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사각

만담의미소2009.04.01
조회1,425

안녕하세요^^ 그저 작문입니다. 길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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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주 오래전 나를 오싹하게 만들고 지금도 생각하면 밤잠을 설치게 만들 만큼 두렵고도 끔직한 기억이다. 이 기분나쁜 기억을 내 머리속에서 지우기전에 잠깐이나마 여러분들에게 그 시절 있었던 기이하고도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말해본다.

 

초등학교 12살때의 일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삼촌이 거주하는 봉곡리라는 아주 작은 첩첩산중속에 위치한 마을을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4년만에 처음 만나보는, 평소에는 삼촌이 자주 도시로 방문하여 본적이 있었지만 지금껏 한번도 나의 가족들이 또는 내가 삼촌이 거주하는 시골로 찾아가보기는 처음이었다.

 

삼촌은 시골에서 하우스 재배를 하셨는데, 주 특상품은 딸기였다. 나는 삼촌이 재배하는 딸기, 특히 내가 가장좋아하는 과일을 매일같이 먹을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도 잠시, 봉곡리 마을의 은산하고도 기괴스러운 숲풀림속의 마을은 매우 말로 표현할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봉곡리 마을은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곳으로 버스가 아닌 사람이 도보와 산보로 거쳐서야 도착할수 있는 교통이 수월하지 못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이 채 100명도 거주 하지 않는곳으로 문명의 혜택은 커녕. 그 흔하디 흔한 TV 조차도 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외부와 차단된 이러한 마을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TV와 컴퓨터가 비록 없지만 이 마을에서 풍겨오는 여름의 밤은 도시속에서 볼수 없는 특별한것이었다. 반짝이는 별빛들이 수놓인 밤 하늘을 바깥 마루에 앉아서 쳐다보자면 마치 내가 우주속을 걷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한 12년만에 처음보는 반딧불, 어릴적 아버지가 읽어주시던 동화책속에서만 존재할줄 알았던 그러한것들이 내 주위를 거닐며 녹색의 불빛을 반짝일때 그 화려함이란, 지금 내 기억속에서 잊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추억이었다.

 

 

삼촌이 거주하시는 집 옆에는 봉곡리의 이장 아저씨가 거주하신다. 삼촌과 이장 아저씨는 서로 각별한 사이라도 되는듯 서로간의 담벼락을 허물만큼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이장 아저씨는 올해 40살에 접어서도 남들처럼 그 흔하다는 자식 부자가 되지 못한 불쌍한 사내였다. 그러나 그는 올해 산신령께 공들인 10년의 노고를 인정받았는지 아주 듬직한 장군감 되는 아들 녀석을 출산한지도 1주일채 되지 않는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이장 김씨 아저씨는  이웃 사촌의 조카였던 나를 아주 기쁘게 맞아주었고 가끔마다 맛있는 음식을 홀로지내던 삼촌과 나에게 가져다주기도 하셨다. 그렇게 즐거웠던 일주일의 봉곡리 마을의 추억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간후, 그렇게 머지 않아 5년후 삼촌의 결혼으로 나와 가족들은, 가족들에게도 물론 기대스러운 만남일지 몰라도 특히 5년전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삼촌과 삼촌의 여인, 그리고 그리운 봉곡리를 다시 볼수 있다는 마음에 도시속에서 찌들었던 나에게 특히나 너무 기쁜 날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로로 5시간 가량 걸리고 산보를 타고 2시간이 흐른 뒤에야, 봉곡리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발견 할수 있었다. 봉곡리의 풍겨지던 그 음산한 기운은 예전과 달리 다르지 않았고 마치 산신령이 외부 침입자이던 우리를 지켜보는듯한 그 누군가의 눈길(?)은 아직도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5년만에 다시 찾은 봉곡리에서의 삼촌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보다 근심이 많았는지 홀쭉하게 마른 삼촌의 볼살과 한동안 깍지 않았는듯 지저분히 나있는 수염, 그리고 눈밑의 다크서클.

 

그러나 무엇보다도 삼촌이 현재 기분이 좋지 않다는듯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결혼을 애타게 기다렸던 삼촌의 상상속의 모습과 달리 삼촌은 굉장히 깨름직하고 썩 기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처음은 하루 동안 삼촌의 좋지 않은 표정을 살피던  가족들은 설마 우리의 방문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였지만 나는 5년전 나를 그토록 반겼던 삼촌의 모습을 보자면 결코 우리가 싫어서 그러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삼촌은 처음 심기 불편한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가족들과 함께 사랑방이 아닌 안방에서 머물라 여러번 청을 놓았지만, 아버지는 손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주인을 놔두고 안방에서 잠을 잘수있겠느냐는?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생각으로 전통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라도 가지고 계셨는지 우리 가족은 삼촌의 알수없는 염려를 무시하고 사랑방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나는 그때, 삼촌이 안방을 급히 사랑방으로 바꾼 이유와, 또 우리를 사랑방에서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현재 사랑방에 대한 삼촌의 인식과 또 우리를 굉장히 아끼고 걱정하고 있었다는것을 나는 알수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삼촌은 저녁 늦은 무렾, 안방에서 사랑방으로 바뀐 그곳에서 이불자리를  준비를 하던 나와 가족들에게 찾아와 삶은 감자와 고구마를 야식으로 꺼내어놓고는 사랑방과 이장댁에 대한 은밀하고도 괴상스러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5년전 보았던 이장댁의 귀여운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채 돌잔치를 하기도 전에 사망한것이다. 그러한 충격으로 이장댁 김씨 아저씨의 이상한 행동은 시작되었고, 기어코 우려했던 이장 김씨는 자신의 아들을 봉곡리의 음산한 숲풀속에 버려두지 않겠다는 결심인지 자신의 집 큰방 바닥밑을 파해치고 그 바닥밑에 자신의 어린 아들의 관을 묻어두었다는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후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 사람들과 특히, 삼촌은 바로 채 3미터도 되지 않는 옆집에 무덤이 바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도, 또는 반갑지도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삼촌의 그러한 걱정은 5년이 흘러도 적응은 커녕, 더욱 더 불안에 떨기만 만들었다. 실제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삼촌의 마누라였던 재수씨는 매일같이 알수없는 악몽을 꾸기 여러번, 또 예전 안방이었던 이곳 사랑방에서 실제 알수 없는 "사각 사각" 목조를 긁는듯한 소리를 게속해서 들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어린 아이의 고통스러워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며,  더욱 심해지는 이상현상 때문에 그녀는 친정집으로 떠난지 채 이틀째, 우리가 찾아온것이다. 그 때문에 삼촌의 심기가 굉장히 안좋아진듯 하였고, 그 반갑게 웃어주던 이장 아저씨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것이 그 이유때문이란 것을...  나는 5년전 인상 좋고 친절했던 이장 아저씨에게 그런 슬픈 일이 있었다는것과, 또 실제 바로 그의 집 바닥에서 시체가 썩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더욱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던것은 이장댁의 큰방이 바로 옆에 위치한 삼촌네의 사랑방과 매우 가까운 위치여서 실제 큰방의 벽과 사랑방의 벽이 채 2미터 가량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꺼름직한 사랑방에서 최대한 이장댁 집의 큰방과 가까운 벽에서 떨어져 자려 하였으나 그 좁은 사랑방에서 가족이 다 자고도 방안에 공간이 남을만큼 사랑방은 넓지 못했다. 결국, 어찌하다 내가 벽에 가장 가까운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어서였을까?

 

 

 

 

 

얼추 잡아도 새벽 3시? 사랑방의 숨막히는 텁텁한 공기 사이로, 새로 도배해놓은 벽지의 풀칠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해서였는지 나는 쉽게 잠을 들지 못하고 있을때였다.

 

그렇게 조용한 방안에서 들려오는 또각 또각 거리는 시계추의 숫자를 세어봄에 따라 나는 대략 1시간이고 2시간이 흘러 나의 정신이 혼미해져 갔을때 나에게서 그녀가 들었다던 목조 긁는듯한 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희믜하게나마 벽쪽으로 향해 들려오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 조용하고도 거침없이 들리는 긁는 소리는 두렵기도 하였지만 더욱 더 나의 정신을 아편에 취한듯 혼미하게 만들어만 갔다. 공포심마저 마비시킨 그 소리는 시간이 흘러 앳된 어린 아이의 신음 소리로 바뀌었고...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사랑방 창가로 아침 새벽의 햇살이 비추어 나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불편한 잠자리에 의한 환청이라 생각하고  결린 뒷목을 두드리며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무심코 삼촌께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무심코 얘기한 이 이야기가 삼촌에게는 몇주동안 그를 괴롭힌 마지막 일격의 목소리가 될줄 몰랐는듯 삼촌은 크게 격분한듯 담판을 짖게다는 표정으로 마을의 원로들을 모아 이장댁으로 향한것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삼촌과 원로들이 이장댁에 들이닥칠때, 나는  어릴적 밤 하늘에 별을 바라보던 마당에 걸터 앉아 어제밤의 일을 무심코 떠올렸다.

 

깊은 새벽에 들었던 그 어린 아이의 신음 소리는 대략 5살 가량의 앳된 목소리 같아 보였고, 그 아이의 신음소리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듯한 목소리로 간절히 나에게 외치는듯한 느낌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2~3시간 가량을 이장댁 거실에서 삼삼 오오 모여 설득아닌 반 강제적인 설득이 끝이 난듯, 삼촌은 3시간 전과 달리 조금은 누그러들은 표정으로 모든것이 해결됬다는듯 걱정말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삼촌의 손결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듯 가뿐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다시 1시간이 흐른뒤, 마을의 그나마 힘좀 쓸것만 같은 마을 사내들이 각자 삽을 들고 이장댁에 모여 김씨 아저씨의 큰방을 덮치고 난후 30분이 흘렀을까?

 

 

난 그날 절대 잊을수 없는 나의 뇌리속에 똑똑히 들려오는 마을사람들과 삼촌의 비명소리와 이장댁의 김씨 아저씨의 절규를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보았던것을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그 잊고 싶은 기억.... 이장댁의 김씨 아저씨의 큰방 밑에 묻혀있던 관속에서 상당히 비 좁아 괴로웠는듯 5살가량의 어린 아이가 손톱이 다 빠진채 몸부림을 쳤는듯 관 뚜겅 이리저리 심하게 긁혀진 흔적을 보았을때....

 

나는 그것이 5년전 1살 가량때 죽었던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라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