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세계는 만성적인 전쟁이 계속되면서 농업은 황폐하고 폴리스내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 게다가 선동 정치가(데마고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폴리스를 이용하는 중우정치를 한 결과 그리스 세계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그리스 세계를 통합한 것이 북방의 신흥 세력인 마케도니아(Macedonia) 왕국이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는 기원전 338년의 카이로네이아 전쟁에서 아테네와 테베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리스 연합군을 격파하고 패권을 확립했다.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젊은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ros Ⅲ)는 페르시아 제국이 혼란한 틈을 타 그리스 세계를 확장하고자 기원전 334년에 보병 약 3만명과 기병 5천명으로 구성된 마케도니아군과 그리스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식량은 겨우 10일분밖에 없었고 군대는 무산시민과 상인과 노예가 섞여 있어 '도시의 행진'이라 할만한 상태였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가 예상한 이상이었고 곡창지대인 이집트인들은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원전 330년에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불태우고 많은 재물을 손에 넣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페르시아 제국을 계승하고자 자신도 페르시아 황제의 딸인 스타테일라와 결혼했을뿐 아니라 80명의 고관과 1만여명의 장병을 페르시아 여성과 결혼시켰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집트와 시리아 등의 많은 지역에 조폐소를 만들어 페르시아 제국에서 몰수한 막대한 양의 지금(地金)을 화폐로 바꾸어 대경제권을 형성하고 바빌론을 수도로 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열병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는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갑작스런 일이었던데다 왕국의 체계가 미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라 후계자인 장수(將帥)둘간에 세력 다툼이 일어났다. 왕국은 그리스인이 지배하는 서아시아, 이집트, 그리스 및 마케도니아의 세 왕국으로 분열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원정 도중에 몰락한 그리스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건설한 70여 군데의 도시 알렉산드리아(현재 25곳 확인) 중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 인구가 50만명에 이르고 '없는 것은 논뿐'이라 일컬어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시대에는 많은 그리스인들이 궁핍하고 혼란한 그리스에서 동방 각지로 이주해 아테네의 그리스어를 토대로 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코이네(koine)'가 공통언어가 되었다.
이러한 융합적인 문화를 그리스 풍의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라고 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쓰러뜨린 기원전 330년부터 분열한 세 왕국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이집트 왕국이 로마에 의해 무너지는 기원전 30년까지의 3백년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거대 왕국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세계는 만성적인 전쟁이 계속되면서 농업은 황폐하고 폴리스내의 빈부 격차가 확대되었다. 게다가 선동 정치가(데마고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폴리스를 이용하는 중우정치를 한 결과 그리스 세계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그리스 세계를 통합한 것이 북방의 신흥 세력인 마케도니아(Macedonia) 왕국이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는 기원전 338년의 카이로네이아 전쟁에서 아테네와 테베를 중심으로 구성된 그리스 연합군을 격파하고 패권을 확립했다.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젊은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드로스 3세(Alexandros Ⅲ)는 페르시아 제국이 혼란한 틈을 타 그리스 세계를 확장하고자 기원전 334년에 보병 약 3만명과 기병 5천명으로 구성된 마케도니아군과 그리스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다. 그러나 식량은 겨우 10일분밖에 없었고 군대는 무산시민과 상인과 노예가 섞여 있어 '도시의 행진'이라 할만한 상태였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가 예상한 이상이었고 곡창지대인 이집트인들은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원전 330년에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불태우고 많은 재물을 손에 넣었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페르시아 제국을 계승하고자 자신도 페르시아 황제의 딸인 스타테일라와 결혼했을뿐 아니라 80명의 고관과 1만여명의 장병을 페르시아 여성과 결혼시켰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이집트와 시리아 등의 많은 지역에 조폐소를 만들어 페르시아 제국에서 몰수한 막대한 양의 지금(地金)을 화폐로 바꾸어 대경제권을 형성하고 바빌론을 수도로 삼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열병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는 32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갑작스런 일이었던데다 왕국의 체계가 미처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라 후계자인 장수(將帥)둘간에 세력 다툼이 일어났다. 왕국은 그리스인이 지배하는 서아시아, 이집트, 그리스 및 마케도니아의 세 왕국으로 분열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원정 도중에 몰락한 그리스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건설한 70여 군데의 도시 알렉산드리아(현재 25곳 확인) 중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 인구가 50만명에 이르고 '없는 것은 논뿐'이라 일컬어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시대에는 많은 그리스인들이 궁핍하고 혼란한 그리스에서 동방 각지로 이주해 아테네의 그리스어를 토대로 페르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코이네(koine)'가 공통언어가 되었다.
이러한 융합적인 문화를 그리스 풍의 '헬레니즘(Hellenism) 문화'라고 하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쓰러뜨린 기원전 330년부터 분열한 세 왕국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이집트 왕국이 로마에 의해 무너지는 기원전 30년까지의 3백년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