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동거> [18]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

김현정200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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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동거> [18]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

다음날도 기분이 엉망이었다. 전날 회사로 돌아와서 3시간 동안 컴퓨터에다 작성해 놓았던 자료가 다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왔거나 내가 제대로 저장을 못한 모양이었다. 망할 놈의 회사에 망할 놈의 컴퓨터. 편집실에서는 오늘 오후 4시까지 기사를 넘기라고 야단이었다.

어제 했던 일은 인터뷰 녹음해 온 것을 들으면서 기록하는 것으로,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짜증나는 일이었다. 귀에다 갑갑하게 이어폰을 끼고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작업을 하다가 도저히 할 엄두도 안 나고 짜증만 몰려들어서 휴게실로 나왔다.

메모를 이용하는 기자들도 많이 있지만, 나는 메모하면서는 취재가 잘 되지 않아 녹음기를 흔히 이용하곤 했다. 받아적다보면 자꾸만 놓치는 말이 생겼기 때문에, 메모는 간단한 수준으로만 하고, 녹음기를 이용해 취재하는 편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녹취 작업을 하는 것은, 사실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그걸 몇 시간 동안 다 해놓았는데, 없어져버리다니!

“어? 지금 한창 바쁠 땐데, 왜 나와 있어?”

우 기자가 커피를 뽑으러 왔다가 말했다.

“아우,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은 왜 이렇게 꽉 막혔냐? 정치자금법을 만들면 뭐하냐구. 계좌추적조차 안 되는데. 도대체가 구린 구석들이 얼마나 많길래…. 이 기자가 취재한 의원들은 좀 어때? 그 쪽도 한숨 나와?”

한참 말을 하던 우 기자는 내 표정을 보더니 말을 끊었다.

“뭐 잘못 됐어, 이 기자?”

“다 잘못 됐어.”

“뭐 때문에 그러는데?”

“상관하지마.”

“에이…, 짝꿍!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

우 기자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됐으니까 들어가. 혼자 있고 싶어.”

“어떻게 그냥 놔둬.”

“기사 안 쓸 거야? 들어가서 기사나 써!”

“이 기자도 얼른 기사 써야지.”

“녹취해 놓은 게 다 날아갔어! 어제 내가 저장시킨다고 했는데 아마 그게 잘못 됐나봐. 처음부터 다 다시 해야 된단 말이야.”

“그래서 이러고 있었던 거야? 난 또 뭐라구. 다시 하면 되잖아. 오늘 안으로만 기사 넘기면 되니까. 내가 도와줄게.”

“몇 시간은 걸릴 거야.”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는 거야. 쉬운 일이면 도와주지도 않지. 걱정 마.”

우 기자는 나를 아이 타이르듯이 달랬다.

“지금부터 점심 때까지 다시 정리하고 점심은 좀 늦게 먹자. 기사 다 쓴 다음에. 그리고 기사를 쓰면 되는 거야. 알았지? 어차피 어제 한번은 들었던 내용이잖아. 그럼 내용도 대충 알겠네, 뭐. 기사도 금방 쓸 수 있어. 걱정 말라니까. 기사도 두 꼭지는 써놨잖아. 그럼 하나만 쓰면 되는데 뭘 그래.”

“지금 쓰는 게 제일 중요한 기사라서, 오래 걸릴 거란 말이야.”

“괜찮아. 할 수 있어. 살다 보니까 정말 필요할 땐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더라.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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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렇게 우 기자 덕분에 무사히 마감 전에 기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고마워 제안했다.

“내가 보답으로 좋은 데 가서 저녁 살게. 괜찮지?”

원래 기사를 넘기는 날에 보통은 회식을 하지만, 이번에는 송년회도 있고 하여, 회식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우 기자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는데, 우 기자는 씩 웃더니 거절했다.

“고맙지만…, 이를 어쩌지? 오늘은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내일 하면 안 될까?”

“무슨 약속?”

“나중에 얘기해 줄게. 바빠서.”

그리고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말했다.

“이따 집에서 봐.”

우 기자는 늦었는지 급하게 뛰어갔다.

무슨 사람이 저래? 도와주지를 말든가. 괜히 잘해줘서 사람 마음만 이상하게 만들고 있네. 난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그러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내가 왜 저 인간한테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돈도 굳고 좋잖아. 밥을 사긴 무슨 밥을 사. 맨날 같이 먹는데. 요즘은 거의 세 끼 다 저 인간하고 먹잖아.

나는 씩씩하게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내가 다시는 저 인간한테 밥 사준다고 말하나 봐라. 누가 저 좋아서 그런대? 고마워서 예의 좀 차리려고 했더니 지가 뭔데 거절이야.

아이 참, 내가 왜 자꾸 화를 내는 거지?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인간하고 밥 먹으면 소화불량만 걸릴 거야.

그때 눈 앞에 호프집이 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예정에도 없던 호프집으로 들어가서, 맥주 500CC를 주문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저녁을 안 먹었는데도 술이 잘 들어갔다. 배 고플까봐 돈까스 안주를 시켰지만 안주는 거의 먹지도 않고 맥주만 마셔댔다. 오랜만에 혼자 있으니까 좋네, 뭐. 신경 쓰이는 것도 없고.

하긴, 요즘은 우지훈 때문에 사생활이 전혀 없긴 했어. 도대체 혼자 있는 시간은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시간 밖에 없다니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맨날 같이 있잖아. 그래, 혼자 있으니까 진짜 좋다. 좋다, 좋아.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쓸쓸함은 뭐지? 알 수 없는 기분을 털어내듯 한 모금, 한 모금, 맥주는 은근슬쩍 계속 없어져갔다. 지금 우 기자는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 재미있어하고 있겠지. 나쁜 인간.

술 때문에 사람이 참 감상적으로 되는군. 이게 다 우지훈 때문이야. 나쁜 자식. 그만 마시고 일어날까? 한잔 더 할까? 갑자기 취기가 몰려왔다. 그대로 있는 안주라도 먹으면 속이 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안주 쪽으로는 별로 손이 가지 않았다. 딱 한잔만 더 하지, 뭐. 그 정도라면 괜찮을 거야. 아직 9시 밖에 안 됐잖아.

그러나 그 다음은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내 방에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우선 시계를 보니 8시였다. 잠시 화들짝 놀랐지만,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해도 되는 수요일. 정말 다행이었다.

머리가 아팠지만 목도 마르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헝크러져 있고 얼굴은 화장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세수를 하고는 양변기에 도로 주저앉았다. 세번째 잔을 시켰던 이후로는 기억나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어젠 왜 그랬지? 생전 안 마시던 술을 그렇게 마시고. 다 우지훈 때문이야.…… 아니야. 그 인간 때문에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쨌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냉장고로 가 물을 꺼내 마시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집엘 왔을까? 사람의 귀소 본능이란 무섭다니까. 어제의 나를 우 기자가 봤겠지? 얼마나 비웃었을까. 부끄러워서 어떻게 얼굴을 보지? 실수는 안 했는지 몰라. 혹시 또 싸운 건 아닐까?

이번 주는 내가 식사당번이었다.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지만 할 수 없이 일어나 미적거리며 쌀을 씻고 있는데 우 기자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벌써 일어났어? 그래도 일어나긴 했네.”

우 기자의 말투를 들어보니 심상치 않다. 분명히 내가 술에 취해서 우 기자한테 시비라도 걸었나 보다. 적어도 내가 술에 떡이 된 걸 우 기자는 본 게 분명했다. 우 기자가 뭐라고 말할지 긴장하고 있는데, 그는 그냥 욕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휴우. 그냥 넘어가는 건가?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실수는 안 했나보군! 장하다, 이소영!

그러나! 욕실로 들어가려던 우 기자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잠이 반쯤 덜깬 얼굴로 묻는 것이었다.

“어제는 웬 술을 그렇게 먹었어?”

“응? 으응….”

역시 딱 걸렸군. 자기는 술 안 먹나? 나 정도면 양호한 거지, 뭘!

“속은 괜찮아?”

“위를 꺼내서 깨끗한 물에 씻고 싶다는 우 기자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아.”

“어지간히 마셨네. 내가 약 먹여줬는데도 그러는 거 보면.”

“무슨 약?”

“취했을 때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지는 약이 있어. 약 먹이느라 고생 좀 했다. 어제 일 하나도 기억 안 나지?”

“내가 뭐 실수는 안 했지?”

“말도 마. 허리 아파 죽겠어. 나 장가도 못 가면 진짜 이 기자가 책임져야 돼.”

“허리가 또 왜 아프대?”

“이 기자 업고 오느라고.”

“날, 날 업었어, 우 기자가?”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우 기자가 욕실에서 부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내가 당황해서 피했더니, 우 기자는 피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식탁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그래. 걷지도 못 했거든.”

등에서 식은 땀이 주루룩 날 지경이다. 이 인간, 지금 내가 기억 못 한다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거 아냐?

“이 기자가 있던 술집에서 연락이 왔었어. 이 기자가 술집 종업원한테 내 핸드폰 번호를 고래고래 외치면서 나를 불러달라고 난리를 쳤다던데.”

우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말하며 냉장고에서 콩나물을 꺼냈다.

“마침 콩나물이 있네. 꼭 준비해놓고 술 마신 것처럼.”

“내가 정말로 그랬단 말이야?”

“신세 진 것 꼭 갚아. 어제 나, 중요한 약속 있다고 말했던 건 기억 나지? 다른 사람 만나고 있다가 부랴부랴 달려갔단 말이야.”

진짜 미치겠군. 내가 고래고래 난동을 피웠단 말이지. 내 안에 그런 캐릭터가 있었단 말인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이네. 내가 왜 그랬을까?

“술값도 내가 다 내고 집까지 업고 왔다구.”

“누가 오래? 오기 싫으면 안 왔으면 됐잖아. 술값 얼마야? 갚아줄게!”

그가 콩나물을 씻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좀 고맙다고 하면 안 돼?”

“고마우려고 하다가도 우 기자가 그런 식으로 얄밉게 구니까 그런 마음이 싸악 없어져버리잖아.”

나는 되도록 도도하게 말했으나, 속으로 뜨끔했던 것이 아무래도 표정에 드러난 것 같다. 역시나 눈치 빠른 우 기자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술 취하면 내가 생각나긴 하나봐? 종업원이 전화하고 있는데 바꿔달라고 해서 빨리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걸.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내가 대꾸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가 내 등 뒤에 대고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어제 사람을 만나는 도중에 무작정 오라고 부른 거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 거, 내 양복에다가 토한 거 빼고는 실수한 거 없으니까 걱정마.”

양복에다 토하기까지 했단 말이야? 아우, 이소영, 진짜 개망신이 따로 없다. 이거 사전에다 올려야 돼. 개망신의 정의, ‘평소 친하지도 않던 사람한테 술 마시다 전화해서 오게 하고는 그 사람 양복에다 토하는 것’. 진짜 망했다, 망했어.

어색한 표정으로 아침을 같이 먹는데, 그가 따뜻한 얼굴로 말했다.

“천천히 먹어. 속도 안 좋은데.”

그의 목소리가 참 따뜻하게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멋있었지?

“어제 일은 고마웠어. 다시는 우 기자한테 폐 끼치지 않도록 할게.”

“나 그런 거는 다 이해해. 다만, 농담한다고 화 좀 내지 말라구. 그렇게 금세 화내고 그러면 내가 얼마나 무안해.”

“미안해.”

우 기자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참, 어제 이 기자 업고 오다가 옆집 아주머니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아, 진짜 어제는 망신에 망신이 겹쳤구나. 겹망신이로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회사에서 송년회를 했는데 이 기자가 취해서 업고 오는 거라고 그랬지, 뭐.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더라구.”

“윽! 나를 어떤 여자로 봤을까.”

“뭐 어때. 그 집에서는 나를 남편으로 아는데. 남편한테 업히는 건 괜찮은 거야. 아주머니가 부러워하시던걸. 내가 남편한테 업힌 게 언제더라, 하시면서 우리 보고 낭만 부부래.”

우 기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낭만부부? 나도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는 아주머니 같아. 그 집 아저씨는 어떤 분일지 진짜 궁금하다. 그치, 우 기자?”

“응. 언제 정식으로 인사드려야 할텐데.”

“그래, 정말.”

“국 좀 떠 먹으니까 속이 좀 낫지 않아?”

“응. 근데 어제 누구 만났어? 내가 미안해서 어떡하지?”

“미안하면 오늘 저녁 때 시간 좀 내줄래?”

“왜?”

“어제 나 저녁 사준다고 했잖아.”

“버스는 지나갔는데?”

“어쨌든 오늘 집에 좀 일찍 들어와.”

“왜 그러는데.”

“아까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지? 그러니까 특별한 일 없으면 들어와. 알았지? 아, 그냥 우리 퇴근 같이 할까?”

“굳이 같이 퇴근할 거 뭐 있어? 괜히 오해만 더 사게.”

“그런 게 뭐 중요해? 오해할 수도 있는 거지, 뭐. 근데 이 기자, 요즘 좀 달라진 거 알아?”

“뭐가?”

“예전에는 이 기자, 별로 남들 신경 안 쓰고 살더니 요새 보면 정말 많이 신경 쓰는 거 같더라. 나 때문에 그런 건가?”

그가 능청스럽게 웃었다. 내가 요즘 남의 눈을 신경 쓰나? 내가 변했나? 정말 그런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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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나오는 시사 잡지라서 화요일까지 기사를 넘기면 수요일에는 새로운 아이템을 잡는 것 외에는 바쁘게 할 일이 없는데다 연말이라는 분위기까지 편승해서 사무실은 하루종일 들떠 있었다. 같이 퇴근을 하자는 우 기자의 말이 신경 쓰여 어떻게 할까,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구 기자가 우 기자를 부르더니 손으로 한잔 꺾는 시늉을 했다.

“어때?”

나는 우 기자가 대답하는 것을 듣지 않고 그냥 바로 나왔다. 같이 퇴근하자는 말도 잊어버렸겠지. 그래, 기억할 리가 없어. 빠른 걸음으로 회사 현관을 나오는데 뒤에서 우 기자가 툭 쳤다.

“같이 퇴근하자고 했잖아. 먼저 가면 어떡해.”

“난 또 구 선배가 우 기자한테 한잔하자고 하길래 거기 갈 줄 알고.”

“오늘은 이 기자랑 선약이 있잖아?”

“그럼 구 선배한테 그렇게 말하고 온 거야?”

“나 원래 거짓말 못하거든.”

우 기자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정말 그렇게 말하고 왔단 말이야? 구 선배가 얼마나 또 떠들고 다니겠어. 며칠 전 팀 편성 때도 괜히 말 많았는데.”

“정말 신경 쓸 거 좀 신경 써봐.”

“그게 뭔데?”

“모르면 생각해 보라구.”

“…….”

같이 가다가 시장 앞에 오자 우 기자가 말했다.

“어, 저기, 이 기자, 장 좀 봐 올래? 집에 반찬 거리가 하나도 없어.”

“왜, 같이 가지. 기껏 같이 퇴근하자고 해 놓고 나 혼자 시장 보라구?”

“혼자 가기 싫어? 진짜 내가 남편인 줄 아나봐?”

“뭐야?”

“난 먼저 집에 가서 할 일이 좀 있거든.”

“뭐 하려구?”

“말 좀 들어라. 꼭 그렇게 꼬박꼬박 물어봐야 되나? 그리고 오늘 아침에 분명히 미안하다고 했지? 그럼 오늘은 내 말대로 좀 해줘야지 말이야.”

또 무슨 꿍꿍이로 저러는 거지? 정말 알 수 없군!

“그럼 나 먼저 간다.”

우 기자가 아파트 쪽으로 급하게 걸어갔다. 나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그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뭐 먹고 싶어?”

“해물탕.”

그가 돌아보고는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하필 재료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걸 고르다니,하여간! 나는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이것저것을 샀다.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뭐야, 이건! 정말 부부 같잖아. 그런데 저 인간이 왜 그러는 거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

정말 우 기자하고 정이 들어버렸나봐. 자꾸만 저 인간 생각이 나네. 이러면 안 되는데. 어제도 자기 애인하고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꼭 그게 아니라도, 만나던 사람한텐 뭐라고 말을 하고 나한테 왔을까. 미안한데. 내가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는데 왜 저 인간이 저렇게 나한테 잘 해주는 거지.

마음이 복잡했지만 우선은 접어두기로 했다. 장을 다 봐서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늘 그렇듯이 열쇠로 따고 들어가려다 그냥 한번 벨을 눌러 보았다. 열쇠로 따고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벨을 눌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오늘은 같이 퇴근 안 했나봐요?”

옆집 아주머니였다.

“예? 예.”

“어제 송년회 했다구요? 술을 잘 못하나봐. 남편이 업고 들어오던 거 봤어요. 부럽더라구.”

아주머니의 말끝에 웃음이 묻어있었다.

“… 예.”

얼굴이 화끈했다. 저 인간은 뭐하느라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이 기자, 잠깐만 기다려.”

우 기자가 안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아주머니가 물었다.

“기자 분인가봐.”

“예, 뭐….”

“그런데, 안에서 남편이 뭐 해요? 왜 기다리라고 하는 거예요?”

“예?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옷 갈아입는 중인가?”

“에이, 결혼한 부부가 아직도 옷 갈아입는 걸 부끄러워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내가 화제를 돌렸다.

“두부 좀 사러.”

“엘리베이터 왔네요.”

“그럼 나중에 봐요.”

아주머니가 타자마자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우 기자, 뭐해? 나 문 따고 들어간다.”

“못 열어. 내가 안에서 고리를 걸어놨거든.”

“나 쫓겨난 거야?”

“글쎄, 좀 기다리라니깐!”

조금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다시 12층까지 올라와서 멈추었다.

“아직도 안 들어갔어요?”

“예. 뭐 하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우 기자, 뭐 하냐구.”

“지금 나가.”

드디어 그가 문을 열더니, 옆에 있는 아주머니를 보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뭐 한다고 자기 아내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요. 이렇게 예쁜 아내 밖에서 얼면 어떡하라구.”

“추웠지?”

우 기자가 자상한 남편처럼 물으며 얼른 장 봐온 짐을 받아 들었다.

“저희,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다음에 뵐게요.”

나도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뭐 했어?”

내가 뚱하니 묻는데, 우 기자가 잔뜩 부푼 표정으로 말했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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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현정입니다^^
오늘도 너무 길었나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읽기 곤란하진 않으셨는지요..
다음부턴 좀 짧게 올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우 기자는 뭘 기대하라고 외쳤던 것일까요?

이날 저녁에는 우 기자와 이 기자가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늘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읽고, 답글로 격려해주시고, 추천 눌러주시는 모든 님들,
감사를 듬뿍 드립니다~

우 기자와 이 기자의 데이트를 기대하며,
김현정 올림