다는 말도 몰라? 핫. 아니다. 이게 아니라 똥개도 집에서 귀여워해줘야 밖에서 귀염받는다구!” 수아는 화가 나서 되는대로 소리쳤지만 이내 입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 말은 내가 똥개란 말이잖아. 못산다. 정말...’ 아니나다를까 수겸이 끽끽거리며 비웃느라고 난리가 났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귀여운 똥개로 대해주마.” 세상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인간이 있다면 제1위는 김일성이고 제2위는 바로 저 민수겸이었다. 사사건건 수아를 걸고 넘어지는 것을 생애 최대의 업으로 삼고 있는 수겸과 대화를 나누어봤자 남는 것은 스트레스요 느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수아는 애꿎은 신발장을 발로 쿵쾅거리며 걷어찬 후 거실로 들어섰다. “엄마는 귀한 딸이 합격이냐 아니냐 하는 순간에 도대체 어디간거야?” “계모임가셨다. 귀여운 도그야~” 수아는 주먹이 날아가려는 것을 초인적으로 참았다. 정말이지 민수겸과 민수아는 필시 과거에 엄청난 원수지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가령 논개와 왜장이라던가. “야. 이제 슬슬 불어. 떨어졌지?” 수겸이 테이블 위에 긴 다리를 척하니 얹고는 조소를 띄며 물었다. 수아는 기다렸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외쳐주었다. “이거 왜 이래? 합격했다 이거야!” ‘자. 이제 어쩔테냐? 열받지? 배 아프지? 고소해라.’ 환희에 차 수겸을 바라보는 수아를 빤히 쳐다보던 수겸이 잠시 후 귀를 후비적거리더니 심드렁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미달이라더니 너 참 운도 좋다.” 이때 쯤 수아는 완전히 화가 나서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미달 아니라니까? 누가 그래? 경쟁률이 얼마나 셌다구” “하여간 너 운 좋은 줄 알아. 그거 자랑할 일 아니니까 너무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마. 오빠로서 걱정되서 하는 말이야.” “글세 아니라니까!” “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 어쨌거나 합격은 합격이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거 아니겠냐.” “아니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그거 하나 이해 못해줄까.” “야! 민수겸!!!” “개가 짖네~” 그러더니 민수겸은 사라졌다. 수아는 완전히 넉다운된 채 거실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수아 인생 십구년 아니 이십년 생애 최대의 태클인 두 남자에게 완전히 케이오 되고 말았으니. 이 두 남자가 민수아의 인생의 쥐락펴락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그녀는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까나. 어찌어찌하여 입학식이 지나고 수아는 명실상부 명문대생으로 탈바꿈해있었다. 딸의 대학합격발표일난 계모임에 나갔던 엄마는 그 잘못을 조금 통감한건지 어쩐건지 럭셔리한 입학선물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를 보이고 계셨다. 그리하여 얻어입은 새내기 대학생 옷이 다섯벌에 구두가 두 켤레 멋진 가방이 세 개. 큐빅이 빽빽이 박힌 비싼 꿈에 그리던 머리핀이 세 개였다. 수아는 그야말로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입학식이 지나고 첫 수업이 있기 전 시간, 수아는 과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였다. 전국에서 상경한 다양한 군상의 친구들과 함께 모여있게 된 첫날 수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 여기 이 녀석들 중에 나의 CC가? 에잉. 다들 상태가 별로잖아. 혹 선배중에...’ 수아는 신입생들이면 누구나 그릴 상상으로 즐거워했다. 친구들도 사귀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한참 웃고 있는 그 때 갑자기 뒷문이 쾅하고 열리더니 누군가가 저벅저벅 들어왔다. 앞을 보고 있었던 수아가 고개를 미처 돌리기도 전 그녀의 귀를 때린 것은 요란한 음악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듯한 그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아련한 옛추억이... 아니라 엄청난 협박의 기억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두려운 눈을 한 채 고개를 돌리는 동시 수아의 목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분명 그였다. 그 남자가 온 교실의 시선집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음악을 울려대며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서는 책상에 삐딱하게 앉았다. ‘니가 무슨 테리우스니?’ 입을 쩍 벌리고 낯선 욕쟁이를 쳐다보는데 팔짱을 낀 채 앉아있던 그 남자도 문득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스파크가 튀는..것은커녕 남자가 '뭘 봐!’하는 눈으로 수아를 겁나게 쏘아보고야 말았으니. 수아는 뭔가 암울한 미래를 예감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그는 핫이슈가 되어버렸다. 거만떠는 그 오만불손한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여전히 요란한 차림새, 언제나 귀를 찢을 듯이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은 그를 순식간에 여학생들의 최대 화제거리로 올려놓기에 모자름이 없었다. 거기다가 더 기가막힌 것은 뻑하면 터져나오는 욕지거리와 말보다 먼저 나가는 주먹, 그리고 당장이라도 레이저빔이 발사될 것 같은 냉랭한 눈초리는 남학생들의 화제로도 으뜸이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어떤 인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수아는 결국 굳이 관심갖지 않아도 그가 자신보다 세살이나 나이가 많다는 것, 당연히 삼수를 했다는 것, 이름이 허문형이라는 것,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이것은 소문을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한다는 것, 며칠전에 교내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다가 캠퍼스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술김에 뽑아버려 친구에게 휘두른 것 등등을 알게 되었다. 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기만 거친 줄 알았는데 확실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수아는 제멋대로이고 거친 문형의 모습에 대략 겁을 먹어버렸다. 게다가 어찌나 폭력적인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만 귀찮게 한다싶으면 영락없이 주먹부터 먼저 나가는 정말 무서운 성격이었다. 겉모습만 거친 척하는 것이 아닌 실로 폭력적이고 느아쁜 놈이었던 것이다. 수아는 턱을 괸 채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날, 수아와 과 친구들은 개강파티와 엠티 그리고 수강신청, 과비 등등등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한 회의 겸 토론을 했다. 죽어라고 단체행동을 하지 않던 문형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날 참석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차라리 안오느니만 못한 뒤둥그러짐을 내뿜었던 것이다. 나오는 말마다 시비를 걸고 딴지를 걸고 코웃음을 쳐댔다. 수아는 그 모습을 보며 통감했다. ‘누가 터프가이가 과묵하다고 했더냐. 저 인간은 터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멋대로에 막되먹은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고 뭐냐고!’ 과대표 역시 완전 욹으락붉으락 분노를 내뿜기 직전이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뻘건 얼굴에 증기를 뿜어내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수아는 진정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과대표 준식은 세살위인 문형에게 차마 대듬질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필시 이유는 맞을까봐 겁나서일 듯했다. 그 와중에 문형은 준식을 겁나 쏘아보며 그가 말을 마칠때마다 코웃음을 쳐댔다. 결국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벌떡 일어섰다. “하거나 말거나 난 끌어들이지 마. 알았어?” “그렇지만 이건 단체행동입니다. 참석하기 싫으면 과비는 내십시오.” 준식도 대단했다. 저 강도같은 문형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아니나다를까 문형이 흡사 흡혈귀와 같은 눈으로 준식을 돌아보며 한마디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씨바. 너 어린새끼. 밤길 조심해라."
그들의 전쟁 - 프롤로그 - 낯선 욕쟁이
엄청난 인파였다.
합격자공지가 붙은 대학내 캠퍼스 공지판앞은
합격소식을 확인하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마다 앞다투어 공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육탄전을 방불케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곳곳에서 환성과 비명이 뒤섞여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몸집이 자그마한 수아 역시 그 육탄전속에 휘말렸다.
하얀 더풀코트를 입고서 발끝을 세우며 목을 학처럼 길게 빼보아도
도저히 사람들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장막처럼 앞에서 막고 있던 학생이 비명을 내지르며 뛰쳐나가는 사이
수아는 밀려밀려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무거웠다.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학생은 분명히 낙방의 고배를 마신모습이었다.
척보기에도 그랬다. 과연 자신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명문중의 명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그동안 흘린 피땀이 얼마란 말이냐.
아마도 그 피땀을 다 받아보면 한강을 흘러넘칠 일이었다.
수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수험번호와
이름들이 빼곡히 적힌 대좌보를 보기 위해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집중해야 해. 집중을...’
온 정신을 집중하며 찌푸린 눈살을 한 채 앞으로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등 뒤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수아는 자신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그 잡음에 순간 화가 나서 고개를 팩 돌렸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고 했더니 키가 멀대같이 큰 여자의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저렇게 크게 음악을 듣고 있다니.
도대체 이어폰은 왜 낀거냐? 차라리 밖으로 듣고 다니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귀를 막고 있는 이어폰을 통해 고스란히 음악이 세어나왔다.
마치 함께 이어폰을 꽂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게다가 그 음악이라는 것이 어찌나 쿵쾅거리는지
아마도 하드락정도쯤 되는 음악을 듣는 모양이었다.
얼핏 본 그 여자는 긴 머리에 늘씬한 키를 가진 하얀 얼굴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잘 보지는 못했지만 보이쉬한 스타일을 즐기는 모양이다.
마치 락가수라도 되는 양 온 몸을 검은 가죽으로 휘어감고 해골목걸이에
그것도 모자른지 메탈릭한 느낌의 목걸이가 몇 개 더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팔마다 치렁치렁 매단 팔찌에 도대체 몇 개를 낀건지 셀 수도 없을만큼의
반지를 걸고 있는 모습은 잘못 보면 당장이라도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며
예언을 해 줄 것 같은 마녀의 모습이었다.
‘저렇게 요란한 차림에다가 쿵쾅거리는 음악에 완전히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을 했구만.
가만있어도 눈에 띌 것 같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욕구불만이라 저렇게 온 몸을 쇠로
휘감고 다니는걸까? 하여간 정말 개성 강한 여자로구나.’
그러나 지금 그런 곳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수아는 화들짝 놀란 채 몸을 돌려
다시 수험번호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목을 쭉 빼고 번호를 훑었다.
그리고 마치 주문을 외우는 모습으로 번호를 훑어내려가다가...
“야호~”
수아는 그 모질었던 수험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쾌청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하늘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만세! 만세!”
어찌나 기분 좋은지 마치 경칩때 세상에 나온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표출했다.
너무 기뻤다. 그도 그럴것이 위로 셋 있는 오빠가 전부 명문대 출신인 데다가
작은 오빠가 바로 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왔던 것이다.
그 오빠의 구박과 멸시를 받아가며 흘린 피눈물이 얼마며 반드시 합격해서
그 잘난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하며 갈았던 칼이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어찌나 갈았는지 이제는 닳고 다 닳아버린 칼을 떠올리자
수아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됐어. 이제 된거야. 민수겸. 두고보자. 작은오빠라는 탈을 쓰고 있는 악마같은 자식. 두고보자구!’
수아는 한 번 더 수험번호를 확인한 후 몸을 돌렸다. 방방거리며 집으로 달려가려는 찰나
앞에 걸어가던 사람의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엄청나게 큰 음악을 이어폰에서 흘리던 바로 그 여자였다.
‘뒷모습보니 영락없는 남자구만. 저 어깨를 보라지. 머릿결 하난 죽이네.’
수아는 쪼르르 뛰어가 그사람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만년필을 주워들었다.
척 보기에도 값어치가 상당히 나가보이는 물건이었다.
수아는 순간적으로 이걸 인마이포켓해버려?하는 갈등의 상황을 겪다가
성스러운 날 나쁜 짓을 하고싶지 않아 앞서가는 그녀를 불렀다.
어깨가 축 쳐진 채 걸어가는 모습이 아마도 쓰디쓴 낙방의 고배를 마신 모양이었다.
수아는 한칼할것같은 그 뒷모습을 쫓아 화풀이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걸음을 빨리해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에효. 들을 리가 있어? 저렇게 음악을 크게 듣는데.
도대체 저러다가 뒤에서 오토바이라든가 차라도 달려들면 어쩌려고 저렇게 다니는걸까?’
수아는 어쩐지 힘없어보이는 그 뒷모습을 재빨리 쫓아 옷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수아는 만년필을 꼭 쥔 채로 그녀앞에 서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는 바로... 그였다. 남자였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나다를까 자신의 옷 끄트머리를 잡아당긴 수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이어폰을
빼든 그녀 아니 그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데?”
게다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등빨이 엄청난 거구가 수아를 고양이앞에 쥐 마냥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저런 사람을 어떻게 여자로 착각한거지?
머리만 길었지 엄청 겁나게 보이는 남자잖아?
저 허연 이마만 보였다고 해도 어찌 이런 착각을...’
매섭기는 했지만 필시 잘생겼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정도의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한
수아는 순식간에 말을 더듬어버렸다. 수아는 꽃돌이에 약했던 것이다.
“저..저기 이 만년필을 떨어뜨리셨거든요?”
수아는 그 수려한 눈으로 자신에게 감사의 눈웃음을 날려줄 것을 고대하며 만년필을
다소곳이 앞으로 내밀었다.
‘합격 날 드디어 내 인생에 꽃이 피는구나.’
그러나 양 볼을 수줍게 붉히며 내민 만년필은 좀처럼 그녀의 손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양가집 규수처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고 보니 사라진 것은 만년필이 아니라
요란스럽게 차려입은 남자였다.
전혀 자신과 관계없다는 일인 양 이미 저만치 가버리고 없었다.
‘뭐..뭐야? 분명 저 남자 주머니에서 떨어진 걸 봤단 말야.’
수아는 다시 쪼르르 뛰어가 그를 불렀다.
다행히도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아서 이번에는 수아가 부르는 말을 들은건지
그가 우뚝 선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수아로서는 휘청거릴 정도로 짜증을 부리며 화를 벌컥 냈다. 엄청난 욕과 함께.
“씨파 뭐야? 왜 자꾸 부르냔 말야!”
순간 돌이 되어버린 수아였다. 수아의 손에서 만년필이 툭 하고 떨어져내렸다.
입이 쩍 벌어진 채 수아는 그 엄청난 욕과 짜증의 향연에 휘둘리고 말았다.
‘뭐 이런 개차반같은 녀석이 다 있어? 누군 욕 할줄 몰라서 안하나? 젠장! shit!
그러나 참자. 오늘 같은 날.’
수아는 애써 자신을 다잡고는 허리를 숙여 만년필을 주워들어 그의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거 그 쪽 주머니에서 떨어진 거 봤다구요. 돌려드리려고 했을 뿐이잖아요.”
수아는 새초롬하게 말하며 만년필을 쥔 손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낯선 욕쟁이가 수아의 손에 든 만년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정말이지 차가운 표정이었다.
“어차피 이제 필요없으니까 니가 가지든지 버리든지 맘대로 해! 그리고 너!”
낯선 욕쟁이가 눈을 부라리며 수아를 노려보았다. 수아는 순간 간이 콩알만해졌다.
실로 무서웠다.
“한번만 더 부르면 그 땐 그 만년필로 찍어버릴 줄 알아. 새겨 들었어?”
수아는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인생 최대의 행복한 날 인생 최대의 협박을 받은 것이다. 그녀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십구년간 아니 이십년간 고이 자란 나야.. 집안에서는 귀한 딸로 애지중지 받들여졌고
엄마든 오빠든 공주처럼-’
“야! 왜 살아돌아왔냐? 떨어지면 한강물에서 건져올리라며?”
작은오빠 수겸이 건들거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개코가 공주고 애지중지냐? 아들이 귀한 우리 집안에서 나의 존재는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였던 것을’
수아는 짜증이 나서 수겸을 획 노려보며 소리쳤다.
“오빠가 날 그렇게 막 대하니까 밖에서도 날 막보는거 아냐!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센다는 말도 몰라? 핫. 아니다. 이게 아니라
똥개도 집에서 귀여워해줘야 밖에서 귀염받는다구!”
수아는 화가 나서 되는대로 소리쳤지만 이내 입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 말은 내가 똥개란 말이잖아. 못산다. 정말...’
아니나다를까 수겸이 끽끽거리며 비웃느라고 난리가 났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귀여운 똥개로 대해주마.”
세상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인간이 있다면 제1위는 김일성이고
제2위는 바로 저 민수겸이었다.
사사건건 수아를 걸고 넘어지는 것을 생애 최대의 업으로 삼고 있는
수겸과 대화를 나누어봤자 남는 것은 스트레스요 느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수아는 애꿎은 신발장을 발로 쿵쾅거리며 걷어찬 후 거실로 들어섰다.
“엄마는 귀한 딸이 합격이냐 아니냐 하는 순간에 도대체 어디간거야?”
“계모임가셨다. 귀여운 도그야~”
수아는 주먹이 날아가려는 것을 초인적으로 참았다.
정말이지 민수겸과 민수아는 필시 과거에 엄청난 원수지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가령 논개와 왜장이라던가.
“야. 이제 슬슬 불어. 떨어졌지?”
수겸이 테이블 위에 긴 다리를 척하니 얹고는 조소를 띄며 물었다.
수아는 기다렸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외쳐주었다.
“이거 왜 이래? 합격했다 이거야!”
‘자. 이제 어쩔테냐? 열받지? 배 아프지? 고소해라.’
환희에 차 수겸을 바라보는 수아를 빤히 쳐다보던 수겸이 잠시 후 귀를 후비적거리더니
심드렁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미달이라더니 너 참 운도 좋다.”
이때 쯤 수아는 완전히 화가 나서 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미달 아니라니까? 누가 그래? 경쟁률이 얼마나 셌다구”
“하여간 너 운 좋은 줄 알아. 그거 자랑할 일 아니니까 너무 드러내놓고 좋아하지마.
오빠로서 걱정되서 하는 말이야.”
“글세 아니라니까!”
“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 어쨌거나 합격은 합격이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거 아니겠냐.”
“아니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오빠가 그거 하나 이해 못해줄까.”
“야! 민수겸!!!”
“개가 짖네~”
그러더니 민수겸은 사라졌다. 수아는 완전히 넉다운된 채 거실에 주저앉고 말았다.
민수아 인생 십구년 아니 이십년 생애
최대의 태클인 두 남자에게 완전히 케이오 되고 말았으니.
이 두 남자가 민수아의 인생의 쥐락펴락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그녀는 상상이나 하고 있었을까나.
어찌어찌하여 입학식이 지나고 수아는 명실상부 명문대생으로 탈바꿈해있었다.
딸의 대학합격발표일난 계모임에 나갔던 엄마는 그 잘못을 조금 통감한건지 어쩐건지
럭셔리한 입학선물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행태를 보이고 계셨다.
그리하여 얻어입은 새내기 대학생 옷이 다섯벌에 구두가 두 켤레 멋진 가방이 세 개.
큐빅이 빽빽이 박힌 비싼 꿈에 그리던 머리핀이 세 개였다.
수아는 그야말로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입학식이 지나고 첫 수업이 있기 전 시간, 수아는 과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였다.
전국에서 상경한 다양한 군상의 친구들과 함께 모여있게 된 첫날
수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 여기 이 녀석들 중에 나의 CC가? 에잉. 다들 상태가 별로잖아. 혹 선배중에...’
수아는 신입생들이면 누구나 그릴 상상으로 즐거워했다.
친구들도 사귀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한참 웃고 있는 그 때
갑자기 뒷문이 쾅하고 열리더니 누군가가 저벅저벅 들어왔다.
앞을 보고 있었던 수아가 고개를 미처 돌리기도 전 그녀의 귀를 때린 것은
요란한 음악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듯한 그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아련한 옛추억이... 아니라 엄청난 협박의 기억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두려운 눈을 한 채 고개를 돌리는 동시 수아의 목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분명 그였다. 그 남자가 온 교실의 시선집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음악을 울려대며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서는 책상에 삐딱하게 앉았다.
‘니가 무슨 테리우스니?’
입을 쩍 벌리고 낯선 욕쟁이를 쳐다보는데 팔짱을 낀 채 앉아있던 그 남자도 문득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스파크가 튀는..것은커녕
남자가 '뭘 봐!’하는 눈으로 수아를 겁나게 쏘아보고야 말았으니.
수아는 뭔가 암울한 미래를 예감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그는 핫이슈가 되어버렸다.
거만떠는 그 오만불손한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여전히 요란한 차림새,
언제나 귀를 찢을 듯이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은
그를 순식간에 여학생들의 최대 화제거리로 올려놓기에 모자름이 없었다.
거기다가 더 기가막힌 것은 뻑하면 터져나오는 욕지거리와 말보다 먼저 나가는 주먹,
그리고 당장이라도 레이저빔이 발사될 것 같은 냉랭한 눈초리는
남학생들의 화제로도 으뜸이었다. 그는 명실상부한 어떤 인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수아는 결국 굳이 관심갖지 않아도 그가 자신보다 세살이나 나이가 많다는 것,
당연히 삼수를 했다는 것, 이름이 허문형이라는 것,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이것은 소문을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한다는 것, 며칠전에 교내에서 밤늦게까지 술 마시다가
캠퍼스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술김에 뽑아버려 친구에게 휘두른 것 등등을 알게 되었다.
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기만 거친 줄 알았는데 확실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수아는 제멋대로이고 거친 문형의 모습에 대략 겁을 먹어버렸다.
게다가 어찌나 폭력적인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만 귀찮게 한다싶으면
영락없이 주먹부터 먼저 나가는 정말 무서운 성격이었다.
겉모습만 거친 척하는 것이 아닌 실로 폭력적이고 느아쁜 놈이었던 것이다.
수아는 턱을 괸 채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날, 수아와 과 친구들은 개강파티와 엠티 그리고 수강신청, 과비 등등등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한 회의 겸 토론을 했다.
죽어라고 단체행동을 하지 않던 문형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날 참석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차라리 안오느니만 못한 뒤둥그러짐을 내뿜었던 것이다.
나오는 말마다 시비를 걸고 딴지를 걸고 코웃음을 쳐댔다.
수아는 그 모습을 보며 통감했다.
‘누가 터프가이가 과묵하다고 했더냐. 저 인간은 터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멋대로에 막되먹은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고 뭐냐고!’
과대표 역시 완전 욹으락붉으락 분노를 내뿜기 직전이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뻘건 얼굴에 증기를 뿜어내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
수아는 진정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과대표 준식은 세살위인 문형에게 차마 대듬질을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필시 이유는 맞을까봐 겁나서일 듯했다.
그 와중에 문형은 준식을 겁나 쏘아보며 그가 말을 마칠때마다 코웃음을 쳐댔다.
결국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벌떡 일어섰다.
“하거나 말거나 난 끌어들이지 마. 알았어?”
“그렇지만 이건 단체행동입니다. 참석하기 싫으면 과비는 내십시오.”
준식도 대단했다. 저 강도같은 문형에게 돈을 요구하다니.
아니나다를까 문형이 흡사 흡혈귀와 같은 눈으로 준식을 돌아보며
한마디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씨바. 너 어린새끼. 밤길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